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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덕 본촌인터내셔날 대표 - 한국식 치킨으로 전 세계를 날다

서진덕 본촌인터내셔날 대표 - 한국식 치킨으로 전 세계를 날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해외 유수언론이 미국을 휩쓸고 있는 ‘한국식 치킨’ 열풍을 소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본촌치킨 브랜드를 알린 주인공은 본촌인터내셔날 서진덕 대표다. 지난 4월 10일, 한국 유일한 매장이라는 본촌치킨 해운대점을 찾았다.
155만㎡(약 47만평) 동부산권 최대 규모인 명례산업단지에 둥지를 튼 본촌치킨 소스제조공장. 본촌인터내셔날 서진덕 대표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물량을 맞추기 위해 공장을 확장이전 했다.
마닐라 ‘SM 몰 오브 아시아’(SM Mall of Asia)에 자리잡은 본촌치킨은 항상 손님이 붐빈다. 2010년 11월 필리핀에 진출한 본촌치킨은 맥도날드나 타코벨 같은 퀵서비스레스토랑(QSR, Quick Service Restaurant)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독특한 맛과 서비스에 힘입어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며 3년 만에 75개의 매장(2014년 기준)으로 불어났다. 이런 본촌의 실체(?)가 궁금하다는 필리핀 거주 누리꾼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 본촌이라뇨? 본촌이 뭐죠? 본죽과 교촌 합쳐서 본촌치킨을 만들었나. 놀라워. 한국꺼라고 친절하게 한국어로도 써놨네.

# 얘기 듣기로는 본촌치킨의 창업주가 교촌치킨의 친척이며, 프랜차이즈 점주는 필리피노입니다. 실제 돈은 필리피노가 벌고 재미교포는 로열티만 가져갑니다. 경기도 오산시에(오산 톨게이트 옆) 있는 교촌치킨을 재미교포가 벤치마킹해서 필리핀에 파트너를 만들고 입성했습니다.


기자가 인터넷에 오른 글들을 거론하자 강한 경상도 억양의 서진덕(50) 대표는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별 희한한 소문이 다 돕니다. 부산에서 조폭을 하다가, 밀항을 해가지고 한국을 떠나서 어떻게 어떻게 치킨을 해서 성공을 해가지고 지금도 불법체류라 항상 도망다니고 있다는 둥....” 밀항했다는 대목에서는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면서도 분명하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교촌사장과는 일면식도 없습니다. 서로 맛도 다릅니다. 양념소스를 가지고 성분검사를 해봐도 분명 다를겁니다.” 그는 교촌치킨과의 관계를 들먹이는 누리꾼들의 루머도 터무니없다며 일축했다.

미국·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싱가포르·캄보디아 7개국(한국 포함)에서 151개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기업가인 그는, 20년 전만 해도 90만원 월세내기도 빠듯할 정도로 장사가 잘 안된 적도 있었다. 서 대표는 군 복무를 마치고 26살의 젊은 나이에 고모부가 운영하던 ‘현풍할매집곰탕’에서 지배인(현재 매니저급)으로 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구에서 33평 아파트가 2000~3000만원 할 때, 현풍할매집곰탕 가맹점을 내려면 1억원 정도가 필요했어요. 그때는 현풍할매집곰탕이 가맹점도 꽤 냈었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배인 생활 일년이 채 안돼 곰탕집이 아닌 닭갈비집을 차리며 ‘독립’ 했다.
 곰탕집 지배인에서 닭갈비집 창업으로
“그 당시에는 내가 독립해서 문만 열면 장사가 다 잘 되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해서 뭘 팔겠다 이런 고민도 없었죠. 현풍할매집에서는 그냥 아침에 문만 열면 손님들이 들어오니까, 제가 장사를 잘 하는 줄 알았죠.” 준비없이 독립한 대가는 컸다.

