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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고우 홍하이정밀공업 사장 인터뷰 - “결국 삼성만 어부지리 얻어”

테리 고우 홍하이정밀공업 사장 인터뷰 - “결국 삼성만 어부지리 얻어”



일본을 뒤흔든 인물이 마침내 모든 걸 털어놨다. EMS(전자기기 위탁 제조서비스) 최대 업체인 대만 홍하이정밀공업의 테리 고우(궈타이밍) 사장 얘기다. 그는 경영 위기에 빠진 샤프를 인수하려던 인물이다. 2012년 3월 홍하이는 샤프와 제휴를 맺었다. 홍하이 측이 총 1300억엔을 출자해 절반은 샤프 본사에, 나머지는 오사카의 샤프 액정 디스플레이 공장에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 재계는 전자산업의 새로운 질서를 기대했다. 스마트폰·TV 등 전자기기 생산을 위탁 받는 홍하이는 생산 규모에서는 애플이나 소니를 앞선다. 생산 하청이라는 업종 특성상 눈에 띄지는 않지만 홍하이는 글로벌 전자산업의 핵심 기업이다. 샤프 인수로 전자산업의 일본-대만 라인이 구축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2년 여름부터 제휴 협상이 난관에 부딪치며 지지부진해졌다. 결국 교섭 기한인 지난해 3월 26일까지 출자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양사 간의 제휴가 사실상 무효가 된 것이다. 협상은 도대체 왜 어긋난 것일까? 그동안 언론을 피해온 고우 사장이 모든 사정을 얘기했다. 도쿄 오타구에 있는 홍하이 관련 기업 회의실에서 고우 사장을 만났다.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얘기하던 그는 인터뷰 30분 후부터 돌연 말문이 터진 듯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시작했다.

“샤프의 최대 문제는 오사카 사카이 공장이었다. 최첨단 공장으로 거액의 투자가 이뤄졌지만 엄청난 적자를 내고 있었다. 마치다 가즈히코 샤프 회장은 사카이 공장의 적자가 본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외부 자본을 도입해 사업을 분리하려 했다. 나는 여기에 힘을 빌려주기로 했다. 대신 본사 쪽에도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었다. 이를 위해 나는 사카이 공장에 사비를 털어 투자했다. 그런데 우리의 본래 목적이었던 샤프 본사에 대한 투자 상황은 어떻게 됐나? 2012년 3월 21일 샤프를 방문해 일주일 동안 얘기한 후 27일 제휴합의서에 사인을 했다.

샤프 본사 지분 9.9%를 1주당 550엔에 매입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샤프는 내게 빨리 사인하라고 요구했다. 상당히 독촉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듀딜리전스(기업사전조사)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 조사를 하겠다는 조건을 합의서에 추가하기만 했다. 그런데 조인 4일 후 거액의 손실이 드러나면서 샤프의 주가가 급락해 190엔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우리는 바로 듀딜리전스를 요구했지만, 처음의 협상 상대인 마치다 회장은 이미 은퇴한 상태였다.

3월 27일에 550엔으로 결정한 것은 과거 6개월 간의 평균 주가로 산출한 것이다. 그런데 주가가 100엔대로 급락하고 사전조사도 이뤄지지 않은데다가 리더까지 교체됐다.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8월 3일 마치다 회장과 가타야마 사장을 도쿄의 샤프 건물에서 만났다. 그들은 회사를 대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지분 9.9%를 시중가격으로 매입한다’고 협상을 했다.”

8월에 협상을 끝냈다는 것인가?

“그렇다. 550엔은 이제 상관없다고 했다. 마치다 회장은 시가인 100~200엔 정도의 출자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오쿠타 사장이 ‘마치다 회장은 물러났으니 그 결정은 무효ʼ라고 말했다. 그는 애초 가격인 550엔이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550엔에 출자하지 않으면 100엔대 주가로 삼성전자가 출자하도록 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삼성도 샤프의 중소형 액정기술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홍하이의 손해가 커져 약속을 이행하길 꺼렸다고 전해졌는데.

