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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착한 아들 콤플렉스’ 극복 - 무조건 참는 게 능사 아니다

후박사의 힐링 상담 | ‘착한 아들 콤플렉스’ 극복 - 무조건 참는 게 능사 아니다

일러스트:중앙포토
그는 오남매의 맏아들이다. 육십을 바라보는 교수다. 수 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어머니는 서울 근교에 홀로 지내신다. 아내와 같이 격주에 한 번 방문하는데, 어머니의 불평과 잔소리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정신병리가 의심될 정도다. 고 1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머니는 가장이 됐다. 그는 믿음직한 맏아들로 어머니를 잘 도왔고, 그녀는 아들을 남편 대신 의지했다. 힘들었던 시기를 엄청난 집념과 헌신으로 극복해 집안을 일으킨 어머니. 이제 그녀는 영웅이 되어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과도한 간섭과 지나친 요구를 한다. 집안 대소사를 일일이 지시하고, 중요한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강변한다. 한 번 모이면 반복되는 과거 이야기로 독점하고, 한 번 전화하면 한 시간 넘게 통화한다. 그런 어머니를 피하는 동생들에 대해서도 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다. 그리고 뜻대로 안 될 때마다 몸져눕는다.

그도 어머니에게 문제가 많다고 느꼈다. 세월이 지나면 나아지려니 했다. 그런데 오히려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녀의 태도가 인생을 더 외롭고 불행하게 만든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자식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살아온 어머니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는 게 쉽지 않다. 특히 큰 소리를 내고 아프다고 쓰러질 때는 속수무책이다. 그러다 보니 그녀를 만날 때마다 잦은 다툼이 발생한다. 우울한 감정과 번민, 죄책감에 휩싸이게 된다. 항상 가슴 한 편이 무겁고 시리다.
 어머니가 평생 헌신했지만…
그는 착한 아들이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착하게 살기를 바란다. 사회는 항상 구성원이 착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 한다. 세상은 착한 사람이 있어야 굴러간다. 선(善)을 권장하고 악(惡)을 징벌하는 것은 미덕이다. 그는 좋은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도와 동생들을 건사하고 무너진 집안을 일으켰다. 그는 나쁜 아들이 아니다. 간섭과 요구가 과도한 어머니를 내치지 못하고 있다. 착하다는 것이 뭔가 잘못된 것일까? 그는 매일 고통 받고 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게 있다. 어릴 때 말 잘 들으면 착한 아이가 되고, 말 안 들으면 나쁜 아이가 된다는 말을 듣는다. 엄격한 가정인 경우 이러한 규범은 더욱 강조 된다.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상대의 말에 집중하고, 어떤 요구에도 순종적으로 행동한다. 자신이 착하게 행동 하는지, 상대가 착하게 보는지 계속 눈치를 본다. 파괴적 비판 가정인 경우 더욱 심각하다.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는 철저히 억압된다.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신념이 고착된다. 성인이 되면 주위의 기대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으려 한다. 일탈을 용납하지 않고 정형화된 생활을 한다. 자주 우울한 감정에 시달리고, 심하면 강박증이나 공황장애로 발전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왕처럼 군림했다. 모든 부모는 아이의 왕이다. 아이는 부모의 나쁜 것까지도 동일시한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왕이 아니다. 은퇴 이후에는 거꾸로 자식을 섬겨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아직도 군림하려 한다. 지속적인 간섭과 요구로 자식을 통제하려 한다. 과욕이다! 어머니는 훌륭한 리더였다. 그녀를 중심으로 온 가족은 힘든 시기를 잘 극복했다.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를 지금도 존경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뭔가를 하려 한다. 자기가 해야 되는 줄로 안다. 어리석다!

이카루스 패러독스란 게 있다. 기업의 과거 성공이 역설적으로 현재 기반을 무너뜨리는 현상이다.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천재적인 발명가의 아들이다. 둘은 왕의 미움을 받고 미로에 갇혔다. 아버지는 초로 깃털을 붙여 두 쌍의 날개를 만들었다. 둘은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는 충고를 무시하고 태양을 향해 높이 날아올랐다. 결국 초가 녹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이카루스는 과욕과 어리석음의 상징으로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그는 오랜 기간 참았다.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은 미덕이다. 어떤 경우라도 끝까지 참으면 무슨 일이든 못 이루겠는가? 온 가족은 인내를 통해 성공 했다. 참는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도 참고 있다. 어머니인데,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지 않는가? 내면에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언제 폭발하지 모른다. 위험하다! 그는 참고 있는 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척하는 것(as if)’은 힘에 눌려 아부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공격자를 동일시할 수 있다. 미운 사람과 똑같이 되는 것이다. 척하는 것은 무조건 참는 것보다는 낫다. 폭발하지는 않는다. 덜 위험하다! 하지만 내면에 참됨이 사라지고 있다.

착한 사람이 왜 고통을 받는 걸까? 착한 사람은 제대로 참기 힘들다. 착함이 내면의 기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두려움이 꿈틀거린다. 착한 사람은 참된 사람으로 나아가야 한다. 참을 지닌 자만이 올바로 참을 수 있다. 참이나 참음은 모두 존재의 지긋함에서 나온다. 지긋함의 반대는 거짓이다. 척하는 것은 거짓이다.
 주도권 쥐고 상대 설득해야
그에게 가장 탁월한 처방은 무엇일까? 첫째, 더 자주 다투어야 한다. 현실을 직면하는 것이다. 더 불행하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머니의 입장을 공감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그녀를 동일시하면 관계가 엉망이 될 수 있다. 오히려 변증법적 대화가 도움이 된다. 반대되는 주장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것이다. 일상대화에서 변증법적인 접근은 서로를 피곤하게 한다. 그렇지만이 경우에는 탁월한 효험을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합의가 될 때까지 일관되게 나아가야 한다. 이카루스의 추락은 막아야 한다.

둘째, 맏아들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어머니는 대나무처럼 강직하다. 너무 강직하면 부러지게 된다. 어머니의 태도는 망상에 가깝다. 망상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혼자 힘으로 싸우기엔 벅차다. 자식들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 한 소리를 내야 한다. 반복해서 시도해야 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과거에는 옳았지만 현재는 잘못됐다는 점을 강하게 설득해야 한다. 그녀의 태도가 바뀌도록 해야 한다.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는 막아야 한다.

셋째, 정밀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 어쩌면 뇌 문제일 수 있다. 화병이 있다면 감정통제가 어려울 것이다. 초기 치매가 있다면 성격이 더욱 고집스러워질 것이다. 약물 치료를 하게 되면 훨씬 부드러워질 수 있다. 보통 부모들은 자식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하지만 제삼자의 조언까지 무시하지는 않는다. 현명한 닥터의 한 마디가 어머니의 태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도 있다. 이제, 모자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어머니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생래적인 호젓함으로 성큼 다가서야 한다. 그는 우울함에서 벗어나 두려움이 없는 참된 지긋함으로 한 발 나아가야 한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 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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