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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낙원에서 검은 돈의 은닉처로

지상 낙원에서 검은 돈의 은닉처로

세이셸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자연 환경으로 유럽과 중동의 부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이지만 갑자기 세계 최고의 자금 도피처로 악명을 떨치게 됐다.
소말리아 동부 해안에서 1600㎞ 떨어진 에메랄드 그린색의 인도양 섬 세이셸. 2012년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사업가 2명이 이곳에 나타났다. 세이셸 제도는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 부부 등 초특급 저명인사들이 휴가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방문 목적은 절경 감상이나 초호화 리조트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요즘 이곳에서 호황인 역외금융 사업을 이용하려고 세이셸에 왔다고 말했다.

그들은 수소문 끝에 젠 오프쇼어 사무실을 찾아갔다. 고객을 위해 추적이 거의 불가능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주는 회사다. 세이셸에는 그런 중개업체가 수십 개나 있다. 사무실에 들어온 그들은 짐바브웨 정부와 다이아몬드 광산 사이의 연락을 담당하는 사업가의 대리인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자원은 풍부하지만 경제는 형편 없는 곳에서 부패와 돈세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소개를 들었을 때 당장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설명을 덧붙이기 전에 젠 오프쇼어 직원이 말을 가로 막았다. “그런 건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걸 알게 되면 문제를 제기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방금 하신 말씀, 저는 못 들은 겁니다.”

그는 세이셸에서 법인을 등록하고 미로처럼 복잡한 소유 구조를 통해 “산하 기업의 산하 기업의 산하에 있는” 회사를 세워 실제 소유주의 신원을 완벽히 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아메리카 벨리즈에 있는 업체가 경영권을 가진 도미니카 공화국 소재 회사 산하의 법인을 세이셸에 세운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소유주를 알아내려면 서류 추적으로만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했다. “추적이 불가능한 일이죠.” 젠 오프쇼어 직원이 말했다. “그런 정보를 알아내려고 쫓아다닐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여기서 자구 그대로 인용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방문객들이 아프리카 부패 사업가의 대리인이 아니라 몰래 카메라를 들고 잠입한 알자지라 TV 기자 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돌아간 뒤 곧 그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자 세이셸은 엄청난 파문에 휩싸였다. 이 머나먼 섬나라가 갑자기 아랍 왕자와 중국 투자자, 해적, 도망자, 용병, 조직폭력배, 또는 외국인이 자금을 은닉하고 수상한 사업을 벌이는 세계 최고의 자금 도피처로 악명을 떨치게 됐다.
 왜 오지에 있는 작은 국가인가?
한가한 휴양지로 유명했던 세이셸이 지금은 역외금융 사업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 아이오와주 데번포트보다 인구가 적은 섬나라 세이셸은 역외금융 사업 덕분에 전세계 부패 및 자금세탁 무대에서 전천후 만능 해결사의 입지를 누리게 됐다. 그러다 보니 금융 스캔들의 구린 냄새가 풍길 때마다 세이셸의 이름도 나란히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2010년 카자흐스탄 정부가 금융 재벌 무크타르 아블리아코프의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그가 세이셸 법인을 이용해 카자흐스탄 BTA 은행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2011년에는 호주 중앙은행 자회사가 전과 있는 화이트칼라 범죄자와 연결된 세이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나이지리아 공무원들에게 수백만 달러의 뇌물성 자금을 송금했다고 시인했다. 그뿐이 아니다. 2012년에는 이스라엘 사업가 두 명이 세이셸 역외법인을 통해 수익 대부분을 세탁하는 불법 인터넷 제약사를 운영한 혐의에 대해 미국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세이셸 역외금융 산업의 발전 과정은 오지의 작은 섬이 자금 도피처로 애용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2012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 미트 롬니가 케이먼 제도에 지주회사를 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조세 피난처가 논쟁의 초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소규모 섬나라들이 어떻게 조세 피난처로 이름을 날리게 됐는지 살펴 보면 역외금융 시스템이 계속 성장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른 모든 소규모 조세 도피처와 마찬가지로 세이셸 또한 그 낮은 시장점유율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급력을 가졌다. 고객으로 위장한 알자지라 방송 기자들이 파헤쳤듯이, 세이셸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는 역외후원자나 회계사, 은행가가 법인과 금융계좌를 하나만 가진 경우는 드물다. 이들은 다수의 사법권과 유령회사 대표, 다층적 소유구조를 연결해 아주 정교한 그물을 만들어 낸다. 세이셸처럼 자그마한 조세 도피처는 보다 폭넓은 역외자금 세탁 네트워크와 비밀스럽게 엮인 금융 사슬에서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들은 마약 중개상이나 사기꾼, 자금 세탁업자, 탈세를 원하는 거부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국내 부패와 빈곤을 부채질하는 시스템을 강화시킨다고 비판자들은 주장한다. 역외 조세 피난처에 은닉된 민간 금융자산이 32조 달러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경제의 연간 총생산액을 합친 것과 맞먹는 금액이다.

