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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E & SENSIBILITY - 시가 죽었다고? 천만에

SENSE & SENSIBILITY - 시가 죽었다고? 천만에

시 낭독 열풍 ... 늘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정신적 영양제로 재인식
“시 한 편은 30초면 읽는다. 그러나 잔상은 오래 간다. 그 순수함, 마음으로 전해지는 농축된 감성의 떨림, 짙은 감동이 마음 속에 깊이 남는다. 아주 소중한 경험이다.”



4월의 마지막 화요일. 지하철 파업으로 교통이 마비된 런던 시내에서 900여 명이 사우스뱅크 내셔널 시어터로 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들은 주최측이 내건 힘든 약속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지 알고 싶어했다. 주최측은 광고에서 관객석이 ‘눈물 바다’가 될 것이라고 장담을 했다.

더 놀라운 건 공연 장르다. 내셔널 시어터 리틀튼 극장에서 열리는 이 공연은 모든 학생의 눈꺼풀을 무겁게 내리누르며 서점 구석 서가로 밀려나는 장르, ‘시’를 낭독하는 공연이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온 것도 아니고 중요한 시험을 볼 것도 아닌데 W H 오든과 필립 라킨,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읽겠다니. 눈물을 닦아줄 티슈 값이 포함되지 않은 저녁 공연 관람료는 4파운드(7000원)다.

기자이자 전기 작가인 앤서니 홀든과 영화제작자인 아들 벤이 편집한 시선집 ‘다 큰 남자도 울게 만드는 시(Poems That Make Grown Men Cry)’가 공식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책은 ‘시’라는 장르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리고 일요 신문 증보판 첫 면에 등장시킨 일등 공신이 됐다(수익금은 국제사면위원회에 기부한다).

영화·TV·문학·코미디·음악계 유명인사가 추천한 시로 구성하고 자극적 제목을 달고 나온 시선집은 출판업계에서 작은 센세이션을 몰고 왔다. 그러나 홀든 부자처럼 시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이는 당연한 결과다. 시는 옛날부터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예술 양식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눈에 띄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뿐이다. 시는 쓸모 없는 구시대적 장르가 아니라, 늘 시간에 쫓기고 감성에 메마른 현대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지성적 영양제다.

“시 한 편은 30초면 읽는다. 그러나 잔상은 오래 간다”고 벤 홀든은 말했다. “그 순수함, 마음으로 전해지는 농축된 감성의 떨림, 짙은 감동이 마음 속에 깊이 남는다. 아주 소중한 경험이다.” 아버지 홀든의 표현을 빌리면 시는 “감성을 키워주는 헬스장”이다.

시가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러나 면밀히 생각하면 시는 결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북셀러 잡지 최근 기사를 보면, 지난 14년 사이 시 매출액이 1억 파운드(약 1740억 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게다가 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포워드 상이나 T.S. 엘리엇 상은 각자 1992년, 1993년부터 매년 훌륭한 시를 뽑아 수상해왔다. 이 두 개 문학상은 최우수 수상자와 결선 진출자에 총 4만 파운드(약 7000만 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영국 슈퍼마켓 체인 웨이트로즈가 의뢰한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3%가 시를 사랑하거나 관심이 있다고 답했으며, 페이스북에서 시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을 표시한 사람은 190만 명이나 된다. 체스터 동물원부터 그레이트 노스 런 마라톤 대회까지 각종 기관이나 행사에서 전담 시인을 두는 경우도 있고, 도브 비누와 대중교통 시스템 트랜스포트 포 런던(Transport for London)을 비롯한 다양한 브랜드는 시인을 통해 대중과 진실한 소통을 시도한다.

