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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내 몸에 맞는 옷 찾아준다

데이터가 내 몸에 맞는 옷 찾아준다

온라인에서 산 구두가 발에 맞지 않는다. 분명히 ‘내 사이즈’로 주문했는데 말이다. 하긴 요즘은 신발과 의류 업체마다 사이즈 표시 기준이 제 각각이라 ‘내 사이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각기 제 나름의 음계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류 사이즈 표기에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옷이나 신발을 구입하는 개개인을 짜증나게 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사회적으로 엄청난 낭비일 뿐 아니라 온라인 상업의 세계적 확산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다. 그러나 의류업계와 소매업계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데이터를 이용해 일관성 없는 사이즈 표기에 따르는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데이터 기반 체제는 각 개인과 그들이 온라인에서 구입하려는 의류의 정확한 사이즈를 골라 연결시켜줄 만큼 발전했다. 그런 시스템은 Zara.com에서 고른 스키니진이 내 몸에 잘 맞을지 아니면 다리통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작을지 구분할 수 있다.

상황이 조금만 개선돼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의류업계의 추정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구매되는 의류 중 약 40%가 반품되며 그중 약 60%는 사이즈 문제가 원인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생각해 보자. 소비자들이 반품할 의류를 다시 포장하고 발송하는 데 드는 시간과 배송비, 소매업체들이 반품된 물품을 처리하는 데 드는 노동 비용 등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불필요한 배달 트럭과 화물기 운행으로 발생하는 추가적인 공해와 교통 문제는 또 어떤가? 일관성 없는 사이즈 표기의 최고 수혜자는 UPS와 페더럴 익스프레스 등 배송업체들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그들 업체는 배송 물량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에서 구매되는 의류 총량 중 온라인 구매량은 약 7%에 불과하다. 반면 책의 경우는 60% 이상이 온라인으로 구매된다.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날까? 옷이나 신발을 살 때는 상점에 가서 착용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사이즈와 스타일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고른 옷이나 신발이 자신에게 어울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세계 의류업체들이 제품 사이즈 별로 정확한 치수를 합의하기만 하면 이 모든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을까? 하지만 과거 역사로 미루어 볼 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920년대 이전엔 사이즈가 중요하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들이 옷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입거나 동네 상점에서 맞춰 입었기 때문이다. 그 후 철도와 대량생산 제조 방식의 출현으로 기성복 시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때부터 표준 사이즈의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그런 건 존재한 적이 없다. 모든 의류업체가 제품의 사이즈 표기에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
 일관성 없는 사이즈 표기 전략
지난 80여 년 동안 미국 정부는 두 차례 표준 사이즈의 책정을 시도했다. 수천 명의 신체 치수를 측정한 뒤 대표적인 치수에 관한 결론을 도출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측정 대상 인물과 신체 부위를 잘못 선택했다(예를 들어 공군에 소속된 여성의 신체 치수를 보통 미국 여성의 치수로 볼 수 있겠는가?). 한편 의류업체들은 사이즈를 경쟁 전략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갈수록 짙어졌다.

캘빈 클라인은 갭의 고객들과는 다른 체형의 소비자들을 목표로 삼았다. 갭이 교외의 사커맘(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엄마)들에게 적합한 사이즈의 진을 만든 반면 캘빈은 브룩 쉴즈의 엉덩이에 꽉 낄 만한 사이즈를 생산했다. 한편 미국인은 빅 사이즈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으면서 갈수록 뚱뚱해졌다. 이런 경향은 배너티 사이징(vanity sizing, 옷 치수를 실제보다 작게 표기해 날씬해진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방법)으로 이어졌다. 2015년 미국의 사이즈 6 원피스의 실제 치수는 1960년대의 사이즈 12와 맞먹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이즈 표기는 여전히 의류업체 브랜드 정체성의 일부다. 각 업체들은 사이즈를 표준화하기는커녕 갈수록 차이 나는 사이즈를 만들어내고 있다.

