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눈에 보이지 않는 통치자

눈에 보이지 않는 통치자

이탈리아 아프리코에는 사업체나 공장은커녕 상점도 거의 없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났다.
실정 모르는 사람은 이탈리아의 발부리에 있는 소읍 아프리코(인구 3200명)를 지상낙원으로 여길지 모른다. 6월이면 밤중에 대형 거북들이 짙은 포도주 빛 바다에서 기어 나와 아름다운 해안의 불과 몇 ㎞ 북쪽 백사장에 알을 낳는다. 그리고 예수 탄생 300년 전까지 이탈리아 남부가 그리스의 일부였을 당시의 귀중한 청동 조각품이 해저에 반쯤 묻혀 있다가 가끔씩 다이버나 어부들에게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프리코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일 듯하다. 실업률은 40%에 달하고, 일자리를 가진 소수의 평균 연봉 총액은 1만4000유로(1630만원)다. 아프리코에서 30세 이하의 젊은이는 거의 실업자다. 55세 이상이 주민 중 3분의 1을 차지한다. 공식 소득신고에 따르면 연간 총소득이 4만 유로를 넘는 주민은 10명에 불과하다. 일상생활 구석구석에서 빈티가 줄줄 흐른다. 예를 들어 10유로보다 큰 지폐를 바꿔 줄 만한 거스름돈을 가진 상점이나 주점이 거의 없다. 있다 해도 동전을 한 움큼 쥐어 준다.

마을을 둘러싼 변호사들의 뜨거운 설전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사업체나 공장은커녕 상점, 심지어 식품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때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해안선과 짙푸른 이오니아해에 마을을 통과하는 철도가 있지만 관광업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호텔하나 없고 해안 쪽에 여름에만 영업하는 조식 제공 민박집이 하나 있을 뿐이다. 음식점도 일 가비아노(바다갈매기)라는 피자집 한 곳뿐이다. 작은 기차역은 폐쇄됐고 아프리코에 택시 같은 교통수단은 없다. 80㎞ 거리에 있는 지방 수도 레지오 칼라브리아 외에는 어딜 가든 마찬가지다.

번듯한 일자리라곤 공무원뿐이다. 아프리코에선 공무원 일자리라면 라 포레스탈레(삼림위원회)를 가리킨다. 마을 바로 뒤 산간지대를 관리하는 조직이다. 늑대, 독특하고 아름다운 다수의 곤충, 그리고 레몬의 일종인 일 베르가모토가 있는 곳이다. 이 과일은 콜레스테롤을 크게 낮추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엄청난 수익성이 있다. 아프리코 주민의 선택은 간단하다. 삼림위원회에서 일하거나 많은 사람이 그러듯이 타지로 떠나거나, 아니면 국가 내 ‘국가’인 마피아에 가담한다.

한편 청년층에 비해 고령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는 이탈리아의 전반적인 추세로 수십 년 동안 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았다. 지난 2월 발표된 최신 통계에선 평균 사망연령이 현재 이탈리아 여성은 85세, 남성은 80세였다. 하지만 출산율은 여성 1인당 1.39명으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우리는 죽어가는 나라”라고 이탈리아의 베아트리체 로렌진 보건장관이 개탄했다. “이 같은 현상은 모든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자면 경제·사회·보건·연금 등이다.”

아프리코의 교회 맞은편에 선술집 ‘바 크라운(Bar Crown)’이 있다. 이탈리아·빈곤·마피아를 논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싶지만 한편으론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라 코로나(영어로 The Crown)’는 칼라브리아 주 마피아 은드란게타를 지배하는 조직의 이름이다. 시칠리아 마피아 ‘코사 노스트라’를 ‘라 쿠폴라’가 지배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근년 들어 은드란게타가 ‘코사 노스트라’를 밀어내고 가장 막강한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으로 부상했다. 이는 이탈리아 정부가 ‘코사 노스트라’ 소탕 목적으로 1980년대부터 전개한 일제 단속의 결과였다. 또한 은드란게타가 숨죽여 지낸 덕도 있었다. ‘코사 노스트라’의 방식과는 달리 정치인과 판사를 암살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주요 기관 내부로 사람을 들여보내 정계와 사법부에 파고드는 수법을 쓴다. 주요 사업은 코카인 거래다. 거기서 매년 수십억 유로의 수입을 올린다. 아프리코는 그들의 근거지 중 하나다.

