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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발가락이 닮았다>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발가락이 닮았다>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도서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삽화. 오스트리아 출신의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1935년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증명해 보이려고 고안한 사고실험의 모형도.
살다 보면 진실을 알고 싶지만, 진실을 아는 순간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할 것 같아 덮어두고 싶은 일들이 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다’는 일들은 의외로 많다.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 의 M은 그런 딜레마에 빠져있다. <발가락이 닮았다> 는 김동인이 1932년 발표한 단편이다. 김동인은 장편 15편, 단편 75편 이상을 남긴 ‘다작 작가’다. <배따라기> <감자> <붉은산> <광염 소나타> 등이 대표작이다.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 에서 M은 염상섭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큰 논쟁이 일기도 했다. 염상섭은 소설 속 M과 자신의 닮은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동인과 염상섭은 이 일로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서른두 살의 노총각 M이 어느 날 혼약을 했다. 화려한 솔로로 살면서 방탕한 생활을 해오던 M이다. 관계한 여인의 수만해도 스물서너 살 때 이미 200여명이 넘었다. 단 오십 전만 생겨도 유곽에 가서 성행위를 하니 1년 365일 성병이 떠날 날이 없다. M은 친구이자 의사인 ‘나’에게 물어왔다. 성병에 걸리면 생식능력을 잃느냐고. 나도 M에 대해 제대로 진찰해 본 적이 없어 M의 생식능력에 대해 자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M은 생식능력을 잃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M의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자신의 생식능력에 대한 의심을 아내에게 이제 와서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에게 진찰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

‘나’는 난감하다. 생식능력이 사멸했다는 결과가 나오는데도 ‘살아있다’고 한다면 과학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멸했다’고 말하면 한 사람의 일생이 파탄 난다. 고민하던 끝에 M에게 “오늘 검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M이 피한다. M도 결과에 대해 무서워한다. 자신이 생식능력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아내에 대한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는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왜 생식능력이 없어졌는지를 밝혀야 한다. 또 아내와의 불화는 차치하고서라도 일생을 슬하에 혈육 없이 지내야 하는 고통도 감내하기 어렵다. ‘나’와 M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확인하기 전까진 불확실한 상태
나와 M의 고민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리게 한다. 상자 속에 갇혀 있는 고양이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상자에는 방사성 핵이 들어 있다. 이 핵은 독가스가 나오는 기계와 연결돼 있다. 만약 핵이 붕괴하면 기계를 움직여 독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고양이는 죽는다. 1시간 안에 핵이 붕괴할 확률은 50%다. 고양이의 생사 가능성은 50대 50이다. 이 고양이는 죽은 것일까 살아있는 것일까. 양자역학에서는 “고양이가 반은 살았고 반은 죽었다”고 말한다. 고양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라는 것이다. 고양이의 생사를 정확히 알려면 상자를 열어보면 된다. 상자를 여는 순간에야 생과사가 결정된다고 양자역학은 말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고전역학을 근본부터 뒤흔들었다. 고전역학자들은 상자를 열든 열지 않든 고양이의 생사는 이미 결정돼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상자를 열어 확인하는 것은 생사를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할 뿐 이미 그 전에 고양이의 생존 여부는 결정돼 있었다는 것이다. “태양을 관측하지 않으면 태양이 없는 것이냐”고도 반박했다.

현대 물리학은 양자역학의 손을 들어줬다. 양자역학의 해석은 코펜하겐학파에서 제기한 해석이라고 해서 코펜하겐 해석이 라고도 한다. 양자역학은 하이델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서 출발했다.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측정 행위가 측정을 방해하는 변수가 된다. 예컨대 상자를 들여다 본 뒤 A가 파란색인지 빨간색인지 결정한다고 하자. A는 미세한 충격이 가해지면 파란색으로 변한다. 상자를 여는 순간 빛이 들어가 A에 부닥친다. A에 충돌한 빚은 되돌아와 내 망막에 맺히고, 이때 나는 A의 색깔을 안다. 그런데 빛이 A에 부닥치는 순간 A가 충격을 받아 색깔이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고전물리학은 빛이 부닥치는 행위가 A의 변화에 영향이 없다고 봤지만 양자역학은 영향이 있다고 봤다. 때문에 양자역학은 A의 상태를 확률로만 나타낼 뿐 특정하지는 않게 됐다.

고전역학은 세상은 미리 결정이 돼 있고, 물리학자들은 이를 분석할 뿐이라고 봤다. 때문에 적절한 방정식을 찾아낸 뒤 의미를 확장하면 미래의 일도 예측할 수 있다고 봤다. 양자역학은 세상은 방정식으로 구하더라도 확률로만 존재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의미를 확장한다고 해도 확률에 불과할 뿐 미래가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와 M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M의 생식능력이 죽거나 살아있다’고 믿을 것이냐 아니면 M을 검사해서 그의 생식능력을 확정할 것이냐는 선택이다. 고전역학자라면 이미 M의 생식능력은 사멸했거나 살아있다. 의사인 ‘나’가 검사를 해서 결과를 밝힌다고 ‘나’가 도덕적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다. 또 M의 가정의 미래도 결정돼 있던 것이어서 설혹 M의 가정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나’는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양자역학자의 생각은 다르다. M의 생식능력은 살아있기도, 죽어있기도 한 것이므로 확정된 것이 없다. 때문에 이들 가정의 미래도 결정된 것이 없다. 만약 ‘나’가 검사를 해서 M의 생식능력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순간 M의 가정의 운명도 좌우된다.

양자역학은 미래 예측이 틀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자연과학적 근거로 종종 사용된다. <10년 후의 미래>를 쓴 대니얼 앨트먼 뉴욕대 교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거론하며 “세계 경제를 예측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고 토로했다. 경제학자들은 미래를 확률로만 볼 뿐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다. 미래를 맹신하면 큰 사고가 터진다. 그게 바로 1929년 대공황이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경제학자들은 ‘미래는 풍요로울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오만이었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이처럼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해 세상을 뒤흔드는 일을 경제학에서는 ‘블랙스완’이라고 부른다.
 ‘세상만사 알기 어렵다’
양자역학이 주는 교훈은 ‘세상만사 다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알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다 알려고 들지 말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나’와 M은 검사를 하지 않기로 한다. M의 상태가 생식능력이 있으면서도 없는 상태로 남겨두기로 한 것이다. M의 마지막 소망은 아이가 자신을 닮는 것이다. 자신만 닮는다면 굳이 검사를 하지 않아도 자신의 아이인지, 다른 남자의 아이인지를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아내가 아이를 낳았다. 반 년 뒤 ‘나’를 찾아온 M은 말한다. 아이가 증조부를 닮았다고. 아마도 자신을 비롯한 근친에서는 닮은 사람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주저하던 M이 다시 말한다. “게다가 나를 닮은 데도 있어. 발가락이 닮았어!” M은 말을 이어간다. “내 발가락은 남의 발가락과 달라서 가운데 발가락이 길어. 쉽지 않은 발가락이야. 한데….” 얼마나 닮은 곳이 없으면 발가락이 닮았다고 할까. ‘나’는 M의 눈물겨운 노력이 측은해졌다. 그래서 말했다.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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