선진국들과 국제기구가 역외 조세 피난처 근절을 부르짖은 지 20년이나 지났지만,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오지의 작은 섬들은 여전히 역외금융 중심지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역외금융 단골 국가들이 역외법인 설립을 통한 탈세 및 자금세탁 근절을 위해 다국적 이니셔티브를 시행하고 법안을 제정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세이셸이나 더 규모가 작은 조세 도피처들은 세력을 계속 넓히고 있다. 지난 1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는 스위스와 버진 아일랜드, 그리고 유럽 식민지에서 독립한 금융 도피처에 압박의 수위를 높여왔다.

그 결과 러시아나 동유럽 마피아, 세계 전역의 자금 세탁업자들은 서구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국을 새로운 도피처로 삼게 됐다고 유안 그랜트는 말했다. 영국 관세청에서 근무하다가 퇴직 후 자금세탁 문제 컨설턴트로 일하는 그는 이런 독립국을 ‘새로운 도피처’라고 부른다.

“싱가포르나 아랍에미리트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모리셔스나 세이셸도 자주 거론된다”고 그랜트가 말했다.

OECD는 역외금융센터 고객의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에 가장 심하게 저항하는 곳이 세이셸이라고 밝혔다. 최근 발간된 OECD 글로벌 조세정보교환 포럼 보고서에 따르면, 세이셸은 ‘규정준수 거부’ 등급을 받은 4개 국가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이 보고서는 세이셸 역외법인 설립 중개업체들이 세이셸 등록 법인의 실제 소유주에 관해 어떤 문서도 남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세이셸 당국자들은 부정적 평가에 이견을 제시하며, 자신들은 OECD 노력에 협조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2012년 한 비즈니스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세이셸 역외산업 총괄 CEO 스티브 파니는 세이셸이 “국제 규제와 원칙을 언제나 충실히 준수해 왔다”고 말했다. “우리는 돈세탁자나 범죄자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그는 역외 고객이 국제 조세제도의 탄력성을 적극 활용하도록 지원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법이 허락하는 범위 내 에서 납세액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은 불법이 아니다. 필요 이상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게 애국 시민의 의무가 아니다.”

세이셸 정부 입장에선 역외산업으로 분명히 큰 혜택을 본다. 역외법인 산업 덕분에 주민 8만9000명의 1인당 평균소득은 2만5000달러에 달했다. 아프리카 최고 수준이다.

“세이셸은 기회의 나라다.” 2013년 유엔이 발간하는 잡지 아프리카 리뉴얼과 가진 인터뷰에서 제임스 앨릭스 미셸 세이셸 대통령이 말했다.

그러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입수한 기밀 자료에 따르면, 미셸 대통령 역시 역외국가에 자금을 은닉할 기회를 호시탐탐 찾는 중인지도 모른다. 조세 피난처에 재산을 은닉한 사람을 고발하는 ICIJ ‘오프쇼어리크스’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앨릭스 미셸 대통령은 2007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역외법인 솔레이유 해외유한지주사의 단일 주주로 등재돼 있다. 솔레이유 문서에 적힌 기업 주소를 보면 세이셸 대통령 관저와 동일하다. 정부 대변인은 미셸 대통령이 역외 지주사를 보유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솔레이유 해외 지주사의 지배권은 모리셔스에 있는 파인즈 유한회사가 갖고 있으며, 이 회사는 솔레이유 외 에도 8개 역외법인을 감독한다. 관련 문서를 보면, 이들 역외 자회사 중 3개는 미셸 대통령 최측근이자 세이셸제도 ‘아우터 아일랜드(Outer Islands)’ 해외관광 및 건설 부문을 감독하는 군도개발공사 사장 글레니 세이비의 부인 마리 앤 클로딘 릴렛 세이비의 소유다.

미셸 대통령과 글레니 세이비는 잇따른 이메일 질문과 인터뷰 요청에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다.

야당 성향 언론과 정치인들은 미셸 대통령의 역외 지주회사 문서가 권력층의 배를 불리기 위한 비밀스런 공작의 증거라고 믿는다. 그들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8년 미 국무부 외교전문 중 “세이셸 같이 부유한 국가가 다양한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부패 때문”이며, 그 결과 2008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1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대목에 주목한다. 세이셸 전직 국회의원이자 언론인 장-프랑수아 페라리는 여당이 국회 32석중 31석을 차지한 국가에서 대통령이 역외자산에 대해 입을 다물면, 어떤 논의도 허용될 수 없다며 우려한다.

