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셰익스피어의 60여점 초상화 가운데 하나.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던 국보급 시인이자 극작가 셰익스피어. 만일 그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날조된 가상의 인물이라면? 2011년 개봉한 영화 <위대한 비밀(anonymous)> 은 이렇게 엉뚱하면서도 솔깃한 음모론에서 출발한다(Anonymous, 익명이나 작자 미상을 의미).

때는 16세기 중반. 영국의 옥스포드 백작 에드워드 드 비어(리스 이판)는 어려서부터 문학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즐겼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상 귀족이 글(희곡)을 쓴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특히 왕실과 상류층의 가식과 허영을 조롱하는 작품은 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반드시 무대에 올리고 싶었던 그는 기상천외한 타협책을 찾는다. 바로 대타를 세우는 것이다.



주인-대리인 문제는 당연한 현상우여곡절 끝에 윌리엄 셰익스피어(라프 스팰)라는 이상한 이름의 속물 연극 배우가 그의 대타가 되어 작가 행세를 시작한다. ‘헨리 5세’에 이어 ‘로미오와 줄리엣’ ‘십이야’ ‘줄리어스 시저’ ‘맥베스’ ‘햄릿’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관객들은 열광한다. 졸지에 삼류 배우에서 최고의 극작가 대접을 받게 된 셰익스피어.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에드워드 백작을 찾아가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돈을 뜯어내려 한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늘 우수에 찬 표정의 에드워드 백작,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게임이론적 시각에서 볼 때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이다(주인은 에드워드 백작, 대리인은 셰익스피어). 무인도에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갖가지 주인-대리인 관계에 속해있다. 국민-국회의원, 대통령-공무원, 주주-경영자, 의뢰인-변호사, 지주-소작농의 관계가 모두 그렇다.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주인과 대리인은 팽팽한 긴장관계에 놓인다.

주인은 최대한 일을 시키려 하고, 대리인은 최대한 받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주인은 대리인이 농땡이를 치지 못하도록 옆에 붙어 서서 잔소리를 하고 싶지만 일일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그러느니 아예 주인이 직접 일을 하는 게 낫겠다). 더 골치 아픈 것은 정보의 비대칭성(非對稱性)이다. 대리인은 직접 일을 하면서 얻게 된 주인이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주인을 속이기 까지 한다.

국민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는 여야 정치권, 임명권자가 호통을 쳐도 받아 적기만 하는 공무원 집단, 경영자는 피가 마르는데 퇴근 시간만 바라보는 직원. 그로부터 비롯되는 낭비와 폐해는 국가·사회·기업을 병들게 한다. ‘일을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들면 맡기지 말라’고 했다고 주인이 대리인을 알아서 잘 선택하고 그 후에는 철썩 같이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허나 다소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주인과 대리인의 갈등은 어쩔 도리가 없다. 따라서 주인-대리인 문제를 애석한 예외 사항이 아니라 당연한 일반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는 대비책을 찾아야 한다.

우선 대리인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하는 방법이 있다. 꼭 대리인을 의심해서라기보다는 대리인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고 나태해짐을 경계한다는 측면에서 엄격한 감시제도는 필요악(必要惡)으로서의 효용이 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고 주인이 아무리 이중 삼중으로 감시해도 대리인은 기어코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낸다.

감시의 한계다. 그렇다면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처럼 대리인이 딴 마음을 품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은 어떨까? 당장은 효과가 있겠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성 싶다. 기마욕솔노(騎馬欲率奴), 말 타면 노비 거느리고 싶듯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에서 제안하는 주인-대리인 문제의 해법 중에서 실제 현실에서 작동 가능하고 효과도 확실한 대안으로는 다음의 두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복수(複數)의 대리인을 두고 경쟁시키는 방법이다. 대리인 입장에서야 피곤하겠지만 주인이 원하는 성과를 내는데 이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물론 담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공공 부문의 민영화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주인-대리인 문제가 만연한 정부 독점보다는 민간 경쟁이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대리인의 행동이 주인의 이득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게끔 하는 유인계약(Incentive contract)을 마련하면 된다. 대부분 기업이 직원 급여를 기본급과 성과급으로 구분해서 주는데, 실적에 비례하는 성과급이 바로 유인계약이다. 성과급제도 하에서 직원은 주인이 보던 말던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할 유인을 갖는다. 스톡옵션 제도도 마찬가지다. 경영진은 회사의 주가를 높여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 못지 않게 자신이 보유한 스톡옵션을 나중에 비싸게 팔기 위해서라도 회사 경영에 전력투구하게 된다.



기업의 진정한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주인-대리인 문제와 관련해 최근 눈에 띄는 이슈는 기업의 진정한 주인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사전적인 의미로만 본다면 주주(株主, shareholder)가 당연히 기업의 주인이다. 하지만 GE의 잭 웰치 전 회장도 인정했듯이 주주는 언제라도 주식을 내다 팔고 먹튀해 버리곤 한다.

주인이라고 하기에는 비정함이 지나치다. 그럼 임직원이 주인일까? 듣기에는 나쁘지 않지만 이 역시 뭔가 억지스럽다.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기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주인을 누구로 볼 것이냐의 문제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기업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바람직한 역할 범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다.

자,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에드워드 백작은 세속의 명성보다는 문학의 고귀함을 선택하고, 셰익스피어에게 돈을 갈취 당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체는 베일 속에 묻는다. 덕분에 저자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완전 용(龍) 되었다. 자신의 전용극장까지 지어가면서 성공한 극작가의 삶을 이어간다. 그 역시 비밀을 폭로할 이유가 없으므로 대리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낸다. 주인인 에드워드 백작이 돈과 명예라는 유인책을 확실히 보장해준 결과이다.

한편 이 영화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의 진실성 여부가 역사적 논란거리였다.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잉글랜드의 시골 촌 구석(스트랫포드-어폰-애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밖에 받지 못했던 그가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할 수 있었을까? 그는 왜 자신의 인생에 관한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의 증언도 허점투성이일까? 그의 초상화 60여 점의 얼굴은 왜 다 제각각일까? 의문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08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9·11 테러 자작설, 아폴로 달 착륙 조작설, 다이애나 황태자비 암살설 등과 함께 셰익스피어 가공인물설을 세계 10대 음모론 중 하나로 꼽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먹는거 아닙니다, 귀에 양보하세요”…품절대란 ‘초코송이’ 이어폰 뭐길래

2마침내 ‘8만전자’ 회복…코스피, 2800선 돌파 기대감 ‘솔솔’

3최태원 SK 회장 둘째딸 최민정, 美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차렸다

4 이재명 인천 유세현장서 흉기 2개 품고 있던 20대 검거

5영천 최무선과학관, 새단장하고 오는 30일부터 운영 재개

6조각 투자 플랫폼 피스, ‘소비자 추천 글로벌 지속가능 브랜드 50′ 선정

7어서와 울진의 봄! "산과 바다 온천을 한번에 즐긴다"

8佛 발레오, 자율차 핵심부품 대구공장 준공식 개최

9정부, 경북지역 민간투자 지원방안 내놔

실시간 뉴스

1“먹는거 아닙니다, 귀에 양보하세요”…품절대란 ‘초코송이’ 이어폰 뭐길래

2마침내 ‘8만전자’ 회복…코스피, 2800선 돌파 기대감 ‘솔솔’

3최태원 SK 회장 둘째딸 최민정, 美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차렸다

4 이재명 인천 유세현장서 흉기 2개 품고 있던 20대 검거

5영천 최무선과학관, 새단장하고 오는 30일부터 운영 재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