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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부부 격차의 갈등 극복] 차이 인정하고 성장 계기로 삼아야

[후박사의 힐링 상담 | 부부 격차의 갈등 극복] 차이 인정하고 성장 계기로 삼아야

사진:중앙포토
그는 잘 나가는 대학교수다. 젊은 시절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던 그는 공부 외의 모든 일은 아내가 다 책임져 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능력 있는 여성을 선호했다. 결혼은 성공적이었다. 씩씩하고 당당하고 책임감이 강한 아내, 남편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아내와 그는 아주 잘 지냈다.

어느 토요일 아침, 큰 일이 터졌다. 그는 학회 참석을 위해 지방에 내려가 있었고, 부인은 여느 때와 같이 자녀교육을 위해 자동차를 몰고 있었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는 10개월의 치료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그녀. 사고 이후의 그녀는 완전히 달라졌다. 심신이 약해져 남편만 바라보고, 남편에게 의지하며, 남편이 시키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는 직장 일은 물론 자녀 교육과 집안 대소사도 직접 챙긴다. 더구나 아이처럼 변한 아내도 돌봐야 한다. 너무 고달프다.
 교통사고 후 아이처럼 변한 아내
물론 약해진 것이 아내 탓이 아니므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옛날 같지 않은 아내 때문에 짜증 날 때가 많다. 대화조차 안 되는 아내 때문에 화가 날 때가 많다. 사회적으로 계속 발전해 가는 자신,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아내와의 격차가 점점 커진다. 남들은 잘 나가는 교수 남편의 내조를 위해 별별 일을 다 한다던데, 벌써 이런 생활이 10년이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낙타가 사자로 변하고, 사자가 아이로 변하면, 신(神)이 될 것이다.” 낙타는 순종적이다. 하라는 대로 산다(I Should). 사자는 밀림의 왕이다. 하고 싶은 대로 산다(I Will). 아이는 순수하다. 있는 그대로 산다(I Am). 낙타는 해야 할 것이 많고, 사자는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아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낙타는 늘 고달프고, 사자는 늘 힘이 넘치고, 아이는 늘 재미있다.

그녀는 현명하다. 남편보다 나서지 않는다. 시키는 일만 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능력이 있었다. 무슨 일이든지 혼자서 해냈다. 남편조차 좌지우지 했다. 이제는 능력이 없다. 심신이 약해졌다. 내 몸 하나 돌보는 것도 쉽지 않다. 이것저것 책임질 정도의 정신력도 없다. 시키는 것만 하는 것도 벅차다. 괜히 잘못해서 망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선 남편에게 잘 보여야 한다. 남편에게 버림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현명하지 못하다. 모든 것을 혼자 하려고 한다. 아내가 약해졌는데 달리 뾰족한 수가 있단 말인가? 예전에는 직장 일만 하면 됐다. 능력 있는 아내 덕에 탄탄대로를 갔다. 이제는 집안일도 해야 한다. 집안이 엉망이 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이것저것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아내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뭘 원하겠는가? 그렇다고 아내를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나이에 친구들을 만나면 간혹 이런 소리를 듣는다. “젊었을 때 몰랐는데, 너무 차이가 나! 대화도 잘 안 통하고, 어디 함께 가기도 그렇고….” 부부란 함께 꿈을 꾸는 사람이다. 한 공간에서 함께 먹고, 자며, 대화를 나눈다. 여자들은 꿈꾼다. 남편이 돈도 잘 벌어오고, 집안일도 도와주기를…. 남자들은 꿈꾼다. 아내가 집안을 잘 관리하고, 바깥일도 내조하기를…. 그런데 꿈은 깨지게 마련이다. 둘 다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각자 자기 역할만 충실해도 본전이다. 세월이 지났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남편은 직장에서 성공하고, 아내는 집에서 그냥 그렇다. 홀연히 ‘격차’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 옛날 같지 않아 짜증이 나고, 대화조차 안 돼서 화가 난다. 그럼에도 남자는 여전히 꿈꾼다.

‘능력 있는 아내’란 무엇인가? 집안을 잘 관리하고, 대화가 잘 통하며,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아내다. 모든 남자가 능력 있는 여자를 원치는 않을 것이다. 아예 다른 조건을 보고 능력 없는 여자를 선택한 경우도 있다. 이때는 기대가 없으니 짜증이나 화가 안 난다. 그러나 능력있는 아내를 원했는데 사고로 능력을 상실했다면 특별한 경우다. 불편하지만 짜증이나 화내기가 민망하다. 통상적으로 결혼은 비슷한 능력의 남녀가 하는 법이다. 그런데 부부 격차는 어떻게 생기는가? 남편은 열심히 일해 사회적으로 성공했는데, 아내는 가정만 돌보다 사회적 능력이 없어진다. 세월이 지나 그동안 아내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능력을 바라게 된다. 오래 광에 넣어두었던 선풍기를 다시 돌리려는데 쉽지 않다.

이제, 그에게로 돌아가 보자. 그에게 가장 필요한 처방은 무엇일까? 첫째 ‘해야 한다(Should)’에서 벗어나자. 낙타는 해야 할 것이 많다. 늘 고달프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원한다. 짐이 무거울수록 큰 자부심을 느낀다. ‘해야 한다’는 이성의 작용이다. 이성(理性)은 서로 밀어낸다. 한쪽이 ‘해야 한다’로 살아가면 다른 쪽은 하기 싫어진다. 부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내는 무력하다. 사고가 그리 만들었다. 그녀는 더욱 무력해지고 있다. 그는 아내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 안 하는 것은 무시하는 것과 같다. 그는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진다. 세상은 반드시 내가 있어야 돌아간다. 가정은 반드시 내가 있어야 움직인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 큰 소가 나가면 작은 소가 집을 지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작은 것부터 책임을 지워야 한다. 쉬운 것부터 시작해 점차 어려운 것으로 해결능력을 키워야 한다. 어찌 알겠는가. 그녀가 잘 해 낼지? 무기력은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한다. 무기력은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를 통해서 극복될 수 있다.

둘째 ‘하고 싶다(Want)’에 초점을 맞추자. 사자는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늘 힘이 넘친다. 사자는 어슬렁거리며 밀림을 누빈다. 여유를 통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 ‘하고 싶다’는 감성의 작용이다. 감성(感性)은 서로 잡아 당긴다. 한쪽이 ‘하고 싶다’로 살아가면 다른 쪽도 하고 싶어진다.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그는 ‘해야 한다’에 사로잡혀 10년 동안 하고 싶은 것을 하나도 못했다. 아내도 당연히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말도 못 꺼냈다. 이제 오랜 상처에서 벗어 나야 할 때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솔직하게 털어놓자. 아니 굳이 공개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열정이 솟는다. 물론 같이 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하지만 굳이 의무감으로 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몰래 할 때 에너지가 솟을 수도 있다. 현명한 부부는 혼자 사는 듯이 함께 살아간다.
 격차를 안고 살아가야
셋째 ‘하지 않음(Non-doing)’으로 나아가자. 아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늘 재미있다. 아이는 하루 종일 모래성을 쌓는다. 자유를 통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우주는 알 수 없는 힘이 움직인다. 아이는 되어 가는 대로 산다. 격차를 받아들이자. 무엇이 문제인가? 아내는 아이 같다. 불편? 그러나 불편은 해결방법이 많다. 아이가 지닌 장점도 있지 않는가? 격차를 안고 살아가자. 무엇인 문제인가? 창피? 그런데 창피는 자신의 열등감 때문은 아닐지. 아내를 억지로 발전시키는 것은 무리다. 현명한 부부는 차이를 통해 함께 성장한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 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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