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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파시스트 국가로 치닫는다”

“러시아는 파시스트 국가로 치닫는다”

피살된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를 기리는 시위행진이 지난 3월 1일 모스크바 크렘린 부근에서 열렸다. 현수막에는 ‘영웅은 죽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폭력배로 구성된 민병대, 나치 괴벨스식 선전 선동, 군비 증강. 지도자 한 명에 일당 체제. 러시아는 파시스트 국가가 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보리스 넴초프는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피살되기 몇 시간 전 뉴스위크 폴스카(폴란드판)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행진에서 연설하기로 예정된 날 바로 이틀 전이었다.

누가 그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는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러시아 언론과 크렘린 지도자들이 주도한 마녀 사냥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그 2주 전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푸틴을 지지하는 ‘반마이단’ 시위에서 민병대 군복을 입은 폭력배들은 러시아의 반정부 시위를 피로 끝장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이 먼저 넴초프부터 없애기로 한 게 아닐까? 다음은 넴초프의 마지막 인터뷰를 발췌 요약한 것이다.



러시아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거리로 뛰쳐나가지만 정권은 여전히 굳건하다. 러시아가 변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우리 모두 물에 가라앉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책 때문에 막강한 잠재력을 가진 러시아호가 침몰하고 있다. 막강했던 러시아 경제가 붕괴되고 있다. 과거 그 보유고는 5000억 달러(약 550조원)나 됐다. 러시아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는 장족의 발전을 이룰 기회를 가졌었다. 그 어떤 러시아 지도자도 그런 유리한 조건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불황에 허덕인다. 우리가 가진 게 뭔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 루블화 가치 하락, 자본 도피다. 이미 1500억 달러가 사라졌다.

미국과 유럽은 전진하는데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물가를 통제하고 국영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해 임원들만 배불리는 극단적인 조치만 내놓을 뿐이다. 최악은 지금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하고 서방과 무의미한 대치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 이 정신 나간 정책의 악영향을 실감한다.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위를 벌인다. 러시아의 집단 자살을 막으려는 시위다. 야권이 부추기는 게 아니라 러시아인 전체가 시위를 지지한다.



러시아인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모스크바에서 수만 명이 시위를 벌인다고 해도 푸틴을 지지하는 나머지 80%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인정한다. 물론 러시아인 전체를 일깨우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인은 이 터무니없는 정치가 어디로 이어질지 잘 안다. 만연한 부패와 정부의 무능함을 피부로 느낀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푸틴을 믿는다. 지난 몇 년 동안 푸틴이 한 가지만은 아주 잘했기 때문이다. 국민 세뇌 말이다. 그는 러시아 국민에게 서방에 대해 열등감을 갖도록 하는 바이러스를 주입했다. 러시아가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군사력 사용과 폭력, 침략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세뇌시켰다.

또 푸틴은 러시아 국민이 이방인을 혐오하도록 세뇌했다. 그는 옛 소련의 질서를 복원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했다. 세계가 러시아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에 러시아의 위상이 달려 있다고 믿도록 만들었다. 그는 나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동원한 방식을 사용해 국민을 세뇌했다.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피를 흘리도록 한 책임은 푸틴만이 아니라 콘스탄틴 에른스트(국영방송 채널원 사장)이나 드미트리 키셀료프(국영 통신사 로시야 세고드냐 사장)에게도 있다. 그들은 괴벨스의 원칙을 답습한다. 국민 정서를 조작하는 것이다. 더 새빨간 거짓말일수록 나으며 거짓말은 계속 반복돼야 한다는 게 그 원칙이다.

이런 선전은 순박하고 단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질문을 하거나 미묘한 의미 차이를 파악할 여지도 없다. 불행하게도 그런 전술이 먹혀든다. 이런 히스테리가 전례 없는 수준에 도달하면서 푸틴의 지지도가 그토록 높아졌다. 따라서 우리는 러시아 국민에게 대안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빨리 보여줘야 한다. 푸틴의 정책이 러시아의 몰락과 집단 자살로 이어진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왜 시간이 없나?


러시아가 급속히 파시스트 국가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나치 독일식 선전이 이뤄지고 있다. 얼마 전 ‘반마이단’으로 불리는 사이비 시민 시위대가 모스크바의 우크라이나 마이단 혁명 1주년 기념행사를 망쳐놓았다. 용병과 폭력배 수만 명이 모스크바로 동원됐다. 그들은 우리를 겁주려 했다. 푸틴의 초상화를 내세우며 반대자를 무찌르고 심지어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의 히틀러처럼 말이다.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파시즘을 경고하지 않았는가?


‘미래의 파시스트는 열렬한 반파시스트’라고 누군가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파시즘이라고? 말도 안된다. 러시아를 보라. 지도자 숭배를 바탕으로 세워진 하나의 당이 독주하지 않는가? 물론 아무런 힘이 없는 위성 정당들도 있지만 사실상 일당 체제다. 몇 년마다 선거를 하지만 한심한 시늉일 뿐이다. 광신적 애국주의가 판치며 외교정책도 공격적이다. 제국주의 콤플렉스가 심하고, 사회 군사화가 진행 중이다.

그런 게 파시스트 정권의 특징이 아니고 뭔가? 물론 푸틴 자신은 파시스트가 아니다. 과거 옛 소련의 일부 요소를 가져와 다른 것들과 냉소적으로 뒤섞을 뿐이다. 거기서 탄생한 것이 현대판 잡종 파시즘이다. 우크라이나 내전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진행 중이고 러시아군이 그곳에 있지만 크렘린은 줄기차게 그런 사실을 부인한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 있는 탱크와 병력이 러시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파시즘도 그런 식이다. 분명히 러시아에 존재하지만 당국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파시즘 부상을 경고한다. 이런 광기를 중단시키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참담한 상황을 맞게 된다.

