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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HACKING - DIY 생물학

BIO-HACKING - DIY 생물학

자택 뒷방에서 DNA를 조몰락거려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바이오해커들이 늘어난다
바이오 해커들이 유전자를 조작해 만들어낸 야광 식물이 곧 배포될 예정이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커뮤니티 생물학 실험실 젠스페이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한 여성이 생물형광 해파리의 DNA를 접합해 대장균 박테리아 유전자로 만든다. 빛을 발하는 생물 벽지를 만들 생각이다. 맞은편에선 고등학생 5명이 화이트보드 주위에 몰려 있다. 식수 속의 비소를 감지하는 생명체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이들은 미국의 바이오 해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연구소에 속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실험을 하는 생명공학 마니아 교사·사서·예술가들이다. 이들은 미국 각지의 몇몇 공립 실험실에 모여 생명체의 기본 설계도를 조작하며 DNA가 엉뚱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2000년대 소수 과학 마니아들이 자택 지하실에서 박테리아 DNA를 조몰락거리기 시작한 이후 바이오 해킹은 많은 발전을 이뤘다. 오늘날 DIY 생물학 제품들이 뒷방 실험실에서 제조돼 소비자들의 손으로 넘어간다. 거의 누구나 새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크라우드소싱(불특정 다수에게 일을 의뢰하는 방식) 과학의 시대다.

2013년 한 창업가 팀이 생물발광 박테리아의 유전자로 조작한 야광 식물을 개발했다. 올해엔 브루클린의 한 대학생이 다량의 방사능을 견뎌내는 식물을 개발하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이 식물은 방사능 재앙을 씻어내거나 나아가 다른 행성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젠스페이스의 유리벽 두른 실험실 앞에 놓인 공용 테이블에서 한 여성이 나를 맞이하며 자신을 엘런 욜겐슨이라고 소개한다. 면봉 하나를 건네며 내 볼 안쪽을 문지르라고 말한다. 앞으로 며칠 동안 내 세포들을 절개해 유전자 안에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는지 알아보게 되리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이들 각 세포에는 내 조상들의 이주 역사로부터 특정 질병에 대한 내 민감성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보가 담겨 있다고 한다.

분자생물학 박사인 욜겐슨은 전에는 담배 관련 폐질환을 더 쉽게 감지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회사에서 생물공학 연구원으로 일했다. 지금은 전통적 연구소의 테두리를 벗어나 생물학 실험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바이오 해커다. 내 DNA에 관한 연구가 클럽 가입의 첫 걸음이라고 욜겐슨이 말했다. 내가 유전자를 분리해낼 수 있다면 같은 기법으로 박테리아나 식물 같은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도 분리할 수 있다. 그녀의 설명을 듣는 사이 궁금증이 일었다. 내가 화성 최초의 식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DNA는 생명체의 기본 설계도이자 DIY 생물학자들의 주요 실험 대상이다.


나를 바이오 해킹한다내 입 세포 안의 DNA를 열어 보려면 세포들을 끓여야 한다. 세포들을 터뜨려 스파게티 냄비를 뒤집어 엎듯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과정이다. 내 세포들을 작은 플라스틱 약통으로 옮긴 뒤 물통 안에 넣어 끓인다. 몇 분 뒤 불을 끄고 식힌 다음 원심기에 넣고 회전시킨다. 약통을 꺼내 들어 불빛에 비쳐보니 흰색의 작은 입자가 바닥에 달라붙어 있다. “바로 그것이 당신의 기본 설계도”라고 욜겐슨이 말했다. “그것이 당신을 이루는 전부, 바로 당신이에요.”