“하루종일 많이 팔면 5만원 정도였습니다. 독립하면 돈을 왕창 벌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런데 막연히 돈만 벌고 싶었지 아무런 준비가 없었으니, 장사가 안될 수 밖에 없었죠. 인정합니다. 닭갈비는 맛도 없었고요”라며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1995년 그 무렵, 그가 닭갈비집을 차린 대구 계명대 인근은 학교 정문도 없을 정도로 갓 대학을 이전한 상태였다. 비포장도로여서 오가는 학생들도 적었다. 신생 대학가 주변을 선점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심만 있었던 젊은 서진덕은 그때를 계기로 목표를 정하고 나면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것은 서 대표 필생의 사업철학으로 이어진다.

어떻게든 닭갈비 사업을 유지하고 싶었던 그는 ‘투잡’을 선택한다. 당시 현대자동차에 다니던 고등학교 3년 후배가 서 대표에게 닭갈비 사업을 하면서 자동차 영업사원을 해볼 것을 권했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현대자동차 영업사원 400명 중 서 대표는 3등을 했다. 그리고 첫 3개월 동안 거짓말처럼 현대차 42대를 팔았다. “하루에 차 전단지(카탈로그) 100장만 꼽자고 마음먹었죠. 아무리 바빠도 100장을 꼽으면 손님은 올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정말 하루도 안빠지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는 아침 8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차를 팔고 퇴근하면 다시 닭갈비 집으로 출근해 밤 12시까지 장사를 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서 대표에게 ‘노력하는 자에게는 보상이 따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일이 생겼다. 일본에서 불고기가게를 하던 지인이 ‘소스’의 중요성을 꼬집으면서 그에게 맛있는 닭갈비 소스비법을 전수해준 것. 탁월한 소스맛이 더 해지면서 서 대표의 닭갈비집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점점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음식점이 인기를 끌자 욕심이 생긴 그는 또 다른 도전을 꿈꿨다. 뉴질랜드에서 닭갈비 장사를 계획한 것이다. “지금 고2짜리 큰 애가 6개월 때, 아내랑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습니다. 뉴질랜드에 가서 닭갈비 장사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1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닭갈비 하나로는 한계가 있었던 거죠.”

이 대목에서 지금의 본촌인터내셔날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본촌치킨이 만들어졌다.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 종교 등으로 인한 소비 장벽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육고기는 ‘닭’이 거의 유일하거든요. 닭갈비 사업으로 힘들어지자 여행사 시절(그는 첫 직장을 여행사 경리 및 자금 담당으로 6개월 동안 있었다.) 기억이 떠오른 겁니다. 그래서 닭은 닭인데, 닭갈비가 아닌 닭튀김으로 선회하게 된 것이죠.”
 치킨집 차려 소스개발에 전념
소스맛의 표준화를 통해 현지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구축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왼쪽)은 본촌치킨 버지니아주 알링턴(Arlington)매장. 사진(오른쪽)은 프랜차이즈 매장의 메뉴 퀄리티 안정화를 이끈 소스공장 자동화기기.
2002년, 부산 해운대의 10평 남짓한 가게에 ‘본촌치킨’ 간판을 달고 본격적인 치킨소스 연구에 매진했다. 바삭하게 치킨을 튀기고, 그 치킨에 잘 어울리는 소스가 무엇인지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8년간이나 닭갈비집을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가 있었지만, 막상 치킨집을 운영해 수익을 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소스 때문에 들쑥날쑥한 치킨맛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소스개발을 하느라 그 당시 1억3000만원을 2년 만에 다 말아먹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치킨소스가 가장 맛있게 발리는 면적이 있어 닭의 사이즈”까지 연구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만들어진 그의 치킨은 바삭한 껍질에 특제소스를 입히는 특징을 갖게 됐다. 달콤하고 짭조름한(Soy Garlic) 혹은 매콤한(Hot) 소스는 본촌치킨 브랜드 고유의 맛으로 정착하게 된다. 본촌치킨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국내에 20개 넘게 가맹점을 유치하며 맛을 인정받아 사업은 순항하는 듯 보였다. 그때도 서 대표는 쉬지 않고 각 가맹점을 돌며 소스맛을 점검했다고 한다. “하루에 18시간씩 운전하면서, 25개 정도 되는 점포를 혼자 다녔지요.”