따라서 바의 ‘크라운(왕관)’이라는 이름이 영어라고는 해도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어렵다. 바의 앞쪽에는 금색으로 새겨 넣은 왕관 이미지도 있다. 무엇을 상징하는지 한눈에 드러난다.

바 크라운 내부는 십대 청소년들로 만원이다. 건물 앞 포장도로에 놓인 내 테이블 주위로 몰려들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술 취한 십대들이 우글거리는 영국 선술집보다는 훨씬 덜 무섭다. 그러나 이탈리아 남부에서 주의해야 할 건 즉석에서 얼굴로 날라오는 유리잔이 아니다. 하루, 한 주, 또는 몇 년 뒤에 실행되는 계획된 총격이다.

소년들은 모두 고가의 아이폰을 들고 제임스 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아무도 바에서 마실 것을 사지 않는다. 어쨌든 이탈리아인이 술을 많이 마시지 않지만 가진 돈도 별로 없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호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물었다. 한 푼도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하지만 14세쯤 된 가장 어린 녀석 중 하나가 호주머니에서 한 뭉치의 돈 다발을 꺼내 보인다(아마 모두 해서 100유로쯤). 무슨 돈인가? “쟤 아버지가 사업가예요.” 다른 아이들이 대답한다. 어떤 사업인지는 자세히 설명하려 하지 않지만 아이들 중 1명이 마치 힌트를 주려는 듯 랩가수 스타일로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 “시 스파시아, 시 스파시아, 애드 아프리코, 시 스파시아.” 스파시아레라는 단어는 ‘마약을 거래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금 권총을 갖고 있는가? 그 질문에 아이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린다. 학업을 마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의사”라고 레오 베르사치(17)가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이며 말한다. 하지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반에서 가장 똑똑하고 연줄도 웬만큼 있는 아이”라고 친구들이 말한다.

지독한 빈곤과 절망적인 기회부재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코에는 걸인이나 노상범죄가 전혀 없다.

바 크라운 바깥 쪽 테이블에 지갑을 놓고 갔다가 한 주 뒤에 돌아와도 원래 모습 그대로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안토니오 스파타로(17)가 이유를 말한다. “보세요, 아프리코는 아프리카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탈리아의 공적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135%다. 일본과 그리스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2003년 이후 20% 이상 불어났다. 연간 지급이자만 어림잡아 800억 유로다(국방부·교육부·내무부 예산을 합친 액수보다 많다). 이탈리아 경제는 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거의 만년 불황을 겪어 왔으며 지금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물가하락)에 빠져 있다.

공업생산은 2007년 이후 4분의 1이나 감소했다. 지난 5년 사이 경제규모가 10%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공식 실업률은 13.4%이지만 실질 실업률은 20%에 가깝다. 근로자들을 놀려도 좋으니 붙잡아두라고 이탈리아 정부가 망해가는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기 때문이다. 근로연령 이탈리아인 중 실제로 일하는 비율은 58%에 불과하다(다른 선진공업국에선 65%다).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률은 무려 43%에 달한다. 이탈리아 기업 대상의 ‘총세율’은 68.6%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경제 일간지 ‘솔리 24 오레’ 보도). 영국의 경우엔 36%다. 부가가치세율도 22%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북부의 상황도 나쁘지만 남부는 훨씬 더 심각하다. 특히 칼라브리아 그리고 마피아가 곧 국가인 아프리코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8월 이탈리아 정부가 비상조치권을 발동해 마을 의회를 해산시켰다. 특히 관급 계약 분야에서 마피아 개입 혐의 때문이었다. 2003년에도 이 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4년이 지난 뒤에야 정상적인 민주 정치체제로의 복귀가 허용됐다. 그러고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이번에도 신임 읍장과 마을 의회를 대신해 로마에서 파견된 공무원 3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마을 행정을 이끈다.