“그건 일본 언론이 보도한 것이다. 8월 3일 협의에서 마치다 회장과 가타야마 사장은 분명 자신들이 회사를 대표한다고 말했다. 녹음도 했다. 나중에 소송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일본에서의 내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만인이 일본 기업을 인수해 기술을 훔치려 한다는 말을 듣는 와중에 재판까지 할 수는 없었다. 만일 내 말에 틀린 부분이 있다면 샤프가 나를 고소해도 좋다. 불성실한 것은 샤프다. 분명히 말해 나는 샤프에 속았다. 결국 나중에 1주당 190엔에 삼성과 미국 퀄컴이 출자를 했다. 삼성은 가장 싼 시기에 투자한 것이다.”

홍하이의 출자에는 샤프 구제라는 의미 외에도 또 하나의 전략적 구도가 숨겨져 있었다. 일본과 대만이 힘을 합쳐 ‘타도 삼성’이라는 반격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었다. 고우 사장은 “2012년 3월에 조인한 문서에는 본래 삼성에 관한 조항이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과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그는 “하지만 계약서에 그렇게 구체적으로는 쓸 수는 없어 구두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고 말했다

많은 일본인은 샤프가 속았다고 생각한다.

“샤프를 속여서 무슨 이득이 있는가? 처음부터 샤프가 먼저 우리 쪽에 와서 ‘협동해서 삼성에 대항하자’고 말했다. 2011년 6월 1일의 일이다. 마치다 회장이 홍콩까지 와서 그렇게 말했다. 가타야마 사장과도 그런 얘기를 했다. 삼성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면 투자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샤프는 나를 버리고 삼성을 선택했다. 누가 속은 것인가? 만약 예정대로 홍하이가 샤프에 출자했다면 샤프는 삼성으로부터 출자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가장 이득을 본 것은 삼성이다.”

지금도 샤프의 다카하시 고조 현 샤프 사장과 만나는 등 왕래를 하는 이유는?

“아직 내가 사카이 공장의 주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 아직 샤프 본사와 제휴를 원해서다. 샤프가 지금이라도 내 힘을 빌리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도와줄 생각이 있다.”

샤프 측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시 한 말을 인정하는지, 그리고 지금이라도 시가로 출자한다면 그들이 수용할 것인지 묻고 싶다.”

받아들인다면 출자할 생각인가?

“물론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할 수 있다. 만약에 성사된다면 2년 후에는 샤프를 제대로 된 기업으로 변화시켜 보이겠다.”

이번에 일본을 방문한 목적은?

“일본의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하려고 한다. 사실 샤프와의 관계가 계기가 됐다. 내가 사카이 공장에 투자하기로 했을 때 일본 정부는 우리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야나세 타다오 경제산업정책국 심의관을 파견했다. 우리 회사가 자국 기업이 투자할 자격이 있는지 조사하러 온 것이다.”

자격이란 어떤 것인가?

“홍하이가 자국 기업의 기술을 훔치려는 게 아닌지, 애초에 기술력이 있는 기업인지를 살피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야나세 심의관은 대만의 홍하이 본사를 방문해 연구개발 상황을 살폈다. 나와 직접 만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샤프가 투자할 만한 기업이라고 했다. 그 후로도 친분을 쌓아 일본에 가면 종종 만나다가, 야나세 심의관이 아베 총리의 비서관이 되면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대신 그의 후임과 왕래를 가졌는데, 그 역시 샤프를 지원해달라는 말을 했었다.

일본 관료들은 대기업의 사업 모델 전환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뭐든 지원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에는 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일본 중소기업의 사업 모델 전환이 힘을 보태려고 한다. 일본 정부에서 뛰어난 중소기업 100곳의 리스트를 건네줬다.

과거 일본 중소기업은 대기업만 따라가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대기업은 리더를 잃어가고 있다. 좋은 리더였던 창업자들이 대부분 물러났다. 중소기업이 따라갈 지표를 잃어버린 상태다. 그래서 몇몇 기업을 골라 지원할 생각이다.”

자본제휴도 검토하고 있는가?