한창 자리를 잡아가던 사업에 고전을 면치 못할 일이 생겼다. 2003년 조류독감 파동으로 치킨요리가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은 것이다. 2004년 경남 양산에서 폐사한 닭 1만 마리가 조류독감으로 뒤늦게 밝혀졌고, 이후 118만 1818마리의 조류(닭, 오리 등)가 폐사 되거나 살처분 됐다. 당시 경남지역 사육조류(닭 536만 마리, 오리 20만 마리)의 5분의 1이 그렇게 사라졌다. 조류독감 파동이 잠잠해질 무렵에는 또 닭값이 폭등했다. 치킨집들은 널뛰기를 거듭했다.

“사실 저는 겁쟁이입니다. 이미 포화 상태인 한국의 치킨 시장에서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외국으로 도망친 거죠. 그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처럼 본촌치킨이 국내에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무렵, 서 대표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해외진출을 결심했다.

준비 없이 될 것 같은 ‘감’만을 믿고 사업하는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미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에 앞서 서 대표는 꼼꼼한 사전준비를 했다. 그는 본촌의 핵심경쟁력인 ‘소스맛’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며 ‘현지 시장 공략’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한인 시장(한인 타운)에서 시작하면 처음에는 다소 편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현지 시장 공략에는 방해가 될 수도 있거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해외 시장 개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현지화’라는 단어가 점점 잊혀지기 때문입니다.” 영어도 잘 못한다는 서 대표가 한인 타운이 아닌 곳에 첫 매장을 세운 이유를 설명하며 한 말이다. 그는 미국 뉴욕주 플러싱에 매장을 열었다.

“2006년 5월에 (미국에) 들어가 2009년 말까지 아무것도 못했어요. 소스공급계약만 체결하는 거죠. 직접 내가 발품팔아 다니고, 수시로 (소스를 납품하는 매장에) 가게를 왔다갔다하면서 그 가게에 오늘은 뭐가 잘 나가고, 뭐가 잘못 나가고 이런걸 다 관리했죠. 하루에 아무리 못 걸어도 15km~20km를 다녔을 겁니다. 뉴욕 맨해튼 42번가에 가면 터미널이 있어요. 거기서 버스 타고 또 지하철 타고.... 그래서 맨해튼은 구석구석 웬만한 길을 다 알아요.” 서 대표는 그가 제공하는 본촌소스가 발라져 나오는 치킨이 제 맛이 나는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처럼 지독하게 발품을 팔았다.
 마크 저커버그의 입맛을 사로잡다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그의 고집스러움은 당장 가시적인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맛집 전문블로그와 SNS를 통해 소문이 퍼지면서 꾸준히 고객층을 늘렸다. 드디어 현지인들의 입소문을 타게 된 것. 2007년 본촌치킨 매장은 미국 북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버지니아, 뉴저지, 뉴욕 등에 6개의 매장을 더 늘렸다. 이후 매장운영, 직원서비스교육 등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본촌프랜차이즈 유한회사(BonChon Franchise LLC)를 등록했다. 2006년 미국진출을 한 본촌이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기업으로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기까지 꼭 5년이 걸렸다.

“우리 본촌 프랜차이즈 파트너로 인정받으려면 주방 일도 배워야합니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특성상 창업자가 곧 운영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요리부터 주문을 받고, 청소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게 그의 변함없는 고집.이 모든 것은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란다. 서 대표는 직접 물건(프랜차이즈를 홍보하고 가맹점주를 모집해 사업체를 판매)을 팔았을 뿐만 아니라 애프터서비스에도 철저했다.

“제가 살짝, 아니 결벽증 비슷하게 주방은 깨끗해야 한다는 게 있어요. 그래서 가맹점주들에게 허락을 맡고, 꼭 주방에 들어가서 냉장고 문도 다 열어봅니다. 어떤 사람은 냉장고에 닭을 구겨 넣는 경우도 봤는데, 저는 이런 부분에서는 성격이 괴팍해지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혼을 냅니다. 누구나 느슨해지기 마련인데, 이런걸 따끔하게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관리자인 겁니다.” 20년 동안 요식업에 종사한 경험이 있기에 그의 점검하에 관리되는 매장은 더 철저하고 엄격한 기준에서 운영될 수 있었다. 서 대표의 이같은 경영기법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비즈니스스쿨의 케이스스터디 사례로 소개되고 학생들의 시험문제로까지 출제되는 유명세를 치렀다.