행정 당국은 아프리코에 관해서는 함구하려고 작정한 듯했다. 그들은 물론 경찰관 심지어 성직자도 내 질문에 답하려 하지 않는다. 돈 주제페 자이코보 신부는 “나는 그럴 만한 권한이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곧 바 크라운 앞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 주위로 일단의 중년 남성들이 접근해 십대 청소년들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훨씬 더 기세등등하다. 내가 대답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폰으로 내 답변을 확인한다.
 유로화가 만병의 원인
기차역, 택시 또는 호텔없이 아프리코의 관광업은 앞날이 없다.
아프리코의 빈곤은 누구 탓인가? 내가 최대한 큰 소리로 용기를 내어 묻는다. 정부인가 국민인가? 그중 성을 밝히지 않은 고령자인 프란체스코가 소리친다. “국가 잘못이지 우리 탓이 아니다. 우리는 비참한 삶을 영위한다. 우리는 망했다. 우리에겐 바다·산·해가 있지만 정부가 없다. 우리 스스로 만들 수도 없다. 도로나 철도, 공장도 없다.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마피아에도 책임이 있지 않은가? “어째서 그들은 이 빌어먹을 마피아 얘기를 계속 꺼내는가? 여기엔 마피아가 없다. 아프리코에는 마피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실패에 대한 희생양을 찾으려고 우리를 범죄자 취급해 왔다. 그것은 음모”라고 프란체스코가 말했다.

이는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앵무새처럼 항상 되풀이하는 말이다. 아프리코에 마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바텐더 바르톨로 모라비토(31)는 환경학과를 졸업하고 자녀가 없는 기혼자다. 풀타임으로 직장에 다닌 적이 없고 가끔씩 바 크라운에 나와 일하며 사촌을 돕는다. 이탈리아에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실업수당이 끊긴다. 그리고 풀타임 계약으로 일하다가 해고된 사람만 혜택을 받는다. 모라비토는 공교롭게도 아프리코에서 가장 유명한 마피아 가문의 성(姓)이다. “나는 원예 사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세무당국과 마을 의회가 세금과 관료행정으로 숨통을 조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리고 어쨌든 은행이 융자를 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아프리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우리는 상부상조한다. 나는 아버지 밭에 나가 일하고 토마토나 채소, 또는 양에서 얻은 리코타 치즈, 또는 닭이 낳은 달걀 약간을 이웃에게 나눠준다. 그러면 그 대가로 자기 가족의 땅에서 수확한 와인과 올리브 오일을 건네준다. 아무도 남을 돕지 않는 대도시에서 산다면 지금쯤 우리 모두 죽었을 것이다.”

그런 가난에도 불구하고 공식 통계에 따르면 아프리코 주민 3200명이 1783대의 자동차를 소유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해 아프리코를 소재로 한 영화 ‘암흑의 영혼(Anime Nere)’이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3형제가 처음엔 마약밀매에 휘말렸다가 이어 마피아에 가담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는 줄거리다. 아프리코 출신인 지아치노 크리아코의 소설이 원작이다. 그의 부친 도메니코는 1993년 마피아 총격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의 형 피에트로는 이탈리아의 30대 마피아 중 1명으로 지명수배됐다가 2008년 체포됐다.

“젊은이들은 분명 일하지 않는다. 맞다, 부모에게 얹혀 살지만 그들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만한 길이 없다. 따라서 은드란게타의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다”고 크리아코가 말했다.