“필요하다면 출자도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글로벌화를 얼마나 지원하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중국 진출 지원이다. 홍하이는 중국과의 관계가 상당히 좋기 때문에 그 강점을 살리려고 한다. 중국에 있는 몇 개 도시에 일본중소기업 전문 개발지구를 만들고자 한다. 중국에서는 중소기업의 생존이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다.

많은 기업이 임금이 싼 베트남 등지로 이전한다. 하지만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다. 어려워도 굳건히 버텨내야만 한다. 나 역시 중소기업부터 시작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수십 명 밖에 없었던홍하이는 지금은 전 세계에 120만명 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니까내가 중소기업의 리더가 되어 그들을 지원하고 서로 발전해 가는 윈-윈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

고우 사장은 맨몸으로 사업에 뛰어 들어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어떻게 홍하이는 거대한 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중국에는 ‘천하무난사 지파유심인(天下無難事 只有心人, 難세상사 어려운 일 없고 마음 먹기 달렸다)’이라는 말이 있다. 또 는 많은 ‘선생’들이 있었다. 특히 일본의 대기업 창업자들이 내게는 뛰어난 스승이다. 나는 30번째 생일을 일본에서 보냈다. 마츠시타전기산업(현 파나소닉)과의 사업으로 오사카에 있었다. 이 때 마츠시타와 같은 대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살펴봤다.

당시 나는 일본에서 온갖 전시회를 돌아봤다. 플라스틱 부품에서도 생산설비에서도 일본의 높은 제조기술을 잘 알 수 있었다. 도요타자동차에서 일주일 간 생산방식 연수를 받은 적도 있다. 일본 기업은 당시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나는 제조기술부터 경 이념까지모든 분야에 걸쳐 일본에 대해 공부했다. 특히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 회장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크다. 모리타 회장이 이를 먹고 미국에 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보고 나도 미국에 회사를 차리겠다고 결심했다.

1986년의 일이다. 미국에 회사를 세워 사업을 해보고 나서 비로소 미국의 사업문화가 일본이나 아시아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은 엔지니어와 공장의 문화, 미국은 금융과 법률의 문화라는 게 내 해석이다. 일본은 기술이 상당히 훌륭하지만 시장은 폐쇄적이다. 그에 비해 미국은 이민문화로 비교적 개방돼 있다. 재팬디스플레이(JDI)라는 기업이 있다.

그 일부는 원래 히타치제작소의 모바라 공장이었다. 나는 78년 전 히타치와 액정사업 협업을 하기 위해 모바라 공장에 갔다. 모바라는 작은 도시다. 대부분의 시민이 히타치에서 일하고 있었다. JDI로 회사가 바뀌어도 일하는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사람의 이동이 적다.

‘인브리딩(근친교배)’ 문화다. 대만에는 7개의 액정 제조업체가 있는데 이들 간 직원 이동이 잦다. 사람의 유동성이 작은 것은 좋은 면도 있지만, 혁신이 필요한 단계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사고방식이 비슷해져 외부 자극이 없으면 새로운 것을 도입하기 어렵다. 어쨌든 일본은 나에게 선생이었다. 후에 미국에 가서 다른 선생을 만났는데 그가 바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다.”

잡스와의 비화를 들려달라.

“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 아무튼 일본과 미국에서 여러 스승을 만나 배우고 실천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기업 경영에는 장기전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이익을 중시하게 됐다. 둘째로 자사의 핵심 역량을 잘 파악해야 한다. 홍하이의 경우 최대 강점은 금형, 정밀 기계설비, 광학 등의 부문이다. 이 분야에 경영 자원을 집중시켰다.

셋째 중국의 대두라는 바람을 타야 한다. 또 글로벌화를 추진해 멕시코·브라질·헝가리·터키·러시아 등 신흥국에 공장을 세운 것도 성공요인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인재 육성에 힘을 쏟는다. 직원이 업무를 직업이 아닌 자기 사업이라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스톡옵션 등의 제도를 갖췄다.”

후계자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그 문제도 다들 물어본다. 나와 똑같은 경영인을 또 한 사람 탄생시키는 것은 어렵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것은 회사 전체를 12그룹으로 나눠 각각의 그룹에 리더를 배치시키는 형태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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