2년 전 브루클린의 예술가 헤더 듀이-해그보그가 젠스페이스를 찾았다. 작은 DNA 샘플 하나 만으로 낯선 사람에 관해 얼마나 알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뉴욕 시가지를 돌며 담배꽁초와 버려진 검을 수집해 그 침 묻은 쓰레기들을 젠스페이스로 가져갔다. 듀이-해그보그는 욜겐슨이 내게 설명했던 바로 그 DNA 분리 과정을 이용해 샘플들에서 유전물질을 채취했다. 그녀는 이 낯선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었다. 따라서 신체적 특성을 나타내는 DNA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성별로부터 머리카락, 눈동자 색깔, 피부색, 코의 너비, 두 눈 사이의 거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들 얼굴의 3D 모델을 구성하고 3D 프린터로 출력했다. 얼굴을 똑같이 재현해 내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말하는 이른바 ‘가족적 유사성’을 공유했다. 이 프로젝트를 완성한 뒤 듀이-해그보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타인에 관해 얼마나 많이 알아낼 수 있는지에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머리카락 한 올이나 담배꽁초 한 개비로 낯선 사람에 관해 얼마나 알아낼 수 있을지 몰랐지만 끝날 무렵엔 아주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듀이-해그보그가 말했다. “이 유전자 프라이버시란 개념에 정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그와 같은 관심이 그녀의 최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촉매제가 됐다. 사람의 유전적 흔적을 지우는 액체 스프레이다. 2개의 스프레이로 구성된 그 용액은 지난 6월 99달러에 출시됐다. 첫째 용액은 버려진 DNA를 대부분 파괴하는 강력한 세정제다. 둘째는 남아 있는 유전적 흔적이 모두 뒤엉키게 만드는 외래 유전자들의 혼합물이다. 유전적 이상을 가진 사람이 직장이나 취업 인터뷰에서 차별 받지 않도록 하는 데 그 스프레이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고 듀이-해그보그는 생각한다. “누구나 어디에서든 이 같은 실험을 통해 사람들의 DNA를 살펴볼 수 있게 될 때 이것이 생활 필수품이 된다”고 그녀가 말했다.

자택 뒷방 실험실에서 생물학 연구를 하는 바이오해커들이 늘어난다.
욜겐슨이 인도하는 대로 내 자신의 DNA를 들여다보는 과정을 밟아나갔다. 특정 형태의 HIV(에이즈 바이러스)에 더 저항력을 갖도록 하는 특수 돌연변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녀는 복사기와 다소 비슷하게 생긴 사무 장비를 사용했다. 그 기계는 열(그리고 DNA 가닥들이 해체된 뒤 재조합하도록 돕는 특수 효소)을 이용해 내 유전자를 복사했다.

그뒤 그 작은 유전물질 조각들을 비가시광선에 비춰 봤다. 가닥이 길면 내게 돌연at변이가 없다는 뜻이다. 돌연변이를 물려받은 사람은 유전물질의 일부가 누락되기 때문에 그 DNA 부위의 가닥이 짧다. 양친으로부터 그 돌연변이를 물려받은 사람의 경우 더 많은 부분이 누락된다. 따라서 특정 형태의 HIV에 2배의 저항력을 지닌다. 욜겐슨과 나는 내 DNA를 스캔하며 HIV에 더 내성을 갖도록 하는 돌연변이를 스캔했다. “당신은 평범한 듯하다”고 그녀가 말했다.



세상을 바이오해킹한다내가 유전자 검사를 한 작은 실험실 바로 앞의 화이트보드에 욜겐슨이 굵은 컬러 마커 펜으로 큰 원을 그렸다. 박테리아에는 플라스미드라는 둥근 DNA 분자들이 있다고 그녀가 설명했다. 플라스미드는 일반 유전물질과 떨어진 세포에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그 둥근 ‘유전적 일꾼’의 다양한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현미경을 이용한 ‘잘라내기’와 ‘붙여넣기’ 작업으로 한 생명체의 유전자들을 다른 생명체로 이동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그 시스템이 항상 똑같다는 사실”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해파리 유전자를 대장균 약병 안에 넣어 빛을 발하도록 할 수 있는 까닭이다.”

