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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동차 시장의 춘추전국 시대

중국 자동차 시장의 춘추전국 시대

지난 4월 20일 상하이 오토쇼에서 베일을 벗는 신형 포드 토러스. 고급 세단으로 중국 사업가들을 겨냥한 모델이다.
지난 4월 29일 막을 내린 상하이 오토쇼엔 기록적인 인파가 몰렸다. 옛 영국차 브랜드로 현재 상하이 소재 중국 국영 자동차기업 SAIC가 소유한 MG를 광고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영국의 인기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의 사진이 중국 국제전시센터로 이어지는 지하철 터널 벽에 도배됐다.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 중국 가수 저우제룬, 배우 가오위엔위엔 같은 아시아 스타들, 르노-니산 CEO 카를로스 곤 같은 자동차 업계 거물도 직접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매출 증가율은 2013년 13.9%에서 지난해 6.9%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세계 최대 시장이라는 사실을 일깨운 행사였다. 지난해 중국에선 자동차 2300만 대 이상이 팔렸다(미국에선 1650만 대). 애널리스트들은 성장세의 지속을 점친다. 자동차 컨설팅업체 오토모티브 포사이트의 예일 장 상무는 “중국시장이 여전히 성장 중”이라고 말했다. “매년 판매가 약 100만 대씩 늘어난다. 지속 가능한 추세다. 세계 최대의 시장이 아직도 이런 속도로 성장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중국 자동차 시장도 분명히 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급증하던 중국 대도시의 매출이 도로 포화와 환경 우려로 둔화됐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는 렌터카와 카풀제의 증가를 내다봤다. 그러나 글로벌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최신 분석에 따르면 규모가 작은 수백 개 중국 도시에서 성장 잠재력이 크다. 물론 중국에서도 최고급 시장의 둔화는 확실하다.

예를 들어 올해 상하이 오토쇼에선 한 가지가 빠졌다. 수년 동안 중국 자동차쇼에선 노출 심한 여성 글래머 모델이 붙박이로 등장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대대적인 부패추방과 과소비 근절운동을 벌이는 중국 지도부를 의식한 절제된 분위기 탓인 듯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급 자동차 판매에도 부패추방 운동의 파급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가오펑 컨설팅의 자동차업계 전문가 빌 루소 이사는 “과시적 소비라는 측면에서 최고급 부문이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돈이 많아도 자녀가 람보르기니, 페라리, 롤스로이스 같은 초고가품에 열광하는 것으로 비치길 원치 않는다.” 2012년 링지화 통일전선부장이 페라리를 몰다 사망한 아들의 사고를 은폐하려다가 자신의 부정부패 혐의가 불거져 결국 체포됐다는 사실도 분명히 초고가 자동차 구입 저조와 관련 있다.

그러나 루소 이사는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같은 “좀 더 보편적인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우 부패추방 운동의 타격을 크게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프리미엄 자동차 200만 대 이상이 팔렸다. 그 정도 수준의 고가품을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시장이 계속 커지면서 고급 상품이 차지하는 비율도 증가한다.”

(왼쪽부터) 중국 SUV 제조업체인 창청자동차는 신형 하발8 모델을 선보였다. 중국산 SUV의 매출은 지난해 50% 이상 증가했다. 스웨덴의 볼보를 인수하면서 유명해진 중국 저장성의 지리그룹이 상하이 오토쇼에서 선보인 최신 모델. 상하이 오토쇼에 전시된 중국 창안자동차의 전기차.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15만 달러(약 1억6500만원) 이하의 프리미엄 자동차 제조업체엔 좋은 소식이다. 독일의 ‘빅3’ 브랜드(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는 중국 시장에서 그 부문의 약 70%를 차지한다. 중국 시장 점유율을 키우고 있는 재규어 랜드로버도 그중 하나다. 전부 이번 상하이 오토쇼에서 신형 모델을 선보였다. 또 포드는 신형 토러스, 링컨은 신형 MKX를 론칭했다.

그러나 중국 같은 역동적인 시장에선 그런 대형 브랜드도 적응이 필요하다. 상하이 오토쇼에서 재규어 랜드로버의 신형 간판 모델은 중국산 레인지로버 이보크였다. 메르세데스-벤츠, 닛산 등도 새로운 SUV를 선보였다. 중국에선 오랫동안 럭셔리 세단이 시장을 이끌었지만 지난 2년 사이에 SUV 판매가 급증했다(2014년 50% 이상 증가).

예일 장 상무는 “중국 도시의 번잡한 도로에선 세단보다 더 높은 차가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지난 5년 동안 중국의 고속도로망이 급속히 확장됐기 때문에 이제 도로가 장거리 운전에 상당히 적합해졌다. 게다가 SUV 운전석이 더 편안하다. 또 SUV 소유는 사회적인 선언이기도 하다. 일반 세단보다 약간 더 비싸고 멋있어 보인다. 젊은 운전자는 SUV를 몰면 감각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중국 같은 출세지향적인 사회에선 그런 요인이 중요하다. 대형 브랜드의 광고도 그런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다. 상하이 오토쇼에서 높이 걸린 닛산의 SUV 광고는 ‘새로운 젊은 힘을 마음껏 누려라’라고 선언한다. 한편 BMW는 신형 X5 SUV가 자택에서 전기 충전이 가능한 하이브리드라는 점을 강조했다. 젊은 운전자들이 갈수록 심각하게 생각하는 환경 문제와 중국에서 전기차의 성장을 가로막는 충전소 부족 둘 다에 초점을 맞춘 판촉이다.

