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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AFETY - 진짜 위협은 따로있다

BIOSAFETY - 진짜 위협은 따로있다

서울에서 4일 개최된 ‘제2차 차세대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세계대회’는 개최 전 에볼라 바이러스 유입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제발 살려주세요” “죽기 싫어요” “세월호 참사만으론 부족하십니까?” 8월 초부터 청와대 게시판엔 목숨을 살려달라는 글이 수없이 올라왔다. 에볼라 바이러스 국내 유입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다. 8월 2일부터 5일까지 청와대 온라인 자유게시판에 작성된 글 1475건 중 5분의 1에 달하는 300여 건이 에볼라 바이러스와 관련된 조치를 취해 달라는 의견이었다.

이런 의견을 제시한 국민들은 특히 덕성여대에서 8월 4일부터 14일까지 진행하는 유엔 주최 ‘제2차 차세대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세계대회’ 개최를 막아달라고 입을 모았다.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지역으로 알려진 서아프리카 거주민들이 이 행사에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면서다.

덕성여대뿐만이 아니다. 8월 13일부터 서울 삼성동에서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 경남 사천시에서 5일 폐막한 사천세계타악축제 역시 같은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가적 위기를 무릅쓰면서까지 행사를 열어야겠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덕성여대와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회측은 에볼라 감염 지역인 기니, 나이지리아 출신 참가자들의 행사 참가를 거부했다. 덕성여대 측으로부터 초청 취소를 통보받은 한 나이지리아 대학생은 유엔 인권위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5일 인천국제공항 검역소를 방문해 에볼라 바이러스 검역 실태를 점검했다.


국내 감염 가능성 있나한국 국민들 사이에 에볼라 바이러스를 향한 공포심이 확산되자 곳곳에서 진화 작업에 나섰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는 8월 6일 기자회담을 열고 에볼라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과도하게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당부했다.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우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에볼라 발생 국가를 방문했더라도 증상이 있는 환자의 혈액 또는 체액과 접촉이 이뤄지지 않았으면 감염되지 않는다”며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에볼라 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언론도 목소리를 더했다.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국내 주요 일간지들은 사설을 내고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국민들의 염려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정말 과도한 걸까? 간단한 확률 계산을 해보면 알기 쉽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에볼라 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국가는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 3개 국가다. 나이지리아에선 4명이 에볼라 보균자, 1명이 에볼라로 인한 사망자로 추정되지만 아직 확진 판정을 받진 않았다. 8월 4일을 기준으로 추정 환자를 포함한 4개국 에볼라 환자는 모두 1603명이다.

미 중앙정보국이 추정한 2014년 7월 4개국 총 인구가 약 1억9850만 명이니 전체 인구 대비 감염자 비율은 약 0.0008%에 불과하다. 웬만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보다 낮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감염자와 직접 접촉이 없는 한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입각하면, 설령 해당 국가 거주자라 할지라도 이 극소수 감염자로부터 에볼라 바이러스에 전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물며 에볼라 발병이 조기 발견돼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현 시점에선 더욱 그렇다. 추가 감염자가 대부분 환자의 가족이나 의료진 등 주변인에 그치는 이유다.

설령 이 지역을 방문한 누군가가 0.0008%에 해당하는 현지 에볼라 보균자와 만나 전염됐다고 하자. 그가 한국으로 들어와서 에볼라 바이러스를 국내에 퍼뜨린다면 어떨까? 그게 가능하려면 먼저 에볼라 바이러스가 한국의 검역 시스템을 돌파해야 한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에볼라 발병 지역으로 알려진 3개국에서 들어오는 사람 명단을 모두 확보해 입국 전 열 감지기로 발열이나 오한이 있는지 검사한다.

뿐만 아니라 대상자들에겐 건강상태 질문지를 의무적으로 징부해 이상 유무를 점검한다. 해당 지역을 다녀오거나 해당 지역 주민과 접촉하고도 이 사실을 숨기지만 않는다면 검역에서 벗어날 일은 없다. 윤승기 질병관리본부 검역지원과 과장은 YTN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에볼라가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다녀온 사람들은 자진해서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잠복기는 10~20일 정도이므로 감염 사실을 모르고 입국할 가능성도 있지만 잠복 기간엔 전염이 되지 않는 데다 입국한 뒤에도 전국 보건소를 통해 잠복기가 끝나는 21일째까지 추적 조사를 하기 때문에 확산 위험은 적다. 윤 과장에 따르면 8월 6일 기준으로 해당 지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한 사람은 총 22명이며 추적 조사를 마쳤거나 진행하는 중이다.

설령 감염돼 들어오더라도 서아프리카 지역과 달리 의료 시설이 충분한 한국은 신속히 환자를 격리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할 능력이 있다. 김우주 교수는 “만약 에볼라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되더라도 국내에서는 2차 감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악의 사태가 겹친다 하더라도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국가 위기 상태에 접어드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전염병보다 무서운 것이 모든 난관을 뚫고 에볼라 바이러스가 한국에 안착할 가능성이 없진 않다. 다만 극히 희박할 뿐이다. 서아프리카 지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는 극소수 인구가 해당 지역 감염자 0.0008%와 접촉해 감염됐을 확률은 굳이 계산할 필요도 없으리라. 에볼라 바이러스의 진짜 공포는 다른 데 있다. 바로 공포 그 자체다. 치사율이 최대 90%에 육박한다는 점, 검증된 치료제가 없다는 점, 끔찍한 몰골로 죽음에 이른다는 점이 겹치면서 에볼라 바이러스는 낮은 전염성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공황에 빠뜨렸다.

그 부산물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외국인 혐오증이다. 세계수학자대회를 비롯해 최근 개최했거나 개최를 앞둔 국제행사를 둘러싸고 이런 혐오증이 여실히 드러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인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는 아프리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다.

아프리카는 넓다. 같은 아프리카 대륙이라고 해도 발병 국가 중 하나인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중앙아프리카의 르완다까지 거리는 수도 기준 4974㎞다. 오히려 스페인 마드리드가 3586㎞로 기니에 더 가깝다. 르완다보다 동쪽에 위치한 케냐나 에티오피아, 남쪽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서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에이즈 발병을 이유로 아프리카인의 입국을 막자는 건 중국 특정 지역에서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아시아인 전체 입국을 거부하자는 말이나 다름 없다. 그런 조치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과거에 있었다. 2002년 중국 광둥성을 중심으로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 크게 유행했을 때 서양에선 아시아계 인구가 혐오 대상이 됐다. 아시아인 근처에 거주하거나 아시아계 상품을 구입하는 것에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 극우정당 ‘북부연합’의 파비오 롤피 의원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이민자들을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해 구설에 올랐다.

이탈리아 반이민단체 ‘카테나 우마나’ 역시 페이스북에 “국경을 봉쇄한 뒤 이민자들을 바다에 격리하라”는 글을 남겼다. 미국 공화당의 필 깅리 의원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넘어 오는 불법 이민자들이 “신종플루, 뎅기열, 에볼라 등 치명적인 질병을 미국에 들여온다”고 서한을 보냈다. CDC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은 물론 서반구 전체가 에볼라와 아무련 연관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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