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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 이제 막 내리나

영화 산업 이제 막 내리나

소니는 영화 ‘더 인터뷰’를 온라인과 극장에 동시 공개하면서 4일만에 1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올해 아카데미상 후보작들이 시시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영화는 앞으로 점점 더 재미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고유한 예술 양식은 경제적·기술적 요소에 떠밀려 오페라나 서사시와 같은 길을 향하고 있다. 예술 양식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해 틈새 시장에 내몰리는 일은 있다. 오늘날 영화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 그에 따라 인재들이 보다 인기 있고 수익성 높은 예술로 옮겨간다. 우디 앨런이 아마존과 손잡고 드라마를 연출하기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뛰어난 인재가 영화계를 떠나면 영화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영화 업계는 이미 고질라가 산책을 즐기고 떠난 도쿄 시내 같다. 지난해 영화관을 찾은 관객 수는 20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002년 북미 극장에선 영화표가 총 15억7000만 장이 팔리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엔 3억 장가량 줄어든 12억6000만 장에 그쳤다. 매출은 2013년 대비 5% 정도 줄었다. 9년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비디오나 해외 상영 등 가외 수입도 예전처럼 든든하가 않다. 미국인은 저렴한 스트리밍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영화는 예전보다 덜 본다. 해외 관객은 ‘어벤저스’나 ‘겨울왕국’처럼 만화적인 오락 영화를 사랑하지만 ‘셀마’나 ‘보이후드’ 같은 영화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와 동시에 영화 제작비는 점점 비싸진다. 유니버셜픽처스는 자신들이 ‘언브로큰’처럼 “제작비가 적절한” 영화에 집중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그 영화의 제작비는 약 7000만 달러(약 770억 원)다. 이제는 소셜미디어로 인해 영화 평이 즉각 퍼지기 때문에 새로 개봉한 영화는 첫 주에 관객몰이에 성공해야 한다. 첫 주에 실패하면 투자도 물거품이다. 영화 업계에 중간 계층은 없다. 소수의 블록버스터와 나머지가 전부다. 상위 1%가 모두 차지한다. 헐리우드 점령 시위라도 벌여야 할까?

이런 경제적 문제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기술이 일으킨 새로운 추세다. 대규모 사이버공격이 이 세상 모든 디지털 기기를 망가뜨리지 않는 한 기술이 어디론가 가버릴 일은 없다.

우선 그동안 영화 수익의 원동력은 극장이었지만 기술이 이를 바꿔놓고 있다. 2015 국제가전박람회(CES)에서 여러 업체가 영화관 못지 않게 실감나는 대형 곡면 4K TV를 선보였다. 여기에 HD스트리밍 기술, 전자렌지 조리용 팝콘, 와인 한 잔을 더하면 당일 개봉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은 한 영화관에 갈 이유가 없어진다.

심지어 최신작이 가장 먼저 개봉한다는 극장의 이점조차도 사라질 전망이다. 소니는 영화 ‘더 인터뷰’를 온라인과 영화관을 통해 동시에 공개했다. 그 결과 4일만에 1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다른 영화사들은 그런 개봉 전략이 언제쯤 일반화될지 계산하느라 머리를 굴린다. “모두가 주목해야 한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유니버셜픽처스 미국 배급 팀장으로 50년 가까이 근무하고 은퇴한 니키 로코는 미 연합통신에 말했다.

극장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말 뉴욕의 한 컨퍼런스에서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는 왜 오늘날 출판 시장이 어려운지 설명했다. 그가 보기에 책의 경쟁자는 다른 책이 아니다. 책은 사람이 여가를 보내는 온갖 방식과 경쟁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독서를 부담스럽게 여긴다. 설령 책이 전부 무료라 해도 독서량이 크게 늘어나진 않을 것이다.

일반적인 영화 상영 시간은 90분에서 180분짜리 1회로 편성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에는 아주 긴 시간이다. 그런 포맷이 어떻게 오늘날에도 장사가 될까? 연예 산업의 상당 부분은 지구상에 가득한 70억 개 모바일 기기를 통해 소비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보다 적은 분량을 원한다. 그 기준에서 보면 영화는 너무 길다. 자본과 젊은 재능은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는 스모시(Smosh)나 리얼어노잉오렌지(RealAnnoyingOrange) 같은 단발성 프로그램에 집중된다. 스모시를 운영하는 두 남자의 가치는 거의 600만 달러에 달한다.

그럼에도 모든 문명은 캐릭터가 풍부하고 줄거리가 복잡한 스토리텔링을 필요로 한다. 지난 10년 동안 대중은 ‘소프라노스’ ‘브레이킹배드’ ‘왕좌의 게임’ 같은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장편 영상 스토리텔링이라면 영화보다 이런 형태가 우리의 시간과 기술에 잘 맞는다. 가정용 기기나 휴대용 기기로 볼 수 있는 1시간 미만 드라마는 다른 여가 활동보다 경쟁력 있다. 드라마 한 편을 보면 그 다음 편을 보게 된다. 영화엔 그런 요인이 없다. 드라마는 넷플릭스, 아마존과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한 번에 한 편을 보거나 밤새 전 편을 다 볼 수 있다.

연예 산업에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매튜 맥커니히는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를, 티아 레오니는 드라마 ‘마담 세크레터리’를 촬영했다. 넷플릭스는 아담 샌들러와 계약했고 아마존은 우디 앨런을 불러서 드라마 제작을 맡겼다. 뛰어난 재능은 갈수록 이 분야에서 일하길 원할 것이다. 돈과 명망, 예술적 자유가 모두 그곳에 있다. 무엇보다도 그곳엔 관객이 있다.

만약 맥커니히나 앨런뿐 아니라 크리스토퍼 놀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메릴 스트립 같은 인재들이 드라마 제작에 뛰어든다면 영화를 만들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최고의 감독들, 작가들, 배우들이 영화를 덜 만들면 더 많은 영화를 그 다음 사람들이 제작한다. 그러면 졸작이 늘어나고 영화 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 것이다.

우리는 전에도 이런 영화를 본적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신 기술이 미디어 소비 방식을 바꿔놓았다. 매출이 줄어들자 비용을 절감하면서 인재들을 내보냈다. 그러자 제품의 질이 떨어지고 소비자가 떠나가면서 매출은 더욱 하락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사실 나는 이 영화에 잠시 출연한 적이 있다. ‘신문’이라 불리는 영화였다.

- 번역 이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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