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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건강증진의 새로운 불빛

세계 건강증진의 새로운 불빛

전염병 감염률이 높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영양소 강화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려면 위생관리와 감염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
1922년 스위스의 한 의사가 영양학의 큰 수수께끼 중 하나를 풀었다. 당시 아펜첼 아우서로덴주 헤리사우 시립병원의 내과 과장이었던 한스 에겐버거는 주민들의 갑상선종(갑상선 비대증) 발병을 예방하기 위해 고심했다. 그는 주민들이 요오드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에겐버거는 스위스인의 식사 습관을 면밀히 관찰한 끝에 주민들에게 요오드화 소금(iodized salt)을 공급했다. 요오드나트륨(sodium iodide)과 요오드칼륨(potassium iodide)을 첨가한 식탁염(table salt)이다.

그 후 1년 이내에 그 지역의 갑상선종 발병률이 현저하게 줄었다. 소금 업체 유나이티드 스위스 라인 솔트 워크스는 곧바로 요오드화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또 스위스 연방 보건국은 스위스 갑상선종 협회를 설립해 전국민이 요오드화 소금만을 섭취하도록 하는 운동을 펼쳤다.

요오드화 소금은 세계 각지에서 갑상선종의 발병률을 현저히 감소시켰다.
같은 시기 미국의 5대호 지역에서는 갑상선종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미시건대 소아과학 교수 데이비드 머리 코위는 스위스의 성공 사례를 보고 “여기서도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1924년 5월 미국 소금 회사 모튼 솔트는 전국의 각 가정에 갑상선종 예방과 치료를 위한 요오드화 소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요오드화 소금은 세계 각지에서 갑상선종의 발병률을 현저히 감소시켰다. 이 요법이 실시된 지 30년도 안 돼 미시건주 일부 도시에선 학생들의 갑상선종 발병률이 66%에서 0.2%로 뚝 떨어졌다. 영국에서는 2000년대가 시작될 때쯤 갑상선종 발병률이 약 1%에서 0.041%로 떨어졌다.

요오드화 소금은 또 사산·자연유산 등 임신과 관련된 위험과 크레틴병 등 아동의 초기 발달 단계에서 나타나는 인지결함(cognitive defects) 발생률을 대폭 줄였다. 2013년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적으로 세계 소금 제품에 요오드를 첨가할 것을 권장한 지 10년 만에 120개국이 관련 프로그램을 정착시켰다.

에겐버거의 발견은 영양학의 큰 성과로 이어졌지만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이 여전히 다른 미량영양소(micronutrient, 아주 적은 양으로 작용하는 동물의 영양소) 결핍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일례로 세계 인구의 4분의1 이상이 빈혈 증세를 보이는데 어린이의 발병 위험이 가장 높다. 예방 가능한 시력상실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비타민 A 결핍증은 미취학 연령대의 어린이 약 2억5000만 명에게서 나타난다. 비타민 A 결핍증 같은 질병은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에서 나타난다. 음식이 풍부하지만 단조롭거나 음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이다.

WHO와 글로벌영양개선연대(GAIN) 등의 단체들이 오늘날 다른 미량영양소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100년 전 요오드 결핍증을 해결한 바로 그 방식(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이용하는 방식)을 이용하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런 노력을 선도하는 과학자 중 한 명인 루이스 메지아 교수(일리노이대 식품영양학)에 따르면 이 방식의 첫 단계는 어떤 식품에 영양소를 강화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식품의 소비 빈도와 양,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 식품을 소비하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아무 식품이나 선택할 수는 없다”고 메지아 교수가 말했다. 예를 들어 와사비(고추냉이) 소스나 올드베이 시즈닝(미국 동부 해안 지방에서 인기 높은 게 요리용 소스)에 영양소를 강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소스를 먹는 사람들이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양소를 강화할 식품은 빠르고 쉽게 구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라야 한다. 일례로 메지아 교수와 동료 과학자들은 2010년 중미와 파나마 지역의 설탕 제품에 비타민 A와 철분을 강화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메지아 교수가 설탕의 영양소 강화에서 거둔 성공이 어디서나 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훨씬 더 많은 문제에 부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철분 강화 성공 사례는 큰 희망을 준다. 각국이 특유의 질병과 영양소 결핍증으로 저마다 다른 영양학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지만 철분 결핍은 세계 전반에 걸친 문제다.