영화 속 배우 중 다수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아프리코 주민이었다. 그중 1명인 스테파노 프리올로(50)도 바 크라운의 중년 남성들 속에 섞여 있었다. 마리화나 연기를 내뿜으며 그가 털어놓았다. “맞소, 물론 마피아는 존재하지. 하지만 진짜 마피아는 화이트칼라야. 무슨 뜻인지 알겠소? 그들은 위에서 내려오지. 그것은 우리 잘못이기도 해. 그런 시스템에 저항해 들고 일어설 줄을 모르니까.” 왜 못하는가? “이곳 아래쪽 끝의 칼라브리아에서 사는 우리는 아랍인이지 그리스인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라고 그가 항변했다.

금요일 밤이지만 인근 피자집 일 가비아노는 파리를 날린다. 파스쿠알 로메오(29)와 프란체스코(31) 형제가 문을 연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금요일 밤에 평균 8개의 피자가 팔려나간다고 한다. 그 밖에 테이크아웃 주문이 10개 정도 된다. 건 당 얼추 5유로 안팎의 수입이 생긴다. 1일 총매출이 90유로가 된다. 다행히 매장 임대료는 내지 않는다. 부모님 댁 1층에 피자집을 차렸기 때문이다.

파스쿠알은 빵과 케이크 만드는 법을 정식으로 교육 받았다. 하지만 8년간 근무하던 제과점을 그만뒀다. 매일 버스를 타고 레지오 칼라브리아(편도 1시간 거리)로 출퇴근했지만 제과점에서 음성적으로(under the counter) 받는 한 달 순수입이 700유로에 불과했다. 따라서 제과점 주인은 세금이나 그의 연금도 부담하지 않았다.
 마피아는 주민 돌봐주는 ‘공동체’
아프리코의 최대 직장은 삼림위원회지만 베르데강의 말라붙은 강바닥은 변함없이 쓰레기밭이다.
“지난 5년 사이 총체적인 위기를 맞았지만 진짜 문제는 유로화”라고 파스쿠알은 말했다. “유로가 도입됐을 때 물가는 하루아침에 2배로 뛰었지만 급여는 그대로였다. 이탈리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유로화를 버리는 일이다. 유로화 때문에 우리 모두 망했다. 청년층은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형제가 수지를 맞추려면 매달 2250유로가 손에 들어와야 한다. 세금과 연금 납부액 1000유로, 피자 오븐에 불을 피울 땔감 비용 250유로, 밀가루와 요리 재료 비용으로 1000유로가 든다. 은행 융자를 받으면 도움이 되겠지만 파스쿠알은 그럴 생각이 없다. “나는 은행과 거래하지 않는다. 그들은 날강도들이다.” 그는 3년 전에 결혼했고 아내는 전업주부다. 아기를 가질 계획은 없다. “내가 웃는 건 울지 않기 위해서다.”

이탈리아, 특히 남부의 끝없는 경제위기를 감안할 때 분위기가 훨씬 더 험악하고 심지어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짐작할지 모른다. 그러나 프란체스코 로메오의 말은 더 현실적이다. “혁명은 어느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하듯 하는 일이 아니다. 누구와? 어떻게? 혼자선 솔직히 말해 제 무덤을 팔 뿐이다.”

도메니코 베르사치(57)는 아프리코 읍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2007년 초선 후 2012년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여름 이탈리아 정부에 면직처분을 받았다. 그가 이끄는 마을 의회에 마피아가 침투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그는 바 크라운에서 만난 십대 베르사치의 사촌이다. 나와의 약속 장소로 인근 비안코 마을의 외진 바를 고집했다. 아프리코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피아’나 ‘은드란게타’라는 용어를 입에 담지 않는다. 대신 전과자라는 의미의 ‘프레주디카티’만 언급한다. 그의 논지는 간단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은드란게타라는 마피아 조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소장에서 그들은 마을 의회의 정식 직원 19명 중 10명이 전과자라고 한다”고 베르사치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을 의회에서 30년 동안 근무했고 내가 취임하기 훨씬 전에 그곳에 발을 들여 놓았다!”

“또 그들은 내가 전과자들과 관계있다고도 했다”고 베르사치가 덧붙였다. “누구인가?” 내가 물었다. “처남과 장인이다.”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가?” 결국엔 어느 정도 실토한다. “마약이다.”