“다른 국가에서 대통령과 부하들이 탈세를 위해 역외 금융계좌에 비자금을 은닉했다면,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했을 것”이라고 페라리는 말했다. “그런데 세이셸은 어떤가? 그냥 언제나 있는 일이다.”
 ‘대단히 특이한’
세이셸에 서식하는 푸른 도마뱀. 환경운동가들은 이곳의 희귀종이 기후변화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한다.
18세기 말까지 세이셸은 무인도였다. 그러다가 프랑스 상인들이 가장 먼저 그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이셸 제도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마헤 섬 서쪽에 작은 식민지를 세웠다. 이후 19세기 초 대영제국이 세이셸에 무혈입성하며 지배권이 영국으로 넘어갔다. 1810년 당시 인구는 3467명으로 그중 3105명은 노예, 135명은 자유 흑인, 317명은 ‘그랑 블랑(Grand Blancs)’으로 불린 백인들이었다.

짙게 우거진 녹음과 미개발국이라는 인상 때문에 영국 해군은 세이셸을 노예공급 거점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1971년 마헤 섬 북동쪽 해안에 공항이 개설됐다. 뒤이어 호텔, 기념품 가게, 페리, 카지노, 헬리콥터 투어등의 관광 인프라가 마련됐다.

5년 뒤인 1976년 세이셸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소국인 세이셸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제임스 만참 초대 대통령 취임 후 수개월이 지나지 않아 사회주의자 프랑스-알베르 르네 총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만참 대통령을 몰아냈다.

르네의 정적들은 이름을 날리던 아일랜드계 남아공 용병 ‘매드 마이크’ 호어를 고용해 반격에 나섰다. 할리우드 전쟁용병 영화 ‘지옥의 특전대(The Wild Geese)’에서 리처드 버튼이 연기한 인물의 모델이 바로 마이크 호어다. 1981년 11월 호어와 은퇴할 나이가 가까운 청부살인업자들은 남아공에서 전세비행기를 타고 세이셸로 향했다. AK-47 소총을 가방에 잔뜩 넣은 이들은 고주망태처럼 술을 퍼 마시는 운동 클럽의 회원으로 위장하고 입국을 시도했다.

그러나 쿠데타에 맞서기 위한 또 한 번의 쿠데타 시도는 그들이 탄 전세 비행기가 세이셸 수도 빅토리아 근처 공항에 착륙할 때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짧은 총격전으로 세관 공무원 1명이 사망한 끝에 호어와 용병 대다수는 에어 인디아 항공기를 납치해 세이셸을 탈출했다. 당시 뉴스 보도에 따르면 남아공 정부는 탈출을 못하고 검거된 용병 5명과 남아공 정보 당국자 1명의 석방을 위해 300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르네는 재무부 장관이자 부통령이었던 제임스 미셸의 지원을 받으며 권력을 손에 쥐었다. 세이셸에 있는 다른 수많은 외국인처럼 새로운 삶을 찾아 섬나라를 방문한 이탈리아인 조반니 마리오 리치도 대통령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리치는 이후 르네 대통령의 친구이자 자문관, 재정 후원자, 해결사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르네 행정부는 1978년 리치와 손잡고 세이셸 역외금융 센터의 문을 열었다. 리치와 세이셸 정부의 합작사 형태로 세워진 세이셸 신탁회사는 세이셸 영토 내에서 역외법인을 설립하는 독점권을 가졌다. 다시 말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형 조세 피난처를 세운 것이다.

‘매드 마이크’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1981년, 리치는 세이셸 신탁회사의 전체 소유권을 손에 넣었다. 세이셸을 거점으로 삼은 리치는 전세계 24개국에서 사업 관계를 구축하며 역사학자 스티븐 엘리스가 “눈에 띄게 특이한 회사들”로 표현한 기업들과 연합하기 시작했다. 이 중 하나가 바로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약자를 그대로 가져다 단어만 조금 바꾼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ing)다.

리치는 몰타 콥트 가톨릭 기사단을 대표하는 외교관 자격으로 세이셸에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단체는 바티칸의 명예로운 몰타 기사단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뉴욕시의 한 민간업체로 밝혀졌다. 그 전까지 조작과 사기를 통해 외교관 여권과 외교 행낭을 마음대로 사용한 리치는 검문 없이 문서를 전세계로 빼돌릴 수 있었다.

세이셸을 찾은 다른 많은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리치 또한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해 왔다는 사실이 수 년 후 밝혀졌다.

세이셸 역외산업의 아버지였던 리치는 사실 금융 사기꾼이고, 이탈리아 마피아와도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세이셸 주재 미국 대사가 말했다. 실제로 리치는 1958년 이탈리아에서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스위스에서는 위조 지폐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으며, 소말리아에서는 의심스러운 정황 속에서 국외 추방되어 세이셸로 흘러들어 왔다.

