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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세계화보다 고급화가 먼저

한식 세계화보다 고급화가 먼저

조태권 광주요 회장의 지난 26년은 사실상 ‘한식은 서민적’이라는 인식과 싸워온 시간이라도 해도 무방하다.
조태권 광주요 회장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8년 무렵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식 세계화 사업이 막 첫발을 내딛었을 즈음이다. 당시 언론은 한식 세계화 사업을 알리면서 조 회장의 이름을 여러 차례 지면에 실었다. 가장 큰 화제는 2007년 10월 조 회장이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열었던 한식 만찬이었다. 와인제조업자 60명을 대접하기 위해 식기로 사용할 도자기 1000점, 각종 육수와 조미료, 요리사와 홀 직원까지 총동원해 비행기에 싣고 날아갔던 조 회장의 행보는 한식 세계화 사업 발족과 겹쳐 뭇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나파밸리 만찬을 기사로 접하면서 조 회장이 참으로 기인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신 무엇 하나 얻을 것 없는 만찬 한 번을 위해 저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다니, 열정 하나는 대단하다는 생각이었다. 한편으론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먹는 한식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고급 한식이 과연 한식 세계화에 맞는 건지 의문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2008년 말 조 회장은 5년 간 운영하던 고급 한식당 ‘가온’과 대중 한정식당 ‘낙낙’의 문을 닫았다. 당시 한 잡지의 인터뷰에 따르면 “적자 경영이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한식 사업을 접고 나자 주변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비아냥을 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사람 중 하나였다.

한식 세계화 사업의 물결을 타고 떠올랐다가 사라져 간 여느 사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조 회장의 한식 사업 도전도 그렇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조 회장은 이후에도 각종 행사와 강연,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식 세계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5년 내놓았던 증류식 소주 ‘화요’는 조용히 번져나가 어느덧 대중 음식점에서도 볼 수 있는 고급 술로 자리 잡았다. 2012년엔 서울 한남동에 다시 한 번 한식당 ‘비채나’를 열었다. 뼈 아픈 실패를 겪은 사업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조 회장은 무엇 때문에 잘 나가는 도자기 사업(광주요의 매출은 지난해 18% 증가했다)을 두고 수익도 별로 없을 한식 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알려진 것만 약 500억원)을 쏟아부을까? 조 회장이 처음 한식에 투자를 시작한 것은 명사를 초청해 한식을 대접하는 ‘성북동 만찬’이었다. 이것이 1998년 처음 시작됐으니 지금까지 26년을 한식 사업에 매진해 온 셈이다.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는지 직접 만나서 들어봤다.

한식당 비채나에서 만난 조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전통은 음식부터 시작된다”며 식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음식 문화가 곧 종합 문화고, 모든 문화의 바탕이라는 생각은 조 회장의 지론이다. “인간은 처음 태어나면서부터 음식을 먹기 시작합니다. 동물은 아무거나 먹지만 인간은 아니죠. 어떻게 보다 잘 먹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차이가 생깁니다. 그 차이가 바로 식문화입니다.”