배우 롭 브라이든과 스티브 쿠건은 황금 시간대로 분류되는 금요일 밤 BBC2에서 방영하는 ‘이탈리아 여행(The Trip To Italy)’에서 틈만 나면 낭만파 시를 인용한다. 라디오 프로그램 ‘더 버브(The Verb)’와 ‘포이트리 플리즈(Poetry Please)’는 주간 방송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2개 프로로 꼽혔다. 게다가 영국 전역의 펍 안쪽 홀에서는 스탠드업 코미디 대신 자아를 표현하거나 왁자지껄한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시낭송 공연이 열린다.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청년 시인 홀리 맥니쉬와 마크 그리스트가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동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300만 회를 넘겼을 정도다.

시는 옥스포드나 캠브리지를 졸업한 고전학자들이 대중가요 가사에 익숙한 도시 젊은이와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홀든의 시 문집에서는 시인을 ‘그(he)’로 지칭했지만, 사실 영국의 계관시인 중 5명은 여성(캐롤 앤 더피, 리즈 로크헤드, 질리안 클라크, 시너드 모리세이, 폴라 미한)이다. 시는 영국에서 가장 민주적인 예술 장르인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이나 업계 유명인 15명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인기가 아무리 상승해도 ‘시의 경제성’이라는 주제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매출 1억 파운드를 달성했다 하지만, 시인이 실제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시인이란 존재가 들판에서 긁어 모은 곡식이나 과일 쪼가리로 연명하며 다락방 꼭대기에 갇혀 사는 건 아니지만, 오롯이 시만 쓰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인도 없다.

시인들은 대학 강의나 창의적 글쓰기 과외, 공연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지원금이나 공연, 상업적 수수료에 항상 목말라 있다. ‘성인 남자도 울게 만드는 시’ 선집은 출판 후 5주간 5600부의 판매를 기록했는데, 이는 상당히 놀라운 수준이다. 그러나 선데이 타임즈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다른 장르의 책을 살펴보면, 제프리 아처의 소설 ‘신중하게 소원을 비세요(Be Careful What You Wish For)’는 9주차까지 4만670부가 판매됐다. 처음 선보이는 시선집이 수백 부 정도 판매(전국 순회 낭송회에서 판매한 부수 포함)됐다면 선전한 거다.

2013~14년, 영국 예술위원회는 전체 기금에서 310만 파운드(약 54억 원)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을 시문학에 배정했다. 업계 최대 후원기관인 셈이다. 그러나 2011년에는 예산이 계속 삭감되면서 문학기관 중 시인협회와 엘리엇 상 주최기관의 재정 후원을 철회했다. 캐롤 앤 더피가 정부를 대상으로 역사상 가장 문학적인 항의를 하며 화제를 일으켰지만, 후원금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언론 또한 시문학의 입지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눈치다. 2년을 주기로 “시는 죽었다”, “시는 새로운 록앤롤이다”라는 주장이 번갈아 나와 당황스러울 정도다.

“어떻게 보면 ‘시가 죽어간다’는 주장이 역으로 시를 살리는데 공헌하고 있다”고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의 세이슨 시문학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시인 크리스 맥카베가 말했다. “시를 마케팅하고 판매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흥분시키는 언어에 대한 인간의 기본 욕구가 변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했을 때, 이를 찾아낸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욕구를 푼다. 그것이 바로 시다.”

30대 중반의 맥카베는 과거 젊은 시인의 부푼 꿈을 안고 고향 리버풀을 떠나 영국 최대 시문학 컬렉션을 찾아 다니다가 세이슨 도서관에 관해 알게 됐고, 결국 이 곳에서 일하게 됐다. 지금 맥카베가 관리하는 컬렉션은 과거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정기간행물 선반에는 정기적으로 시를 발표하는 180여 개의 잡지와 저널이 있으며, 도서관은 매월 200~300개의 시집을 수집한다.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났다. 출판물이 증가한 것도 있지만, 판매부수가 줄어서 재고가 늘어난 것도 있다”고 맥카베는 말했다. “대형 출판업체나 독립 출판업체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도서관 수집 서적이 크게 늘었다. 출간물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영국의 시문학 산업은 크게 3가지 범주로 나뉜다. 파버 앤 파버, 펭귄, 조너선 케이프(랜덤 하우스 계열)는 고전으로 평가 받거나 이미 좋은 평가를 받는 시를 주로 출간하고 여기에 촉망 받는 젊은 시인(샘 리비에르, 에밀리 베리는 파버와 계약)의 작품을 조금 섞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시집 출판은 때로 호사로 여겨지기 때문에 수익성이 더 높은 출판 부서쪽에서 비용을 지원한다.

