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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탈옥 미화] 인간성 회복하고 제도에 저항하는 비유

[할리우드의 탈옥 미화] 인간성 회복하고 제도에 저항하는 비유

1967년 폴 뉴먼이 주연한 <폭력 탈옥>은 죄수와 가학적인 보안관의 대결을 묘사했다. 당시 미국을 휩쓴 반체제 운동의 상징이었다. / 사진:중앙포토
지난 6월 6일 기결수 살인범 2명이 미국 뉴욕주 북부 댄모라의 클린턴 교도소를 탈옥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무의식 중에 박수를 치거나 미소를 짓고 싶었다. 또 그들이 동력 공구를 사용해 강철 벽에 구멍을 뚫어 탈옥했다는 이야기는 더 낭만적으로 들렸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들은 갇혀 있어야 마땅할 흉악범’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식으로 반응한 사람이 나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살인범 2명 강철 벽 뚫고 탈옥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수감돼 수십 년에 걸쳐 감방 벽을 뚫어 탈옥하는 주인공을 그린 <쇼생크 탈출> / 사진:중앙포토
이런 도덕적 근시안을 할리우드 탓으로 돌리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내 반응은 조건반사가 분명했다. 탈옥을 주제로 한 영화를 수년 동안 봐온 결과라는 뜻이다. 어린 시절 1960년대엔 건전한 탈출 영화 <대탈주> (전쟁 포로들의 나치 수용소 탈출)와 <닥터 두리틀.(주인공이 노예로 잡힌 서커스단에서 탈출) 같은 영화를 즐겨봤다. 1970년대엔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한 <빠삐용> 과 찰스 브론슨이 주인공을 맡은 <브레이크아웃> 같은 폭력적인 탈옥 영화로 눈을 돌렸다.

성인이 돼선 감옥 영화 중 가장 서정적인 작품 <쇼생크 탈출> 을 봤다. 톰 로빈스가 연기한 주인공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흉악범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수십 년에 걸쳐 감방 벽을 뚫어 탈옥하는 이야기다. 1994년 개봉된 이 영화에서 화자를 맡았던 배우 모건 프리먼은 그 다음 목소리 연기로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최근 뉴욕주 교도소에서 리처드 매트와 데이비드 스웨트가 탈옥한 사건을 쇼생크 탈출에 견준다. 하지만 이 사건은 현실이며, 그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갇힌 게 아니었다. 매트는 자신의 상사를 살해한 뒤 도피 행각을 벌이면서 멕시코에서 또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1980년대에도 다른 죄로 복역 중 탈옥한 적이 있다.

할리우드가 진보적이라거나 순진하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탈옥 영화의 이야기는 너무 편향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망자를 응원하도록 부추기는 영화가 수없이 많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1993년 작품 <도망자> 가 대표적이다. 조지 클루니도 2편을 찍었다.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2000년)와 <표적> (1998년)이다.

이런 영화의 원조는 1932년 작품 <나는 탈옥수> 다. 불운하고 무고한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가 억울하게 투옥돼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탈옥했다가 밀고당해 다시 갇히고, 다시 탈출해 평생 도망자로 살아갈 운명에 처하는 이야기다. 이런 영화에서 묘사되는 인물은 누명을 썼거나 <레미제라블> 에서처럼 지나치게 가혹한 중형을 받거나 아니면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호감이 간다. 그런 탈옥 이야기는 인간성을 찾고 독창성을 활용하고 제도에 저항하는 의지의 비유다.

최근 미국 뉴욕주 북부 댄모라의 클린턴 교도소를 탈옥한 죄수 데이비드 수웨트의 2002년 체포된 직후 사진. / 사진:중앙포토
물론 탈옥수가 악한인 영화도 많다. 2008년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 에서 미치광이 살인 광대 조커는 고담시의 감옥을 탈출한다. 1997년 블록버스터 <에어 포스 원> 에선 지도자를 석방시키려고 미국 대통령 전용기를 납치하는 러시아 국수주의자들과 대통령의 대결을 다뤘다. 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1991년 영화 <양들의 침묵> 에서 엽기적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가 탈옥해 경관 2명을 폭행해 죽이고 그 살점을 먹는 것을 보며 그를 응원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같은 해 개봉된 <사랑과 추억> 은 탈옥수들에게 가족이 성폭행당하는 것을 본 아이가 갖는 공포와 트라우마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

그러나 할리우드 탈옥 영화 대부분의 추진력을 이끄는 것은 영웅적인 이야기다. 때로는 정치적 의도도 깔린다. 시드니 포이티어와 토니 커티스가 주연한 1958년 영화 <흑과 백> 에서 흑인과 백인 기결수인 두 주인공은 감옥으로 호송되던 중 트럭이 전복되면서 탈출한다. 그러나 함께 사슬에 묶여 서로 떨어질 수 없다. 미국의 인종 관계를 상징하는 굴레를 잘 보여줬지만 호평 받진 못했다. 1967년 폴 뉴먼이 주연한 <폭력 탈옥> 은 죄수와 가학적인 보안관의 대결을 묘사했다. 당시 미국을 휩쓴 반체제 운동의 상징이었다.
 공화·민주당 ‘대량 투옥’에 반대
할리우드가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의무는 없다. 우리가 그런 것을 원한다면 아예 영화를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탈옥 이야기는 발성 영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쇼생크 탈출> 의 주인공이 말했듯이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 대표적인 탈옥 소설이다. 미국의 공화·민주 양당이 ‘대량 투옥(mass incarceration)’에 반대하는 시대에 탈옥 영화가 더 잘 먹히는 이유를 알기는 어렵지 않다(투옥율 증가가 범죄율 하락에 미치는 효과가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범죄 예방을 위해 범법자를 감옥에 가둬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 미국 사법체계의 개혁이 정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대다수 재소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탈옥 결심이 정치적이거나 도덕적 반항의 행위가 아니듯이 그들이 저지른 범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바로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 번역=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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