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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2000] 투자계 큰손, 빌 애크먼 2.0 시대

[GLOBAL 2000] 투자계 큰손, 빌 애크먼 2.0 시대

월스트리트에서는 행동주의 투자가 연일 화제다. 그러나 행동주의 투자를 가장 과감히 실현 중인 투자자 빌 애크먼은 칼 아이칸보다 워런 버핏에 가까운 투자인생 2막을 조용히 시작하는 중이다.4월 초, 맨해튼 미드타운의 크라운 플라자 호텔 회의장. 헤지펀드와 로펌, 투자기금, 대규모 연금에서 내로라하는 투자자 수백 명이 모였다. 무대 위로 빌 애크먼이 힘차게 올라왔다. 액티브-패시브 투자자 회담에서 자신이 ‘퍼싱스퀘어 2.0’이라 이름 붙인 투자 방식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단기 투자이익에 집중하기 보다 장수기업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투자자가 되겠단 다짐을 보였다.

청중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반응을 본 애크먼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는 행동주의 투자로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행동주의 투자’는 말이 좋지, 사실 ‘기업 사냥꾼’을 완곡히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청중을 둘러본 애크먼은 자신이 편하게 느끼는 전문 분야로 되돌아갔다. 그의 투자 발언 중 가장 악명 높고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허벌라이프(Herbalife)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건강보조식품 다단계 회사 허벌라이프를 ‘피라미드 조직’이라 비난하며 주가하락에 10억 달러의 돈을 건 적이 있다. “(허벌라이프가) 형사 변호사를 확보했거나 물색 중이라는 소식을 알고 있다”고 애크먼이 허벌라이크 최고 경영진에 대해 아리송하게 말했다. (허벌라이프는 애크먼의 주장을 부인했다.) 얼마 안 있어 인터넷과 CNBC에는 ‘애크먼, 허벌라이프 경영진 변호사 물색 중. 불길한 신호’라는 헤드라인이 올라왔다. 증시에서는 시간외 거래로 허벌라이프 거래 주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가는 0.3% 하락하는데 그쳤다.
 지난 한 해 최고로 ‘핫’했던 투자자
그럼 연설 주제였던 ‘퍼싱스퀘어 2.0’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애크먼은 지난 한 해 최고로 ‘핫’했던 투자자다. 헤지펀드 가치는 37% 상승했고(시장평균 2% 상승), 순자산은 2배 가까이 증가해 250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런 사람이 내린 가장 큰 변화 결정은 화제가 되지 못하고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서 서쪽으로 10마일(약 16㎞) 떨어진 곳에 숨어버렸다. 숨이 멎을 정도로 황량한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레드락 캐니언 국립보존지구에 가면 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쇼핑지구 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을 찾을 수 있다. 서부 사막 세이지브러시 사이로 건물이 솟아있는 곳이다. 약 4만평 부지에는 쇼핑 매장과 사무소,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백화점 메이시스(Macy’s)에서 애플 등 다양한 브랜드가 눈에 보인다. 대형 쇼핑몰이 쇠락하기 전 전성기가 생각나는 구성이다. 옥외 쇼핑몰 보도 아래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The Best Is Yet to Come’이 흘러나온다. 최고의 시간은 다가오는 중이다. 대형저택 수천 채에 입주민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모두 잠재 고객이다. 쇼핑몰 주변에 곳곳에는 타운하우스가 들어서는 중이다. 물 부족이라고?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서멀린에서는 딴 세상 이야기다. 계획지구로 한창 개발 중인 이 곳에서는 어딜 가나 골프장과 수영장이 보인다. 야자수가 양쪽으로 늘어선 거리와 막다른 골목에는 학교와 교회가 있고, 사이사이를 자전거 길이 지나간다.