“시 한 편은 30초면 읽는다. 그러나 잔상은 오래 간다. 그 순수함, 마음으로 전해지는 농축된 감성의 떨림, 짙은 감동이 마음 속에 깊이 남는다. 아주 소중한 경험이다.”



거대 출판사의 반대쪽에는 팸플릿 출판사와 영세 출판사들이 있다. 이들 중 예산 지원을 받는 업체는 일부밖에 없다. 그래서 이 곳의 편집자들은 일을 너무 사랑한다고 되뇌어야만 버틸 수 있다. 이들은 흙 속의 진주를 찾아 다니며, 재능 있는 아마추어 시인을 발굴해 후원하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발판이 되어 준다. 그리고 대형 출판사의 눈에 띌 때까지 이들의 재능을 키우며 스타로 만들어준다.

블러닥스 북스와 카르카넷 프레스는 영국 최대의 독립 시문학 출판사다. 두 출판사 모두 영국 예술 위원회로부터 재정 후원을 받지만, 수익은 꿈도 못 꾸고 손실을 피하는 걸 최대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두 출판사는 현대 글로벌 시문학 최고의 인재를 발굴해낸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치누아 아체베와 로버트 그레이브스, 에드윈 모건은 죽을 때까지 카르카넷과 함께 했고, 리 머레이는 아직도 카르카넷에서 출판한다. 블러닥스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비롯해 루마니아와 시리아, 중국, 팔레스타인 망명시인 작품을 출간했고, (지금은 파버와 계약을 맺은) 사이먼 아미티지와 벤자민 제파니아의 문집을 출판했다.

1978년 블러닥스를 창립한 닐 애스틀리는 지금도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난 36년간 시의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2002년 블러닥스는 애스틀리가 편집한 시집 ‘스테잉 얼라이브(Staying Alive: Real Poems for Unreal Times)’를 출간했다. 시집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묘약이 될 수 있는 현대시 500편을 소개한다. 시집은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20여 만 부가 판매됐다.

“개인적으로 불안을 느낄 때, 우리 삶이 비현실적이라 느껴질 때 읽을 만한 시로 구성했다”고 애스틀리는 서문에 적었다. “시는 우리를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광고와 정치, 언어는 우리의 반응을 교묘히 조작하기 위해 온갖 방식으로 의미를 왜곡한다. 그러나 시는 이런 조작과 아무 상관이 없다. 삶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인간됨’이 바로 시다.”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레이첼 켈리의 회고록 ‘블랙 레인보우(Black Rainbow)’가 출간되면서 영국에서 시는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책에서 켈리는 급성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를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블랙 레인보우’ 출간 행사에서 켈리의 가족과 오랜 지기인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과 마이클 고브 전임 교육장관이 참여해 켈리를 위한 시를 낭송했다. 보수당 정치인이 잔뜩 긴장해서 시를 읊는 모습이 우스웠던지, 일부 언론은 여기에만 집중해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켈리의 책은 성공가도를 달리던 부유하고 건강했던 두 아이의 엄마가 현대인 특유의 질병으로만 간주되는 우울증에 걸려 만신창이가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켈리는 자살 직전까지 갔던 자신의 상황을 담담한 어조로 적나라하게 풀어갔다. 결국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것처럼 보이는 시인들의 언어에서 구원을 받았고, ‘수용’을 노래한 시를 읽으며 간신히 건강을 되찾았다. 소외감을 극복하고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자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최고의 시는 독자가 붙잡을 수 있는 희망을 준다”고 켈리는 말했다. 이제 켈리는 다섯 아이의 엄마로서 그녀가 회복할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했다.” 켈리는 이렇게 덧붙인다. “200년, 혹은 300년 전에 쓰여진 시와 공감하면 시가 보편적 인간성을 가진다는 사실,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떤 면에서 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편안한 위로를 안겨 준다.”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치유해주는 시의 힘은 교육이나 문화의 영향이라기보다 생물학적 진화와 연결된 본능으로 보는 편이 옳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행동신경학 명예교수 마이클 트림블은 인류가 리듬 때문에 시를 좋아하며, 이는 언어나 시각예술보다 음악을 들을 때 보이는 반응에 더 비슷하다고 말했다.

