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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향해 칼 겨누는 IS

이탈리아 향해 칼 겨누는 IS

파리의 풍자 잡지사 샤를리 엡도가 테러 공격을 당한 직후 로마 성베드로 광장 외곽에서 이탈리아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 8월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교황청을 위협했을 때 이탈리아는 어깨를 으쓱하기만 했다. IS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표적으로 한다는 이탈리아 언론의 보도가 나왔지만 교황청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교황은 보란 듯이 바티칸 경호 책임을 맡은 스위스 근위대장을 해임하고[“(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게) 너무 딱딱하고 엄격하다”는 것이 해임 이유로 알려졌다] 고집스럽게 방탄 전용차 사용을 거부하며 유럽 대륙 이곳저곳을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바티칸은 특별히 우려하지 않는다”고 가톨릭통신사에 말했다. 이탈리아 당국도 무관심한 듯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이탈리아 정부는 IS의 위협을 이전보다 훨씬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10월 IS가 발행하는 잡지 다비크(Dabiq)는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IS의 검은 깃발이 휘날리는 합성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실패한 십자군운동(The Failed Crusade)’이라는 제목의 관련 기사는 가톨릭과의 전쟁을 촉구했다.

지난 2월 초 IS는 리비아 해변에서 이집트 콥트교(그리스도교 분파) 신자 21명을 참수하는 모습을 담은 끔찍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참수 장소인 리비아의 북부 해안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 남부와 마주보고 있다. 그 비디오에서 한 IS 조직원은 이탈리아를 향해 칼을 겨누며 “우리는 알라의 허락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약속에 따라 로마를 정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2월 말에는 IS 관련 트위터 계정에서 동성애자들을 곧 ‘이탈리아의 ‘피자의 사탑’(Leaning tower of Pizza)’에 던져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탈리아의 명물인 ‘피사의 사탑’은 ‘leaning tower of Pisa’다. ‘피사’를 고의적으로 ‘피자’로 바꾼 것인지 철자를 잘 몰라 실수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이탈리아 당국은 황급히 그런 위협이 현실화될 것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파리의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 공격이 발생한 직후 이탈리아와 알바니아는 합동 테러 대응단을 설립해 경찰을 훈련하고 테러 용의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또 이탈리아 보안기관은 전국에 특수 요원 500명을 배치했고 앞으로 4800명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2월 11일 테러리스트 처벌에 관한 새로운 포고령을 통과시켰다. 지하디스트(jihadist, 이슬람 성전 전사)를 모집하는 테러리스트에게 최고 6년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고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여권을 압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안보전문가와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IS가 이미 자국에 침투했을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성전에 참여한 지하디스트 수십 명이 이탈리아로 귀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뿐 아니라 리비아에서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 들어가는 난민 수천 명 사이에 테러리스트들이 숨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일부는 리비아인이고 나머지는 이라크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리비라를 통해 탈출하려는 사람들이다).

리비아는 2011년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이래 군벌들이 권력 투쟁을 벌이면서 혼돈에 빠졌다. 군벌 중 일부는 IS와 연계돼 있다. 파올로 겐틸로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최근 의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리비아는 영토가 넓고 법질서가 무너진 상태다. 따라서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과도기에 있는 이웃 아프리카 국가들의 안정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대처할 시간은 한정돼 있고 머지않아 그럴 기회마저 사라질 위험이 크다.”
 실업·부패가 테러보다 더 무서워
시칠리섬 부근에서 이탈리아 해안경비대에 구조된 아프리카 난민들. 테러리스트가 그중에 숨어 있을 가능성에 이탈리아 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난 4년 동안 리비아 내전과 그에 따른 난민 탈출로 유럽연합(EU), 특히 이탈리아가 몸살을 앓았다. 이탈리아 식민지였던 리비아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에서 약 175㎞, 시칠리아 남쪽 해안에서 약 483㎞ 떨어져 있다. 아프리카에서 배로 그 섬들에 도착하는 불법 이주자가 매일 500명에 이른다. 일부는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싶다고 말하고 나머지는 생명의 위협을 피해 탈출한 난민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수용인원을 초과해서 탄 작은 배 여러 척이 지중해에서 침몰해 수천명이 사망했다.

