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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 체코 코노피스테성 - 비운의 황태자 부부 안식처

Travel | 체코 코노피스테성 - 비운의 황태자 부부 안식처

코노피스테성.



1914년 6월 28일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도심 한복판에서 두 발의 총소리가 울렸다. 오픈카에 탑승한 채 연신 밝은 웃음을 지으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쓰러졌다.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1863~1914)과 그의 부인 조피 폰 호헨베르크 공작. 6월 23일부터 27일까지 이 지역에서 진행된 오스트리아 육군 16,17군단의 대규모 훈련을 참관한 뒤 시청에서 열린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현장에서 잡힌 범인은 19세의 세르비아계 대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1895~1918)였다. 탄환 두 발은 명중했다. 암살자의 권총에 맞은 황태자비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황태자는 병원으로 가던 도중 사망했다. 프린치프는 세르비아 해방운동을 펼치는 비밀결사단의 멤버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거사는 6년 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한 저항이었다.

하필 6월 28일은 세르비아인들의 경축일이었다. 그것도 1389년 발칸반도의 슬라브족이 투르크에게 패배한 뒤 500년 이상 지속된 오스만제국의 지배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바로 그 날, 새로운 지배자인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사라예보를 방문한 것이다. 황태자 부부에게는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황태자 부부의 데드마스크와 시신에서 발견된 총알, 피 묻은 옷.


결혼기념일에 사라예보에서 암살 당해암살 소식을 들은 오스트리아는 이 사건의 배후로 세르비아를 지목하고 압박을 가했다. 7월 23일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낸 데 이어 세르비아 측이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7월 28일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자 세르비아와 같은 슬라브계인 러시아가 오스트리아에 대항해 군을 동원하고,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을 비롯해 영국·프랑스·터키 등이 각국이 체결한 3국 연합 또는 3국 동맹 조약에 따라 차례로 전쟁에 뛰어들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황태자 부부 암살사건이 불씨가 되었지만 제국주의의 절정기였던 당시의 국제 정세를 고려하면 기폭제와 도화선은 일찍부터 준비돼 있었다.

그로부터 100년 뒤인 2014년 7월 22일 오전, 필자는 체코 프라하에서 남쪽으로 45km 떨어진 베네조프 마을에 자리잡은 코노피스테(Konopiste)성을 찾았다. 주차장에서 울창한 숲을 가로질러 언덕길을 오르면 성의 입구가 나타난다. 1280년 토비아스 주교의 지시로 성의 축조가 시작됐으나 재정난에 부딪쳐 보헤미아의 가장 강력한 귀족이었던 베네제비치 가문의 소유로 넘어간 뒤 1318년 완공됐다.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풍 건축스타일을 따른 고딕양식의 원통형 탑과 연결된 직사각형의 본채 건물, 두껍고 높게 건축된 성벽 덕분에 견고하고 안전한 요새 역할을 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체코가 나치에 점령되었을 때 잠시 SS친위대의 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던 이 성의 실질적인 마지막 소유자였다. 그는 12세 때 모데나 공작과 프란시스 5세 대공의 후계자로 지명되어 로마·베니스·비엔나 등에 흩어져 있던 합스부르크가의 영지와 건물들, 14~16세기 이탈리아 미술품과 조각 작품, 유럽 전역에서 수집한 1000여 점의 각종 무기와 갑옷 콜렉션을 물려받게 된다.

그는 당시 유럽 최고의 갑부였던 합스부르크가의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1887년 로브코비츠가로부터 총 225ha의 울창한 숲과 사냥터, 영국식 정원, 온실이 딸린 이 성을 구입한다. 1897년 사촌이던 루돌프 황태자의 권총 자살로 대제국의 황태자가 된 페르디난트는 조셉 모츠케르란 건축가를 고용해 황제의 위용을 갖춘 궁전으로 코노피스테를 재건축한다. 그는 유럽 최초로 성에 전기를 들여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욕실을 개조해 양변기와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샤워기와 욕조를 들여놓을 정도로 개화된 인물이었다.

그가 물려받은 유럽 무기 콜렉션과 단테,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콜룸부스 등의 이탈리아 초상화 콜렉션은 코노피스테 성의 1층 동쪽 살롱에 보관돼 있다. 페르디난트는 예술품·유물 수집을 놓고 영국왕 에드워드 7세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는 당시 동유럽에서 인기 있었던 ‘성 조지(Saint George)’를 소재로 한 예술품 수집에 직접 나서 뮌헨·비엔나·쾰른 등의 경매소나 친인척, 왕실 기관 등을 통해 15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 전역에서 제작된 예술품과 관련 유물 1500여 점을 구입했다.