실제로 그의 장인인 파스쿠알 몰리카는 감방에 있다. 1993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돼 이탈리아 교도소에 수감됐다. 대형 ‘은드란게타 국제 마약밀매 사업’에서 담당한 역할 때문이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 신문은 당시 그를 ‘카포반다(마피아 두목)’로 묘사했다. 이어 2006년 58세 때는 국제적인 마약밀매를 주도한 칼라브리아 마피아 조직원 24명 중 1명으로 레지오 칼라브리아에서 재판을 받고 다시 수감됐다. 이번에는 20년 형을 받았다. 처남에 관해서는 그의 이름조차 밝히려 하지 않았다. 필시 처남이 장인보다 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 것 같았다.

“그게 어떻단 말인가. 그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변호사이자 아프리코 축구 팀을 이끄는 베르사치가 반문했다. 그의 축구팀은 지역 아마추어 리그의 선두를 달린다. 팀의 색깔이 핏빛 선홍색이다. 그는 읍장 면직처분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자신의 승소를 확신한다.

20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이탈리아 정부는 마침내 코사노스트라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번엔 은드란게타에 칼날을 겨눴다. 지난 5년 동안 칼라브리아를 비롯한 이탈리아 각지에서 칼라브리아 마피아 조직원 수백 명(상당수가 아프리코 출신)을 체포했다. 그중 다수가 철창 신세를 졌다. 가장 최근의 대형 은드란게타 소탕 작전은 지난 1월에 있었다. 공산당 시대 이후 이탈리아 좌파의 아성인 북부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 마을 안팎에서 117명이 체포됐다. 국영 및 준국영 사업체에 대한 마피아의 조직적인 침투에 관여한 혐의였다.

베르사치는 칼라브리아 출신에 변호사이기도 하다. 아프리코 마을 의회에 침투하지는 않았더라도 마피아가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 그도 인정해야 한다. “마피아가 어디 있는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그가 항변한다. 나중에 로코 무스카리 기자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지역 매체 ‘라 가제타 델 수드’의 마피아 전문가다.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은드란게타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오메르타’로 알려진 침묵의 규약에 따라 움직이는 일급비밀 사회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은 은드란게타를 마피아 조직으로 보지도 않는다. 국가와 달리 자신들을 돌봐주는 공동체로 여길 뿐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남부 빈곤의 해법은 무엇인가? “빈곤을 타파하려면 먼저 은드란게타를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할 때 정부는 항상 없었고 따라서 주민들은 마피아를 선택했다.” 은드란게타 조직원과의 만남을 주선해줄 수 있는지 무스카리 기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미 1명 이상을 만났고 그들은 이미 당신에 관해 속속들이 안다”고 그가 답했다. “하지만 당신은 그들에 관해 눈곱만큼도 모른다.”

- 번역 차진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16회 로또 1등 ‘15·16·17·25·30·31’...보너스 번호 ‘32’

2 의협, 의대 자율 증원안 수용 거부...의료개혁특위 불참

3이창용 한은 총재 "중동 확전 않는다면 환율 안정세 전환"

4권은비부터 김지원까지...부동산 큰손 ‘연예인 갓물주’

5현대차그룹 계열사 KT?...대주주 심사 받는다

6尹, 24일 용산서 이재명 회담?...“아직 모른다”

71000만 영화 ‘파묘’ 속 돼지 사체 진짜였다...동물단체 지적

8비트코인 반감기 끝났다...4년 만에 가격 또 오를까

9‘계곡 살인’ 이은해, 피해자 남편과 혼인 무효

실시간 뉴스

11116회 로또 1등 ‘15·16·17·25·30·31’...보너스 번호 ‘32’

2 의협, 의대 자율 증원안 수용 거부...의료개혁특위 불참

3이창용 한은 총재 "중동 확전 않는다면 환율 안정세 전환"

4권은비부터 김지원까지...부동산 큰손 ‘연예인 갓물주’

5현대차그룹 계열사 KT?...대주주 심사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