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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터도 로봇이 뜬다

스웨터도 로봇이 뜬다

프랫 인스티튜트 산하 ‘BF+DA’ 의류 연구소의 니트웨어 책임자 켈리 푸어타스(사진)가 보여주는 컴퓨터화 편물기는 3D 프린터와 약간 비슷하지만 폴리머 대신 울을 사용한다.
넥 워머(목을 따뜻하게 하는 일체형 목도리) 주문의 제작 마감시한이 불과 몇 일 안 남았다. 그중 완성된 것은 절반도 안 된다. 초침은 계속 째깍째깍 넘어가는데 직원들은 태평하다. 손가락에 경련이 일도록 정신 없이 뜨개질하지도 않는다. 조명이 흐릿한 방 안에서 재봉틀에 머리를 박고 열심히 돌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작업 감독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한순간이라도 일손을 놓으면 밥줄이 끊기지 않을까 겁내는 기색도 없다.

그것은 이곳이 노동착취공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유명 디자인 스쿨인 프랫 인스티튜트 소속의 ‘브루클린 패션+디자인 액셀러레이터(BF+DA)’ 의류 연구소다. 프랫 인스티튜트가 신흥 디자이너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창업보육센터다. BF+DA는 패션·산업·기술의 창업형 두뇌를 한자리에 모으려는 취지다.

오늘 의류연구소에서 생산되는 넥 워머는 BF+DA 팝업 숍(pop-up shop, 빈 상업 공간에 일시적으로 운영되는 상점)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팝업 숍은 구성원의 제품을 판매하는 시장이면서 한편으로 수개월된 액셀러레이터를 알리는 곳이다. 니트웨어 책임자 켈리 푸어타스는 이미 디자인을 완성했다. 나머지는 SSR112와 MACH2X의 몫이다.

SSR112는 컴퓨터화된 가로편물기(flat knitting machine, 가로 방향의 씨실이 왕복하며 직사각형 모양으로 짜는 기계)다. 식탁 크기의 잉크젯 프린터 같은 형태다. 측면에 끼워 넣은 유리 패널을 통해 어떻게 작동되는지 볼 수 있다. 푸어타스가 SDS-ONE APEX3 디자인 소프트웨어에 입력한 명령에 따라 편물기의 캐리지(이동하는 부분)가 앞뒤로 빠르게 이동하며 V자 형태로 배열된 두 판의 바늘들에 한 타래의 뜨개실을 풀어 넣는다. 바늘들은 실을 걸고 잡아 올려 땀을 뜬다. 초당 최대 약 120㎝의 속도로 몇 번이나 같은 과정을 반복하더니 불과 10분 만에 BF+DA의 원통형 100% 메리노 울 넥 워머 하나가 거의 완성됐다. 천의 가장자리를 서로 연결해 마무리를 짓는 작업만 남았다.

“가로편물기는 예컨대 뒷면·앞면·소매 같은 형태를 뜬다. 그 뒤 그것들을 서로 연결해 옷을 완성한다”고 푸어타스가 말했다. 다시 말해 SSR112가 뜨개질을 할 수는 있지만 스웨터처럼 속이 깊고 형태를 갖춘 제품은 만들 수 없다.

바로 여기서 무봉제 편물기(whole-garment knitting machine)인 MACH2X의 역할이 필요하다. 4개의 침상(needle beds)을 이용해 별도의 연결작업이 필요 없는 일체형 옷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무봉제(whole-garment) 다시 말해 이음매 없는 공정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옷 전체를 한꺼번에 뜬다. 따라서 앞과 뒤가 원통처럼 붙어 있다”고 푸어타스가 설명한다. “팔은 양쪽에 붙은 2개의 원통이다. 편물기가 어깨와 목에 이르면 양팔을 함께 연결한 뒤 목둘레선(neckline)을 만든다. 따라서 완성된 제품이 기계에서 나온다. 어느 정도 3D 프린터와 비슷하다.”

