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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등록금에 두 번 더 우는 대학생들 - 카드로 못 내고 나눠 내기도 어렵고

비싼 등록금에 두 번 더 우는 대학생들 - 카드로 못 내고 나눠 내기도 어렵고

#1. 대학에 다니는 두 딸을 둔 박선례(50)씨는 올해도 등록금이 고민이다. 예체능을 전공하는 두 자녀 등록금이 1000만원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박씨는 “아들이라면 군대라도 보낼 텐데, 딸은 그러지도 못한다”며 “껌 한 통도 카드로 결제하는 세상에 수백만원 하는 등록금을 카드로 내지 못 하는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2. 서울 소재 사립대에 다니는 원상현(가명·22)씨는 지난 학기 등록금 분할납부를 신청했다. 330만원을 총 4차례에 걸쳐 매달 90만원 정도씩 납부하면 돼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할납부를 해도 원씨의 어깨는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았다. 1~2차 납부는 3주 정도의 시간이 있어 아르바이트로 마련했지만, 3~4차의 경우 2주 만에 납부 기간이 돌아왔다. 그는 “분할납부면 적어도 카드 결제일처럼 한 달의 기간은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짧은 분할 기간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년 대학 등록금은 인상되는데 반해, 등록금을 카드로 납부하거나 분할해 내는 등 납부제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대학 등록금 분할납부 제도가 처음 도입된 건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무렵이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 탓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휴학을 하는 학생이 늘자 대학들이 등록금을 나눠내는 방안을 고안한 것이다. 이후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분할납부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이용한 학생은 2.2%(2013년 기준)에 불과하다. 그동안 분할납부에 관한 규정이 따로 없어 일부 대학은 납부 횟수를 2회로 제한해 실시하는 등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또한 등록금 고지서에 분할납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따로 표기하지 않아 제도 자체를 모르는 학생도 많았다. 학생들의 분할납부 이용률이 저조한 것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장학금 수혜자를 분할납부 대상에서 제외하고, 분할납부 횟수가 3회 이하로 적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분할납부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해 말 개선 방안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등록금 납부고지서에 표시해야 하는 필수항목 6개를 기재하도록 권장해 올해 1학기부터 시행했다. 기재 필수항목은 납부 기간, 납부 방식(일시불·카드·분할 등), 신청기간, 대상자 제한 여부, 신청방법, 납부횟수 확대 등이다. 그동안 등록금 중 일부를 장학금으로 받는 학생은 분할 납부 신청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교육부는 이 항목 역시 폐지하도록 했다.
 2주 만에 등록금 100만원 벌기?
뚜렷한 기준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 분할납부 횟수는 최소 4회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납부기한 역시 월 1회 간격을 두는 것을 원칙으로 시정했다. 그러나 정작 이를 시행해야할 대학의 반응은 냉담하다. 교육부가 2월에 발표한 ‘등록금 납부제도 개선방안 시행 모니터링 잠정 결과’에 따르면, 전국 주요 251개 대학 중 190개교(76%)가 올해 1학기부터 등록금 납부고지서에 분할납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명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교육부 개선안을 이번 학기에 반영했다’고 응답한 대학은 전체 334개교 중 절반 수준인 162개교에 불과했다. 서울여대·성신여대 등 일부 대학은 여전히 장학금 수혜자를 분할납부 대상에서 제외했다.

분할납부 횟수와 기한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명지대의 경우 3회 차는 3주 간격으로, 4회 차는 2주 간격으로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 다른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여대 미술대학의 이번 학기 등록금은 약 470만원이다. 이 대학 역시 3회 차와 4회 차의 납부 간격이 2주에 불과하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서울소재 사립대학 평균 등록금은 약 380만원. 이를 기준으로 4회차로 나눠도 1회당 내는 금액은 평균 95만원에 달한다. 명지대 건축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이번 학기 등록금이 490만원 정도 나왔는데 4회로 나눠 내도 회차당 120만원가량을 내야 한다”며 “1~2회차는 그나마 한 달의 여유가 있었지만 3회차부터는 간격이 줄어 2주 만에 120만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한 달에 100만원 이상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학생들은 “단기간에 목돈을 만들기가 어려워 분할납부를 신청한 것인데, 납부 기간이 짧으면 시행하는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분할납부 기간과 횟수를 더 늘려달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대학 관계자들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홍익대 관계자는 “등록금이 늦어도 5월 안에 모두 납부돼야 운영에 차질이 없다”며 “분할 횟수가 지금보다 늘어나면 행정상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분할납부는 흉내라도 내는 모양새지만 카드납부는 여전히 거부하는 대학이 대다수다. 대학이 ‘현금 납부’를 원칙으로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카드 수수료 때문이다. 현재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신용카드 사용에 따른 수수료는 신용카드 회원이 아닌 가맹점이 내도록 규정돼 있다. 대학교에 매겨진 평균 수수료율은 1.7%다. 지난해 기준 사립대의 연간 등록금 1인당 평균 736만원. 이 금액을 학생들이 카드로 결제했을 때 학교 측이 부담하는 수수료는 1인당 약 12만원이다. 재학생 1000명 중 30%가 카드납부를 한다고 했을 때 대학은 3억6000만원을 지불하게 된다. 대학 측은 카드 수수료에 들어가는 돈만큼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복지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카드납부도 결국 분할”이라며 “학생과 학부모도 카드 할부 이자 부담을 피할 수 없어 결국 양측이 다 손해”라고 주장했다.
 카드 수수료율 높아 부담이라지만…
그러나 이미 카드납부를 시행하고 있는 학교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카드납부와 분할납부가 모두 가능한 건국대의 경우 지난 학기 등록금을 카드로 납부한 학생이 약 1453명으로, 분할납부를 선택한 학생(536명)의 약 2.7배에 달한다. 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에서는 카드로 납부하는 학생들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건국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카드납부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카드납부가 좀 더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며 “우리 학교는 카드사와 사전 협의해 할부 수수료 일부를 카드사가 부담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학생들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업무상 편의와 카드사 수수료 부담을 꺼린 대학들이 등록금 카드납부에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국회는 조만간 추가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심상범 새누리당 의원이 3월 초 발의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에 따르면 등록금의 카드납부를 의무화하고 대학 가맹점의 경우 카드 수수료율을 1% 미만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교육부는 1학기 등록금 납부결과가 정보공시를 통해 공식 집계되는 4월 이후 심층분석을 통해 유관기관과 제도보완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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