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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탈출 게임’에 갇혔다

세계가 ‘탈출 게임’에 갇혔다

시간 맞춰 방에서 탈출하려면 주변의 모든 사물을 주도면밀하면서도 신속하게 분석해야 한다.
데이비드 스파이러 팀의 차례다. 사기를 북돋울 필요도 없다. 아드레날린이 용솟음친다(다량의 카페인 힘이다). 문지방을 넘어서자 등 뒤로 문이 닫힌다. 7명의 남녀가 부리나케 방을 뒤진다. 서랍을 열어젖히고 벽에 걸린 그림 액자를 들어 올리려 애쓴다. 스파이러가 양탄자를 뒤집는다. 갈수록 소란스러워지는 혼란의 도가니를 향해 자신이 발견한 것을 큰소리로 알린다.

탈출 게임(Room escape games)은 방 안에 갇힌 참가자들이 힌트를 찾아내 어떤 스토리나 테마와 관련된 퍼즐을 풀고 정해진 시간(보통 1시간) 내에 탈출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이미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들어 갑자기 미국에서 뜨면서 대학 연구자와 기업 마케팅 관계자들까지 주목한다. 시라큐스대학 ‘놀이가 중요하다(Because Play Matters)’ 게임 연구소의 스콧 니콜슨 소장은 게임의 쌍방향적인 성격에 높은 점수를 준다. “사람들이 스크린의 세계를 떠나 서로 직접 대면할 수 있다. 탈출 게임이 갖가지 과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팀원 각자에게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스파이러의 그룹 중 린지 프렐릭과 리사 래딩은 단어 퍼즐에 능하고, 제이슨 리스낵은 숫자의 대가이며, 제이슨 카시오는 퍼즐의 의도된 순서를 우회하는 방법을 찾는 ‘해커’다. 이들 친구 그룹의 리더인 스파이러는 아마 미국 최초일 수 있는 ‘탈출’ 블로거이자 평론가로도 자리매김했다.

스파이러의 팀에 처음 5분간은 “집단적 아수라장”이라고 프렐릭이 말했다. “우리는 방을 뒤집어 놓는다.” 그들이 이처럼 모든 퍼즐과 힌트를 곧바로 수집하는 전술을 수립한 데는 이유가 있다. 스파이러 친구들 팀이 처음 탈출 게임에 도전했을 때 초보자다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리스낵이 말했다. “퍼즐 하나를 풀려고 10분 동안이나 끙끙거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빠뜨린 힌트 하나가 내가 앉아 있던 의자 쿠션 밑에 숨겨져 있었다.”

때로는 지나치게 철저할 때도 있다. 한번은 옛 진료소 자리에서 게임하던 중 스파이러가 소변 샘플을 찾아냈다. 그것을 힌트로 확신하고 진지하게 꺼내 들고 다녔다. 알고 보니 예전부터 방치된 쓰레기였다.
 올해 미국의 게임 방 300개 넘을듯
탈출 게임은 ‘크림슨 룸(Crimson Room)’ 등의 마우스를 이용하는 컴퓨터 게임에서 파생됐다. 2007년 일본에서 실제 체험 게임으로 출발한 뒤 아시아 각지로 퍼져나가 2011년께 동유럽에 이르렀다. 특히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미국의 경우 2012년 일본에서 스크랩(SCRAP)이 샌프란시스코로 수입됐다. 몇 년 동안 다른 경쟁 게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난 18개월 사이 탈출 게임이 놀라운 속도로 퍼져나갔다. 지난 5월 문을 연 ‘내슈빌 이스케이프 게임’의 공동창업자 조너선 머렐은 최근 미국 플로리다에서 제2의 게임방을 내려는 참이었다. 올해 테네시주 피젼 포지와 텍사스주 오스틴에도 지점을 열 계획이다.

“우리도 미처 파악하지 못할 만큼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스파이러가 말했다. “좋은 곳은 정말 예술이다.”

‘룸 이스케이프 어드밴처스’의 마티 파커 사장은 미국에 80개소 이상의 게임 방이 있다고 추산하고 연말까지 300개를 웃돌 것으로 예상한다. 2013년 12월 시카고에서 첫 사업장을 열고 지금은 미국 각 도시 18개 외에도 해외에 3개 게임방을 운영한다.

