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고속철도 비즈니스 - 달라진 경쟁 무대 ‘속도에서 환경으로’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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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고속철도 비즈니스 - 달라진 경쟁 무대 ‘속도에서 환경으로’

격변의 고속철도 비즈니스 - 달라진 경쟁 무대 ‘속도에서 환경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 최대 철도 박람회 ‘이노트랜스 2014’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열차를 둘러보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 최대 철도 박람회 ‘이노트랜스 2014’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열차를 둘러보고 있다.

유럽 최대 가전 박람회인 ‘IFA’가 폐막한 지 2주 뒤 독일 베를린이 다시 한번 들썩였다. 세계 최대 철도박람회 ‘이노트랜스’가 개최됐기 때문이다. 박람회장에는 실제 철도 선로와 전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기차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여러 제조사의 신형 기차가 첫 선을 보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70개가 넘는 제조사가 145종의 신형 기차를 출품했다. 대부분 통근열차나 저상노면열차(LRV)였다. 최근 신흥국에서는 도시마다 통근열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교통 인프라가 완비된 미국에서는 친환경적인 LRV 도입이 성황이다. 세계의 철도 비즈니스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동향을 짚어봤다.

 신형 고속열차 출시 경쟁 시들
이노트랜스에서 매번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것은 새로 선보이는 고속열차 전시다. 올해는 이탈리아철도의 고속열차 ‘프레치아로사(Frecciarossa) 1000’이 시선을 끌었다. 최고 시속 400㎞(설계 기준)를 자랑하는 괴물 열차다. 세계 철도 ‘빅3’ 중 하나인 캐나다의 봄바르디에와 이탈리아의 안 살도브레다가 제휴해서 만들었다. 최근 유럽에서는 ‘오픈 액세스’라고 불리는 철도 사업 자유화가 진행 중이다. 일례로 이탈리아는 이제껏 이탈리아철도가 독점 운영해왔으나 새로 설립된 이탈리아 NTV사가 프랑스 알스톰의 고속열차 ‘이탈로’를 거느리고 토리노-나폴리 구간에 뛰어들었다. 프레치아로사 1000은 NTV에 대한 이탈리아철도의 대응책이다. 레드와 블랙을 배합한 디자인은 페라리·람 보르기니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디자인 회사 베르토네가 맡았다. 루츠 버틀링 봄바르디에 철도 부문 사장은 “항공기와 철도를 모두 만들 수 있는 우리만의 기술력을 살렸다”고 장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고속열차 전시는 이게 전부였다. 과거 이노트랜스에서 봄바르디에·알스톰·지멘스(독일)의 신형 고속열차 경쟁이 치열했던 것과 사뭇 다르다. 알스톰은 전시 기간 중 사업전략 설명회를 개최했다. 그들이 배포한 프레젠테이션 자료에도 고속 열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비즈니스에 분명 큰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다.

중국의 양대 국영 철도 제조사인 중국북차공사(CNR)와 중국남차공사(CSR)는 2010년 세계 빅3의 매출을 추월한 뒤 독보적인 세계 1,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 회사는 빅3와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의 기술을 흡수해 고속화 전략을 추진해왔다. 신형 열차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1990년 대 중반에 시속 160㎞에 그쳤던 열차 성능은 현재 양사 모두 시속 380㎞(설계 기준) 수준에 도달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CSR이 발표한 신형 고속열차는 기존 최고 속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대신 영구 자석을 탑재한 모터를 채용해 에너지를 절약하고 소음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2011년 열차 탈선사고를 계기로 중국 내에서 속도 지상주의에 대한 반성이 제기된 때문이다. 라이벌인 CNR의 위웨이 펑 부총재는 “주요 고객인 중국철도부가 속도 외 다른 요소를 요구했으며, 세계적으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며 “차세대 열차는 이런 욕구를 만족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알스톰과 마찬가지로 신형 고속열차 발표를 미뤄온 지멘스는 2017년 출시를 목표로 신형 열차 ‘ICx’를 개발 중이다. 차체 경량화를 통해 소비 전력을 기존보다 30% 절감시킨다는 목표다. 이와 달리 속도는 시속 230~250㎞에 맞췄다. 시속 250㎞ 정도를 감당할 수 있는 독일 국철노선에 투입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주요 도시와 주변국을 연결하는 국제 열차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독일 국철은 속도 향상보다 에너지 절약이나 노선망 확충을 선택한 셈이다.
 프랑스는 ‘저비용 고속철’ 도입

고속철도의 대명사인 ‘TGV’의 모국 프랑스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4월 프랑스 국철은 외화벌이 1등 공신인 파리-마르세이유 구간에 ‘TGV 위고(Ouigo)’를 투입했다. 이 열차의 어린이 요금이 불과 5유로다. 가족 동반 승객을 노린 상품이기 때문이다. 기존 열차를 2층으로 개조했고, 1등석과 식당칸을 없애 좌석수를 늘렸다. 검표 역시 차내에서 플랫폼으로 변경해 인건비를 줄였다. 대신 발착역이 파리 시내에서 멀고, 수하물은 1인당 1개만 실을 수 있다. ‘철도판 저비용항공(LCC)’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략은 나름 성공했다. 승객이 순조롭게 늘고 있다. 2017년엔 뚜르-보르도 구간에도 투입할 계획이다.