리치의 전과 기록이 밝혀지자 르네는 이탈리아 관리들에게 리치의 신원문의를 한 적이 있으나 “전과 기록이 하나도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역외 자본
2011년 3월 수도 빅토리아에서 열린 세이셸 2020 엑스포. 기술, 에너지, 주택의 미래상을 보여주었다.
낮은 건물들과 소음으로 어수선한 먼지 쌓인 거리를 보면 빅토리아는 여느 아프리카 수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심 시계탑에서 앞을 바라보면, 도로 하나는 해안가로 이어지고 다른 하나는 트루아 프레레 산 봉우리로 이어진다. 화강암 절벽은 자연 풍파로부터 도시를 지켜주는 견고한 벽 구실을 한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 절벽이 열의 방출을 막아 도시 전체가 찜통처럼 찌기 시작한다. 아스팔트에 흡수된 열기는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떨어진 지 한참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도시를 달군다.

세이셸의 역외법인 사업이 가장 활발한 곳은 밋밋한 사무실 건물 단지가 길게 늘어선 도시 광장이다. 흰색 벽이 둘러쳐진 다용도 사무실에 들어가자 회계사와 기업 관리인들이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책상 위에는 서류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들은 빅토리아 회원 전용 클럽에서 점심을 먹고, 끊임없이 들어오는 외국인 고객을 맞거나 유럽 혹은 미국에 있는 변호사와 전화 통화를 하며 새로운 사업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

알자지라 탐사 보도가 방영된 후, 역외금융 사업에 관한 세이셸 야당의 격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전 국회의원이자 역외사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폴 차우는 “알자지라 방송 내용 중에 우리가 놀랄 건 하나도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갖 종류의 비윤리적 관행을 처벌하지 않거나 은폐하고, 관습으로 치부해 버린다. 모두가 그 늪 아래서 활동한다.”

그러나 최근의 인터뷰에서 차우는 세이셸의 부패 수준에 대해 계속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대다수 역외사업 종사자들은 정직하게 사업을 한다고 말했다. 알자지라 방송에 나왔던 역외법인 중개회사 두 곳은 예외로, 정부 당국의 적절한 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영업을 해온 회사들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알자지라 방송 이후 정부는 두 회사의 사업권을 취소했다.

차우는 자그마한 키에 희끗희끗한 머리, 올리브색 피부와 얇은 입술을 가졌다. 차우의 가족이 세이셸에 살기 시작한 건 아주 오래 전이다. 중국 광둥에서 교사로 일했던 그의 아버지는 1920년대 마다가스카르로 가던 길에 빅토리아에서 배가 좌초되고, 중국으로 돌아갈 배표가 없어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아버지는 세이셸에 정착했고, 세이셸 여성과 결혼해 자녀 6명을 두었다. 올해 62세의 폴 차우는 그중 막내다.

만참의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차우는 1977년 르네가 권력을 잡았을 때 영국으로 망명했다. 망명 기간 동안 차우는 뜻을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고 먼 이국 땅에서 르네 정부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웠다. 역외산업을 총괄하고 르네 대통령의 자문으로 일했던 리치는 차우와 쫓고 쫓기는 게임을 벌였다. 리치는 대통령의 정적을 감시하기 위해 사설탐정을 고용하기도 했다.

1985년 런던에서 차우와 가깝게 지냈던 동료 운동가 제라르 호아로가 자신이 살던 아파트 앞에서 총을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미결로 남았지만, 차우와 세이셸 정부 반대자들은 동료가 정치 암살로 살해됐다고 믿는다. 국제사회 압력으로 르네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다당제 선거를 승인하면서 차우는 다시 세이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의원직에 당선된 그는 5년간 의회 활동을 했고, 사임 후 역외법인 설립을 돕는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와 현금을 가진 정치인들이 은퇴 후 가장 많이 뛰어드는 사업이었다.

차우는 사업 모델이 단순하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 이스라엘에 있는 변호사, 회계사가 고액자산 고객을 대리해 문의를 하면, 그가 해당 고객을 주주로 하는 법인을 등록해 주고 법인 등록 및 계좌 개설 서류 작업에 대해 수수료를 청구한다. 차우는 자신의 회사 피프코 오프쇼어가 지난해 3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선 괜찮은 수입이다.