바이오 해커들은 실험실 테스트에서 살아남는 그런 조합을 수백 건 발견했다. 그에 따라 감시단체들은 바이오 해킹된 생명체가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아무런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이제 바이오 해커들은 부정적인 영향이 있는지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을 널리 배포할 능력을 지닌다.

2013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창업가 팀이 바이오 해킹으로 생산된 최초의 야광 식물 판매 계획을 발표했다. 그 직후 ETC라는 기술 감시단체가 그 프로젝트를 중단시켜 달라는 진정서를 미국 농무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연방 당국은 그것을 규제할 제도적 수단이 없다고 ETC에 답변했다.

발광 식물 개발팀은 수 개월 사이 그 프로젝트의 종자돈으로 50만 달러 가까운 자금을 조달했다. 6만5000달러의 목표액을 훨씬 뛰어넘은 금액이었다. 개발팀은 올 여름 프로젝트 후원자들에게 발광식물 종자 60만 개를 발송할 예정이다.

이들 바이오 해킹 식물의 광범위한 배포가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ETC는 바이오 해킹의 위험성을 경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적절한 안전장치가 없으면 생태계를 교란하고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며 사회·경제·문화적 권리를 저해할 미지의 잠재력을 지닌 합성 유기물과 그 제품들이 실험실의 테두리를 벗어나 유통될 위험성이 있다.”

생물 제재는 폭발물과 달리 거의 감독을 받지 않으며 관리가 허술하다. 하지만 이들 제재는 지하실 생물학자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보안이 철저한 실험실에 보관된다. 바이오 해커가 이들 실험실 중 한 곳에 접근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유발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조지타운대 사회학과에서 생물테러 관련 강의를 하는 윌리엄 대디오 교수의 지적이다.

박테리아는 대다수 바이오 해커들이 며칠 만에 관리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숙주가 있어야 생존하는 바이러스의 배양과 관리는 그와 달리 훨씬 더 어렵다. “자택 차고에서 실험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그런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대디오가 말했다. “그보다는 수준 높은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젠스페이스의 바이오 해커 유리 파질로프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식물들이 지구 또는 우주의 고도 방사능 환경에서 생존하게 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진균에서 발견된 방사능 내성 유전자를 작은 현화식물의 DNA에 접합하는 작업으로 이뤄진다. 지구상에선 핵재앙으로 방사능 피해를 입은 방대한 지역의 복원에 그 식물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파질로프가 말했다.

예를 들어 일본 후쿠시마에서 그 식물들이 대기 중 산소와 이산화탄소 간의 균형 회복을 도울 수 있다. 궁극적으로 박테리아나 곤충 같은 다른 생명체들이 그 황무지에 다시 돌아오도록 촉진한다. 같은 식으로 다른 행성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기도 있다. 향후 몇 년 간 그 프로젝트의 상업적인 잠재력이 상당하다고 파질로프는 내다본다. 그는 안전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이 프로젝트의 상업적 측면을 검토했다”고 그가 말했다. “내 계획은 먼저 만들어 놓고 질문은 나중에 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생물을 만들어낼 순서가 됐을 때 나는 발광 박테리아를 만들기로 했다. 대장균 DNA, 물 그리고 내가 접합한 새 유전자들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효소를 혼합해 용액을 만들었다. 그뒤 그것을 냉각시킨 염화칼슘 용액 안에 넣었다. 대장균 세포 벽을 터뜨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생물발광을 위해 해양 박테리아의 유전자들을 추가했다. 그뒤 그 약통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 고온 쇼크로 박테리아가 결합해 하나의 새 생물체를 형성하게 된다.

며칠 뒤 박테리아가 배양되도록 넣어뒀던 인큐베이터에서 접시를 꺼내 실험실 한 귀퉁이의 자외선 조명 위에 올려 놓았다. 스위치를 올렸을 때 천체 같은 작은 연녹색 점들의 군집이 나타났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플라스틱 접시 안에서는 조금도 해로워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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