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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균형과 혁신이다]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 - 똑똑한 관료가 실패하는 이유

[경제는 균형과 혁신이다]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 - 똑똑한 관료가 실패하는 이유

신간 [경제는 균형과 혁신이다]는 박근혜정부 1기 경제팀을 이끈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의 칼럼집이다. ‘경제정책 전문가가 바라본 한국 경제의 좌표와 방향’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는 평소 ‘시장의 정의’를 설파해온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의 신작이다. 부제는 ‘민주주의를 위한 경제학’이다.

두 책은 ‘정부 경제정책의 역할’을 말한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문제 의식도 큰 틀에서는 같다. 현 전 부총리는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정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정책의 균형감과 일관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관성과 정합성을 유지하려면 여론을 가장한 집단이익과 인기영합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정책 수립자들은 반듯한 근거에 바탕을 둔 정책’을 펴라고 조언한다. ‘방향을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 맞는 근거를 찾아 꿰맞추는 오류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모두 지당한 말씀이다.

이정전 교수는 정부가 왜 이런 ‘지당한 말씀’을 지키지 않고 번번이 국민에 실망을 안겨주는지를 파헤친다.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힘 있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게 되는 구조적인 원인을 경제학의 틀을 통해 밝힌다. 두 원로의 고민은 결국 같다.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현 전 부총리에 대한 아쉬움부터 얘기해야겠다. 그는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었다. 경제 부처 요직을 두루 거쳤고, 경제부총리에 임명되기 전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냈다. 전문성과 경험을 두루 갖춘 ‘학자형 관료’였다.

하지만 그는 임기 내내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여야를 막론하고 경질 압박에 시달렸다. 리더십은 부족했고, 정책 일관성은 찾기 힘들었다. 결국 1년 3개월 만에 퇴임했다. 그의 퇴임의 변은 이랬다. “경제 회복세의 불씨는 살아났지만, 서민경제 전반에 확산됐다고 보지 않는다. 국민에 미안하게 생각한다.”

‘공공기관 개혁’ 등 성과가 없지 않지만, 그는 실패한 경제부총리로 기억될 것 같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퇴임 후 낸 첫 책 속에 답이 있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 책에 대해 “우리 경제의 핵심 문제에 대한 반듯한 진맥이며, 경제 주체들이 나아갈 길과 해야 할 일에 대한 합리적 처방”이라는 추천사를 남겼다. 전·현직 경제 수장이 한국 경제의 문제를 이토록 잘 꿰고 있다는 얘기인데, 왜 경제는 이 모양인가? 왜 정부는 실패의 길을 가고 있는가?

현 전 부총리의 말에서 원인을 찾으면 이렇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균형과 일관성을 잃었고, 이는 집단이익과 인기영합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또한 정책 수립자들은 반듯한 근거에 바탕을 둔 정책을 펴지 못했다.’ 왜 그들은 문제를 잘 알면서 소득 불평등과 빈부격차의 심화, 사회적 분열과 갈등의 일상화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균형 잡히고 혁신적인 정책을 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정치인과 관료들은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일까? 왜 우리(국민)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

이정전 교수는 공공선택이론으로도 불리는 ‘신정치경제학’을 바탕으로 이런 의문을 풀어간다. 이 교수는 시장·정치·정부의 실패에 관한 연구 결과를 고르게 보여주면서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허점이 정치의 실패를 낳고, 관료사회의 고질적 행태가 정부의 실패를 낳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정부의 무능과 정경유착의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뿌리가 깊고 넓으며 악질적’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로 ‘큰 정부의 출현’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정부는 시장을 견제하기는커녕 시장과 야합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고, 그 결과가 정경유착과 도처에 성행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지대추구 행위라는 것을 과거의 오랜 경험이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환기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제아무리 똑똑하고 전문성이 있는 학자가 정책 수장을 맡은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대안은 없는가? 이정전 교수는 ‘시민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을 효과적으로 견제함으로써 시장의 실패를 최소화하고, 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함으로써 정부의 실패를 최소화하는 것, 이것이 대안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구에서 주자가 있을 때 도루를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 ‘견제구’다. 말로는 균형과 혁신을 외치면서 결국 국민을 배신하는 정부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 역시 시민사회의 견제다. 이는 소비자운동과 노동운동의 활성화,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분열되고 약화된 지금의 시민사회 수준이라면, 우리는 더 자주 ‘정부의 실패’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관료가 사실은 문제 해결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허탈한 사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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