서멀린을 개발 중인 회사는 전설적이지만 대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동산 개발사 하워드 휴스 코퍼레이션이다. 하워드 휴스의 지분 26%를 보유한 사람은 바로 회장 애크먼이다. 서멀린 개발은 하워드 휴스 자산 중에서도 핵심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하워드 휴스의 유일한 자산은 아니다. 하워드 휴스는 서멀린을 포함해 총 4개의 계획 커뮤니티를 개발 중이고 30개의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수입은 2014년 6억3500만 달러에 달했고, 51억 달러의 자산 중 영업수익은 1억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앞으로는 418만㎡ 부지에서 각종 주거·쇼핑·상업지구 개발을 진행한다. 개발지역도 휴스턴에서 워싱턴 D.C. 준교외까지 다양하다. 뉴욕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 재개발을 진행 중이고, 호놀룰루에서는 호화 고층건물 개발을 24건이나 진행할 수 있는 공간에서 해안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워드 휴스는 내가 실질적으로 경영하는 유일한 회사”라고 애크먼은 말했다. 애크먼은 자신의 헤지펀드 퍼싱스퀘어를 통해서는 부동산이나 기타 다른 어떤 비상장기업에 직접 투자할 수 없다고 합의한 적이 있다. “하워드 휴스는 내가 가장 많은 통제권과 영향력을 가졌으며 많은 정성을 들여 평판 지분(reputational equity)을 가장 많이 확보한 곳이다.”

글쎄, 아직은 충분치 않다. 부동산업계에서 하워드 휴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은 거의 없다. 애크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는 곧 변할 것이다. 애크먼이 하워드 휴스를 지주사로 내세워 퍼싱스퀘어를 변혁 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LA나 시카고, 뉴욕 등 대도시의 번잡한 삶에 지친 가족에게 서멀린이 낮은 세율과 상큼하게 조성된 생활환경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제공하는 것처럼 하워드 휴스는 애크먼에게 모든 사람이 증오해 마지 않는 현대 기업 사냥꾼에서 제국을 구축하는 기업가로 변신할 기회를 안겨준다.

신세대 행동주의 투자자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긴 하지만 49세의 애크먼은 자신이 월스트리트의 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으로 평가될 만한 업적을 들으면 발끈할 정도로 싫어한다.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허벌라이프를 두고 치열한 전쟁을 펼쳤던 숙적 칼 아이칸과 비교하면 특히 더 거북해한다. “우리는 아이칸과 아주 다르다”고 애크먼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이칸의 신속한 매매와 임시방편식 단기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회사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업에 투자한다.”

대신 그가 모델로 삼는 사람은 워런 버핏이다. 투자거래에만 집중하던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섬유 주식회사를 발견하고 이를 매입한 후 다른 기업을 인수해서 그 밑에 집어넣으며 지주회사를 설계했다. 애크먼도 지주사를 가지고 있다. 2010년 인수한 자산으로 구축한 회사다. 하워드 휴스라는 회사 이름은 그가 서멀린 프로젝트를 손에 넣을 때 따라온 보너스와 같았다. 그러나 영속하는 장수기업으로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마르지 않는 돈’, 영구자본이 필요하다. 애크먼이 운영하는 헤지펀드들은 장기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출자자들이 분기별로 이익을 회수할 권리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상 헤지펀드는 투자거래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 10월 애크먼은 암스테르담 증시에서 거래되는 신생기업 퍼싱스퀘어 홀딩스 주식을 발행해 미국 외 투자자로부터 65억 달러의 영구자본을 모집했다. 여기에 자기 자본과 퍼싱스퀘어 헤지펀드 직원의 돈을 더해 영구자본 보유액을 80억 달러로 끌어올렸다. (총 운용자산은 현재 195억 달러를 기록 중이다.)
 뉴욕의 부동산 기업가 출신
“퍼싱스퀘어 홀딩스는 기업이 투자 스타일에 따라 압력이나 조롱을 받는 시기가 있다는 사실을 유념한 결과”라고 마이클 포터 하바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말했다. 1990년대 애크먼을 가르쳤던 포터 교수는 현재 퍼싱스퀘어 고문으로 있다. “자본이 언제든 걸어나갈 수 있고 투자자가 부화뇌동하는 상황이라면 영구자본이라는 닻을 가지는 게 아주 중요하다.”