인간은 음식을 조리해 먹으면서 맛과 건강을 따지고, 식사 예절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며 관계를 형성한다. 그렇기에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는 모든 인간 문화의 기초라고 조 회장은 믿는다. 도자기 사업을 하면서 갖게 된 신념이다. “도자기를 만들면서 보니 도자기가 유명한 나라는 음식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가서 음식을 먹어보면 음식이 유명한 나라는 술도 세계적이더군요. 이 세 가지가 발달한 나라는 모두 선진국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음식은 어떨까? 조 회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는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일본의 초밥처럼 “세계 어디에나 내놓을 수 있는 상징적인 음식이 한국에는 없다”며 “초보적인 단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지금 한식이 금방 세계화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한식은 푸짐하고 저렴하고 서민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요. 우리조차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음식을 어느 누가 환상을 갖고 좇아오겠습니까?”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2012년 한남동에 문을 연 한식당 비채나 전경.
‘한식은 서민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은 2003년 야심차게 문을 연 가온이 5년만에 문을 닫는 원인이 됐다. 동네 음식점에서도 먹을 수 있는 한식인데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싸냐는 힐난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조 회장은 단호하다. “일본 음식이나 중국 음식, 서양 음식을 먹으러 갈 때는 식당의 수준에 따라 음식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 왜 한식만은 가격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항변한다. 귀한 식재료를 좋은 식기에 담아 훌륭한 서비스로 차려내는데 일반 식당 음식과 가격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동네 중국집에서는 1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먹는 볶음밥이라도 고급 중식당에선 몇 배의 가격을 내야 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조 회장의 지난 26년은 사실상 ‘한식은 서민적’이라는 인식과 싸워온 시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한국에 일반 음식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 이후였습니다. 그때 음식점은 모두 생계 유지를 위한 것이었죠.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겨우 한 끼니를 때우는 음식, 냉면이나 만두 같은 단일품목 음식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조 회장은 이런 음식점들이 맛보다는 가격 경쟁에 주력했기 때문에 메뉴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음식의 질도 점차 떨어졌다고 본다. ‘싸고 푸짐해야 한식’이란 인식도 이와 함께 형성됐다.

이처럼 가난했던 한국인의 사정에 맞춰 나온 요리를 들고 세계화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조 회장이 보기에 어불성설이다. 그가 세계 수준에 걸맞은 한식을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유다.

고급스런 한식을 창조하려면 상류층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 회장은 강조한다. “상류층에서 사치를 부려서 고급 문화를 만들어야 일반 대중의 문화도 고급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문명화 과정이란 상징적인 것이 가장 위에서 밑으로 흘러가는 과정입니다. 상류층은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죠. 상류가 고급 문화를 만들면 대중 문화도 고급화되고, 대중 문화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면 다시 위로 올라가 고급화하는 선순환 작용이 일어납니다. 그 결과 그 나라 문화 전체가 고급화하면서 수준이 상승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한식 세계화라는 말보다 한식 고급화라는 말을 선호한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고급화하면 세계화는 자연히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고급 음식엔 좋은 재료와 훌륭한 요리사,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 비용은 상류층만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상류층은 마땅히 사치를 통해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조 회장의 주장이다. “고급 문화가 내수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입니다. 새로운 음식을 계속 만들면 식자재를 공급하는 농수산물 시장이 살아납니다. 음식을 즐길 공간과 그 공간을 꾸밀 장식품, 음식을 담을 도자기도 필요하고요. 5000원짜리 비빔밥을 10만원짜리 그릇에 담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고급 음식점을 방문하는 사람은 옷차림도 달라질 겁니다. 그렇게 시장이 활성화되면 일자리도 창출되죠.” 결국 식문화의 고급화는 문화 강국뿐 아니라 경제 강국을 향한 길이기도 하다. 조 회장이 한식 고급화 사업을 하면서 ‘문화보국’을 강조하는 이유다.
 전통은 창조에서 시작된다
비채나는 고급스럽게 재해석한 한식 요리를 선보인다. (왼쪽부터) 은대구 구이, 흑돼지 등갈비 구이, 능이버섯 갈비만두.
어떻게 보면 일종의 계급론이다. 조 회장은 이런 말도 했다. “돈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먹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른데 왜 모두 평등해야 합니까? 능력에 따라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조 회장의 말을 들으면서 문화혁명기의 중국이 떠올랐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만민의 평등을 강조하며 고급 음식점을 마구잡이로 파괴했다. 집에서 좋은 음식을 해먹다간 신고를 당해 공안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모두가 똑같이 형편없는 음식을 먹다 보니 찬란했던 중국 식문화는 단숨에 암흑기로 빠져들었다. 결국 오늘날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 받는 중국 음식은 영국의 지배 하에 있던 덕분에 문화혁명의 칼날을 피해갔던 홍콩 광둥요리뿐이다. 그렇게 보면 고급 문화가 전체 문화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조 회장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 회장이 한식 고급화에 나서면서 마주친 또 하나의 장벽은 전통 한식에 대한 고정관념이었다. 떡볶이에 서구 식자재인 바닷가재를 넣는 등 기존 한식에 변화를 가미하자 주변에서 ‘그게 한식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기자 역시 인터뷰 전까지 가졌던 의문이다. 서구 식자재를 사용해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만든 요리를 우리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 회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고 답했다. “다른 나라는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창조합니다. 새로운 음식이 나오니까 수요도 새롭게 창출되는 거죠. 우리나라는 ‘이것이 한식’이라고 딱 정해놓고 거기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우리가 비빔밥, 잡채, 갈비 같은 요리를 마치 수백 년 전부터 먹어온 듯이 말하는데 이런 음식은 나온지 수십 년밖에 안 됐어요.”