운영자 대다수가 게임 설계와 퍼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제프 신은 IBM 컴퓨터 엔지니어 출신으로 전기 공학자, 그리고 기계 공학자와 손잡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엑시트 게임을 개발했다. 경보를 울리는 레이저 벽 같은 장치를 갖춘 게임이다. “기술 수준이 좀 더 높은 게임을 설계하고 싶었다”고 그가 말했다. “할리우드 같은 마법이 우리의 강점이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에 출연한 듯한 기분이 들지 싶다.”

뉴욕에 소재한 ‘미션 이스케이프 게임스’의 ‘하이드아웃’ 방에서 게임을 하던 스파이러 팀이 한 구역에서 찾아낸 힌트와 다른 곳의 단서를 결합하자 삐꺽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곧 다른 방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가 열린다. (게임방 운영자들은 세부정보는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미션 이스케이프’ 창업자 데렉 탬은 통로가 열릴 때 들리는 삐걱거리는 소음이 진짜라고 말한다. 그러나 두 번째는 일부러 음향 효과를 내야 한다. 아니면 참가자들이 “이 낡은 차이나타운 건물에서 원래 나는 기괴한 소리라고 생각하고 지나쳐 통로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탈출 게임은 급격한 진화과정을 거쳐왔다. 설계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탄성 유발요인(wow factor)’에 더 중점을 뒀다. 불가시광선(black light), 비밀통로, 트랩도어(바닥·천장의 작은 문)가 갈수록 기본 장치로 자리 잡는다. 내슈빌 이스케이프의 머렐 창업자는 특정한 효과를 머리 속에 그려본 뒤(“참가자들이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려 벽을 폭파하면 정말 멋지겠다”) 맞춤 제작자들에게 그것을 구현해 달라고 요구한다.

진화한 게임방에선 초기에 의존하던 숫자 퍼즐과 자물쇠가 사라지고 대신 퍼즐과 힌트의 더 정교한 조합이 자리 잡았다. 몇몇 새로운 대안은 아주 독창적이다. 스파이러 팀의 제이슨 카시오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임으로 2가지를 꼽는다. 스파이러가 심폐소생술 마네킹에 내시경을 사용했던 게임과 쌍안경을 이용해 블럭 아래쪽에 있는 음식점 간판의 힌트를 찾아내는 게임이다. “나는 그런 퍼즐 마니아”라고 머렐 창업자가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처럼 매료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안다. “죄다 숫자 게임인 듯하면 아내는 관심을 꺼버린다.”
 게임 성공률은 20%대
오프라인 탈출 게임은 2007년 일본의 컴퓨터 게임에서 파생한 뒤 아시아 각지로 퍼져나가 2011년엔 동유럽에 이르렀다. 사진은 도쿄의 ‘스크랩 아지토’.
테마와 스토리의 비중도 더 커졌다.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친구들과 또 다른 우주에 있다는 느낌을 원한다”고 래딩이 말했다. 참가자들이 실마리가 단발성이 아니라 연결됐다고 느껴야 한다고 파커 사장은 덧붙인다. 스파이러는 스크랩의 ‘시간여행’ 게임을 예로 든다. 참가자들이 ‘과거’의 방에서 ‘현재’의 방을 바꿔 퍼즐을 푸는 게임이다. 반면 스크랩은 모호한 수학 문제에서 막혀버린다. “이들 게임은 50분간의 따분한 숙제로 둘둘 감싸 놓은 10분짜리 영화처럼 느껴진다.”

스크랩은 일본의 퍼즐들과 마찬가지로 성공률이 한 자리 수라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 “일본인은 참가자가 막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지만 미국인은 그와 다르다”고 머렐 창업자가 말했다. 그들에게는 오락이 목적이다. “게임이 풀리지 않으면 지루해 한다. 성공률은 가장 논란이 많은 문제 중 하나다.” 내슈빌 이스케이프 탈출게임 이용자의 성공률은 전체의 35% 선은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게임 성공률이 20%대지만 더 까다로운 게임을 하나 더 끼워 두는 곳도 많다. “상당히 어려운 과제도 하나 정도 던져줘야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또한 남들은 모두 탈출하는데 자기만 실패하면 머저리 같은 기분이 든다.”