과거 애크먼은 환매 때문에 골치를 앓았던 적이 있다.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과 2013년 때다. 당시 퍼싱스퀘어는 미국 유명 소매업 회사 J.C. 페니와 허벌라이프에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손실을 보고 있었다. 환매는 순자산 10%에 육박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환매한 사람들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음이 드러났다. 2014년 애크먼이 보톡스 제조사 ‘앨러간’ 주식 매입으로 엄청난 투자수익을 냈기 때문이다. 대량 환매 경험은 애크먼에게 일종의 경고 신호를 보내줬다. 환매가 더 많았다면 애크먼의 화려한 부활은 힘들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환매가 너무 많아서 결국 펀드를 해체했다면 앨러간에 투자할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마르지 않는 영구자본을 손에 쥐게 된다면 타격을 줄이면서 전보다 더 거대한 투자대상을 공략할 수 있고 보다 장기적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 “퍼싱스퀘어 초기의 투자 방식은 다음과 같다.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내서 가치 회복을 위한 변화를 제안한 후 우리가 말한 대로 조치를 취해 가치가 올라가면 바로 이익을 회수하고 나가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 엔지니어링’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지난 5년간 우리가 했던 투자방식을 보라. 캐나디언 퍼시픽, 에어 프로덕트, 제너럴 그로스…앨러간이나 발리안트 또한 기업을 만들어가기 위한 투자였다. 결국 두 회사에서 나왔지만, 투자 면면을 보면 우리가 소유하고 싶은 기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애크먼 입장에서 자산을 보유하는 것은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허세 가득한 헤지펀드 투자자로 잘 알려지긴 했지만 그의 성공은 사실 부동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부동산 투자의 피가 흐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는 잘 나가는 뉴욕 부동산기업 소유주였다. 1988년 하바드 대학 학부를 졸업한 애크먼은 부동산에서 빠르게 성공하며 최고의 수익을 냈다. 이후 진학한 하바드 경영대학원에서 그는 1990년대 초반 재정위기에 빠진 소매유통업체 알렉산더 스토어 주식 매입을 위해 이제껏 벌었던 모든 자금의 절반을 쏟아 부었다. 알렉산더가 가지고 있던 부동산 렉싱턴 애비뉴 731번지(현재 블룸버그 LP 본사)가 회사 채무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크먼은 알렉산더가 파산 신청을 한 당일, 주당 8달러가 조금 넘는 가격에 주식을 매입했다. 그리고 수개월 만에 주당 21달러에 주식을 매도했다.