조 회장은 일본 음식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일본 음식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들 중 대다수는 지난 100년 사이에 새로 만들어진 ‘퓨전 요리’라는 것이다. “돈까스를 봅시다. 서구의 비프 커틀렛과 템푸라를 합쳐서 창조한 음식이 바로 돈까스입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본만의 음식이죠. 불과 19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음식이지만 그로부터 100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인의 정체성이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본의 돈까스를 가져와서 질 낮은 음식으로 바꿔놨습니다. 볼품 없이 얇은 고기를 쓰는 그런 음식을 세계인들이 어떻게 먹겠습니까? 일본은 세계를 향해 갔고 우리는 당장 돈을 버는 데 급급했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는 겁니다.”

일본 요리뿐 아니라 프랑스 요리, 중국 요리도 다른 문화와 뒤섞이고 외부 음식을 모방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조 회장은 본다. “모든 건 모방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만든 바닷가재 떡볶이를 보고 한식에 바닷가재를 왜 썼냐고 하는데, 세계인이 좋아하는 식자재를 쓰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바닷가재를 쓰더라도 우리 양념이 들어가고 떡볶이가 들어가면 우리 음식입니다. 세계 모든 식재료를 널리 보는 시야를 가져야지, ‘한식은 이렇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뿐입니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도 우물입니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전통 간장, 소금, 죽염, 젓갈, 청 등 절대 바뀌지 않을 본연의 맛이 있습니다. 이 맛과 현대 사회의 식자재를 융합하면 우리만의 음식이 됩니다.”

조 회장의 말대로라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그것이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이다. 조 회장은 성과가 보이기까지 앞으로 최소 20년에서 30년은 걸린다고 본다. “외롭고 긴 싸움”이라고 그는 털어놓았다. 지난 26년 간 그는 한식 사업에 필요한 모든 돈을 자비로 썼다. 정부의 한식 세계화 사업이 한창일 무렵에도 지원금 한 푼 받아 쓰지 않았다. 특혜를 받았다는 비판 없이 “내 돈으로 이 사업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조 회장에게 한식 고급화는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할 자신의 사명이었다. 임기가 짧고 유권자의 뜻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정부로선 해내기 힘든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조 회장이 아니면 “누가 20년 후를 바라보면서 자기 재산을 탕진하겠습니까?” 그의 예상대로 이명박 정부의 한식 세계화 사업은 정권 교체와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그럼에도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조 회장이 묵묵히 한식 고급화의 길을 내자 그 길을 따르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젠 비채나가 아니더라도 큰 도시에서라면 고급 한식당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고급 증류주 화요가 시장에서 반응을 얻자 타 업체에서도 고급 소주를 하나둘 씩 내놓기 시작했다. “도자기부터 음식, 술까지 모든 걸 새롭게 만들어 간다는게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는지”를 나지막히 토로하는 조 회장의 목소리엔 지난날 겪었을 쓴맛이 그대로 묻어났다. “26년을 바보로 살아왔습니다. 이제야 사람들이 저를 한식 전도사라고 부릅니다. 제가 정말 이거 하나만 위해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거죠. 제가 닦은 좁은 길 앞으로 이젠 평야가 보입니다. 기반을 닦은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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