참가자에게 한정된 숫자의 힌트를 허용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제공하는 곳도 있다. 맨해튼에 소재한 ‘미스터리 룸’의 공동창업자 에릭 슈는 시간대별 체크리스트를 갖고 있다. 참가자가 헤매는 듯하면 힌트를 준다. “모든 과정이 완전히 자연스럽게 이뤄지면 좋겠지만 힌트를 주지 않으면 참가자의 90%는 비용만큼 재미를 못 느껴 시장이 몰락한다”고 파커 사장이 말했다.

스파이러 팀은 35분 동안 꾸준히 진척을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숫자 패턴에서 리스낵이 막히고 만다. 결국 재키 밴스(29)와 함께 자물쇠 조합을 풀려 애쓰던 타라 리온스(22)에게 넘기지만 그도 별 수 없다. 낙담한 그들은 두 손 들고 힌트를 요청한다. 중요한 정보를 무심코 ‘해결’ 파일에 놓은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한숨을 쉰다. 그와 함께 패턴이 쉽게 풀리고 답이 모두 들어맞는다.
 교육도구로서의 잠재력도 커
이 업계는 올해와 내년 급성장기를 맞을 전망이다. 스파이러는 라스베이거스를 미개척 시장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포화점이 가까워진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스토리를 훼손하지 않고 신속하게 퍼즐을 바꾸는 방법을 설계자들이 찾아내야 한다고 MIT ‘게임 랩’을 이끄는 릭 에버하트와 니콜슨 소장은 말한다. 고객이 게임 방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열쇠라는 분석이다.

래딩은 고객 서비스가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퍼즐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상당수가 대인관계에 서툰 외골수들이기 때문에 고객 서비스가 미흡할 수 있다”고 그녀가 말했다.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을 듯하다.”

새로운 성장 분야도 있다. 파커 사장은 재미있는 팀워크 개발 훈련을 원하는 기업이 자기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고, 모험을 시도해 잘못 돼도 좋으며, 일에는 절차가 있는데 거기에 팀워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한편 데렉 탬 창업자는 지난해 드림워크스 영화사의 의뢰로 애니메이션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Penguins of Madagascar)’ 방 게임을 주최했다. NBC 유니버설 영화사 소속의 케이블 TV ‘USA 네트워크’는 뉴욕시의 ‘이스케이프 더 룸’과 손잡고 3개 도시의 게임방과 유니버설 테마파크 2곳에서 고고학 모험 시리즈 ‘디그(Dig)’의 홍보 활동을 전개했다.

팬들과 관계를 형성할 필요성 그리고 “판타지와 공상과학 프로젝트를 갈구하는 마니아 층”에 어필하는 잠재력이 탈출 게임의 플러스 요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장차 스폰서가 붙는 탈출 게임이 더 많아지리라고 스파이러는 예상한다.

니콜슨 소장은 탈출 게임을 박물관 같은 곳의 교육 도구로 본다. 그는 뉴욕주 롬에 있는 스탠윅스 요새 국립 기념관의 의뢰로 게임을 설계하고 있다. 미국독립혁명 중 육군이 메시지를 숨긴 방법을 이용한 게임이다. 요새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교육한다. “이들 게임은 교육 도구로서의 잠재력이 크다“고 그가 말했다. 탈출 게임의 성장에 관해 그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그는 덧붙인다.

마감 17분을 남겨두고 스파이러 팀은 ‘하이드아웃’ 방을 탈출한다. 그들은 탬 창업자와 함께 게임을 복기한 뒤 축하 만찬을 하러 웨스트 빌리지의 버거 음식점으로 향한다. 대화 주제가 다양하지만 탈출 게임을 탈출하지는 못한다. 프렐릭은 곧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건너가 게임을 해볼 작정이다. 리스낵과 리온스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탈출 게임을 할 계획이다.

인도에 서서 작별 인사를 할 때 카시오가 음식점의 천막을 보며 도로 주소를 읽는다. “이런 게임을 할 때는 어디 가든 숫자와 패턴에 눈이 간다”고 그가 말했다. “모두가 힌트라는 생각이 든다.”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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