의류업체들의 이런 일관성 없는 사이즈 표기 전략은 온라인으로 의류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의 욕구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상당수의 신기술 업체들이 이것을 기회로 여겨 문제 해결에 뛰어들었다. 매사추세츠주 워번에 있는 트루 핏(True Fit)은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업체 중 하나다. 사용자가 약 500만 명에 이르며 최근 추가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트루 핏의 공동 창업자 롬니 에번스는 이 회사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판도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판도라는 각 노래의 특징에 관한 데이터를 취합해 모아두는 방대한 시스템[뮤직 지놈 프로젝트(Music Genome Project)]을 만들었다. 신규 사용자가 판도라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에 관한 간단한 정보를 주면 판도라는 각 사용자에게 적합한 음악을 찾아준다. 사용자가 판도라와 이런 식의 교류를 많이 하면 할수록 판도라는 그 사용자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돼 그 사람이 정말 좋아할 만한 음악을 찾아줄 수 있게 된다.

트루 핏은 의류 분야에 이와 흡사한 서비스 방식을 도입했다. 이 회사는 각 의류업체의 생산 계획과 제품의 특성에 관한 데이터를 취합해 모아둔다. 일종의 클로딩 지놈(Clothing Genome)이랄까? 에번스에 따르면 지금까지 1500개 업체가 트루 핏에 자료를 제공했다. “그게 우리의 기반”이라고 그는 말했다.

트루 핏은 데이터를 확보한 뒤 메이시, 노드스트롬 등 온라인 소매업체들과 제휴했다. 소비자는 그들 사이트에서 쇼핑을 할 때 트루 핏에 등록할 수 있다. 자신의 신체 치수와 좋아하는 브랜드 등에 관한 몇 가지 질문에 답하면 트루 핏은 그 사이트에서 적합한 스타일과 사이즈를 추천한다. 판도라와 마찬가지로 사용자가 트루 핏과 더 많이 교류할수록 트루 핏은 그 사용자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돼 더 적합한 스타일과 사이즈를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가 트루 핏의 제휴 사이트 어느 곳에서 쇼핑을 해도 트루 핏에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맞는 사이즈와 스타일의 추천이 가능해진다.
 트루 핏 제휴 사이트 반품률 10~50% 줄어
사이즈 불만으로 반품되는 의류는 추가적인 배송 비용과 교통혼잡, 공해 등의 문제를 낳는다. / 사진I22.COM
이 데이터 기반 체제들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꽤 효과적으로 보인다. 트루 핏은 자사 제휴 사이트들의 반품률이 10~50% 줄었고 수입이 평균 7.6% 늘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신기술 업체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각기 다른 데이터 기반 접근법을 이용한다. 핏츠.미(Fits.me)는 지난해 12월 또 다른 사이즈 관련 기술 업체 클로즈 홀스(Clothes Horse)를 인수했다. 이들 업체는 ‘가상 시착실(virtual fitting room)’을 운영한다. 고객은 추천 받은 아이템을 자신의 아바타에 입혀 보고 어울리는지 판단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사업상의 약속 자리에 아바타를 대신 내보낼 수 있다면 이 방식은 기막힌 해결책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1920년대 이전처럼 사이즈가 문제되지 않는 시점으로 되돌아갈 듯하다. 의류업체들이 계속해서 사이즈 표기가 천차만별인 제품들을 만들어내더라도 트루 핏 같은 시스템 안에 그들 사이즈에 관한 데이터가 들어 있는 한 소비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소비자의 신체 치수와 선호하는 스타일을 그 사람이 사고 싶은 옷이나 신발과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오프라인 상점들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데이터가 정확해질수록 소비자들은 시착실에서 옷을 입어볼 필요가 없어진다. 상점에 가서 원하는 제품을 휴대전화 앱으로 스캔하면 어떤 사이즈가 자신에게 맞는지 앱이 말해준다. 또 그 옷을 입었을 때 멋지게 보일지 아니면 방금 햄 샌드위치 25개를 먹어 치운 듯 뚱뚱해 보일지도 알려준다.

사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사이즈 문제 해결책의 가장 큰 사회적 영향은 데이터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적절한 답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 바지 입으면 뚱뚱해 보일까요?”라는 아내의 질문에 남편들은 “앱에서 확인해 봅시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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