차우는 사무소가 있는 프리미어 빌딩을 나와 뜨거운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로 나섰다. 어린 학생들이 무리 지어 보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분홍색 셔츠와 원피스를 입은 여학생들, 하얀 셔츠와 빳빳하게 풀을 먹인 푸른색 바지를 입은 남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고 왁자지껄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차우는 이들을 뚫고 지나가며 쉴새 없이 말을 이었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는 매년 3만 개 기업이 법인 등록을 한다. 우리는 1만 1000개 정도다.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모리셔스를 비롯한 다른 역외금융 허브와 달리, 세이셸의 인기는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OECD를 비롯한 국제기구의 압력을 꿋꿋이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셔스는 국제 규정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OECD의 말을 그들은 군말 없이 따른다. 그러니까 역외법인이 자꾸 떠난다.” 차우는 세이셸이 OECD 요구를 반드시 따를 이유가 없다고 믿는다. “OECD는 특별한 권한이 없다.”

말을 이어가던 그는 세이셸 요트 클럽에서 발을 멈추었다. 세이셸이 영국의 통치를 받던 1964년에 세워진 아주 낡은 건물이었다. 안쪽에서는 중년의 백인 남성들이 생선튀김을 안주 삼아 현지 맥주 음료 세이브루를 마시고 있었다. 차우는 2016년 제임스 미셸이 재선에 나설 때 자신도 대선 후보로 등록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차우는 세이셸 정치인들이 정계와 역외산업을 오가는 관행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견을 묻자 그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 관한 질문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미국 부통령 고향이 어디더라?”

“델라웨어요.”

델라웨어는 세이셸과 마찬가지로 익명의 소유주들이 있는 명목회사가 많이 위치한 곳이다. 덕분에 델라웨어는 온갖 사기꾼과 무기 밀매상의 은신처라는 악명을 얻게 됐다. 차우는 명목회사를 세우기 가장 쉬운 국가 중 하나가 미국이라는 최근의 한 연구 결과를 거론했다. 미국에서는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강대국이 세이셸을 비롯한 조세 피난처를 겨냥해 규제를 내놓지만, 사실 이들 선진국이야말로 역외 시스템을 조장하고 수익을 얻는 당사자 중 하나라는 견해였다. 이런 시각 때문에 역외 조세 피난처를 규제하려는 선진국의 노력이 빛을 못 보기도 한다. 세이셸에 있는 다른 역외법인 중개업체와 마찬가지로, 차우 또한 출처를 알 수 없는 검은 돈의 흐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부유한 강대국들이 세이셸을 공격하는 건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세계 다른 모든 국가들이 하는데, 왜 우리만 안 되는가?
 ‘당신을 없애버릴 거야’
세이셸 제도는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 부부 등 초특급 저명인사들이 휴가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호아루가 암살된 1985년에는 ‘검은 음모의 온상’이라는 세이셸의 악명이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세이셸 역외산업을 시작한 리치는 흑백분리정책으로 제재를 받던 남아공 경제를 돕기 위해 세이셸을 이용했다고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교 역사학자이자 아프리카 부패 역사 전문가 엘리스는 말했다. 리치의 사업 파트너 중에는 남아공 정부에서 국제사회 통상금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던 공무원도 있었다.

1982년부터 85년까지 세이셸 주재 미국 대사로 재직했던 데이비드 J 피셔는 재임기간 그를 비롯한 미국 관료들이 세이셸에서 횡행하던 불법행위에 관해 여러 정보를 습득했다고 말했다. 이 중에는 뉴욕 마피아 감비노 패밀리의 자금 세탁, 프랑스 및 미국 은행을 통해 세이셸을 오가는 검은 돈, 생선 통조림통에 몰래 숨겨 미국으로 들여오는 헤로인에 관한 정보도 포함돼 있었다. 범죄 행위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다시 세이셸을 통해 세탁됐다.

“그 정도로 무법 천지”라고 피셔는 말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연구원으로 있는 피셔는 미국 외교연구 및 연수협회와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진부한 스파이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다.”

사건을 파헤치다 보면 결국 리치가 연관된 경우가 많았다. 르네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사건도 일부 있었다고 피셔는 말했다. 한 번은 뉴저지 마약 사건으로 살해된 한 폭력배의 주소록에서 르네 대통령의 개인 전화번호가 나온 적이 있다.

피셔는 르네 대통령에게 가서 그가 뉴저지 살인 사건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고 돌이켰다. “마피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시겠죠. 리치를 통해 연루되신 거겠죠…. 마피아는 거래가 끝나면 당신을 없애 버릴 겁니다.”

이 말을 했을 때 ‘침착한 협상가’로 알려진 르네가 움찔하는 걸 처음 봤다고 피셔는 말했다. 나는 피셔가 들려준 이야기에 대해 답변을 요구하는 음성 메시지와 이메일을 보냈지만 르네 전 대통령은 끝내 답변을 하지 않았다.

야당 지도자를 도청한 혐의를 받던 리치는 결국 서둘러 세이셸을 떠났다. 그러면서 세이셸 역외산업에는 큰 공백이 생겼다(리치는 세이셸을 떠난 지 수 년 뒤 사망했다). 이에 세이셸은 1988년에 역외산업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포괄적 역외산업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도 했다.

