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CLIMATE CHANGE - 속절없이 녹아가는 남극 빙하

CLIMATE CHANGE - 속절없이 녹아가는 남극 빙하

서남극 스웨이츠 빙하. 얼음의 손실 속도가 더 빨라져 해수면이 예상보다 더 빨리 높아질지 모른다.



지난 5월 11일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논문 두 편이 동시에 발표됐다. 남극 빙하의 붕괴 속도가 빨라지면서 해수면 상승의 가속화로 마이애미와 맨해튼이 우리 생각보다 더 빨리 물에 잠긴다는 내용이었다. 논문 저자 중 한 명인 미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는 “현재의 빙하 붕괴 상황은 이미 회귀 불능 지점을 지났다(the situation has passed the point of no return)”고 섬뜩하게 경고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해수면 상승을 우려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마치 거대한 빙산이 눈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포트 피에르에 사는 테런스 J 휴스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에도 그 두 논문 중 어느 것도 읽지 않았다. 반쯤 은퇴한 빙하학자인 그는 사실 1973년부터 서남극(West Antarctica, 남극의 서부 대륙)의 붕괴를 예측했다. 몇 년 뒤에는 그곳의 빙하가 정확히 어떻게 붕괴될 지 예측했다. 당시만 해도 관련 데이터는 거의 없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서야 과학자들은 그의 예측이 옳았다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 족집게 예측을 높이 산 동료들은 그를 “천재”이며 “빙하학계의 양심”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를 ‘괴짜’라고 무시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남극의 바다에 떠다니는 빙산.
올해 76세인 휴스는 대다수 기후학자들을 곱게 보지 않는다. “그들은 과장된 공포 분위기만 조성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 자신은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믿는다. “150년 동안 해수면의 약 18㎝ 상승이라면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2100년까지 약 90㎝ 더 상승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세계가 인식해가는 상황에서 그런 사실을 예언한 장본인은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다.



영원한 반대자“휴스는 인습타파주의자(iconoclast)”라고 텍사스대 빙하학자 도널드 D 블랭큰십이 말했다. “사람들이 희한하다고 생각하는 인물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인습타파주의자치고 머리가 아주 비상하다.” 실제로 휴스의 예측력은 전설적이다. “그는 그린란드의 야코브스하운스 빙하, 남극의 파인 아일랜드 빙하와 스웨이츠 빙하의 붕괴를 정확히 예측했다”고 워싱턴대의 이언 저핀이 말했다. 현재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는 세계 3대 빙하를 가리킨다.

저핀은 5월 11일 발표된 논문 두 편 중 하나의 주 저자다.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그 논문에서 저핀은 복잡한 컴퓨터 모델을 사용해 스웨이츠 빙하의 종말을 예측했다. 서남극을 지탱해주는 스웨이츠 빙하가 특정 수준을 넘어 녹으면 해수면이 머지않아(약 1000년 안에) 약 3m 추가 상승하게 된다.

다른 한 편의 논문은 지구물리학연구지에 실렸다. 그 논문에서 NASA의 에릭 리그놋이 이끄는 팀은 실측을 기초로 저핀과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 논문 두 편은 뉴올리언스, 탬파베이, 뉴욕시 같은 인구 밀도가 높은 해안 지역이 부분적으로 바닷물에 잠기는 미래를 보여준다.

이번의 두 논문이 나오기 거의 40년 전. 그때만 해도 젊은 빙하학자였던 휴스는 오하이오 주립대의 연구실 벽에 걸린 새로운 남극 지도의 윤곽을 자세히 살펴본 뒤 스웨이츠 빙하 주변 지역을 가리키며 한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바로 서남극 얼음이 다음 차례로 붕괴할 지역이야.” 그의 예리한 지형 관찰에 근거한 결론이었다.

1981년 휴스는 ‘서남극 빙상의 취약한 아랫배 부분(The Weak Underbelly of the West Antarctic Ice Sheet)’으로 제목 붙인 논문을 발표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윈스턴 처칠이 이탈리아를 “유럽의 허약한 아랫배 부분(soft underbelly of Europe)”이라고 부른 데 빗댄 표현이었다. 연합군이 공격하기 좋다는 뜻이었다. 휴스의 비유대로 이탈리아 반도가 연합군의 공격에 취약했듯이 서남극은 따뜻한 바닷물에 취약했다.

그런 뛰어난 예지력에도 불구하고 휴스는 고집스럽게도 초연했다. “과학계에서 내 견해는 언제나 주류에 반대하는 것이었다”고 휴스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는 대다수 과학자와 정치인들이 기후변화의 부정적인 면만 과장하고 그 이점은 무시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는 식물에 이롭고,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비옥한 농토가 될 수 있으며, 해변의 도시를 다시 건설하면 일자리가 생긴다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우리가 대공황에서 벗어났듯이 기후변화도 우리에게 그만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It would be as big a boon as World War II was at getting us out of the Depression)”고 휴스는 말했다.

