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표현해서 선호도가 높다면 좋은 직업, 낮다면 나쁜 직업이라고 할 때 겉보기와 무관하게 실제로 어떤 것이 좋고 나쁜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은 명확하다. 부모들이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직업은 좋은 직업이다. 의사나 변호사들이 자식들을 의대나 로스쿨에 보내려 하고, 노동조합이 강한 일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기존 근무자의 자녀들을 신규 직원 채용에서 우대하는 조항이 이른바 노사협약의 형식으로 반영되는 것이 모두 이런 맥락이다. 그나마 의사나 변호사는 소정의 과정과 시험을 거쳐야 하지만, 장기 근속자의 자녀를 우대한다는 조항은 양질의 노동시장에 대한 일종의 내부 카르텔을 형성하는 일탈행위다.

이런 카르텔이 형성되는 건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인센티브 구조의 합리성이 깨져 있기 때문이다. 자산 선택과 마찬가지로 직업 선택에서 고려하는 기본적 요소는 안정성과 수익성이다. 안정성이 높으면 수익성이 낮고, 반대로 수익성이 높으면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은 경제적 선택의 기본 원리다. 일시적으로 안정성도 높고 수익성도 높은 자산이나 직업이 있을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정상화의 경로를 밟는다. 하지만 제도 설계가 잘못돼 있거나 사회적 역학관계가 비정상적으로 형성돼 있으면 이런 인센티브 구조가 왜곡되면서 안정성과 수익성이 모두 높은 직업이 생겨난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면 기득권으로 고착화되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활력을 저하시킨다. 최근 우리나라 직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과거에 통상적으로 공공 부문은 돈은 적게 받아도 상대적으로 편하고 오래 다닐 수 있었던 반면 민간 부문은 월급에다 보너스까지 많이 받아도 바쁘고 힘든데다 정년까지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각자의 장단점은 있지만 대략 안정성과 수익성의 대 체관계는 성립돼 있었기에 취업 준비생들은 각자의 선호도에 따라 공공과 민간을 선택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요즘은 압도적으로 공공 부문을 선호한다. 이는 공공 부문이 안정성도 높은 데다 수익성까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도 급여가 오르고 복지수준도 높아진데다 평균수명 연장으로 연금의 실질적 혜택도 커졌다.

이에 비례해서 민간 부문이 부담하는 세금은 늘어나는데다 경기 사이클이 짧아지고 변동성도 커지면서 잦아지는 구조조정에 정년퇴직은 언감생심이 됐다. 비록 민간 부문이 현직에서 받는 급여가 공공 부문보다 높다고는 하지만 공공 부문의 유리한 연금까지 감안하면 평생소득 관점에서 민간은 안정성과 수익성 모두에서 매력을 상실했다. 오늘날 대다수 부모의 희망은 자식들이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취직하는 것이다. 또 이들이 일등 배우자가 된 세태는 당연한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공무원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본질적으로 우리나라 직업시장에서 왜곡된 안정성과 수익성의 정상화 과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납세자의 입장에서 볼 때 ‘철밥통’의 안정성에 고수익 연금까지 세금으로 보장하는 현행제도를 유지해 달라는 요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만약 공무원 연금의 합리적 개혁에 반대한다면 공무원 신분보장이라도 폐지하는 방향이 공평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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