세이셸의 역외산업은 1990년대 구소련 붕괴로 부흥의 계기를 맞았다. 동유럽과 시차가 별로 나지 않는 세이셸은 동유럽에서 조용히 돈을 빼돌리려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조세 피난처가 됐다고 호주 그리피스 대학 정치학 교수 제이슨 샤르만은 말했다. “대부분 수상한 사업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95년 런던에 거주하는 러시아 억만장자의 대리인 자격으로 왔다는 한 남성이 세이셸 국회 부의장과 당시 르네 행정부 재무장관이던 제임스 미셸의 고문을 만났다. 이 남성은 러시아 거부들이 세이셸을 통해 1억1500만 달러의 돈을 투자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자금 출처에 대해서는 철저히 기밀을 보장하고 절대 조사하지 않겠다. 우리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부의장이 약속했다.

그러나 러시아 큰손을 대표한다는 이 사람은 사실 취재 중인 기자였다. 세이셸에서라면 그렇게 놀라운 시나리오도 아니다. “사기꾼의 천국”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사건을 보도한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세이셸 공무원들이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도록 도와주고, 러시아 부호에게 외교관 지위를 부여해 세관 검색 없이 수하물을 들여올 수 있도록 약속했다고 말했다. 첫 만남 후, 이 의원은 미셸 재무장관과 의논을 끝냈으며 필요한 승인을 받았다고 연락을 해왔다. “의뢰 내용에 대해 미셸에게 모두 보고했다. 진행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아주 긍정적이다.”
 벌어지는 빈부격차
2004년 프랑스-알베르 르네 대통령이 물러나고, 그의 최측근인 제임스 미셸 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2006년과 2011년 선거에서 승리한 미셸(69)은 민주주의를 위한 헌신과 세이셸 전국민을 위한 사회복지시스템에 대해 항상 신중하게 자랑한다. 그는 세이셸의 모든 주민에게 교육과 의료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고 강조하며,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에서 이는 실현되지 못할 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소득 분포를 보여주는 지니 계수를 살펴 보면 세이셸은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극심한 국가 중 하나다. 세이셸 어디를 가도 빈부 격차는 손에 잡힐 듯 뚜렷하다. 번쩍거리는 호화 빌라 바로 옆에 날림으로 지은 낮은 콘크리트 건물이 늘어서 있다. 빅토리아 교외에는 흉물스러운 건물이 늘어서 있는데 에덴 아일랜드 부촌에는 제복을 입은 경비가 높은 담장 밖에서 단지를 지킨다.

아침이면 트레일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호화 리조트 공사 현장과 벌집처럼 벽이 세워진 조립식 별장, 남아시아 노동자들의 막사형 판잣집을 부지런히 오간다. 건설 자금은 중국이나 아랍 투자자들이 대고, 공사 진행은 다른 외국인들이 감독한다. 세이셸 주민들은 이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지난 수년 간 지도층이 세이셸의 모든 자원을 통제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고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페라리는 말했다. “건설·운송·무역·장비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업에 관여한다. 이들의 손은 어디에나 뻗쳐 있다.”

세이셸의 정치·금융계 ‘브로커’로 알려진 사람 중에서 사비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문어발 확장을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보험·투자·부동산 등에서 돈 되는 기회는 모두 틀어쥐고 있다.

사비 가문이 세이셸 역사에 모습을 처음 드러낸 때는 1785년이다. 프랑스 해군 장교 프랑수아 블레이즈 사비가 아들과 노예 1명을 데리고 세이셸에 상륙했다. 사비 가문은 점차 섬의 노른자 땅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영국 더 타임스 신문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이라 부르는 프리게이트 섬도 사비 가문이 수년 간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해리’라는 이름의 사비 상속자가 포커 게임에서 섬을 잃었다는 소문이 있다(사비 가문이 소유한 다른 유명 부동산으로는 생태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버드 아일랜드가 있다).

사비 가문의 정치 인맥도 막강하다. 글레니 사비와 그의 형제들은 르네 전 대통령 전 부인이 낳은 자식들이다.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하며 군도개발공사를 총괄하는 글레니는 현 대통령과도 가까운 사이다.

글레니 사비는 아내가 전액 혹은 부분 출자한 역외기업 3개를 통해서도 미셸 대통령과 연결된 듯하다. ICIJ가 입수한 기밀 자료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세워진 법인 네트워크의 일부를 이루며, 여기에는 미셸이 주주로 등록된 기업도 포함된다.