어린 나이에 대단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후 그는 근시안적 결정에 관해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그가 손 털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스티븐 로스의 보르나도가 알렉산더를 인수해 부동산투자신탁(REIT)으로 전환했다. 알렉산더의 주가는 현재 주당 400달러가 넘고, 수년간 두둑한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경영대학원 졸업 후 애크먼은 동창 데이비드 버코위츠와 손을 잡아 헤지펀드 고담 파트너스를 만들어 300만 달러의 자금을 모집했다. 투자한 사람은 주로 가족이나 친구였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것에 집중해 투자했다. 첫 기회는 1995년 록펠러 센터 프로퍼티의 부실 담보대출을 매입하는 과감한 시도를 통해 찾아왔다. 피라미에 불과했던 고담은 록펠러 센터의 담보를 가진 REIT 지분 6%를 가져갔고, 애크먼은 샘 젤이나 제너럴 일렉트릭, 디즈니 등 추가하락을 기다리며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다른 투자자로부터 지분을 보호하기 위해 자본재편(recapitalization)을 제안했다. 결국 애크먼은 골드만삭스와 티쉬먼 스파이어, 데이비드 록펠러가 참여한 컨소시엄에 패했다. 그러나 28세였던 애크먼은 이를 계기로 월스트리트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1995년 고담은 39%의 투자수익을 달성했다. 데이비드 록펠러와 공동투자자 루카디아 내셔널은 깊은 인상을 받았고, 록펠러는 고담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1996년 애크먼은 월스트리트 유력 투자자 무리에 끼기 위한 투자성사를 위해 경마장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스타우드 캐피탈의 배리 스턴리히트는 소위 ‘주식결합(2개 회사가 실질적으로 한 회사처럼 운영되며 주식이 결합되어 같이 거래됨) REIT’ 구조를 호텔이나 경마장에 적용하면, 임대료 수입과 영업이익 모두에서 REIT의 면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한 투자방식은 쉐라톤이나 웨스틴, 윈햄 등의 호텔체인 매입 열풍을 일으켰다. 애크먼은 전형적인 그린메일(경영권 확보보다는 시세차익을 노리는 방식)로 경마장 인수에 뛰어들었고 더 높은 프리미엄 가격을 받을 때까지 버텼다. 하지만 주식결합 REIT에 대한 집착은 1998년 고담이 REIT 퍼스트 유니언 위임장 대결에서 승리하며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 해 미국 국세청에서 법의 허점을 보완하는 대책을 내놓았고 퍼스트 유니언 주가는 급락했다. 애크먼이 골프장, 다단계 마케팅회사 프리페이드 리걸 서비스, 비상장 IT기업 기프트서티피키트 닷컴 때문에 투자 방향을 잃고 헤매자 고담의 재정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절망을 모르는 간큰 투자자
손실을 기록 중인 골프장과 퍼스트 유니언을 합병하려는 시도에 주주들이 반발한 후 고담은 위기를 맞았다. 고담 투자자들은 애크먼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자본을 철수했다. 1998년과 2002년 사이 고담의 자산은 40%나 감소했다. 그러나 애크먼은 어느 때보다 대담하게 나서며 행동주의 투자방식의 공매도를 결정했다. 이 때문에 당시 뉴욕 검찰총장 엘리어트 스피처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결국 애크먼은 2003년 어쩔 수 없이 고담펀드 해체를 결정했다. 버코위츠는 아예 업계를 떠났다.

그래도 애크먼의 자신감은 흔들리지 않았다. “빌이 절망감을 표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경영 대학원 동창 로버트 재프는 말했다. 그 또한 고담에 투자한 적이 있으며 지금은 헤지펀드 출자자 중 한 명이다. 2004년 1월에는 퍼싱스퀘어가 애크먼의 투자금 400만 달러와 루카디아 내셔널 출자금 5000만 달러의 자본을 갖고 출범했다. 그러나 고담의 실패 전적 때문에 퍼싱스퀘어는 비상장기업에 직접 투자하지 않겠다는 계약에 서명해야 했다. 여기에는 부동산도 포함된다. 부동산에 유달리 강했던 애크먼은 딜레마에 봉착했다. “내가 잘 아는 자산 부문이고 부동산에서 엄청난 수익을 내기도 했다”고 애크먼은 말했다. 겸손을 모른다는 말은 정말이다. “부동산에 관해 잘못된 투자를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투자금 대비 130배 수익 거둬
2008년 금융위기는 해결책을 던져줬고, 애크먼은 하워드 휴스를 발견했다. 시장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을 때 애크먼은 재정난에 허덕이다가 급매로 나온 유통몰 전문 REIT 제너럴 그로스 프로퍼티 지분 25%를 매입해 잘 관리된 합의파산(managed bankruptcy)으로 이끌었다. 그 후 죽어버린 제너럴 그로스의 시체 속에서 개발 잠재력이 있는 자산을 뽑아냈다. 워낙 뒤죽박죽 조합되다 보니 경쟁사들은 이를 두고 ‘거지회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제너럴 그로스는 투자금 대비 130배 수익이라는 인생 최대의 투자 영광을 애크먼에게 안겨줬다. 헤지펀드는 이를 통해 37억 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거지회사’는 규모 60억 달러의 하워드 휴스 코퍼레이션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분사 이후 주가는 300% 상승했고 애크먼은 자유의 몸이 되어 부동산 투자시장에 재 입성했다.