유럽의 노선망 확충과 저가격, 저운임화 움직임은 한동안 이어졌던 속도 전쟁을 끝내고 전환기를 맞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속열차의 스피드 경쟁에는 주기가 있는데 2005년부터 시작된 치열한 경쟁은 일단락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이노트랜스의 가와사키중공업 부스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CFRP(탄소섬유강화 플라스틱) 차대였다. ‘차대가 가벼워 손상이 적으며, 보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운영 담당자의 주장이다. 대신 과거 전시됐던 시속 350㎞ 고속열차 ‘ef-SET’ 모형은 부스에서 모습을 감췄다.

빅3나 중국 업체들이 시속 350㎞ 이상의 속도 성능을 무기로 전 세계에서 판로를 확장하고 있지만 일본은 도카이 신칸센 N700A가 시속 300㎞, 도호쿠 신칸센 E5계도 시속 320㎞에 그친다. 대신 일본 정부는 스피드를 대신할 신칸센의 강점으로 안전성, 대량 운송, 저소음과 에너지 절약 성능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시장에서 시속 350㎞까지 요구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인도의 모디 총리가 도입 의욕을 불태우는 고속철도 7 노선을 비롯해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많은 나라가 시속 300㎞ 수준을 원한다. 현재 신칸센의 스피드로도 충분히 합격점이다.

일본 철도차량수출조합의 구라사와 야스키는 “시속 350㎞ 이상 노선은 궤도가 빨리 손상되고 보수 비용도 많이 든다”며 “안전에 대한 요구도 높은 반면 운행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비용 대비 효과를 생각했을 때 시속 300㎞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피드 이외의 성능을 자랑하는 일본이 앞으로의 경쟁에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고이즈미 유키히로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과장은 “중국의 (속도 중시에서 에너지 절약으로의) 방향 전환은 일본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큰 사고의 경험이 있는 중국은 더 이상 속도로 어필하기 힘들기 때문에 에너지를 새 무기로 일본에 대응하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강점이었던 부분을 다른 제조사가 파고든다는 얘기다. 성능에 큰 차이가 없으면 핵심은 가격 경쟁력이다. 이럴 경우 일본의 최대 라이벌은 중국이다.

고속철도 자체의 리스크도 여전히 부담스럽다. 2011년 브라질 고속철도 입찰이 대표적이다. 브라질 정부의 안이한 수요 예측에 염증을 낸 제조사들은 한 곳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신칸센 수출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대만 신칸센조차 첫 영업이 예정보다 1년 지연됐다. 이용객 수도 기대 이하여서 운영사가 지금도 누적 적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거액을 투자해 프로젝트에 출자했는데 건설 계획이 틀어지거나 수요 예측에 실패해 자금 회수를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단기간에 1만㎞의 고속철도 노선망을 구축한 중국을 제외하면 신흥국 중 고속철도 건설이 계획대로 된 나라가 거의 없다. 일본이 노리는 인도 고속철도 역시 2020년 상용화가 목표지만 계획을 발표한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사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도시철도나 운영, 보수 서비스로 눈 돌려
이 때문인지 요즘 각국 제조사의 최대 관심사는 도시철도 프로젝트다. 총연장이 수백㎞에 달하는 고속철도에 비해 도시철도는 대부분 수십㎞ 정도다. 건별 사업 규모는 고속철도에 못 미치지만 통근열차·지하철·LRV 등 사업 건수가 많다. 전체 시장 규모는 고속철도의 10배 정도라는 게 업계의 예측이다. 차량뿐만 아니라 운영, 보수 서비스, 신호 시스템 등도 성장성이 크다. 일본 제조사가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분야다.

해외 진출을 위한 열쇠는 ‘국제 표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JR규격’과 같은 철도 관련 규격이 있다. 유럽 역시 유럽연합(EU) 출범을 계기로 통합 규격(EN)을 가지고 있다. 1995 년 세계무역기구(WTO) 발족 이후 EN을 국제 표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2012년 ‘TC 269’라는 철도 국제규격 심의위원회가 설립되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의 규격은 EN과 상이한 부분이 많아 EN이 국제 표준이 되면 ‘규격 외’로 분류돼 세계 시장에 팔기 어려워진다. 다행히 일본은 TC269 의장국으로서 표준 논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입장이다.

