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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 헤지도 양극화 - 대기업 ‘여유’ 중소기업 ‘어휴’

환 헤지도 양극화 - 대기업 ‘여유’ 중소기업 ‘어휴’

환율이 요동치면서 수출 기업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대책 마련에 나선 기업들의 표정엔 차이가 있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다소 여유있는 목소리로 각 상황에 따른 대비책을 설명한다. 하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채산성 악화를 걱정했다.

최근 외환시장 움직임이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같은 수출 기업이라 하더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미치는 환율 변동의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승관 국제무역연구원 실장은 “원화 강세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 양극화를 더욱 부추길 것”이라며 “정부와 중소기업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요 대기업은 환율 변동을 예상해 다양한 대비책을 준비한 상태다. 결제통화 60%가 달러화인 삼성전자는 원·달러 환율이 급변하면 엔화·유로화·루블화·위안화·헤알화 등의 통화로 결제할 여지를 만들어 놨다. 특정 국가의 통화 가치가 오르면, 다른 국가의 통화 가치가 내려가기 때문에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평소 외화자산 관리를 해온데다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해 놓은 덕에 환율 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비용 절감 등 근본적인 경영혁신을 지속하는 것만이 환율 변동 대비책이 될 수 있다”며 “원·달러 환율이 900원이 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채산성 악화 불가피
자료: 한국무역보험공사
LG전자도 원·달러 환율 950원을 기준으로 경영계획을 수립했다. 외환시장에서 나오는 전망보다 더 보수적으로 대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외 변수에 따른 재무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뉴저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국 베이징, 싱가포르 등 4개 해외 금융센터도 가동 중이다.

현대자동차도 미국 생산기지 활성화 등을 통해 환율 변동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포스코는 철강제품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를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료를 사들이는 데 사용하는 ‘내추럴 헤지(natural hedge)’ 방식으로 환율 변동의 영향을 줄였다. 한화는 석유화학사업을 중심으로 환율 변동에 대한 선물환 거래, 포지션 한도 설정 등으로 환리스크에 대응한다.

중소기업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대응책을 미리 마련하지 못해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많은 중소기업이 환차손을 입거나 적자 수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무역보험공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출 중소·중견기업의 74%가 환 위험 관리를 못 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의 올해 상반기 환변동보험 월 평균 이용실적은 739억 원에 불과하다. 오주현 한국무역보험 공사 환위험관리 팀장은 “우리나라 수출 중소기업들은 환율 하락에 미리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환율이 급등락하는 시점에만 일시적으로 환 헤지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달러 강세로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엔저라는 장애물이 있다. 원화 약세가 수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엔저가 상쇄해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경합하는 상품이 문제다. 우리나라 중소 수출 기업은 품질보다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남미나 동남아 시장을 확보해왔다. 하지만 최근 엔화 가치 하락이 계속되면서 주요 수출 거점에서 점유율이 하락세다.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일시적인 환율 변동은 환 헤지 상품에 가입하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며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진행되는 엔저”라고 강조한다.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겨루던 관행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기업 경쟁력이 없으면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 강화를 한국 기업이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환율 급변 앞에서 중소기업의 선택은 사실 정해져 있다. 적극적으로 금융 상품에 가입해 환리스크를 대비하는 방안이다. 이지연 중소기업중앙회 통상정책실 과장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주로 원가를 절감하거나 수출 단가를 절감하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환리스크에 대응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며 “하지만 환율이 어느 방향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측면에서 환변동보험 등의 금융 상품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환 위험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엔저 탓에 원화 약세 효과 반감
선물환도 환 헤지에 좋은 수단이다. 선물환은 외환 거래에서 거래 쌍방이 미래에 특정 외화의 가격을 현재 시점에서 미리 계약하고 이를 약속한 미래 시점에 이행하는 금융 거래다. 결제 시점과 이때 적용되는 환율을 미리 정해놓기 때문에 불확실한 환율 흐름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출 업체 입장에서는 결제 시점에 환율이 크게 하락할 경우 발생하는 원화 환산 손실을 막을 수 있고, 수입 업체 입장에서는 결제 시점에 환율이 크게 상승했을 경우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김동제 KEB외환은행 중소기업 글로벌 자문센터 차장은 “환율은 한 번 흐름이 바뀌면 큰 폭으로 변동하기 때문에, 기업에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중요성을 강조한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환리스크 관련 상품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자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던 중소기업은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실제로 환리스크 헤지 상품인 환변동보험에 가입하는 중소기업은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 한국무역보험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중소기업의 환변동보험 가입 실적은 1조6971억 원으로 2007년(8조5051억 원) 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오상훈 중소기업연구원 전문위원 은 “달러 약세와 수출 호전 분위기가 원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 다”면서 “환율 변동에 대한 대응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키코(KIKO) 약정환율과 환율변동의 상한(knock-in)과 하한(knock-out)을 정해놓고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한다면 미리 정한 약정환율에 달러를 팔아 환율변동 위험을 헤지하는 금융상품. 그러나 환율이 하한 이하로 떨어지거나 상한 이상으로 오르면 계약이 해지되는 등 옵션이 있어 환손실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키코 상품에 가입했던 중소기업이 손실을 입자, 중소기업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키코 약관 심사를 청구했다. 약 5년 간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은 ‘키코는 불공정거래가 아니다’라고 확정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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