현재 과학계 대다수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부인하지 않는다. 요즘 어느 과학자 두 명이 그 문제를 두고 견해차로 대립한다면 그건 세부 사항을 두고 언쟁을 벌이는 게 거의 확실하다. 해수면 상승, 물과 식량 부족, 산불, 기상이변 등 그 효과가 얼마나 빨리 닥치느냐를 둘러싸고 의견이 갈릴 뿐이다.

그러나 휴스는 그 전부를 “조직화된 공포 분위기 조성 전략(orchestrated scare tactics)”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단체에 소속되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동조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기후변화의 심각성 경고에 앞장 선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기후 히스테리를 경멸한다. “그런 공포의 북을 두드리는 과학자도 너무 많고 그들에게 지급되는 연구 보조금도 너무 많다.”

빙하의 붕괴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아무도 휴스의 말을 듣고 싶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다. 메인주의 지방 신문 뱅거 데일리 뉴스의 2002년 기사에서 메인대 지질학과장은 휴스(당시 그곳에서 연구했다)가 한 주에 아이디어 100가지를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중 99개는 쓰레기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최고”라고 그는 말했다.



취약한 아랫배 부분지구에는 빙상(ice sheets)이 두 개다. 그린란드와 남극대륙이다. 그 중에서 남극대륙이 더 오래됐고 훨씬 크다. 남극대륙은 기다란 산맥에 의해 균형이 맞지 않게 둘로 나눠져 있다. 작은 쪽이 서남극이다. 두께가 3.2㎞ 이상인 단단한 얼음이 해수면 아래의 대륙 기반암을 덮고 있다.

얼음 위에 떨어지는 눈은 녹지 않고 쌓인다. 그 눈이 단단히 굳어 새로운 얼음층을 형성한다. 그 눈얼음이 거대한 크기로 쌓여 아이스 돔(ice dome)이 된다. 물론 무게가 대단하다. 그 자체 무게 때문에 흘러내려 반반해지며 서서히 움직이는 빙하(glaciers)를 형성한다.

빙하가 바다로 흘러가면 마치 선반처럼 떠다닌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그것을 ‘빙붕(ice shelf)’이라고 부른다. 그 꼭대기는 빙산(icebergs)으로 계속 쪼개진다. 이런 빙붕은 빙하의 흐름을 늦추는 코르크 역할을 한다. 안정된 시스템에서는 빙하의 흐름이 아주 느리기 때문에 떨어져나간 빙산자리가 새로 내리는 눈으로 다시 채워진다. 얼음의 양이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뜻이다. 서남극의 빙상은 7000년 이상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지난 세기의 어느 시점에 대기(the atmosphere)와 대양(the ocean)이 변했다. 얼음이 녹고 빙하에서 얼음이 너무 빨리 떨어져나가 새로 내리는 눈이 그 자리를 메우지 못했다.

1970년 미국지리학회는 남극대륙의 지형도(topographical map)를 발표했다. 당시엔 실험실과 탄성파 탐사 장비를 끌고 스노모빌을 타고 얼음 위를 다니며 지도를 작성했다. 휴스는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그 지도를 살펴보다가 파인 아일랜드와 스웨이츠 빙하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냈다. 그 빙하들의 흐름을 늦추는 코르크가 너무 작아졌다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따뜻한 해수가 아래의 빙상을 녹인다면 빙하는 더 빨리 얼음을 잃을 게 뻔했다.

과학적인 발전이 거의 없이 10여 년이 흐른 뒤 1990년대가 되자 기술이 훨씬 좋아졌다. 이제는 실험실과 장비를 끄는 스노모빌 대신 얼음 투과 레이더, 자기 센서, GPS가 탑재된 소형 비행기가 이용됐다. 현대식 장비로 관측 결과 파인 아일랜드와 스웨이츠 빙하 남쪽에 있는 로스 빙붕이 가장 빨리 움직이고 가장 빨리 녹는 듯했다. 그래서 그곳에서부터 지도 작성을 시작했다.

얼음과 땅이 만나는 곳이 매끄러운가, 험준한가, 구릉 형태인가? 그 단서는 빙하가 흐르고 녹는 속도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험준한 산마루 형태는 마찰력 때문에 얼음의 흐름을 늦춘다. 고속도로에서 럼블스트립(rumble strip:차로에 선을 그어 차가 통과할 때 소음과 진동이 생기도록 하는 시설)이 차의 속도를 낮추듯이 말이다.

서남극의 공중 측량을 여러 차례 이끈 블랭큰십은 “겉보기엔 로스 빙붕이 완전히 엉망이 된 듯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 좀 더 긴 안목으로 보면 상당히 안정된 상태였다.” 진짜 엉망이 된 것은 휴스가 예측했듯이 파인 아일랜드와 스웨이츠 빙하였다.