뇌손상으로 실어증에 걸려 대부분의 언어 구사력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도 감정 표현 능력은 여전히 남아 음악에 반응하고 시를 쓸 수 있다고 트림블 교수는 말했다. 특히 울음의 심리학을 파헤친 그의 연구는 수렵채집 사회가 모닥불을 피우며 집단을 형성하고 불로 음식을 요리하기 시작한 후부터 인류의 뇌가 더욱 발전해 최초로 음악을 만들고 “감정적 교류”, 다시 말해 눈물을 흘리는 법을 알게 됐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류가 상실과 사별, 꿈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면서 노래와 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원시시대 시를 짓고 해석하는 과정에는 위대한 삶의 신비가 녹아 있었다. 이 정서는 수십만 년이 흘러 5세기경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대를 초월한 희곡의 주제로 진지하게 탐색되기도 했다.

“호모 사피엔스 진화 과정에서 우리는 아주 강력한 자전적 기억체계를 개발시켰다”고 트림블 교수는 말했다. “아주 최소한의 계기만 있어도 (프루스트 소설처럼) 강력한 자전적 기억이 떠오르고, 이는 육체의 감정적 반응으로 이어진다.”

‘성인 남자도 울게 만드는 시’에 포함된 작품 소개글에서 시를 선택한 유명인들은 대부분 자전적 사건을 언급한다. 대부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험이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에 대해 논한다. 이런 기억과 연관되는 시는 감정을 울컥하게 만들 뿐 아니라 친숙함을 통한 위로를 안겨준다. 좋아하는 음악을 자꾸 듣는 것처럼 이런 시는 자꾸 읽게 된다.

‘성인 남자도 울게 만드는 시’에서 배우 톰 히들스톤은 데렉 월콧의 ‘사랑 후의 사랑(Love After Love)’을 소개하며 “이 시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읽는다”고 썼다(이 시는 켈리의 책에서도 언급된다). “광적이고 정신 없는 현대인의 삶에서 우리 삶의 근본적 진실을 알려준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 오랜 친구의 따뜻한 포옹과도 같다.”

봉사단체 SANE, 유나이티드 리스판스와 함께 일하는 켈리는 블랙 레인보우 지원 앱을 개발했다. 앱을 다운 받으면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한 치유의 말이나 “힘든 시간을 무사히 보내고 일상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시”를 읽을 수 있다.

시는 다른 이와 함께 하는 열린 예술 장르로 발전했다. 앤서니 홀든은 프랭크 커모드,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시선집 출간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편집을 하면서 종종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벤이 눈물을 흘리면 앤서니도 참지 못하고 똑같이 울었다고 한다.

인기 시인이 시를 낭송하는 동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300만 회를 넘긴다.



시가 활기찬 공연예술로 변화하기 시작한 건 기껏해야 50년 전부터다. 1960년대 ‘리버풀 시인’ 로저 맥고프와 브라이언 패튼, 에이드리언 헨리는 비틀즈와 가깝게 지냈고, 1965년 윌리엄 버로우즈와 앨런 긴스버그는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포이트리 인카네이션 행사(International Poetry Incarnation)에 출연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시문학을 중심 무대에 올려놓았다.