하워드 휴스 자산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지역은 빌 애크먼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맨해튼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다. 뼛속까지 시린 바람이 몰아치는 3월의 어느 저녁, 시포트의 한 매장에서 청바지를 유심히 바라보는 애크먼을 보게 된 것도 그 까닭이다. 수작업으로 염색했다는 청바지에는 아크릴 블루와 보라색, 자홍색, 청록색, 흰색이 흩 뿌려져 있었다. 흡사 잭슨 폴락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리앨토 진 프로젝트 매장에서 파는 청바지를 본 애크먼은 놀란 표정이었다.

“가격은 어떻게 확인하지? 라벨이 없잖아. 재고관리도 아닌데, 단위표시만 하고 가격은 없다니!” 그는 옆에 서있는 하워드 휴스 CEO 데이비드 와인렙에게 말을 건넸다. 어려 보이는 매장직원 캔디스가 청바지 가격은 245달러라고 말했다. “이건 예술작품이지, 그냥 청바지가 아닌데” 19세기 연립주택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벽돌 벽에 걸린 데님 바지를 훑어보며 애크먼이 중얼거렸다.

그는 아직 사태 파악을 못한 캔디스에게 평소 CEO를 닦달하듯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남자 손님의 비율은? 매장에 들어오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정말 도매사업에 가깝나? 왜 여기에 매장을 열었나? 데님이나 아크릴 의류 말고 판매하는 상품은 없나? 세탁은 어떻게 하나?

캔디스는 애크먼의 모든 질문에 답을 해주었고, 그는 답례라도 하듯 헤어지며 덕담을 보냈다. “극장이 개장하면 사람으로 북적거리겠군요!” 극장이라면 프리미엄 아이픽 시네마를 말하는 거다. 맥주, 칵테일을 즐기거나 바가지 가격의 햄버거를 먹으며 3D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영화관이다. 15억 달러 규모의 시포트 재개발 일환으로 리앨토 바로 옆에 있는 풀튼 마켓 건물에서 2016년 개장할 예정이다. 2017년 하워드 휴스는 시포트 부두17을 재개장해 18만 2000평방피트의 부지를 임대하고, 1.5에이커 면적의 루프탑을 콘서트나 아이스 스케이트, 결혼식 장소로 활용하며 록펠러 센터와 비슷한 나무 조명으로 장식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재개발 프로젝트에서 빠질 수 없는 럭셔리 초고층 아파트 계획도 세웠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하워드 휴스 운영의 선봉에 선 와인렙을 빼놓을 수 없다. 애크먼이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다면 와인렙은 부동산에서 뒹굴고 부동산과 호흡하며 자란 ‘부동산 맨’이라 할 수 있다. 둘은 뉴욕 차파쿠아 고등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애크먼보다 2년 선배였던 와인렙은 학교 유명인사였다. 론조니 파스타나 풍선껌 버블 염 TV 광고에도 출연했고, 광고수입으로 맨해튼에 아파트까지 샀기 때문이다. 뉴욕 대학에 진학했지만 후에 학교를 자퇴하고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은퇴했다) 석유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1980년대 텍사스에서 부동산을 매매하며 자리를 잡았다.

부동산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와인렙은 시카고 불스와 화이트 삭스 구단주 제리 레인스도프의 눈에 들었다. 레인스도프는 와인렙에게 건물 몇 채의 관리를 맡겼다. 저축 및 대출 위기 이후 폭락한 부동산을 사서 황금으로 만드는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와인렙은 빠르게 부동산 업계의 전설이 되었다. “데이비드는 망한 부동산을 사서 수익을 뽑아내는 능력이 있다”고 레인스도프가 말했다. 그는 와인렙이 “자신이 똑똑한 걸 티 내지 않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자랑이 넘치는 애크먼과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지 모르겠다. 1990년대 중반 와인렙이 운영하던 TPMC 리얼티는 부동산 전문 투자사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최악의 시기에도 돈을 버는 사람은 항상 있다”고 와인렙은 말했다.
 애크먼이 기획 중인 하워드 휴스 ‘대박’
2002년 와인렙은 갑작스런 통화로 애크먼과 다시 연락을 시작했다. 7년 뒤,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을 때 와인렙은 애크먼에게 부실 부동산 매입을 위한 펀드 조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논의는 발전되어 애크먼이 기획 중인 하워드 휴스를 와인렙이 맡는 단계로까지 진전됐다.

