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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츠 개혁에서 배우는 고통 분담의 지혜

하르츠 개혁에서 배우는 고통 분담의 지혜

1990년대 후반 독일은 심각한 실업문제에 직면했다. 직업을 못 구하는 젊은이들이 매년 늘었다. 정년 연장과 연금 수여 기간, 액수도 문제였다. 독일 정부와 기업, 노동조합은 각각 다른 주장을 하며 갈등을 벌였다. 묘안이 절실했다.

2002년 당시 독일 슈뢰더 총리가 나를 불렀다. 노동시장 개혁방안을 부탁했다. 나는 폴크스바겐 인사임원으로 지내며 조직의 노동 환경을 개선한 바 있다. 2000년 폴크스바겐은 근로자 2만명의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었다. 노조가 반발했다. 고민하다 대안을 내놨다. 주 4일 근무와 더 적은 연봉을 요구했다. 노조가 받아들여 구조조정을 피할 수 있었다. 슈뢰더 총리가 그 해결안을 인상 깊게 여긴 것 같았다.

2002년 2월 각계 전문가 16명과 함께 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직 이름은 ‘정부 노동서비스 현대화 위원회’였다. 언론은 긴 명칭을 싫어한다. 위원회에서 내놓는 방안도 대중 사이에선 인기가 없었다. 짧고 욕하기 쉬운 이름이 등장했다. 내 이름을 딴 ‘하르츠 위원회’가 등장한 배경이다. 8월에 30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총리에게 제출했고, 독일 의회도 이를 승인했다. 보고서 발표 다음 날 독일 노조위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당신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당신의 방안은 찬성한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개혁은 4단계로 진행했다. 먼저 임시직 고용을 늘리기 위해 규제를 완화했고, 직업소개 기관을 양성했다. 다음 단계는 단기 일자리인 ‘미니잡(minijob)’의 종류를 세분화하며 신규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었다. 하르츠 3단계는 독일 연방노동청을 연방고용공사로 개편하는 일이었다. 공무원을 회사원처럼 일하게 만들었다. 편안하게 서류를 만지던 사람들을 현장으로 내몰았다. 반발이 심했지만 밀어 붙였다. 마지막은 장기 실업 급여를 대폭 축소하고 관리 감독을 강화한 일이다. 정부 지원을 받는 수혜자를 철저히 감독했고, 정당한 이유 없이 규정을 어기면 혹독한 책임을 물었다. 역시 욕 많이 먹었다.

개혁안을 만들며 위원회는 사람이 어느 선까지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여기에 경제적인 부담까지 커진다. 그리고 정부의 지나친 간섭까지 받아야 한다. 노·사·정 관계자들을 불러 그들이 물러날 수 있는 마지막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그 다음 선을 긋고 합의를 시작했다. 모두 동의한 대전제는 ‘고통을 모두 함께 골고루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단기 근로자와 저학력자를 위한 일자리를 만들었고, 젊은 세대와 재교육을 희망하는 근로자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취업 의지가 없는 이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무책임한 이들을 위한 세금은 없다.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 정부도 최선을 다했다.

지금 한국은 노동시장 개혁을 앞두고 있다. 정년과 연금 수여 기간, 비정규직 처우, 그리고 탄력있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취업 제도를 손봐야 한다. 한국과 독일은 사회 구조상 다른 점이 많다. 하르츠 개혁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만은 이야기 하고 싶다. 개혁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합의가 필요하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를 해야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한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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