이후 펑크음악이 득세하며 시인 존 쿠퍼 클라크가 작사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970년대와 80년대 무정부주의 예술가와 사회주의자의 목소리에 서정성을 불어넣어 주었다. 현대의 시 낭송은 매일 밤 전국 도시에서 관객이 점수를 매기는 낭송 대회나 공연을 통해 어느 때보다 위세를 떨치고 있다.

마틴 갤튼과 댄 코크릴은 12년 전 시에 대한 열정을 마음껏 펼치고 장르 구분 없이 책에서, 또는 무대에서 시가 선사하는 자유로움을 알리기 위해 브라이튼에서 시낭송의 밤 ‘뱅 새드 더 건(Bang Said The Gun)’을 주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개최됐던 이 행사는 런던 남부 로벅 펍으로 장소를 옮긴 후 발 디딜 틈 없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2010년 2월부터 주간 행사로 고정된 후 인기는 더 높아졌다.

덕분에 런던 최고의 시낭송 공연으로 인정 받으며 유명 시인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존 헤글리, 이안 맥밀란, 케이트 템페스트, 홀리 맥니쉬, 머레이 라클란 영 등이 모두 이 곳에서 공연했다. 심지어는 앤드류 모션도 와서 2층의 작은 무대에서 시를 낭송했으며, 뱅 새드 더 건을 “에너지와 열정의 소용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떠들썩한 잔치 같은 뱅 새드 더 건은 시 낭독 열풍을 불러 일으켰고, 전국 여기저기서 비슷한 공연이 시작됐다. 공연장에 들어가면 창문과 벽에 그래피티 아트가 그려진 마분지 패널이 붙여진 걸 볼 수 있다. 입구에서 어둠을 밝힐 야광 팔찌를 받은 관객들은 빈 플라스틱 우유병에 콩을 넣어 만든 마라카스 악기를 흔들며 호응을 보낸다. 이 곳에서 시인을 향한 존경심은 대단하다. 낭송이 시작되면 경건한 침묵이 내려앉지만, 시끌벅적한 반응을 유도하는 내용이면(이럴 경우가 더 많다) 분위기도 흥겨워진다.

5월 초 뱅 새드 더 건 공연에 직접 가봤다. 시 중에는 버스 정류장 키스, 숙취, 아파트 계약, TV 프로그램 ‘그레이트 브리티시 베이크 오프(Great British Bake Off)’ 등 일상 속 주제를 노래한 것도 꽤 있었지만, 감정적 고양을 일으키는 시도 있었다. 롭 오튼이 먼저 무대에 올랐다. 여윈 얼굴에 신중한 성격을 가졌지만, 의외로 지난해 에딘버러 프린지 축제에서 ‘최고의 재치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그는 무대에 올라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해 미성년 군인들의 앳된 얼굴을 응시하는 외계인과 쥐에 대해 초현실적이면서 두서 없는 이야기를 시로 만들어 들려줬다.

그가 내려가자 2007년 영국 시낭송 경연대회에서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자 자리에 올랐던 디애나 로저가 무대에 올라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시 ‘페미니스트 되는 법’을 낭송한다. 아이패드 미니를 손에 든 그녀는 훌륭하게 조합된 구성과 재미있는 내용을 담은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감동적으로 전달했다. 관객은 마음을 빼앗긴 듯 조용해졌다가 곧 우레와 같은 박수로 답례했다.