물론, 본촌치킨의 인기비결은 단연 맛이다. 서 대표에 의하면 페이스북과 구글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본촌치킨 서니베일(Sunnyvale)점에는 마크 저커버그도 찾는다. 저커버그가 오기 1시간 전쯤 수행원들이 테이블을 점령한다. 저커버그가 오면 한 테이블을 비워주는데, 그러면 그는 자리를 잡고 치킨을 먹은 뒤 유유히 떠난다고 한다.

미국 필라델피아 지역매체인 필리닷컴(Philly.com)의 음식 전문칼럼니스트 마이클 클라인(Michael Klein)은 지난해 6월부터 본촌치킨이 필라델피아에 입점한다는 글을 써왔다.

“내 친구는 뉴욕 로어맨해튼(Lower Manhattan)에서부터 본촌치킨에 중독됐지. 본촌치킨은 특히 뉴욕에서 아주 인기가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필라델피아에는 본촌치킨이 없잖아? 매운양념소스가 발린 닭날개를 뜯는 내 친구가 감탄하는 걸 봐. ‘내가 뉴욕에서 먹던 그 맛 그대로야’ 라며 눈빛을 반짝이는걸 보면 내가 왜 필라델피아 본촌치킨을 적극 소개하는지 감이 잡히겠지?”

포브스코리아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마이클 클라인은 개인적으로 튀긴 음식을 좋아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본촌의 바삭바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본촌치킨에 대한 글을 쓰게 된 이유를 전했다.

“치킨과 어떤 음식을 조합하면 궁합이 맞을까 고민을 많이했어요. 밥이랑 치킨 조합도 생각해보고 빵이랑 치킨 조합도 실험해봤죠. 지금은 직장인들도 점심에 본촌매장에 많이 와서 평일 점심이 엄청 붐빕니다. 이렇게 점심메뉴 정착시키는데만 3년이 걸렸어요.” 서 대표는 현지 소비자에 대한 시장조사(Focus Group Interview)에도 적극적이었다.
 철저한 사전조사로 미국시장서 인정받아
요리계의 하버드라 불리는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와 MOU를 맺은 본촌치킨은 수시로 메뉴개발을 위한 회의를 한다. 현지에 진출할 때는 치킨 이외에도 20여 가지의 옵션을 보여주고, 사업이 될만한 아이템으로 골라서 개발한다. 그 결과 주요 품목인 치킨을 제외하고도 각 나라별로 특이한 메뉴들이 인기를 끌었다. 서 대표에 따르면, 치킨을 제외한 메뉴로 인도네시아는 컵비빔밥, 미국은 떡볶이, 필리핀은 잡채가 잘나간다.

현재 본촌치킨은 해외에 진출한 브랜드 중 매장수로는 3위(농식품부가 실시한 2014년 외식기업 해외진출 실태조사)를 기록 했다. 롯데리아나 파리바게트 같은 브랜드를 제외한, 치킨을 주로 다루는 동종업계만 놓고본 결과다. BBQ(351개), 투다리(137개) 바로 다음이 본촌치킨(122개)이다.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 최초로 2003년 해외시장에 진출해 주목 받은 BBQ가 중국을 첫 관문으로 삼아 스페인, 일본, 미국, 베트남 등으로 진출했다면, 본촌치킨은 비슷한 듯 다른 궤적을 보인다.

올해 본촌치킨은 바레인, 미얀마, 베트남, 호주, 뉴질랜드 등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예정이다. 2013년 서 대표는 해외에서의 인기를 토대로 처음 사업을 시작한 부산에 본촌치킨 해운대점(처음 매장과는 위치가 다르다)을 오픈했다. 그에게 부산바다는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겪으며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같이한 추억이 깃든 장소다.

“저는 부산이 참 좋아요. 2002년 이 사업하면서 처음 부산에 내려왔거든요. 힘들 때 이 바다를 보면요 콱 트이는 느낌. 그걸 못 잊어서 서울이나 대구로 안가고 다시 부산으로 온 거 같아요.”

- 글 임채연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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