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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의 탈(脫)달러 동맹 _ 美 경제 패권에 균열 생기나

브릭스의 탈(脫)달러 동맹 _ 美 경제 패권에 균열 생기나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질서에 맞서기 위해 브릭스 5개국이 손잡았다. 7월 15일(현지시간) 브라질 포트탈레자에서 열린 제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브릭스 5개국 정상은 신개발은행(NDB)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제이콥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를 주축으로 달러 질서에 맞서 새로운 국제통화 체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변화의 과정은 늘 카오스다.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진영과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진영 사이에는 반목과 충돌이 잇따르게 마련이다. 탈(脫)달러 움직임을 조망하기 위해선 최근 벌어진 국제 사건 몇 가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금융질서의 변화는 항상 지정학적 정세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우선 올 4월 흑해 연안의 크림반도에서 일어났던 일부터 시작하자.

러시아의 크림공화국 병합은 동유럽 변방의 소소한 사건이 아니다. 금융사(史)적으로는 미국의 달러 질서에 대항하는 중국과 러시아 간 강고한 연대를 불러왔기때문이다. 크림 병합으로 서방 세계가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응수는 아시아로의 동진이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간 끈끈한 동맹을 낳았는데, 양국간 금융협력도 여기에 속한다.

천연가스를 비롯한 양자 간 교역에서 결제대금을 달러가 아닌 루블과 위안으로 치르기로 약속했고, 위안과 루블 간 통화스왑도 맺기로 했다. 미국이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해외 금융계정을 동결한 그 순간, 푸틴의 전략에는 중국과 함께 ‘여차하면 달러를 버리겠다’는 엄포가 준비돼 있었다.



위안화 통화스왑, 역외 위안화 거래소 확대태평양 해상에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는 중국의 대외전략은 위안 국제화 행보와 함께 진행 중이다. 이미 지난해 서막이 올랐다. 대외안보 측면에선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를 둘러싼 대일(對日) 공세 수위를 높이는 한편 분쟁수역을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CADIZ)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이와 동시에 추진된 게 위안화 통화스왑과 역외 위안화 거래소 확대였다.

지난해 아세안과 유럽을 순방한 리커창 총리는 양자 간 교역확대, 즉 ‘13억 인구가 당신들 제품을 더 사주겠다’는 조건으로 무역결제 통화로서 위안의 활용도를 높이는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교역파트너들은 중국의 대외팽창 전략을 우려하면서도 13억 인구의 내수시장에 매료됐다.

새로운 밥벌이에 골몰해 있던 유럽의 금융허브(영국 런던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취리히 등)는 위안거래소 설치를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해당국 중앙은행들은 위안거래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인프라(중국과 통화스왑)를 깔기 바빴다.

대(對)중국 교역의 비중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는 유로존, 특히 독일 입장에서는 중국 내수시장 공략을 위해 위안화의 부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7월 미·중 전략경제대화가 열리기 직전 중국을 방문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미국 정보기관의 노골적인 스파이 활동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독일과 중국 관계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립 서비스를 날릴 정도였다.

프랑스 금융권과 정치권은 최근 미국과 달러 질서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가 이란과 거래를 텄다는 이유로 미국 사법당국으로부터 89억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맞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번 사건은 왜 우리가 달러에서 벗어나 유로화를 이용한 거래를 더 늘려야하는지 보여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정상태가 나빠진 미국은 적대국과의 전쟁은 기피하는 대신, 경제봉쇄라는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이를 어기는 금융회사에는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다 보니 국제사회로부터 반감을 사고 있다. 미국 경제의 체력이 부실해지고 미국 내수시장의 활력이 예전만 못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힘의 균열 양상이다.

7월15일의 신(新)개발은행(N DB, New Development Bank), 일명 브릭스개발은행의 출범과 브릭스 5개국 정상의 ‘포르탈레자 선언(For ta lezaDeclaration)’은 이런 국제적 흐름을 배경으로 한다. 72개 항목의 협약과 23개의 액션플랜으로 이뤄진 이번 선언은 신흥시장 국가들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으로 대변되는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질서에서 벗어나 독자적 국제통화 체제, 신흥시장 중심의 새로운 다자간 협조를 모색한다는 게 핵심이다.

외교안보 측면에서는 NATO(나토)와 같은 안보공동체로서의 성격은 배제했지만 선언문에서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등 분쟁지역의 평적 해법을 하나하나 나열할 만큼 향후 주요 사안에 대해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임을 보여줬다. 경제 부문에선 서구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에 분명하게 반기를 들었다.

IMF 개혁이 지체되는데 대한 비난과 연내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새로운 대안을 촉구할 것이라는 압박이 여기에 해당한다. IMF는 2010년자본금을 확충하고 이사를 자본금 납입 규모에 따라 재배정 하기로 했으나, 미국이 약정금 1000억 달러를 내지 않아 개혁은 답보상태다. 유럽의 반대로 이사 쿼터 재조정도 제자리 걸음이다. 이날 5개국 정상들이 글로벌 경제질서의 개혁을 촉구하며 NDB 출범을 알린 것은 ‘대안 부재’의 세상이 ‘대안 창출’의 변화기로 접어들었다는 선포다.

브릭스 5개국이 각각 100억 달러를 출자해 설립하는 NDB는 중장기적으로 자본금을 1000억 달러로 늘린다. 본사는 중국 상하이에 위치하며 이사회 의장은 러시아가, 첫 총재는 인도가, 집행위원장은 브라질이 맡는다. 남아공에는 지역본부가 설치된다. NDB는 신흥국의 동반발전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경제에 고른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 따라 각종 국제기구와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NDB뿐만아니라 향후 중국 주도 하에 출범할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도 적용될 내용이다.



남미·남유럽 재정 부실국 달래성공적 안착을 위해선 폐쇄성과 국제적 고립을 피해야 한다. 브릭스 정상회담 직전 푸틴과 시진핑이 보여준 행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푸틴은 정상회담에 앞서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에너지 제휴협정을 체결하고 부채를 탕감해 줬다. 시진핑은 브라질로 향하는 길목에 그리스를 방문해 이 나라 총리와 대통령을 만났다.

시진핑과 푸틴이 남미와 남유럽을 대표하는 재정 부실국가(아르헨티나와 그리스)를 방문한 것은 상징적이다. 브릭스가 추구하는 금융동맹이 달러 질서 하에서 쓴 맛을 본 이웃들에게 온정의 손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일본의 ‘재뿌리기’에 맞서 국제적 명분을 쌓으려는 선전전은 NDB의 안착과 AIIB의 성공적 출범을 위해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누리며 글로벌 금융질서를 구축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물론 기존 질서가 당장 무너지진 않는다. 군사대국인 미국이 선뜻 자신의 최대 발명품인 달러에 흠집이 나도록 내버려 둘 리도 없다. 브릭스 내부적으로도 대장 노릇을 하려 드는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변화는 생각보다 더딘 속도로 진행될 공산이 크며 주요한 변곡점을 통과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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