SSR112와 MACH2X는 일본 기업 시마 세이키가 개발했다. 컴퓨터화된 가로편물기는 1978년, 홀가먼트 편물기는 1995년 선보였다. 그 직후 독일 제조업체이자 시마 세이키의 최대 경쟁사인 스톨(Stoll)도 두 기계를 개발했다.

오늘날 컴퓨터화된 편물기는 모든 차원의 의류생산에 활용된다. 여유 자본이 있고 그 기술을 도입할 만한 모든 차원이 대상이다. BF+DA의 SSR112D와 MACH2X 가격은 총 25만 달러 선으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하지만 갖가지 작업을 할 수 있다. BF+DA의 사명이 신흥 디자이너의 지원이기 때문에 그 시설은 소규모 생산작업에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을 활용하는 대규모 제조업체가 상당히 많다.

“우리가 일본에서 교육받을 때 다른 사람들은 50~100대의 기계를 구입했었다”고 BF+DA 설립자이자 대표인 디베라 존슨이 시마 세이키의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동료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들은 대량생산 목적의 제조 환경에서만 이 같은 유형의 기술을 이용한다.”

컴퓨터화 편물 기술이 20년 전부터 존재하고 업계에서 사용돼왔는데도 노동착취공장에 관한 고정관념(그리고 그런 현실)은 여전하다. 그것은 일정 부분 재단과 재봉 같은 의류생산의 많은 측면이 완전 자동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 같은 신개발 기계와 관련된 소식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다. “에일린 피셔야말로 완벽한 스토리를 전하려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그 의류 브랜드의 투명성 노력을 가리켜 존슨 대표가 말했다. 예컨대 그들의 ‘라벨의 이면(& Behind the Label)’ 광고는 의류 소재를 어디서 조달하고 최종 상품을 어떻게 생산하는지 소비자에게 설명한다. 하지만 그조차 컴퓨터화 편물기는 지나가듯 잠깐만 언급한다.

“파타고니아도 자신들의 공급망, 그리고 누가 무엇을 만들고 어디서 소재를 조달하는지 상당히 투명하게 공개하려 애쓰는 또 다른 회사”라고 존슨 대표는 덧붙인다. “하지만 이런 회사들은 업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이키는 2012년 플라이니트(Flyknit)를 출시한 뒤로 컴퓨터화 편물 디자인 소프트웨어 경력이 있는 전문가를 적극 고용해 왔다. 플라이니트는 거의 전적으로 SR112와 MACH2X 같은 기계로만 만든 나이키 최초의 운동화다. “나이키는 스톨 머신, 시마 기계를 갖추고 니트를 중심으로 완벽한 혁신 센터를 구축했다”고 존슨 대표가 설명했다. “그것은 그들의 혁신기술의 큰 부분을 이룬다.”

그리고 컴퓨터화 편물기에 조명이 집중되는 요인은 어떤 윤리적인 문제보다 오히려 혁신일지도 모른다. 인건비 절감 효과를 뛰어넘어 그 기술이 제공하는 정밀도와 맞춤 제작 기능은 의류 소매업의 미래를 바꿔놓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전신 스캐닝 같은 기술과 결합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디자인한 패턴을 아바타에 입혀 완벽히 맞춤 제작되도록 프로그램을 조정한 뒤 출력할 수 있다.”

시마 세이키의 일본 본사는 VIP 고객 전용의 전신 스캐너를 이미 들여놓았다고 푸어타스는 말한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엔 이용자가 마이크로소프트 키넥트 동작감지 장치를 이용해 자신의 3D 모델을 제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베타판이 출시됐다. 전신 스캐닝 기술을 상업화하는 ‘보디 랩스(Body Labs)’라는 회사가 개발한 제품이다.

존슨 대표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소매유통업체들이 전신 스캐너와 아바타를 의류 쇼핑에 통합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객이 이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정확한 신체 치수를 알아내고 또한 맞춤 의상을 주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몸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옷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마음에 드는 청바지를 고를 때까지 몇 벌이나 옷을 입어보는가?” 존슨 대표는 그렇게 물으며 SSR 112와 MACH2X가 곧 쇼핑광과 공정노동(fair labor) 지지자들 모두의 본보기가 될지 모른다고 전망한다.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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