1.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사냥한 동물의 박제. 2.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실 내부.
성의 테라스 바로 밑에 위치한 성 조지 박물관에는 용을 무찌르는 성조지의 그림, 목조각, 테피스트리 등 페르디난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수집한 8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사냥을 광적으로 좋아했던 페르디난트는 평생 30만 마리나 되는 동물을 사냥했다. 1893년부터 8개월 동안 인도·이집트·미국 등으로 세계일주 여행을 하면서도 사냥총을 놓지 않았고 현지에서 사살한 호랑이·코끼리·아메리카들소 등을 이곳으로 공수해 박제를 만들었다.

사슴, 야생 조류, 곰, 호랑이, 코뿔소, 아메리카들소의 머리와 뿔 등 8000여 점의 사냥전리품이 성의 1층 복도와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성문을 나서고 한참이 지나도 황태자의 호사 취미를 위해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동물의 순하디 순한 눈매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일설에 따르면 흰 사슴은 신령스런 동물이므로 쏘아서는 안 된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황태자는 사라예보로 떠나기 며칠 전 흰 사슴을 사냥했다고 한다. 그의 총에 죽어간 흰 사슴의 저주로 황태자 부부가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는 것이다.

독특한 수집벽과 사냥벽에도 3층의 가족 공간을 둘러보면 아내와 세 자녀에 대한 그의 무한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거의 모든 방마다 부인과 세 자녀와 함께 한 사진과 초상화가 걸려있고 자녀들의 방에는 미국 여행 때 사다 준 인디언 텐트며 장난감이 그대로 놓여있다. 조피, 막시밀리언, 에른스트의 세 자녀 중 큰 딸 조피는 예술가적 소질이 뛰어났다. 11세 때 조피가 그린 정원 풍경, 공작, 강아지 수채화와 가족 신문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페르디난트는 1894년 우연히 알게 된 호헨베르크 백작의 딸이자 프리드리히 대공비 이자벨라의 시녀였던 조피 폰 호테크와 사랑에 빠진다. 그가 황태자로 책봉된 후,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숙부 프란츠 조셉 황제는 조피의 낮은 신분과 보잘것없는 재산을 문제 삼아 완강하게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나 조피를 향한 일편단심을 굽히지 않았던 페르디난트의 고집에 굴복해 조건부 결혼을 승낙한다. 결혼 조건이란 결혼 후에도 페르디난트의 황태자 지위는 유지되지만 조피는 황태자비로서의 지위는 물론 황실 일가로서의 특권을 인정받지 못하며 두 사람의 자녀에게도 제위 계승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황제의 완강한 반대에도 결혼1900년 6월 28일 치러진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황제와 형제인 대공들이 결혼에 대한 반대의 의사로 모두 불참한 가운데 황태자의 계모인 마리아 테레지아와 이복여동생들만 참석했다. 조피는 대공비라고 불리는 대신 호헨베르크 공작으로 불리는 것에 만족해야 했으며 심지어 공개 석상에서 남편의 옆자리에 앉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1914년 보스니아 총독의 초청을 받은 황태자는 암살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혼기념일 선물로 아내와 함께 사라예보로 공식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황족과 귀족들만 가득한 수도 비엔나에서는 조피가 인정받지 못하지만 국경지대에서는 조피도 황태자비로 예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한 행보였다. 황태자는 사라예보에서 피격 순간에도 아내에게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당신은 살아야 돼”란 말을 유언으로 남길 만큼 아내를 사랑했다.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개관한 특별전시실에는 황태자 부부의 데드마스크와 피격 당시 조피가 입고 있었던 피 묻은 드레스, 시신에서 나온 총탄과 사진 등이 전시 중이다. 아내의 결혼기념일 선물로 사라예보를 방문했다가 암살당함으로써 제국을 몰락시켰고 세계사의 판도를 바꿔놓았으며 100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황태자의 터전은 7월의 화사한 태양과 녹음 속에서 너무도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오색찬란한 날개를 펼쳐 든 채, 향기로운 장미 정원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공작들을 바라보며 100년 전 여름 황태자 부부는 어떤 얘기를 나누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눈앞에 닥친 죽음을 예감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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