앞마당을 잘 지키는 것도 과제다. 현재 EU 등은 일본의 철도 분야 시장 개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미 해외 제조사들은 일본에 진출해 있다. 지멘스는 1990년대부터 각종 열차 부품을 판매했다. 히로시마의 노면전차 ‘그린무버’도 지멘스 제품이다. 미국 엔진회사인 커민스의 디젤 엔진도 JR도카이 등에 판매됐고, 봄바르디에도 일본과 인연이 있다. 최근엔 JR동일본의 도키와 완행선에 적용하는 무선열차제어시스템(CBTC)의 설계 사업을 프랑스의 탈레스가 수주했다. 업계에선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알스톰 역시 LRV 시장에서 JR동일본의 자회사인 종합차량제작소와 협력하기로 했다. 일본 제조사들도 전략을 잘 세워야 할 때다.
 ‘개통 50년’ 진화하는 신칸센 - 와인바에 족탕까지 갖춘 리조트 차량 등장
일본 규슈 해변을 달리는 신칸센. 1964년 개통한 신칸센은 올해 10월 1일 50주년을 맞았다.

일본 규슈 해변을 달리는 신칸센. 1964년 개통한 신칸센은 올해 10월 1일 50주년을 맞았다.

‘꿈의 초특급’ 신칸센이 달리기 시작한지 반세기. 그동안 신칸센은 많은 진화를 이뤘다. 앞으로 어떤 발전을 이루게 될까? 미래의 신칸센을 그려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꿈의 기술이라 불리는 ‘리니어’다. 8월 말 JR도카이는 시나가와-나고야 간 리니어 공사 계획을 일본 국토교통성에 제출했다. 별다른 문제점이 없어 인가를 받는 데는 무리가 없으리란 예상이다. 리니어는 자석의 힘으로 부상 주행하는 열차다. 초전도자석을 탑재한 차량이 지상 코일이 깔린 가이드웨이 위를 10㎝ 정도 떠서 달린다. 최고 시속은 500㎞다. 완성되면 시나가와-나고야 간 285.6㎞를 40분 만에 주파한다. 2027년 완공 예정이다. 1단계 사업이 끝나면 2045년 오사카까지 연결시킬 계획이다. 그러면 도쿄-오사카 구간이 67분 만에 연결된다. 총 건설비만 약 9조엔(약 88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속도만이 아니다. 신칸센의 바퀴 폭을 바꿔 신칸센과 재래선 둘 다 달릴 수 있는 ‘프리게이지 트레인(FGT)’의 상용화도 눈앞으로 다가 왔다. 신칸센 레일폭은 1435㎜로 재래선(1067㎜)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FGT가 완성되면 신칸센과 재래선을 바꿔 탈 필요가 없다. 1997년 본격적인 기술 개발에 들어간 FGT는 2007년부터 2차 주행 시험을 실시했고, 올해는 3차 시험 열차까지 완성됐다. 내구 시험을 통과하면 개발 테스트는 최종 단계에 들어선다. 2022년쯤 첫 선을 보일 전망이다.

최근 신칸센은 이미 단순한 이동수단 이상의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 열차 내 시설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빠르게 변하고 있다. JR동 일본이 신형 열차에 도입한 ‘그랜클래스’를 경험한 승객들은 ‘마치 비행기의 퍼스트클래스 같다’고 이야기한다. 호화로운 실내, 자유자재로 등받이를 조절할 수 있는 좌석, 시속 320㎞에도 유지되는 정숙함 등이 매력이다. 니혼슈(일본 전통주)를 마시고 해당 지역 식자재로 만든 특식을 먹고, 족탕에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 관광지에서 즐기는 게 아니다. 관광지로 이동하는 중에 이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열차도 등장했다.

바로 야마가타 신칸센 ‘도레이유’다. 신칸센 최초의 리조트 차량이자, 최초의 족욕 서비스 열차다. 신칸센용 열차를 개조해 6량으로 편성했는데 정원은 143명이다. 의자가 아닌 좌식 지정석과 사쿠라가 그려진 테이블, 그리고 야마가타의 사케나 와인이 진열된 바를 설치한 ‘라운지’와 ‘족탕’이 있다. ‘탑승 자체가 목적인 열차’가 콘셉트다. 요금은 일반 신칸센 지정석 요금과 동일하다. 7월부터 주말 운행을 시작했는데 평균 승차율이 80%에 달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신칸센 자체가 인기 관광상품이었던 수십 년 전 열기가 떠오른다. 향후 이러한 ‘지역 신칸센’이 더 생겨날 수 있다.

요즘 신오사카역에서 출발해 하카타로 가는 고다마 741호에는 평소보다 자녀 동반 여행객이 눈에 많이 띈다.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은 1호차다. 열차 내에 들어서면 프라모델 차량이 달리는 사방 1.8m의 디오라마(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해 만든 장면으로 파노라마와 유사하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아이들은 무료로 빌린 프라모델에 올라타 놀거나, 어린이용 운전대를 조작하며 논다. 스크린에는 운전석 풍경이 비춰져 생생하다. JR서 일본이고 다마호를 무대로 어린이용서비스를 제공하고자 구상한 상품이다. 신오사카-하카타 구 간을 하루 1차례 왕복 운행한다. 어린이용 놀이방이 있는 차량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신칸센에선 처음이다. 사전 예약은 필수다. 호평이 이어지면서 승차인원이 전년 동기 대비 2배나 늘었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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