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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멋진 신세계>의 ‘효율임금이론’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멋진 신세계>의 ‘효율임금이론’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신’으로 추앙 받는 세계가 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랄 때나 어려움이 닥칠 때 신이 아니라 ‘포드’를 찾는다. ‘오 주여!’가 아니라 ‘오 포드님!’이다. 인간을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위해서 찍어내는 사회에서는 포드가 곧 신이다. 이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2년.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미래과학(SF)소설인 <멋진 신세계> 를 내놓는다. 20세기에 쓰인 미래 소설 중 최고 작품으로 손꼽힌다. 시대적 배경은 포드 기원(T 기원) 632년이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해를 세지 않는다. 헨리 포드가 T모델을 만든때는 1908년이 기준이다. 굳이 서기로 따지자면 여기에서 632년을 더하면 된다. 2540년 이다.

포드는 세계의 중심이다. 사람들은 성호를 긋지 않고 ‘T’를 긋는다. 시간을 알리는 시계는 빅벤이 아니라 T벤이다. 아이들은 난자와 정자를 넣은 병에서 부화된다. 병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면서 각기 과정을 거친다. 병은 하루 8m의 속도로 267일 동안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한다. 그리고 267일째 아침, 출산실에서 아이들이 태어난다. 아이들은 계급이 정해져 있다. 가장 높은 계층이 알파고 베타, 감만, 델타 순이다. 가장 하위층이 옙실론이다. 알파계층은 몸매도 멋지고 지성도 뛰어나지만 옙실론으로 갈수록 왜소해지고 추해지다 괴물 형태로 변한다. 물론 지성도 갈수록 떨어진다. 광산에서 일하거나, 하수처리를 하는 계층에게 높은 지성을 줄 이유는 없다. 아이들은 아기 때 조건반사 수업과 수면 수업을 통해 필요한 기능을 습득한다.

이 시대 모든 인간은 행복하다. 고통을 느끼거나 외로움을 타는 것, 분노를 느낄 수도 없다. ‘소마’라는 약을 먹으면 모든 것은 현실이 된다. 질병도 없고, 전쟁도 없다. 늙어도 죽기 직전까지는 표가 나지 않는다. 일부일처제는 혐오된다. 엄마·아빠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도 없다. ‘만인은 만인의 것’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만 사랑하는 것은 불경스럽다. 누구와도 섹스를 하며 즐겨야 한다. 섹스는 쾌락이다. 여성들은 완벽하게 피임을 할 수 있는 약을 담은 ‘멜서스의 허리띠’를 차고 다닌다. 이 사회에서 소비는 미덕이다. 산업을 위해서다. 낡은 옷을 수선하는 것은 죄악시된다.

이런 환상적인 사회에도 반체제 인사는 있다. 버나드 마르크스라는 괴짜 청년이다. 상류계층이지만 열등한 몸매를 가졌다. 때로 고독하고 분노한다. 남자와 여자가 바꿔가며 섹스를 즐기는 것이 불편하다. 사람들은 버나드가 병 속에서 잉태될 때 공정상 문제 있었던 ‘불량품’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런 버나드를 좋아하는 여인이 있다. 레니나다. 버나드가 결코 편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끌린다.
 컨베이어밸트 타고 아이 태어나
포드는 현대적 대량생산 체제를 만든 인물이다.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작업 시스템인 포드 시스템(Ford System), 즉 포디즘(Fordism)은 노동생산성을 혁명적으로 높였다. 지금은 거의 모든 제조 업체에서 채택하는 방식이지만 1908년 이전 포드가 구상하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시스템이었다. 포드는 차량의 구조와 형태를 조립하기 쉽도록 설계했다. 노동자들은 켄베이어벨트가 실어오는 부품을 그저 끼우기만 하면 끝이었다. 포드는 이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를 육류가공 공장에서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T모델은 검정색 하나뿐이었다. 검정색이 가장 빨리 마른다는 이유에서다. 빨리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시스템은 차량 가격을 급속도로 떨어뜨렸다. 차 1대당 2000달러에서 3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포드 이후 자동차는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닌 서민들의 필수품이 됐다.

하지만 포디즘은 문제도 낳았다. 노동자를 부속품의 하나로 전락시켰다. 노동자는 언제든 교체하면 되는 존재로 전락했다. 반대로 노동자의 힘이 커진 측면도 있다. 한 생산라인만 멈춰버리면 전체 공정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노조가 힘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1915년께 자동차 생산자가 잇따라 생기면서 경쟁이 격화됐다. 노동자들은 한 푼이라도 더 주는 곳으로 이직을 했고, 자동차 회사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이직률은 380%가 넘었다. 3개월 정도 일을 하다가 그만두기 일쑤였다. 이때 포드가 꺼내든 정책이 ‘일당 5달러’였다. 당시 자동차 업계의 평균 임금은 일당 2.5달러. 포드는 두 배 수준인 임금을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포드는 곧 망할 것’이라고 시장은 냉소했지만 승리는 포드의 차지였다. 높은 임금을 받는 직원들은 더 이상 이직을 하지 않았다. 신이 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생산성도 높아졌다. 노동자들은 포드의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 줄을 섰다. 포드는 “어떤 비용 절감보다 더 큰 효과를 봤다”고 자평했다.

임금 5달러는 대량 소비에도 기여했다. 높은 소득을 얻게 된 직원들이 소비자가 돼 자동차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 체제에는 그걸 뒷받침할 소비자가 필요했다. 포드는 “높은 임금을 지급하면 그 돈이 사용돼 판매자, 생산자 및 노동자들의 수입이 늘고, 그 수입은 자동차 판매로 되돌아 온다”며 “범국가적인 고임금은 범국가적인 번영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소득 높이는 정책 성공할까?
포드의 5달러 정책은 경제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효율임금 이론’이다. 노동가치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줄 때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종래의 경제학은 노동수요과 공급이 만나는 점이 ‘균형 임금’이라고 봤다. 저임금의 비정규직을 고용해 인건비를 떨어뜨리는 것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영자라면 생각해 봐야 할 이론이다. 직원 입장에서 임금이 적고 고용이 불안정하면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져 생산성이 높아지기 어렵다.

소득을 높여주니 소비가 늘어나더라는 것은 ‘항상소득가설’로도 이어진다. 소득이 규칙적이고 안정적으로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소비자가 더 많은 소비를 한다는 이론이다. 많은 기업들이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임금을 깎으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되레 소비가 위축될 수도 있다. 최근 경제정책이 가계소득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버나드와 그의 연인 레니나는 뉴멕시코에 있는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곳에서 존이라는 야만인 청년을 만난다. 알고 보니 신세계 출신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청년이다. 버나드는 존을 신세계로 데려오지만 신세계 사람들은 존을 이해 하지 못한다.

존이 읽어주는 <로미오와 줄리엣> 에 청중들은 배를 잡고 웃는다. 사랑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기계문명에 익숙해진 사회에 저항하는 존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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