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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교수의 ‘실리콘밸리 창업마피아’ 제레미 스토플만 - 구글의 인수 제안 거부한 인터넷 갑부

홍익희 교수의 ‘실리콘밸리 창업마피아’ 제레미 스토플만 - 구글의 인수 제안 거부한 인터넷 갑부

제레미 스토플만. / 사진:중앙포토
사람들이 가게에 대한 리뷰를 써서 추천하고,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를 검색할 수 있는 생활정보검색 서비스 ‘옐프(Yelp)’. 옐프는 흔한 맛집 정보 웹사이트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맛집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용실·세탁소·병원·호텔 등을 포함해 부문별로 소비자 평가를 점수로 매겨 놓고 있다. 이런 옐프는 두 가지 개념에서 만들어졌다. 지역정보를 다루는 ‘로컬(Local)’이라는 점과 대중을 콘텐트 생산과정에 참여시키는 ‘크라우드소싱(Crowd Sourcing)’이다. 페이팔 마피아 제레미 스토플만(Jeremy Stoppleman)이 만든 걸작이다.

제레미 스토플만은 1977년 미국 버지니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증권 변호사였던 아버지는 어느 날 돈 대신 컴퓨터로 고객의 빚을 받아왔다. 어린 제레미는 컴퓨터를 갖게 됐다. 그는 어릴 적부터 유대인답게 사업과 금융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소기업 상장을 도와주는 직업을 가져 아들에게 주식 이야기를 자주해주곤 했다.

스토플만은 대학 졸업 후 엘론 머스크가 창업한 ‘엑스닷컴(X.com)’에 합류했다. 엑스닷컴은 그해 3월 피터 틸과 맥스 레브친이 창업한 ‘페이팔’과 5:5 합병을 단행했다. 제레미 스토플만은 개발이사를 맡아 맥스 레브친 아래에서 엔지니어링팀을 이끌었다. 또한 훗날 옐프를 함께 창업한 대학동기 러셀 시먼스를 페이팔에서 만나 함께 일했다.

2002년 페이팔이 이베이에 팔리자 스토플만은 회사를 나와 하버드 MBA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는 1학년만 마치고 맥스 레브친이 세운 창업인 큐베이터 ‘ MRL벤쳐스(MRL Ventures)’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MRL벤처는 창업 초기 단계 신생 기업들에게 자문·투자하는 회사였다. 이 시기 페이팔 동료였던 러셀 시먼스도 여기서 재회했다. 이 창업인큐베이터에는 10명가량의 직원들이 세상을 바꿀 서비스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소비자시장의 잠재력이 크다고 봤다. 당시 이 분야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사이트는 ‘크랙스리스트(Craig’s List)’였다. 신문의 구인·구직·매매 광고란을 온라인으로 가져와 무료로 제공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에 비해 전화번호부는 여전히 온라인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제레미 스토플만은 여기에서 사업기회를 포착해 러셀 시먼스와 함께 옐프를 창업했다.

스토플만은 샌프란시스코로 온 후 독감에 걸려 좋은 의사를 찾는데 곤욕을 치렀다. 당시 인터넷에는 의사의 이름·출신학교 등 기본적인 정보만 있어 원하는 의사를 찾기 힘들었다. 그때 그는 ‘입소문(Word-of-Mouth)’이야말로 필요한 서비스를 찾기에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뒤 소셜네트워크와 이용자 후기를 결합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 2004년 여름 샌프란시스코 한 베트남 식당에 페이팔 마피아 10여명이 모여 맥스 레브친의 29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누군가 ‘좋은 치과의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스토플만은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 레브친은 이튿날 이 프로젝트에 100만 달러를 투자키로 결정했다. 옐프의 탄생 배경이다.

유대인들끼리는 민족적 동질감이 유달리 강하다. 그들은 서로 간에 눈에 안 보이는 고리로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유대인 ‘고리론’이라 한다. 그들은 서로 연결된 고리라 믿기 때문에 끌어주고 밀어주는 관습을 당연시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업 초기 유대인들끼리 뭉쳐 비교적 조건 없는 투자와 도움을 주고받는다. 조건 없는 투자를 해야 창업자들이 투자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회사를 능력껏 경영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도 맥스 레브친은 옐프 이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유대인의 민족적 동질감 ‘고리론
2004년 10월 공식사이트를 연 옐프는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다. 스토플만은 원래 차세대 온라인 전화번호부를 만들려 했다. 각 상점에 대한 입소문을 수소문해 온라인으로 갖고 오면 강력한 서비스가 될 거라 믿었다. 친구들에게 좋아하는 식당 등을 추천 받는 방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요청해야 리뷰가 만들어지는 식이다. 상식적으로는 맞는 방식 같았지만, 막상 사용자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옐프 사이트 하단에 있는 ‘후기를 남겨주세요‘라 적힌 작은 버튼이 관심을 끌었다. 누군가로부터 요청 받지 않고도 리뷰를 적을 수 있는 기능이다. 옐프팀은 서비스를 분석하는 도중 이 기능을 발견한 소수의 사람들이 기능에 열광한다는데 착안했다. 한 번에 리뷰를 5~6개씩 쓰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는 리뷰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2005년 2월 옐프가 재출시된 후 이용자가 크게 늘어 1년 반 만에 월평균 방문자 100만명을 넘어섰다. 옐프 초기 단계에서는 ‘옐프특수부대’라고 이름 붙인 모임이 있었다. 옐프의 가장 열렬한 리뷰 작성자들로, 이들을 정기적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나 술자리를 가지며 서비스에 대해 피드백하고 유저들끼리의 친목도 형성하는 충성고객들의 커뮤니티다.
 구글도 옐프의 콘텐트 퍼날라
사업이 자리를 잡자 2009년 말 구글이 옐프를 5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애플의 스티브 잡스까지 직접 나서 스토플만에게 인수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설득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구글이 아이폰을 베껴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것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를 들은 스토플만은 구글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인수에 실패한 구글은 구글 플레이시스(Google Places)를 출시했다. 구글은 막대한 트래픽을 이용해 옐프의 리뷰들을 허락 없이 플레이시스로 가져와 이용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심지어 옐프에서 가져온 리뷰임을 밝히지 않거나 옐프로 연결하는 링크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옐프는 리뷰의 품질과 이용자 경험에 초점을 맞추면서 신뢰를 얻어 줄곧 1위를 유지했다. 그 뒤 16개 언어로 자동번역해주는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사업 분야를 확장했다. 2012년 옐프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에 성공해 무려 14억7000만 달러의 시장가치를 기록했다. 현재 옐프의 시가총액은 35억 달러에 이른다. 지분 11%를 보유한 스토플만의 자산만 약 3억 달러다. 오늘날 27개국에서 월 평균 1억4000만명의 사용자들이 옐프를 이용하고 있다.
홍익희 - 배재대 교수. KOTRA 근무 32년 가운데 18년을 뉴욕·밀라노·마드리드 등 해외에서 보내며 유대인들을 눈여겨보았다. 유대인들의 경제사적 궤적을 추적한 [유대인 이야기] 등을 썼으며 최근에 [달러 이야기], [환율전쟁 이야기], [월가 이야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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