공연 전날, 특별 공연에 참가하는 살레나 고든과 트위터로 연락을 취했다. 시 제목을 정해줄 테니 다음 날 해당 제목의 시를 낭송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크라우드소싱으로 아이디어를 모아 시를 짓는 실험을 하는 중이었는데 이를 ‘타자기 두들기기’라 불렀다. 제목이 정해지면 낡은 타자기를 두들겨 오타투성이의 새로운 시를 짓는다 해서 정해진 이름이었다. 나는 ‘성인 남자 울리기’라는 제목을 줬고, 다음 날 고든은 선원의 뱃노래 가사를 들려주며 남자의 울음을 유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옆에 엄마가 있는데 고추가 작다며 놀리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고든은 학창 시절 발렌타인 데이에 시를 지어주는 대신 담배를 받으며 가치를 인정 받았지만, 40세가 된 지금은 글쓰기, 공연, 방송, 기사 작성 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사색에 잠겼다가도 음담패설을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그녀는 글쓰기를 사랑하지만 타고난 공연가이기도 하다.

“신비주의로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소매를 걷고 나서야 한다. 공연을 하고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자신의 작품을 홍보해야 한다”고 고든은 말했다. “안 그러면 내 시를 어떻게 알리겠는가? 버스 정류장에 앉아 옆 사람 귀에 속삭일 건가?”

시를 홍보하고 보급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업계에서 애타게 찾는 전략의 핵심이다. 문학기관들은 대중의 시선으로 시를 끌어오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끊임 없이 찾는다. 기사를 쓸 당시에도 공공 장소에 새겨진 시나 유명행사의 시 낭독을 수없이 볼 수 있었다. 시를 홍보하기 위한 노력은 어디에나 있었다. 책갈피나 엽서, 각종 전단지에도 시가 들어가 있었다. ‘런던 라인즈(London Lines)’ 캠페인은 홍보 일환으로 과일 포장지에까지 시를 인쇄했다.

1994년 윌리엄 시그하트가 설립한 포워드 예술재단은 시 경연대회 ‘시의 날’을 지정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시의 날’ 심사위원장은 시인이 아니어야 한다. 올해에는 언론인 제레미 팍스만이 2013년 심사위원장이었던 자가 지넷 윈터슨으로부터 바통을 이어 받아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시는 보통 길이가 짧다. 잠재 독자들 또한 틈틈이 시간을 내 시를 읽는 걸 선호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디지털 방식으로 시를 보급하는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느리다. 시선집이 전자책 형식으로 보급되는 경우도 비교적 드물어 전자책 다운로드 매출은 전체의 3~5%밖에 되지 않는다. 독자들은 시를 종이책으로 읽는 걸 선호한다. 고급스럽게 만든 책이 더 인기가 높다. 그럴수록 좋아하는 시를 자꾸 읽게 되고 책장에 오래 둘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읽고 버리는 장르의 경우 전자책이 가장 잘 팔린다.)

그래도 T S 엘리엇과 친구들이 1953년 결성한 북클럽 시인협회(Poetry Book Society)는 추천시를 알리기 위해 디지털 형식에 더 집중할 전망이다. 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낭송하는 동영상을 올리거나 창작 과정을 기록한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급하는 방식이다. 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는 동영상을 모은 세계 최고의 시낭송 사이트 ‘포이트리 아카이브’ 또한 최근 새로운 모습으로 재단장했다.

크리스 맥카베는 올해가 가기 전 세이슨 도서관에 전자책이 도입될 예정이며, 앞으로 모든 연령대 독자에게 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화 주제가 추상시(마르셀 뒤샹의 ‘변기’에 상응하는 시 작품)로 바뀌며 열띤 논의를 이어갈 때조차도 도서관 바닥에는 그날 아침 열린 ‘러그 라임즈(Rug Rhymes)’ 행사의 알록달록한 책과 인형, 장난감이 널려 있었다.

러그 라임즈는 아이들을 위한 행사지만, “부모님을 위한 시도 넣었다”고 맥카베는 말했다. “부모가 되면 하기 힘든 일 중 하나가 동요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부모를 위한 긴즈버그의 시 한 편을 들려주며 이들에게도 시를 통한 기쁨을 전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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