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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화학무기 폐기의 머나먼 길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의 머나먼 길

세계적 관심이 쏠린 민감한 임무를 맡은 유엔-OPCW 특별조정관 시그리드 카그 ... 시리아 화학무기 대부분이 이미 제거됐지만 관련 활동 일부는 완료 시한인 6월 30일 이후에도 계속될 것
5월 8일 시그리드 카그가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시리아 문제에 관한 안보리 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 총책임자인 시그리드 카그(53)는 지난 7개월 동안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카그의 공식 직함은 유엔-화학무기금지기구(OPCW) 합동해체단의 특별조정관이다. 이전에 세계적 정유업체 로열 더치 셸의 영국 지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금발에 조각상처럼 늘씬한 몸매를 지닌 그녀는 네덜란드 출신이며 8개국어를 구사한다. 파스텔 색상의 실크 정장을 좋아하고 어두운 색 매니큐어를 즐겨 바른다. 하지만 그녀에게선 화학무기 폐기를 책임지는 사람답게 강철 같은 면모가 엿보인다. 우아한 하이힐을 신고 있지만 땅에 발을 딛고 빨리 달리고 싶어 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2013년 8월 29일 유엔 조사팀이 화학무기 사용 흔적을 조사하기 위해 다마스쿠스 외곽 자말카의 흙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카그의 대변인 샤벨 라지에 따르면 시리아의 화학무기 프로그램 대부분이 이미 제거됐고 폐기 시한인 6월 말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하지만 라지는 “지금으로선 화학무기 폐기 관련 활동 일부가 당초의 6월 30일 시한 이후까지 계속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계의 관심이 쏠린 매우 민감한 임무를 수행 중인 카그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네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녀는 요즘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와 OPCW 본부가 있는 헤이그, UN 본부가 있는 뉴욕, 화학무기 폐기 기지가 있는 키프로스 니코시아를 오가며 산다.

카그는 지난 5월 사임한 라크다르 브라히미 전 유엔 시리아 특사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브라히미는 국제사회가 ‘너무도 절망적으로 분열돼 있어서’ 시리아 내전을 멈추려는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사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카그가 브라히미의 후임으로 결정되면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국제 위기의 협상을 책임지게 된다.

카그는 지금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맞다. 할 일이 많다”고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불평은 하지 않는다. 카그는 화학무기 폐기 임무를 맡을 때 시간이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잦은 비행기 여행과 호텔 투숙으로 녹초가 되는 일정을 참아내기로 했다. 결국은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OPCW에 따르면 시리아의 화학전 프로그램은 주로 이성분계(binary system)를 바탕으로 한다. 두 가지 독성 물질을 혼합해 맹독성 화학작용제를 만드는 것이다. 카그의 팀은 탄두가 아니라 대량 용기에 저장된 이 두 가지 독성 물질을 시리아의 항구 도시 라타키아로 운반한다. 그 다음엔 노르웨이와 덴마크, 영국의 선박들이 이 물질들을 이탈리아 앞바다에 정박한 화학무기 폐기 지원선 MV 케이프 레이호까지 운반한다. 그곳에서 복잡한 폐기 과정이 시작된다.

카그와 그녀의 팀은 이 독성 화학물질들을 추적하고 국제법에 따라 그것들이 확실히 파괴되도록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거기에 더해 그들은 많은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시리아가 모든 화학무기를 내놓았는가? 그 무기들이 도중에 엉뚱한 세력의 손에 흘러 들어가지는 않는가? 관련자 모두가 동일한 의도를 갖고 동일한 완료 시한을 목표로 일하고 있는가? 카그는 “(이 일에선) 믿음과 투명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로서는 시리아인들을 믿는 수밖에 없다.

시리아 구타에서 화학무기 공격이 일어난 후인 2013년 9월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화학무기의 포기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미국의 군사개입을 막으려는 러시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시리아로서는 화학무기 포기가 전쟁의 종식이나 이미 1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혈사태의 중단을 뜻하진 않는다. 시리아 관리들은 그것은 단지 “시리아 화학무기 프로그램의 시기적절한 제거”를 의미할 뿐이라고 말했다.

아랍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카그(라지는 “카그의 아랍어는 완벽하다”고 말했다. “난 그녀가 아랍어로 인터뷰를 더 많이 하면 좋겠다. 하지만 인터뷰 내용에 기술 용어가 많이 포함되기 때문에 그녀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아랍어 인터뷰를 자제한다.")는 이 지역에 관해 잘 안다. 그녀는 요르단에서 유니세프(UNICEF)의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국장으로 일한 경험도 있다.

2013년 8월 23일 요르단 암만의 시리아 대사관 앞에서 시리아인들이 정부의 독가스 공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카그는 예방 접종과 어린이 노동, 아동 결혼 문제 등 인도주의적 측면에 주력했다. 위기 지역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자신의 주변에서 엄청난 인간적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리고 마감 시한을 맞추려는 그녀의 끈질긴 노력이 효과를 거두는 듯 보인다.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 시한을 5주 정도 남겨둔 시점에 OPCW는 “시리아 당국이 밝힌 이소프로판올(시리아 화학무기 관련 물질 중 가장 위험하다) 비축분 전량”을 폐기했다고 보고했다. 지난 5월 22일 마이클 루한 OPCW 대변인은 “이제 시리아에 남아 있는 화학무기 관련 물질은 100t(시리아 당국이 발표한 비축분의 약 8%)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물질은 포장이 완료된 상태에서 이송을 기다리고 있다.”

