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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테크’로 훈풍 부는 미술 경매 - 단색화, 해외 작가, 중저가 작품 인기

‘아트테크’로 훈풍 부는 미술 경매 - 단색화, 해외 작가, 중저가 작품 인기

1월 28일 서울옥션 강남점에서 열린 올해 첫 미술품 경매에서 한 참여자가 응찰표를 들어올리고 있다.
미술품을 감상만 하던 시대는 갔다. 미술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투자상품으로 미술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늘고 있다. 미술품의 가치가 가격으로 입증되고, 실질적인 소비로 이어지며 미술품에 투자하는 사람도 늘었다. 부동산이나 주식 위주의 투자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른바 ‘아트테크(아트+재테크)’를 실현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며 얼어붙은 미술품 경매시장도 때아닌 활기를 띠고 있다.

1월 28일 서울옥션 강남점에서 열린 올해 첫 경매 ‘2015 마이 퍼스트 컬렉션(My first collection)’에는 경매에 참여하기 위한 인파로 북적였다. 경매사 측에서 마련한 200여석의 자리가 부족해 경매장 뒤편에 서서 응찰표를 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참가자가 두 배 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경매에 대한 관심은 곧 결과로 나타났다. 156개 작품이 출품된 이번 경매에서는 낙찰률 77%(120건), 낙찰총액 13억60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 이어 단색화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박서보·윤형근·정상화 등 한국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경합 끝에 낙찰되며 그 인기를 입증했다. 이러한 열기는 정창섭·권영우·이동엽 등으로 이어지며 단색화 작가군이 확대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번 경매에 출품된 단색화 작품은 17점 모두 낙찰됐고, 가장 경합이 치열했던 작품 역시 단색화인 박서보의 ‘묘법 No.25-75’이었다. 시작가 1300만원부터 시작해 100만원씩 호가, 시작가의 4배가 넘는 5500만원에 낙찰됐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술품 경매에는 1만3822점이 출품돼 8828점이 낙찰돼 63.9%의 낙찰율을 보였다. 낙찰총액은 970억7300만원으로 2013년(720억700만원)보다 34.8% 상승했다. 미술 경매시장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2008년(1155억원) 이후 가장 많은 액수를 기록했다. 이는 서울옥션을 비롯해 K옥션, 아이옥션 등 국내 미술품 경매사 8곳에서 벌인 85회의 경매 실적을 합한 결과다. 국내 미술 경매시장은 지난 몇 년 간 세계 경제위기의 여파로 인해 암흑기를 맞았다. 여기에는 일부 정치인의 불법 비자금 조성 사건에 연루되며 생긴 미술품 경매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한몫했다.
 전두환 일가 미술품 경매로 침체 분위기 반전
아이러니하게도 미술 경매시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킨 계기는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로부터 압류한 미술품 경매였다. 전 전 대통령 일가에서 나온 미술작품 64점이 경매시장에 나오며 미술품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3월까지 6차례에 걸쳐 진행된 경매에서 이대원의 ‘농원’이 6억6000만원에 낙찰돼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전 작품의 완판(완전 판매) 행진이 이어졌다. 당초 150만~400만원으로 추정된 ‘충효명예 인내군자도’ ‘천상운집’ ‘휘호’ 등 전 전 대통령의 글씨 3점은 모두 추정가를 훌쩍 뛰어넘은 500만원대에 팔렸다. 압류된 미술품을 판매한 금액은 총 72억8194만원. 이 돈은 경매 수수료를 제외하고 전액 국고로 환수됐다.

미술 업계 관계자는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컬렉션이 경매시장에 나온 과정은 좋지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일반인들의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국고 환수를 목적으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미술 경매시장에도 온기를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첫 경매를 지켜본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 낙찰총액이 금융위기 전인 1000억원에 육박하는 등 그동안 위축됐던 미술품 경매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낙찰총액 기준으로 작가를 살펴보면 김환기가 100억7700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고, 이우환(87억 6300만원), 김창열(34억5800만원), 오치균(29억2700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쿠사마야요이(일본), 로이 리히텐슈타인(미국)이 1, 2위를 차지했던 2013년 결산과 비교했을 때 국내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국내 유명 작가들의 일부 작품이 초고가에 거래된 가운데, 해외 작가들의 에디션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으면서도 안전한 투자처로 꼽혀 인기를 끈다. ‘마이 퍼스트 컬렉션’에 출품된 16점의 해외 작가 작품 가운데 13점이 낙찰됐다. 최고가는 7000만원에 낙찰된 앤디 워홀의 ‘달러사인’이었고,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판화는 3200만원, 키스 해링의 판화 역시 1300만원에 낙찰됐다.

미술품 경매가 일부 특권층이 아닌 일반 대중에 다가간 것도 고무적이다. 미술품 경매 업체들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중저가 미술품 위주의 경매와 온라인 경매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옥션의 ‘마이 퍼스트 컬렉션’ 역시 이름 그대로 경매에 처음 참여하는 초보 컬렉터를 대상으로 한 경매였다. 이날 출품된 156점 중 85점이 500만원 안팎의 중저가 미술품이었다. 현장에서는 어린 자녀와 함께 경매에 참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자녀를 데려온 김연주(가명·41)씨는 “아이와 미술 전시를 보러 자주 다니는데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 참여했다”며 “이번이 처음이라 일단 분위기를 보러 왔지만 생각보다 금액대가 크지 않아 다음번엔 낙찰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경매도 대중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온라인 경매는 회원가입만 하면 응찰 자격이 주어지고, 현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보 컬렉터나 젊은층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이 출품돼 선택의 폭도 다양하다. 세계 미술 경매시장을 이끄는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지난해 초부터 온라인 경매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옥션과 K옥션이 온라인 경매를 진행한다. 2006년부터 온라인 경매를 시작한 K옥션은 지난해 28억5443만원의 실적을 올리며 자체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온라인 경매를 시작한 서울옥션 역시 22억7421만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기존 오프라인 경매가 구매력이 큰 50~60대에 한정된 반면 중저가 작품이 많은 온라인 경매에는 20~40대의 젊은 컬렉터의 참여가 높다는 게 업계 측의 설명이다.
 ‘한국형 아트프라이스’ 구축 예정
정부도 미술품 저변 확대를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9월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을 내놓으며 오는 2018년까지 미술시장을 현재보다 60% 커진 6300억원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미술품 경매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온라인 경매를 활성화하기 위해 ‘한국형 아트프라이스’를 구축할 예정이다. 온라인 시스템에 미술품 거래정보, 미술시장 경향 분석, 작가 분석 등 다양한 콘텐트를 구비해 국어·영어·중국어 등 3개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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