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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정면돌파 승부수

현대자동차의 정면돌파 승부수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설치된 현대차 광고에 주목하는 시민들.
제품 가격 책정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잘 만든 상품이 적절치 못한 가격 하나 때문에 실패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너무 비싸면 안 되지만, 무조건 저렴하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시장이 커지고 고객층이 다양할수록 가격은 더 민감한 사안이 된다. 각 지역마다, 고객마다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가격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제품이라고 해도 모든 지역, 모든 시장에서 가격이 똑같을 수는 없는 이유다.

문제는 가격 차별 정책이 소비자들의 반발로 역풍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에 진출한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케아는 한국에서 상품 일부를 미국, 일본 등 해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할인정책도 가격에 차별을 두는 방식 중 하나다. 특히 경쟁이 극심할 경우 기업들은 할인정책으로 고객을 유인한다. 그러나 지나친 할인 경쟁은 소비자들의 불평등을 조장할 뿐 아니라 시장을 과열시킨 끝에 결국 기업들이 공멸하는 사태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한 대표적인 조치다.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도 가격 차별에 아주 민감하다. 한국에서 영업을 하는 기업 상당수는 국내기업과 해외기업을 막론하고 가격 차별 정책으로 ‘내국인 차별’ 의혹을 받았다. 컵라면부터 TV에 이르기까지 여러 제품에 ‘같은 제품이라도 해외에서 판매되는 모델이 국내 모델에 비해 질 좋고 저렴하다’는 불만이 제기됐다.얼마 전부터 배송료와 관세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해외 직접구매 열풍이 불고 있는 데는 소비자들의 차별 의식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듯하다.

경쟁이 치열한 해외 무대에선 대다수 기업이 영역 확보를 위해 과감한 할인정책을 펼치기 마련이다. 지금 미국 자동차 시장이 그렇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패밀리 세단’ 부문은 자동차 시장 내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 GM, 포드 등 미국 업체는 대대적으로 신차를 투입하며 공세에 나선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업체는 엔저를 등에 업고 할인 정책 등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고 있으며, 유럽업체는 현지 생산모델을 투입하는 등 상품성을 앞세워 ‘패밀리 세단’ 부문을 공략 중이다. 폭스바겐 파사트의 경우 2014년형 모델의 가격을 2만845달러까지 낮추면서 중형차 시장 공략에 대한 의욕을 보였고, 이외에도 마쓰다5 2만140달러, 스바루 레거시 2만295달러 등 주요 모델들이 2만 달러대에 대거 포진하고 있음. 크라이슬러 200도 신형을 구형보다 저렴한 2만1700달러에 출시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달랐다. 계속되는 원화 강세로 수출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지만 현대차는 미국에서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10월 22일 신형 쏘나타의 미국 판매가격을 2.4 모델 기준 사양별로 최저 2만1150달러에서 최고 3만1575달러로 발표했다. 신형 쏘나타는 미국 자동차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가장 경쟁이 치열한 ‘패밀리 세단’에 속하지만 현대차는 굽히지 않았다. 2만1150달러에 판매되는 ‘2.4 SE’와 사양이 비슷한 국내 ‘2.4GDi 스타일’을 세전 가격 기준으로 비교했을 경우 미국 모델의 가격이 오히려 152만원 더 높다. 이는 현대차가 최근 원화 강세 등 어려운 경영 환경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제값받기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올해 초 미국에 출시된 현대차 신형 제네시스와 기아차 K9은 현대차 제값받기 마케팅의 대표 주자다. 높은 가격 책정을 통해 독일의 프리미엄 메이커인 아우디, 벤츠, BMW 등과 상품성만으로 경쟁을 벌인다. 지난 4월 미국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출시된 신형 제네시스는 3800cc 후륜구동 모델을 기준으로 구형보다 7.9%(2천800달러) 인상한 3만8천달러로 책정됐으며 4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한 3800cc 모델은 4만500달러, 5000cc 후륜구동 모델은 5만1500달러로 결정됐다. 이 역시 세금과 편의사양 등을 고려하면 한국 모델보다 100만원 이상 높은 가격이다.

미국 평가사로부터 프리미엄 대형차 부문 잔존가치 최우수상을 받은 현대 제네시스.
제값받기를 향한 현대차의 노력은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현대차는 한때 미국 시장에서 “가격에 비해 성능이 좋다”는 오명 아닌 오명을 얻은 적이 있다. 1986년 엑셀 수출을 통해 미국 시장에 첫 진출하면서 세계 각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던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려면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는 전략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젠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가 그저 가격 경쟁력만 갖춘 차가 아니라 품질과 상품성이 뛰어난 차로 인정받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03년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품질경영을 강조하며 해외 시장에서도 당당하게 제값을 받고 판매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제품을 추구한 덕분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이 판매하기보다 높은 품질과 그에 합당한 가격을 제시해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의지였다. 정 회장의 의지는 한결같았다. “경쟁업체들의 물량공세나 할인공세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까지 현대·기아차가 지속해온 ‘제값받기’ 정책을 통한 경영 내실화 강화로 대응하라.” 정 회장이 2012년 미국 법인을 방문했을 때 직원들에게 했던 말이다.

저렴한 가격 대신 품질로 승부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브랜드 가치다. 11월 9일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14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2014)’에서 현대차는 104억 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기록하며 지난해보다 3계단 상승한 40위에 올랐다. 또한 브랜드 가치가 지난해 기록한 90억 달러보다 16% 증가하면서 아우디, 포르쉐 등의 고급 브랜드들보다 먼저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현대차의 올해 브랜드 가치는 2005년의 35억 달러와 비교해 무려 200%가 증가했으며, 순위 또한 84위에서 44계단이나 상승하며 최근 10년 간 브랜드 가치 상승률 및 순위 증가 폭에서 모두 글로벌 자동차 업계 중 1위를 기록했다.

제값받기 정책의 성과는 시장에서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고차 잔존가치 부문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은 것이다. 현대차는 미국의 중고차 잔존가치 평가사인 오토모티브 리스 가이드사가 발표한 ‘2015 잔존가치상’에서 제네시스가 현대·기아차 최초로 프리미엄 대형차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11월 17일 밝혔다. 현대차의 싼타페(2위), 맥스크루즈(2위), LF쏘나타(3위), 아제라(3위·국내명 그랜저)와 기아차의 세도나(2위·국내명 카니발), 쏘울(3위), K900(3위·국내명 K9) 등 7개 차종이 차급별 잔존가치 우수차로 선정됐다.

잔존가치는 일정기간 신차를 사용한 후 예상되는 차량의 가치를 품질, 상품성, 브랜드 인지도, 판매전략 등의 요소를 고려해 산정한 것이다. 잔존가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품질이 좋아야 중고차 잔존가치가 높아지고, 잔존가치가 높아지면 브랜드 인지도도 높아지면서 판매량이 늘어나고 신차 가격이 뒤이어 상승하는 선순환 효과가 일어난다. 제값받기 정책의 성과가 최우수 잔존가치상으로 입증된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제네시스 잔존가치 최우수상 수상이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품질과 상품성을 인정받은 덕분”이라며 향후 ‘제값받기 정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리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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