러시아 부총리를 지낸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의 생전 모습(2014년 3월 15일 모스크바에서 푸틴의 우크라이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연설하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입장을 수시로 바꾸지만 파시스트식의 아이디어를 선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기존 세계질서를 경멸한다. 그는 공개적으로 서방이 우리보다 더 나쁘며, 사악하고, 허약하다고 말한다. 그는 우크라이나인이 국가를 세울 능력이 없으며 자신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세계질서 재구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자국의 영향권을 주장할 권리를 부르짖고, 해외의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강조한다. 크렘린은 해외의 러시아계 주민과 러시아어, 문화적인 문제를 이용해 이웃나라의 분열을 조장한다. 가장 끔찍한 것은 크렘린을 움직이는 실력자들이 이 거대한 나라를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을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과거 가장 독재적인 정권의 슬로건과 아이디어를 가져와 현행 세계질서에 통합시켰다. 그 전부를 뒤죽박죽 섞어 놓고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국민 다수는 정부가 질서와 안정을 제공한다고 느낀다. 지도자가 있고 체제가 잡혀 있기 때문이다. 반체제 쪽은 어떤가? 누가 지도자인가? 넴초프 당신인가 지금 감옥에 있는 알렉세이 나발니인가?


나는 통합 민주 야권의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우리 중에는 대담하고 카리스마 강한 인물이 있다. 각자 견해가 다르고 정치적 대안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변화와 민주주의 복구, 정신 나간 권력자를 축출하려는 염원을 공유한다. 때로는 정부가 불도저처럼 우리를 밀어버린다. 알렉세이 나발니는 모스크바 전철 안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다가 체포돼 수감됐다. 시위에 참여할 수 없게 하려는 의도다. 사실 우크라이나 마이단 혁명에서도 단일 지도자가 없었고, 지도자로 간주된 인사들은 늘 서로 다퉜다. 개성 강한 지도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와 러시아의 부흥이다.



야권은 언론 매체를 갖고 있지 않아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거리로 뛰쳐나가 시위를 벌이지만 러시아 적대세력의 제5열로 비쳐지며 미국의 꼭두각시나 사회 부적응자로 간주된다. 푸틴은 러시아에선 마이단 같은 혁명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어떻게 극복할 생각인가?


우리는 현실주의자다. 정부가 오래 전 우리를 적으로 규정한 건 사실이다. 따라서 많은 러시아인은 우리를 적이며 반역자로 간주한다. 모스크바에서 마이단 혁명을 시도할 생각은 전혀 없다. 푸틴은 야누코비치(우크라이나에서 마이단 혁명으로 쫓겨난 대통령)가 아니다. 푸틴은 수년 동안 러시아 국민이 반항할 경우에 대비해 철저히 준비했다. 보안기관을 강화했고, 반마이단 시위대 같은 민병대도 조직했다. 푸틴은 대규모 시위를 쉽게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저항할 생각이다.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인과 다르다. 러시아인은 그런 한계 상황에서 아직 한참 멀리 있는 듯한데.


그래서 먼저 우리는 이미 생각을 고쳐먹은 사람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행진시위는 우리가 주변부가 아니라 실질적인 세력이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요즘 러시아에서 가두시위를 벌이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편안함을 추구하거나 두려운 나머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용감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더 중요하다. 이제 시작일 따름이다. 잘하면 우리 중 누가 모스크바 시정부에 선출될 수 있을지 모른다. 수도 모스크바에는 열린 마음을 갖고 당국에 저항하는 시민이 더 많다. 시의회에 몇 명이 진출하더라도 성공이다. 단일화된 조직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건 아주 겸허한 목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경제위기가 러시아 민주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러시아인 대다수가 푸틴을 지지하는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그가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방에서 보기와 달리 러시아인은 바보가 아니다. 생활수준이 갑자기 나아지지 않았다면 은퇴자, 노동자, 공무원이 제국주의 선전을 믿지 않고 푸틴의 말에 속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번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따져보지 않았다. 높은 유가 덕분에 생활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그들은 그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석유가 도둑 맞지 않고 잘 관리되고 적절히 투자된다면 삶이 더 나을 것이라고는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연금이나 급여로 생계 꾸리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도 깨어날 것이다.



그들이 현실을 알면 서방이 러시아 경제를 망친다고 더는 비난하지 않게 될까?


지금 그들은 서방의 제재를 탓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 러시아 경제가 추락한 진짜 이유가 정부의 설명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서방은 합리적이고 상당히 부드럽게 대응했다. 서방은 당연히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개입을 억제해야 한다. 러시아 위기는 서방의 제재가 아니라 푸틴의 무모한 행동 때문에 발생했다. 그가 독자적 제재로 서방에 맞선 게 패착이었다.

그 때문에 러시아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됐다. 게다가 푸틴은 위대한 조국 러시아가 생필품마저 충분히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푸틴 자신이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사실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절대 우크라이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서방의 추가 제재를 무릅쓰고 군과 경찰, 보안기관 강화에 수십억 달러를 더 쓸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막는데도 돈을 쏟아 부을 것이다. 물가 상승이 국민의 분노를 산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제위기가 히틀러의 부상으로 이어졌는데 푸틴은 이미 권력자 아닌가.


그가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게 현실이 되려면 대안적 비전이 필요하다. 우리의 비전은 민주적이고 열린 러시아다. 자국민과 이웃나라에 마적 같은 수단을 쓰지 않는 나라를 원한다. 하지만 러시아 파시즘은 혼합식이다. 그런 모델은 아주 끈질기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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