2010년 식품과학자들은 철분 강화 밀가루가 78개국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분석하는 회의를 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도움이 안 됐다는 결론이 나왔다. 현재 시행 중인 철분 강화 프로그램의 혜택을 본 것으로 판단된 나라는 9개국에 불과했다. 나머지 69개국은 적합하지 않은 철분 분말이나 농축액 또는 양쪽 모두를 사용했다.

이들 국가에 흔한 고유의 질병들이 프로그램 성공의 큰 걸림돌이 됐다. “요점을 말하자면 염증과 감염 확률이 높은 인구 층에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TH Zurich)의 명예교수이자 2006년 WHO 보고서 ‘미량영양소를 이용한 식품 강화의 지침(Guidelines on Food Fortification With Micronutrients)’을 공동 편집한 리처드 허렐이 말했다.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이런 질병들이 철분 강화 프로그램의 성공에 걸림돌이 된다. 인체의 자연스러운 염증반응이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영양소를 강화한 식품만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고 허렐 교수가 말했다. “위생 관리와 말라리아나 기생충 감염 등의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

메지아 교수는 비타민 A 강화도 똑같은 장애물에 부닥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동남아는 전염병의 확산 수준이 아프리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다. 하지만 그곳 주민은 단조로운 식사 탓에 미량영양소가 결핍돼 특정 영양소를 흡수하는 신체의 능력이 떨어진다.

비타민 B 복합체, 비타민 C군 같은 수용성 비타민과 달리 비타민 A는 지방이 있어야 흡수된다. 쌀을 많이 섭취하는 나라의 경우엔 간장이나 생선 액젓 같은 양념에 영양소를 강화할 때 지방이 결핍되기 쉬운 주민의 영양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메지아 교수는 “다행히도 견과류나 과일에 들어 있는 미량의 지방이 비타민 A의 장내 흡수를 도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필요한 만큼 충분히 흡수되진 못해도 전혀 흡수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마지막으로 안정성 문제가 있다. 미량영양소 강화 프로그램은 기존 식품에 적용하되 그 고유의 맛과 향, 식감, 색깔 등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새로운 식품을 식사에 포함시키는 데 필요한 정신적 도약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도록 해야 한다.

프로그램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필요치 않다. 코위 교수가 미국 소금의 요오드화 과정에서 만약 소금을 씁쓸하고 푸른 빛이 도는 가루나 분홍색 덩어리로 만들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영양소 강화는 사람들이 보편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단순한 식품을 이용해야 한다. 소금은 많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먹는 식품이다. 만약 겨자나 초콜릿처럼 복잡한 식품에 영양소를 강화한다면 부정적인 견해를 지닌 사람들에게 트집거리를 주게 된다.

비용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미량영양소 강화를 포함해 세계적 문제를 풀 많은 이론 상의 해결책들이 발목 잡히는 부분이다. 한 영양소가 특정 인구 층에 어떤 식으로 도달하게 되는지를 이해하려면 많은 현장연구와 데이터 수집, 분석,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모두 막대한 자금과 귀중한 시간이 소요되는 일로 이를 감당할 만한 나라는 극소수다. 허렐 교수는 “다행히도 영양소 강화 산업은 최근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여러 비정부기구와 학교, 민간 부문 기업 등 기부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메지아 교수는 자금 지원이 식품과학과 구현과학(implementation science, 연구 결과를 의료 정책과 사업에 통합시킬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의 발전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면 앞으로 몇 년 안에 각국이 새로운 영양소 강화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인도의 커리 분말, 필리핀과 베트남의 생선 액젓 영양소 강화가 2020년이 되기 전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몇 십 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하는 다른 세계적 공중보건 프로그램들과 비교할 때 영양소 강화는 특유의 강점이 있다. 희망이 처음 움트기 시작한 세대 내에서 수십억 명에게 건강 증진의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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