그동안 이탈리아 해군은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 우리 바다라는 뜻)’으로 이름 붙인 해상 난민 구조작업으로 그들을 위험한 배에서 구조해 이탈리아 내부의 수용소로 안전하게 이동시켰다. 지난해 그들이 구조한 난민은 17만 명에 이르렀다. 2013년보다 66%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이탈리아는 ‘마레 노스트룸’을 중단했다. 한 달에 약 1000만 달러(약 110억원)라는 막대한 비용과 난민의 과잉 유입을 우려한 결과다. 또 이탈리아는 EU가 구조작업에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EU는 ‘트리톤 작전(Operation Triton)’으로 대응했다. 난민 구조나 난민 유입 차단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EU 국경을 지키는 것이 그 작전의 목적이다. 동원되는 선박의 크기와 수도 ‘마레 노스트룸’보다 훨씬 작다. ‘마레 노스트룸’이 중단된 이후 난민 수백 명이 이탈리아로 건너가려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 난민 사이에 숨은 테러리스트나 IS 동조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기 어렵다. 사실 이탈리아는 IS의 주요 적대국이 아니다(IS는 이탈리아를 프랑스 같은 다른 유럽국을 공격하기 위한 교두보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리비아 동영상에서 IS 조직원들이 말했듯이 이탈리아는 ‘십자가의 피로 서명된 국가(nation signed with the blood of the cross)’로서 대테러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인과 그곳의 서방인을 살해하려는 지하디스트의 광기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그런 테러 위협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경찰을 거리에 많이 배치했다(네덜란드 축구 훌리건들의 로마 폭동도 거기에 한몫했다). 바티칸, 콜로세움, 성베드로 성당이 있는 로마만큼 경찰이 많이 눈에 띄는 곳은 없는 듯하다. 최근 로마를 걸으면서 거의 모든 주요 명소에 경찰이 배치된 것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인은 IS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하다. 얼마 전 트위터에 오른 ‘피자 사탑’ 위협을 두고 일부 이탈리아 네티즌은 테러리스트들을 대수롭지 않게 폄하하며 조롱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인의 1.3%만이 ‘테러’를 최대 위협으로 꼽았다. 그들은 그보다 실업, 부패, 경제, 세금을 더 큰 위협으로 생각한다. ‘환경 악화’만이 ‘테러’보다 더 낮은 위협으로 간주됐다.

이탈리아 신문 리베로의 편집부장 프란체스코 보르고노보는 이렇게 말했다. “IS는 허풍쟁이이기 때문에 비웃어도 된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테러 대응 조치도 강화해야 한다. 가장 먼저 닥치는 위협이 이민이다. 이민 문제는 완전히 통제 불능이다.”
 유럽을 지옥으로 만든다?
로베르타 피노티 이탈리아 국방장관은 지난해 9월 밀라노 유럽 국방장관회의에서 IS 위협에 공동대처할 것을 촉구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IS를 비웃지 않는다. 최근 사브리나 마그리스 로마-피렌체 국제대학 총장을 만났다. 그 학교는 세계 각국 정부에 대테러 전술과 인질협상 훈련 과정을 제공한다. 마그리스 총장은 이탈리아 관리들이 카다피 이후의 리비아 상황과 테러리스트의 이탈리아 침투를 크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최근 IS를 지지한다고 선포한 리비아 민병대가 늘었다. 이탈리아 정보기관은 의심되는 IS 지지자들을 상대로 온라인 감시를 강화했다.

IS의 선전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탈리아 정부가 왜 노심초사하는지 알 수 있다. IS를 지지하는 블로거 아부 이림 알-리비는 최근 이렇게 썼다. “이탈리아는 작은 보트로 도달할 수 있는 유럽 남부에 긴 해변을 갖고 있다. IS가 리비아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대열에 섞이면 유럽 남부가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보기관 소식통은 이런 위협이 대수롭지 않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입국 서류를 갖추고 도착하는 외국 지하디스트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였다. “테러리스트가 갑판도 없는 위험천만한 작은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가려고 목숨을 걸 이유가 없다.”

그들이 어떤 수단을 이용하든 이탈리아에 침투하는 테러리스트를 막는 최선의 방책은 전자 도청보다 유럽 전역에 보안요원을 더 많이 투입해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색출하는 것이라고 그 소식통은 강조했다. 그러나 마그리스 총장은 동의하지 않는다. 리비아 상황과 난민 문제의 복잡성을 감안하면 이탈리아 정부의 지금 같은 대응이 현재로선 최선이지만 이탈리아는 데이터 분석을 강화해 온라인에서 메시지를 숨기는 데 능숙하지 못한 젊은 IS 조직원들을 색출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마그리스 총장은 말했다. 아울러 더 젊은 요원, 특히 여성 요원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S가 해외 정보를 얻기 위해 젊은 여성을 더 많이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성심가톨릭대에서 위기 관리를 가르치는 마르코 롬바르디 부교수는 최근 이탈리아가 어느 때보다 대테러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은 소극적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난민에 동조하는 좌익과 이슬람을 혐오하는 우익 양쪽 모두를 의식해 지나치게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롬바르디 부교수는 “이탈리아 정보당국이 외국인 지하디스트 50~60명을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인은 말만 앞세울 뿐 테러 예방을 위한 법 집행엔 소극적이다. “지난 30년 동안 가장 큰 위협이 닥치고 있지만 정치인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처럼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이탈리아는 새로운 테러 온상이 될 수 있다고 롬바르디는 우려한다. 어쩌면 제2의 파리 샤를리 엡도 테러가 로마에서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교황도 다시 방탄차를 타야할지 모른다.


[ With NICHOLAS FARRELL in Rome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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