이들 기업을 감독하는 기업이 바로 모리셔스에 법인으로 등록된 파인즈 기업이다. 이 기업은 또 다른 모리셔스 기업 DTOS의 요청으로 설립됐고, DTOS 소유권은 모리셔스에 본사를 둔 재벌기업 GML그룹이 갖고 있다. GML 그룹은 사비 가문 보험사업에서 소수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글레니 세이비가 관리하는 아우터 아일랜드 리조트 사업에도 관여돼 있다.

고급 리조트를 위한 토지 개발은 세이셸에서 민감한 이슈다. 2012년 세이셸 환경보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낙원의 공포와 혐오(Fear and Loathing in Paradise)’를 자가출판한 스코틀랜드 환경운동가 알렉스 포크스는 글레니 사비가 경제적 취약지역을 리조트 및 각종 호화 건설 프로젝트에 개방하며, 아우터 아일랜드를 “개인 영지”처럼 넘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해당 내용에 대해 확인을 거듭 요청했지만, 군도개발공사와 글레니 사비 대변인 중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다.
 ‘낙원에 갇힌 죄수’
1995년 세이셸 공화국은 세이셸 경제에 1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모든 외국인에게 사법 기소 및 본국 송환에 대한 폭넓은 면책권을 제공한다는 경제개발법을 제정했다.

미국 관리들은 이 법이 “범죄자 여러분, 환영합니다”라고 외친 것과 다름 없다고 평한다. 영국 중대비리조사국은 “마약왕과 사기범, 자금세탁 범죄자의 마음에 쏙 드는 완벽한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은 세이셸 정부는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뜻을 굽혀 해당 법을 성문법전에 넣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의도는 사라지지 않았다. 2005년 악명 높은 체코 범죄단 두목 라도반 크레즈시르는 살인 및 자금세탁 혐의로 경찰이 집에 들이닥치자 욕실 창문을 넘어 도망친 후 세이셸에 망명을 요청했다.

그는 자신이 세이셸 유명 정치인에게 자금을 후원했고, 그 대가로 “나와 가족은 새 신분증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세이셸에 2년간 머문 그는 송환을 요구하는 체코 당국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세이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너무 지루했다. 낙원에 갇힌 죄수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에그베르트 쥴스 사비’라는 가명으로 발급된 세이셸 여권을 들고 남아공에 입국했다.

크레즈시르는 현재 남아공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남아공 당국은 그를 체코로 송환할지, 아니면 결국 실패로 돌아간 200만 달러 규모 메탐페타인(필로폰) 환각제 거래와 관련된 납치 및 폭행 혐의로 남아공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할지 고민하는 중이다. “나는 천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마도 아니다.” 크레즈시르가 자신을 변호하며 말했다.

지난 18개월간 세이셸에 큰 파장을 일으킨 도망자들이 2명 있다. 2013년 초 인터폴은 미셸 대통령 최측근과 친해진 후 기부를 통해 세이셸 시민권을 획득한 마렉 트라즈터가 슬로바키아 마피아와 연루된 사업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으며 그뒤 그는 슬로바키아로 추방됐다. 또 다른 화제를 일으킨 인물은 벤 알리 튀니지 전 대통령 사위 세이커 엘-마테리다. 그는 비리 혐의로 튀니지 법정에서 16년 형을 선고 받은 뒤 세이셸로 도망쳤다.

튀니지 정부는 그의 송환을 요구했지만, 세이셸 당국은 엘-마테리가 “공정하고 자유로운” 재판을 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여러 사례를 통해 돈만 있으면 세이셸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누구든, 무슨 일을 했든, 빵빵한 현금과 화려한 인맥만 있으면 수개월, 혹은 수년간 세이셸에 머물 수 있다는 믿음이다.

5년 전 세이셸 정부는 역외산업을 통해 들어오는 검은 돈과 온갖 비리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정보분석원을 세우기도 했다.

금융정보분석원장으로 임명된 아일랜드 출신의 퇴역 정보장교 디클랜 바버는 세이셸에 흘러 들어오는 불법 자금의 양이 크게 감소했지만, 근절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세이셸 영해에서 활동해온 소말리아 해적과 국내외 마약 중개인들이 세이셸로 몰려오는 점도 문제다.

“세이셸이 범죄 자금의 은닉처가 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키프로스처럼 범죄자의 본거지로 전락할 것이다. 범죄자들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뇌물을 통해 정치 비리를 심화시킬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위협하며 국가 제도와 시스템을 부패시키면, 사회 구조는 붕괴할 것이다. 우려되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자금세탁을 추적하는 국제 조사관들은 세이셸이 이미 검은 돈의 은닉처, 또는 정거장이 되었다고 말한다.