회생에 일가견이 있는 와인렙이 지휘봉을 잡았다는 사실 만으로 라스베이거스 재개발은 구미가 당기는 프로젝트가 됐다. 2007년 부동산 시장이 정체됐을 때 개발 도중 버려진 쇼핑몰이 대상이 됐다. 1년 전만 해도 그 곳은 콘크리트와 녹슨 강철 기둥만이 남겨진 유휴공간이었다. 건물 밑의 황무지는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았던 억만 장자 기업인 ‘에비에이터’ 하워드 휴스가 1950년대 탈세를 위해 산 땅이었다. “한정된 시장에서 최대의 땅덩어리를 가진 사람은 우리였다”고 와인렙은 말했다. “시장이 회복되면 서멀린 다운타운의 미래가 밝다는 사실은 너무 자명했다.”

동쪽의 24만 평 땅도 하워드 휴스 소유라는 것이 더욱 구미를 당기게 만들었다. 이 곳에는 4000가구의 주거용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쪽과 남쪽으로 뻗은 땅은 서멀린 인구 10만 명이 2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애크먼의 주장이 현실화되기만 한다면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2인조’의 마스터플랜에서 중요한 건 어떻게 조율해 나가느냐다. 라스베이거스 부동산과 계획지구 개발 이외에도 하워드 휴스는 우드랜즈(Woodlands) 또한 소유하고 있다. 호놀룰루 해안가 60에이커 부지도 하워드 휴스의 땅이다. 이 곳에서 회사는 호화 고층건물 2개의 공사를 시작했는데 분양은 벌써 80% 이상 완료됐다.

건설 프로젝트를 합작 투자자에게 넘기는 대신, 애크먼과 와인렙은 자신의 투자금을 2배로 늘렸다. 사실 와인렙이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투자 중 하나는 2011년 모건스탠리가 보유한 우드랜즈 지분 48% 매입을 위한 1억1800만 달러 지출이다. 이들은 위의 부동산에 대해 하워드 휴스가 소유한 23만2300㎡의 전략적 개발권 또한 계속 보유하기로 결정했다.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 보험 지주사를 통해 안정적 현금흐름을 확보한 것처럼, 애크먼 또한 하워드 휴스를 부동산 지주사로 삼아 현금을 융통시킬 계획이다. 현금흐름은 2016년까지 3배로 증가해 연간 5억 달러 이상을 기록할 것이라고 컴파스 포인트 애널리스트 윌크스 그레이엄은 말했다. “하워드 휴스 경영진은 분기별 예상액 달성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워드 휴스의 최대 외부주주 호라이즌 키네틱스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제임스 다볼로스는 말했다. “그들은 향후 5년~7년 혹은 10년간 투자가치를 불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부동산을 통해 다른 사업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일례로, 라스베이거스에서 하워드 휴스는 마이너리그 야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서멀린 야구장 건립도 계획 중이다.) 애크먼이 카지노를 소유한 또 다른 월스트리트 투자자가 되어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하워드 휴스의 보유 자산 중 가장 특이하고 잠재가치가 높은 건 바로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 위치한 패션쇼 몰 위의 17만6515㎡ 부지 상공에 대한 권한이다. “시장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내가 다 가져간다”고 애크먼은 말했다. 빌 애크먼이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을 갖는다? 하워드 휴스 호텔과 카지노가 들어서고?

“결국 최고의 부동산으로 만들려면 엔터테인먼트가 필수”라고 애크먼이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넘쳐 말했다. “두 번 다시 록펠러 센터를 놓치는 일은 없다.”

- ANTOINE GARA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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