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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아 제이헬렌 대표 - 분당표 ‘패스트패션’ 다크호스 되다

백진아 제이헬렌 대표 - 분당표 ‘패스트패션’ 다크호스 되다

“그냥 우리 자리에서 해요.”

부동산 주인이 툭 내뱉은 한마디. 옷 가게 입지를 찾던 백진아(45) 제이헬렌 대표는 다시 내부를 둘러봤다. 매장은 겨우 16.5m²(5평) 남짓. 게다가 골목에서 안쪽으로 들어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위치였다. 잠시 망설이던 백 대표가 보증금 3000만원에 가게를 계약했다.

“망하지만 말자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원래 좀 긍정적이거든요(웃음).” 그런데, 개점 첫 날부터 매장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섰다. “준비한 제품이 다 팔렸어요. 지나가다 ‘여기 뭐 하는 곳이지?’하고 들어와서는 충동구매 하는 손님이 많았죠.”
 ‘망 하지만 말자’
여성의 심리를 잘 꿰뚫어 성공을 거둔 백진아 대표.
여기서 제이헬렌의 첫 번째 성공 전략이 나온다. 백 대표는 사업비의 70%를 인테리어에 투자한다. “패션 매장을 열게 되면 인테리어는 꼭 내 손으로 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전체적인 콘셉트는 유럽의 카페를 따랐다. 그는 “카페 같은 옷 가게가 아니라 카페에서 옷을 파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할 만큼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다. 백 대표의 말처럼 분당의 제이헬렌 아브뉴프랑점에 들어서자 소파와 옷걸이 같은 소품들에서 유럽의 저택에 온 듯한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여자는 커피 한 잔도 종이컵보다 예쁜 커피 잔에 마시고 싶은 심리가 있거든요.” 그렇게 우선 발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는 지갑을 열게 할 차례다.

“예쁜 곳에서 합리적 가격에 질 좋은 옷을 판매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다르게 제이헬렌의 제품은 가격이 저렴하다. 1~2만원대 기본 아이템부터 10만원이 넘는 고급 디자인 제품까지 가격대가 다양하지만 10만원이면 마음에 드는 아이템 2, 3개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백 대표의 말이다.

“2006년에 강남에서 분당으로 이사를 왔어요. 학부모 모임에 나가 보니 ‘빈익빈 부익부’로 분명히 나뉘는 강남 엄마들과 다르게 분당 엄마들은 합리적으로 자신을 꾸밀 줄 알더군요.” 백 대표는 이들이 동네 옷 가게에서 얼마까지 지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결론은 10만원이었다.

그는 저렴한 가격이 가능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선 소비자 가격이 원가의 두 배를 넘지 않게 한다. “홍보비를 따로 쓰지 않고 마진율을 낮추는 대신 회전율을 높여 재고를 최소화합니다.”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해봤지만 한 달에 1억원씩 들어가는 홍보비를 감당하지 못해 사업을 접었단다. “게다가 주부들은 체형에 자신 없어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직접 입어보고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거죠.”

가격은 저렴하지만 주 고객은 주로 백화점을 이용하던 멋쟁이들이다. 매장을 찾은 ‘분당 아줌마’ 유미현(39)씨는 “디자인이 고급스러워 자주 들른다”며 “분당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유명하다”고 말했다. 요즘은 일산에서도 손님이 온단다. 타깃은 20대 후반 여성이지만 실제 30~40대 여성 고객이 가장 많다.

백 대표는 자체 제작, 국내외 바잉 등 여러 방식으로 제품을 구성했다. 직접 디자인하는 상품은 40% 정도다. 제이헬렌의 또 다른 인기 비결은 다양한 색상이다.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색상까지 고루 갖춰놓은 것. 진열대를 보면 마치 팔레트 같다. “가격이 비싸면 무난한 색상을 고르게 되지만 저희 손님들은 같은 디자인의 다른 색상 제품을 2, 3개씩 사요.”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가방 역시 다양한 색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100% 자체 제작하는 이 가방은 편하게 드는 데일리 백으로 파우치와 스카프를 세트로 판매한다. 2년 전부터 ‘분당 가방’으로 불리며 꾸준히 인기를 끄는 킬러 아이템이다. “합성피혁을 사용해 가격을 낮추는 대신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가공과 디자인에 신경 씁니다.”

백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2006년은 아직 국내에 패스트 패션이 유행하기 전이다. “패션 흐름이 빨리 변해요. 고객들은 저렴하게 사서 그 때 그 때 멋있게 입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는 최근의 경기 침체에도 큰 타격이 없다고 했다. “경기가 불황일 때는 ‘작은 사치’를 누리고 싶어하니까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일 때 소비자는 만족감을 느낍니다.”

정자점을 비롯해 판교 본점, 판교 백현동 카페거리점, 판교 아비뉴프랑점 등 분당에서만 매장이 4개로 늘었다. 대형 쇼핑몰 아브뉴프랑이 주목 받으면서 제이헬렌의 인기 역시 올라갔다. 제이헬렌은 지난해 수원 롯데몰점을 시작으로 롯데몰 김포공항점, 제2롯데월드점에 매장을 열었다. 백 대표는 “8월 말에는 현대백화점에 입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2월 현대백화점 목동점 팝업스토어에서 인기를 확인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백 대표는 5평 공간을 유럽 프로방스 느낌이 나게 제대로 꾸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옷을 다려 걸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어요. 보통 그 자리에서 나는 매출의 3~4배를 벌어들였습니다.”
 10년 동안 적자 난 적 없어
현재 매출 규모가 크진 않지만 10년 동안 적자를 낸 적은 한번도 없다. 롯데몰에 처음 입점했을 때는 대기업 브랜드들의 가격 경쟁에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로드숍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른 브랜드들과 경쟁하면서도 고유의 콘셉트를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의상학을 전공해 의상·인테리어 코디네이터로 일하던 백 대표는 거창한 계획 없이 혼자 옷 가게를 시작했다. 지금은 직원 수 30명의 패션업체 CEO다. 지난해 일본 홈쇼핑 QVC와도 판매 계약을 했다. 하지만 그는 대리점 사업으로 매장을 무분별하게 늘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마니아 층을 확보하는데 충실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대리점을 내봤지만 콘셉트를 유지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아무래도 생계형으로 운영하는 거라 당장 수익을 원하니까요. 저는 생계형이 아니냐고요? ‘망하지만 말자’라니까요(웃음).”

- 글 최은경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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