이 정도로 카그가 상당히 만족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중요한 건 내 기분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다.” 카그가 유엔 사무국의 형광등이 켜진 사무실에서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상황 진전에 대한 보고를 막 끝낸 참이었다.

이른 저녁 시간이었지만 사무국은 카그의 사무실을 제외하곤 이상하리만치 텅 비어 있었다. 카그는 두 명의 보좌관과 함께 앉아 있었다. 온종일 쉴새 없이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한 그녀는 피곤해 보였다. 다음 날도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다마스쿠스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녀의 영어는 특이한 억양 없이 딱 부러지고 정확하다. 카그의 전 동료 한 명은 그녀가 “강인하다”고 말했다. 원하는 건 꼭 손에 넣는다는 의미의 칭찬이다. 또 다른 동료 한 명은 카그가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유엔에서 그녀의 위상이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카그는 1961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딸로 출생했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엑세터, 그리고 옥스포드대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랍어는 옥스포드대에 다닐 때 배웠다. 그녀는 “뭔가 색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그는 고교 시절부터 중동에 끌렸다. 그녀는 4차 중동전쟁으로 그 지역이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성년을 맞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네덜란드 외무부에서 일하다가 유엔에 일자리를 얻었다.

처음엔 유니세프에서 일했고 그 다음엔 유엔개발계획(UNDP)의 사무차장보로 헬렌 클라크 사무차장을 보좌했다. 뉴질랜드 총리를 지낸 클라크는 유엔 기구를 이끄는 극소수의 여성 중 한 명으로 선구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며 솔직하고 헌신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회색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배타적인 유엔 관료층에서 이들 두 여성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지난 5월 초 카그는 “화학무기 폐기 시한(유엔 안보리가 정한 시한 6월 30일)까지 45일 이상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 때까지 이 일을 마치는 게 내 임무다.” 시한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카그는 시리아 측이 스스로 “폐기 시한을 지키도록 만들기 위해” 그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했다. 카그는 그 과정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지만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그녀의 팀이 화학무기 관련 시설에 접근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 역시 어려웠다.

평화를 지향하지 않는 극단적인 야당 세력이 장악한 도로를 통과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들은 유엔 직원들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 5월 27일 OPCW 진상조사팀 두 명(이들은 유엔-OPCW 합동해체단 소속이 아니다)이 하마 지역에서 화학무기 관련 시설로 차를 몰고 가던 중 공격을 당했다. 카그는 이 사건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요즘 카그는 다마스쿠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도심의 한 호텔 방이 그녀의 사무실 겸 침실 역할을 한다. 호화롭지만 다소 쓸쓸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보안 때문에 “어디도 마음대로 갈 수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통금시간이 정해져 있고 지켜야 할 보안상의 규칙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쩌다 시간이 나도 구시가지에서 쇼핑을 하거나 차를 한 잔 하러 갈 수도 없다.

카그는 과학자나 화학 엔지니어가 아니다. 2013년 10월 16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그녀에게 이 임무를 맡겼을 때 그녀는 자신이 어려운 사항들을 빠르게 습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카그는 “새로운 사항들을 많이 익혀야 했지만 주위에서 든든한 지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카그는 아침 6시 30분에 헬스장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서다. “가끔은 하루에 두 번 헬스장에 갈 때도 있다. (이곳에서) 일이 없을 때 할 것이라곤 운동밖에 없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아침 일찍 유럽 곳곳의 관계자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팀 회의를 마친 뒤 다른 회의들을 시작한다.

시리아 측 관계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업무 진척 상황을 기록하고 팀원들과 타운홀 방식의 회의를 열기도 한다. 해가 지고 회교 사원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다마스쿠스 시내에 울려퍼질 때쯤 뉴욕은 오전 시간이기 때문에 전화와 요청들이 계속 밀려들어온다.

카그의 남편 아니스 알-카크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치과의사다. 그들의 네 자녀[제나(19), 마크람(15), 아담(12), 이나스(11)]는 어머니의 국제적인 시각을 전수받으며 성장했다. 아담은 스위스 제네바의 기숙학교에 있고, 제나는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전 1년을 네덜란드에서 보내고 있다.

나머지 두 자녀는 알-카크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산다. 어머니 역할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에 관해 그녀는 “그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운이 좋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남편이 내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하지만 좌절감이 들 때도 있다. “통제가 안 되는 일들이 있다.” OPCW 진상조사팀에 대한 공격이 일어나기 이전에 그녀가 말했다. “보안 상황이 그렇다. 우리에겐 군대가 없기 때문에 여러 세력의 선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투명하지는 않은 시리아 정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시리아 국민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동료들에게 자주 상기시킨다”고 그녀가 말했다. “내가 바라는 건 단지 우리가 하는 작은 일이…”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지금까지 많은 일이 완수됐다”고 그녀가 말했다. “현재 화학무기의 완벽한 제거를 위해 마지막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카그는 지금 행복할까? 그녀의 표정이 엄숙해 보인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행복할 순 없다”고 그녀가 말했다. “전혀 기쁘지 않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는 게 다행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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