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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전문기자의 ‘뉴노멀, 뉴머니’ - 적립식 펀드 ‘영광이여 다시 한번?’

서명수 전문기자의 ‘뉴노멀, 뉴머니’ - 적립식 펀드 ‘영광이여 다시 한번?’

새 천년 직전 해인 1999년 투자자들을 울린 펀드 광풍이 세차게 몰아쳤다. ‘바이코리아펀드’가 그 주역이다. 현대증권이 내놓은 바이코리아펀드는 석 달 만에 12조원을 끌어 모았다. 광풍을 이끈 주인공은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이 회장은 코스피 지수가 500선 밑으로 폭락하자 ‘저평가된 한국 증시에 투자하자’며 바이코리아펀드를 들고 나왔다. 그가 펀드 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강연장에는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바이코리아펀드는 첫 해 수익률 77%로 대박을 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듬해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로 수익률이 -55%로 곤두박질쳤다. 펀드가 뭔지도 모르고 쌈지 돈까지 동원했던 투자자들은 펀드를 환매하고 떠났다. 이후 바이코리아는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고 운용역도 바뀌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의 새 주인은 한화투신운용이다. 이 펀드의 설정 이후 수익률은 400% 가까이 된다. 장기 투자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만약 지금까지 적립식으로 투자한 사람이 있다면 일찌감치 원금 회복을 했음은 물론이고 이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거품된 ‘바이코리아’의 대박 꿈
적립식 펀드는 변덕이 심한 증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귀신도 모른다는 주가 움직임과 툭하면 터지는 굵직한 우연의 사건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투자기간을 분산해 시간을 버는게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위험이란 시간 앞에서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위한 시간·지역·대상 3가지 분산투자 방법 중 시간에 해당하는 것이 적립식 투자다.

우리나라에 적립식 펀드가 첫 선을 보인 건 지난 2004년이다. 펀드도 은행에 저축하듯이 불입할 수 있다고 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마침 주식시장도 상승 추세여서 적립식 펀드는 대표적인 금융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1가구 1펀드 시대가 열렸다는 말도 나왔다. 적립식 펀드는 신데델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적립식 펀드는 인기의 뒤안길을 걷고 있다.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왕년의 스타를 보는 듯하다. 적립식 펀드는 2008년 말 기준 약 76조2000억원을 기록한 뒤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다. 50조원대도 무너져 올 6월말 기준 46조5000억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 6년도 안 되는 기간에 몸집이 40%나 줄어 홀쭉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적립식 펀드 시대는 막을 내린 것일까. 이 의문을 풀기에 앞서 투자자들의 잘못된 매매 행태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다. 2005년 이후 코스피 지수와 적립식 펀드잔고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면 후자가 전자에 후행하는 추세를 보인다. 시장이 오른 뒤 개인투자자들이 펀드에 가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지수가 하락하면 펀드 잔고도 줄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시장 흐름에 따라 매매하는 것은 적립식이 아니라도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

투자의 기본은 쌀 때 사고 비쌀 때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립식 투자는 시장이 언제 오르고 내릴지 알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매달 일정액을 납입하면 주가가 쌀 때는 많이, 비쌀 때는 적게 사서 평균 가격으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이를 ‘코스트 에버리징(cost averaging)’이라고 한다. 코스트 에버리징의 핵심은 매입 단가를 낮추는 것이다. 매입 단가를 낮추려면 쌀 때 많이 사야 한다. 바닥을 기는 장이 오래 갈수록 적립식 펀드 수익률은 좋아지게 돼 있다. 최근 6년 동안 증시가 떨어지는 것도, 오르는 것도 아닌 박스권에 갇히면서 투자자들 대부분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는 적립식 펀드가 다시 투자자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 올 가능성이 크다. 초저금리 때문이다. 요즘은 금리 2%대의 은행예금조차도 구경하기 힘들다. 3%대의 적금이라 해도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실제 손에 쥐는 이자는 2%가 안 된다. 초저금리가 오래 지속되면 펀드, 그중에서도 시간분산으로 위험관리가 가능한 적립식 펀드가 인기를 되찾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물론 아직은 은행에서 펀드시장으로의 자금 이동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마 이건 유리한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선택하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 익숙함으로 미래에 손해를 볼지 모른다고 인지할 때까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금리가 떨어진 후 6개월 이상이 지나야 자금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적립식 펀드는 시장 전망을 뒤로 밀어놓고 ‘기간’에 투자하는 것이다. 대개 만기 3년짜리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이마저도 중간에 손실이라도 발생하면 납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손실이란 시장의 하락을 의미해 거꾸로 적립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이익이 나든 손실을 보든 두 눈을 질끈 감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적립식 펀드로 승부를 낼 수 있다. 만약 불입 중단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면 아예 처음부터 강제저축 효과가 뛰어난 상품에 가입하는 게 좋다. 연금 펀드가 대표적이다. 오래 보유해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중간에 불입을 중단하거나 해지하기가 쉽지 않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연금 펀드에 적립식으로 6년 이상 투자한 경우 모든 펀드가 플러스 수익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6년간 모든 유형의 퇴직연금펀드 223개 중에서는 단 1개 펀드를 제외한 222개가 플러스 수익을 거뒀다. 코스피 지수가 최고치인 2228.95를 기록했던 2011년 5월부터 투자하더라도 301개 펀드 중 278개, 즉 10개 중 9.2개가 플러스 수익률을 보였다.
 투자 손익은 단 며칠 새 판가름 나
오래 묵은 된장이 맛있다고 적립식 펀드야 말로 장기 보유가 답이다. 최소 5년 이상은 돼야 한다. 투자 위험을 최소화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면 적어도 이 정도 기간은 필요하다. 주식시장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하다. 주가의 시세변동은 예고 없이 수시로 나타나기 때문에 시장은 예측불허고 거칠다. 어느 날 주가가 미친 듯이 올랐어도 다음 날 진정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극단적인 시세변동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발생하지 않고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보유한 펀드의 가치가 단 며칠 만에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작은 시세변동을 일으키는 사건은 자주 발생하지만 큰 시세변동을 일으키는 사건은 드물기 때문에 손익은 단 며칠 동안 판가름 나게 마련이다. 세계적인 펀드 회사 피델리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증시에서 15년 동안 투자한 사람은 매년 평균 6%의 수익을 올렸지만 최적의 투자시기로 평가되는 10일을 놓친 사람은 2%의 수익을, 40일을 놓친 경우는 4%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가란 단기간에 걸쳐 단숨에 오르는 특성이 있으므로 장기 보유하다 보면 이런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증시활황은 도둑처럼 왔다가도둑처럼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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