일례로, 러시아 마그니츠키 사건을 조사 중인 변호사들은 러시아 폭력배와 정부 관계자들이 세이셸 페이퍼컴퍼니 4개를 통해 러시아 재무부 자금 2억3000만 달러를 빼돌려 스위스와 두바이, 기타 국가로 옮겨 가며 세탁했다고 주장한다. 불가리아 의회 부의장은 자신과 의붓아들이 유럽 은행계좌와 세이셸 역외기업을 통해 거액을 송금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자금세탁 및 탈세 혐의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11월 부의장직을 사임했다.
 ‘두려움에 떠는 국민’
세이셸 역외산업 막후에 숨은 실력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필립 불레라는 답을 들을 것이다. 불레는 높은 수익을 기록 중인 역외 서비스기업 인터쇼어 컨설팅 그룹(“각종 역외 서비스가 당신 손 안에 있습니다”)을 경영하고 있다. 역외산업 무역협회 의장직을 맡고 있는 불레는 그의 회사를 비롯한 역외법인 중개 사업권을 허가하고 감독하는 정부기관 세이셸 국제비즈니스공사의 이사직도 겸한다.

변호사로도 활동하는 불레는 국제비즈니스공사가 역외 기업활동을 감독하는 역할을 제법 잘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다. “누구도 규제 자체를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더는 역외금융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불레는 주장했다. 세이셸에 지점을 둔 바클레이스를 비롯해 여러 글로벌 금융기관도 역외사업을 벌인다고 그는 지적했다. 따라서 “돈가방을 들고 와서 숨기는 모습”으로 역외법인 사업을 상상하는 건 그만둬야 한다. “프랑스에서 돈가방을 들고 온두라스로 건너가고, 이탈리아인이 모나코로 건너가는 식이 아니다. 요즘엔 비즈니스를 하려면 일단 은행 계좌부터 개설해야 한다.”

그러나 조세 피난처를 곱지 않은 눈길로 보는 사람들은 역외법인 사업에서 은행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변명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역외법인을 활용한 편법이 국제금융 시스템에 깊게 뿌리 내렸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불레의 회사 또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부터 서인도 앙귈라, 파나마, 벨리즈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조세 피난처에 지사를 두고 있다. 상담을 원하는 고객은 다양한 신원조회를 통과해야만 함께 사업을 할 수 있다.

세이셸에 있는 다른 많은 역외법인 중개업체들도 “요즘은 규정을 준수하기 때문에 숨길 것이 없다”는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이들은 2012년 알자지라 기자들이 부패 증거를 잡기 위해 역외법인 10곳을 방문해야 했다고 강조한다.

역외법인을 어업·관광업과 함께 세이셸 경제의 주요 축으로 생각하는 정부에게 역외법인 사업의 이미지 개선은 아주 중요한 임무다. 역외금융은 “천금을 주더라도 바꿀 생각이 없다”고 투자자원산업부 장관 피터 시논이 말했다.

미셸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현재 역외법인 산업이 규제 없이 제멋대로 돌아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불하는 대가가 너무 크지 않냐고 반문한다. 마헤 섬에서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블로거 장-폴 아이작은 정부를 격하게 비판하는 글을 자주 올린다. 그는 “역외법인 서비스의 건전한 성장을 통해 합법적 투자를 유치하려는 노력”을 지지하지만, “사법권까지 팔아 치우며 전세계 금융서비스 산업의 천덕꾸러기가 되는 건 반대한다”고 말했다.

30대인 아이작은 몽플뢰리 노동자 거주지에서 시멘트로 벽을 바른 판잣집에서 살아간다. 고물 지프 체로키가 주차된 앞마당에는 닭 여러 마리와 삐쩍 마른 개 두 마리가 자리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이작은 거실에 있는 낡아빠진 데스크톱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블로그를 올린다.

티크 원목가구가 놓여 있고, 안뜰에는 야자수 잎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바로 옆 호화 리조트와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상반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세이셸 국민 대부분은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고 아이작은 말했다.

“국민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아이작이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들은 비참하다. 돈 한 푼 없고, 재산도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역외 금융센터는 별다른 자원이 없는 작은 국가를 밀어주는 경제 엔진과 같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그러나 실제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는 사람은 인맥이 넓은 현지인이나 미국·영국·호주 등 선진국에서 온 외국인 변호사와 회계사다.

기저귀를 찬 아이작의 아들이 거실로 아장아장 걸어오고, 아이작의 여자친구가 그 뒤를 따라온다. 바깥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의자에 몸을 기댄 아이작은 역외법인이 가져오는 폐해에 대해 장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역외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세 피난처 중개인들 덕분에 미셸 대통령과 그의 측근이 지구 반 바퀴 너머에 비자금을 숨길 수 있었다고 아이작은 생각한다. 아이작이 ‘조국’이라 부르는 섬나라에 더러운 돈이 끊임없이 오가는 것도 그들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의 생계이자 돈을 버는 방식”이라고 아이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들은) 개인적 영달을 위해 국가 사법권의 권위와 명성을 팔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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