파인 아일랜드와 스웨이츠 빙하의 원천인 아문센해 후미는 서남극의 한쪽 구석에 있다. 가장 가까운 과학기자가 수백㎞ 떨어져 있다. 바람이 세고 눈보라가 잦아 온통 어찔어찔하고 흐릿해 보이는 곳이다. 블랭큰십은 그곳이 한 주라도 지속적으로 맑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4~2005년 남극 여름의 맑은 하늘이 오래 지속되면서 과학자들은 소형 비행기를 타고 서남극의 미묘한 곳을 측량할 수 있었다. 그 이래로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은 매년 그 지도를 들고 그곳으로 돌아가 놀라운 연구 결과를 계속 쏟아냈다. 그 연구 결과들이 합쳐져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뚜렷한 기후변화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스웨이츠와 파인 아일랜드를 포함해 6개 빙하에서 얼음이 1973년보다 77%나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과학이냐 정치냐?해수면은 20세기 초 이래 연간 약 1.7㎜ 상승했다. 지금부터 2100년 사이에는 30~90㎝가 상승할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계산은 서남극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는 그 추정에서 최대치 쪽이 옳을 가능성이 크다.

해양학자들은 아직도 서남극의 붕괴 원인을 정확히 밝히진 못했다. 그러나 대기의 기온이 오르면서 바람이 강해져 해류에 영향을 미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공기보다 물이 얼음을 더 잘 녹인다”고 뉴욕대 해양학자 데이비드 홀런드가 말했다. 그는 남극 순환 심층수(Circumpolar Deep Water)로 불리는 따뜻한 해양층의 특이한 이동을 연구하고 있다. 주로 이 심층수는 남극 대륙붕 아래에 안전하게 머문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과학자들은 그 심층수가 해저(海低, seafloor) 골을 따라 새어나와 서남극 빙상을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 변화는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있다”고 NASA의 리그놋이 최근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할 수 있는 ‘탄소세’를 도입한다고 해서 이 빙상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서남극의 이 구역이 붕괴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듯하다.” 그의 말에 다른 기후과학자는 “섬뜩하다”는 트윗을 날렸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휴스의 말대로 공포를 조성하려는 전술일까? 아니면 기후변화 예언가들의 암울한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일까? 지난해 일단의 연구자들이 그 질문을 파고 들었다. 그들은 과학 문헌들을 검토한 뒤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실제로 서남극을 포함해 자신들의 예측을 오히려 축소할 가능성이 더 컸다.

휴스는 자신이 언제나 주류에 반대한다는 점을 즐긴다. 1966년 거듭남을 체험한 후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된 그는 낙태된 태아의 끔찍한 시신을 이용해 낙태반대 운동을 벌였다. 그가 그런 끔찍한 사진을 전시하자 2001년 한 가톨릭 성당은 그의 성당 출입을 막았다. 그는 욕설에도 시달렸다.

휴스는 공화당원이지만 자신의 정치관이 과학 연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구온난화의 경우 그는 “기후과학에 관한 나의 지식이 내 정치관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기후변화의 속도가 아주 느리기 때문에 인간이 그런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에 시급히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앨 고어가 대표적이다)은 과학의 좌익 정치화라고 휴스는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헤리티지 재단이나 하틀랜드 연구소 같은 우익 연구소와 손잡고 일한다거나 그들을 적극 지지하는 것도 않는다(그런 연구소는 인간이 일으키는 기후변화를 강하게 부인한다). 휴스는 이념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다. 그 스스로 “울타리를 벗어난 사람(beyond the pale)”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아이러니는 이것이다. 휴스가 1970년대에 예측한 서남극의 변화가 옳았다고 모두가 인정하지만 지금 와서 그 자신은 그곳이 파국을 맞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처칠이 이탈리아 반도가 ‘연합군에게 만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연합군이 그곳에서 고전했다고 휴스는 지적했다. 그런 생각은 거대한 빙하 앞에서 휴스가 느끼는 겸허함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 알 만큼 충분히 안다.

“먼 미래를 믿을 만하게 예측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얼음 흐름의 역학이 잘 이해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휴스는 말했다. “그래서 나는 처칠이 틀렸듯이 내 예측도 틀렸기를 바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 日기시다 "북일 간 성과를 내는 관계 실현은 쌍방 이익에 합치"

2삼성 반도체 매출 세계 1→3위로 추락…인텔·엔비디아 선두로

3“먹는거 아닙니다, 귀에 양보하세요”…품절대란 ‘초코송이’ 이어폰 뭐길래

4마침내 ‘8만전자’ 회복…코스피, 2800선 돌파 기대감 ‘솔솔’

5최태원 SK 회장 둘째딸 최민정, 美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차렸다

6 이재명 인천 유세현장서 흉기 2개 품고 있던 20대 검거

7영천 최무선과학관, 새단장하고 오는 30일부터 운영 재개

8조각 투자 플랫폼 피스, ‘소비자 추천 글로벌 지속가능 브랜드 50′ 선정

9어서와 울진의 봄! "산과 바다 온천을 한번에 즐긴다"

실시간 뉴스

1 日기시다 "북일 간 성과를 내는 관계 실현은 쌍방 이익에 합치"

2삼성 반도체 매출 세계 1→3위로 추락…인텔·엔비디아 선두로

3“먹는거 아닙니다, 귀에 양보하세요”…품절대란 ‘초코송이’ 이어폰 뭐길래

4마침내 ‘8만전자’ 회복…코스피, 2800선 돌파 기대감 ‘솔솔’

5최태원 SK 회장 둘째딸 최민정, 美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