SUV 부문의 호황은 중국 시장의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도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가장 잘 팔린 SUV 10개 모델 중 8개는 중국 브랜드였다(2013년엔 톱10 중 1개만이 중국 모델이었다). 루소 이사는 외국 브랜드가 세단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의 구매력이 낮았던 1990년대에 이 부문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가격을 낮춰 팔았다. 그러나 SUV 시장에선 외국 브랜드의 판단 착오가 드러났다.

루소 이사는 “어느 시장에서든 SUV가 일반 승용차보다 비싸다”고 말했다. “따라서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SUV 가격을 훨씬 높게 책정했다. 그 결과 대당 수익률이 낮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업체들이 파고들 틈새시장이 생겼다. 중국 브랜드가 그 중간 시장에서 상당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들은 일반 세단 시장에선 갖지 못하는 이점을 누린다.”

예일 장 상무는 “일부 외국 브랜드가 세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뒤 자만심이 생겨 판단 착오를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일부 업체는 SUV 모델이 1~2개밖에 없다. 하지만 소비자 취향은 다양하다. 요즘 중국 시장에선 좀 더 다양한 모델이 필요하다.” 게다가 중국 브랜드가 이젠 가격으로만 경쟁하진 않으며 기술과 품질도 상당히 좋아졌다고 그는 덧붙였다. “외부 디자인과 내부 인테리어를 볼 때 요즘은 로고를 가리면 어느 게 외국차고 어느 게 중국차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10년 전엔 독일의 시속 65㎞ 주행시 충돌 실험에서 중국 SUV가 형편 없는 점수를 받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완전히 다르다고 예일 장 상무는 말했다.

피에르 르클레르크가 그런 변화의 상징적 인물이다. BMW의 디자이너로 13년을 일한 르클레르크는 현재 중국의 창청자동차에서 일한다. 올해 상하이 오토쇼에서 그가 만든 창청자동차 하발 브랜드 원형 2가지가 각광 받았다. 한편 창청자동차의 최신 모델 하발 H8은 소매가 약 3만 달러(약 3300만원)로 중국산 SUV 중 가장 비싼 편이다.

르클레르크는 창청자동차가 SUV 부문에 초점을 맞춰 가치사슬에서 더 높은 곳을 차지하려는 확고한 전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약 3년 전 창청자동차는 시장 하나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중국 시장과 다른 곳의 시장을 분석한 결과 SUV가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어설프게 하기보다 SUV에만 집중해 프리미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중국으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경력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창청자동차가 발전을 진지하게 원하고 노련한 외국 직원을 채용하며 그들에게 재량껏 설계할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그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창청자동차의 주력 시장은 내수라고 르클레르크는 말했다. “이런 브랜드가 성장할 잠재력은 아주 크다. 아직 차가 없는 중국인, 곧 차을 구입할 수 있는 중국인이 아주 많다. 그들은 벤츠처럼 비싼 차가 아니라 중국 브랜드를 선호하며, 중국 브랜드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창청자동차도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한다. 반드시 고급일 필요는 없다. 르클레르크는 “중국 브랜드가 수십 개나 되기 때문에 생존하려면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생산한 하발 모델 75만 대 중 15만 대가 해외에서 팔렸으며, 현재 러시아에 공장을 짓고 있고, 불가리아엔 이미 공장이 있으며, 남미로도 거점을 확대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예일 장 상무는 중국 브랜드가 즉시 세계 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진 못하겠지만 외국 디자이너를 채용하는 중국 업체가 많아지면서 10년 안에는 상당한 지명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2010년 중국 자동차회사 지리그룹이 인수한 볼보는 중국산 자동차를 미국 시장에 수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일부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산’ 제품의 품질에 관한 인지도도 상당히 개선됐다. 루소 이사는 “볼보가 중국에서 차를 만들어 외국에 팔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가 외국 브랜드를 갖고 국제 파트너의 수준에 맞게 제조된다면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외국 제품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자동차업체의 야망은 올해 상하이 오토쇼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과거 외국 합작파트너의 보조 역할만 하던 일부 업체가 이제 독자적인 새 브랜드를 내놓는다. 푸조시트로엥과 중국 파트너 둥펑자동차가 공동 출시한 신형 브랜드 에올루스가 대표적이다.

경쟁이 치열한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도 새로운 기업이 속속 등장한다. 상하이 오토쇼에서 장쑤성의 카웨이자동차는 크로스 컨트리 SUV를 자랑스럽게 전시했다(‘미국 스타일’이라는 슬로건 아래 2만 달러에 판매한다). 저장성의 중타이자동차는 중국에서도 지명도가 거의 없지만 미니카부터 컴팩트카, 세단, SUV 등 다양한 신제품군을 선보였다.

중국의 일부 소형 브랜드는 지적재산권을 무시한 짝퉁 개발에 더 관심이 많다는 비난을 받지만 그들의 야심은 무시 못한다. 예일 장 상무에 따르면 현재 중국 국내 브랜드는 약 27개로 앞으로 통폐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중타이 같은 일부 업체는 사세 확장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다. 카웨이자동차는 “가장 존경 받는 자동차 그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전부가 그 수준에 도달하진 못하겠지만 지난 30년 동안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들로부터 노하우를 배운 중국 자체 브랜드가 이제 날개를 펼치기 시작할 태세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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