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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이 노해야 비를 내린다

천신이 노해야 비를 내린다

라오스와 태국에서는 건기가 절정에 달하는 5월이면 하늘에 로켓을 쏘아 올려 기우제를 지낸다
민간 항공사의 조종사 벤야 헨더슨은 매년 5월이면 비행 도중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구간이 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을 드나들 때 메콩강 위를 날아다니는 로켓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뼈아픈 공습의 역사를 갖고 있다. 베트남전 당시인 1964~73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벌인 ‘비밀전쟁’으로 200만t 이상의 폭탄이 라오스에 투하됐다. 하지만 앞서 말한 로켓들은 전쟁의 산물이 아니라 농업 의식의 일부다.

헨더슨은 라오스의 건기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에는 분방파이(라오스 전통 기우제) 행사 때문에 항공기의 항로가 바뀐다고 말했다. 로켓 축제라고도 불리는 이 행사 기간에는 라오스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에 로켓을 쏘아 올리기 때문이다. 이 로켓은 PVC 재질의 관 속에 숯과 박쥐 배설물, 유황, 화약(110㎏ 이상이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을 채워서 만든다. 로켓을 하늘에 쏘는 이유는 천신 파야 타엔의 화를 돋워 폭풍우를 일으키고, 그가 부처의 화신인 두꺼비 왕과 맺은 협정(땅에 비를 내리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로켓 축제는 라오스의 농업과 기후 간의 불안한 관계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강변의 논부터 석회암 지대의 농지까지 라오스의 생계형 농부(시골 인구의 약 80%를 차지한다)들은 제때 내리는 적당량의 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로 건기가 길어지고 우기가 짧아지면서 집중 호우가 내려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일이 잦아졌다. 라오스에서는 매년 약 6만㏊의 논이 홍수로 파괴되며 갈수록 그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물관리연구소(IWMI)가 1953~2004년 메콩강 유역의 강우 패턴을 분석한 결과 건기는 갈수록 길어지고 우기가 짧아지면서 집중호우가 잦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같은 기후 양극화 현상은 단순히 파괴적일 뿐 아니라 치명적이다. 유엔에 따르면 2011년 동남아의 홍수로 라오스에서는 가옥 14만여 채가 파손되고 43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적어도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3년에는 홍수로 20명이 사망했다.

최근 어느 일요일 비엔티안에서 16㎞ 정도 떨어진 포그넌 마을에서는 어깨에 소총을 멘 경비요원들이 화환으로 장식된 트럭들을 호위했다. 몇몇 트럭에는 길이 9m의 대나무 상자 속에 담긴 로켓들이 실려 있었다. 한 트럭에는 멀람(라오스의 컨트리 음악)이 쾅쾅 울리는 스피커 더미 위에 한 승려가 앉아 있었다. 또 다른 트럭 뒤를 여장한 농부들이 따라가며 목각 남근상을 하늘에 대고 찌르는 시늉을 했다.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한 주상가옥의 처마 밑에서 칸자나 운마니가 친구들에게 쌀로 만든 증류주를 따라주고 있었다. “땅이 아주 메마른데다 강에서 끌어들이는 물은 충분치 않아 기우제를 지낸다”고 그가 말했다. 칸자나는 비엔티안에서 건축회사에 다니는데 분방파이 기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집에 왔다. 그가 모내기 시작을 축하하며 건배할 때 귀청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들렸다. 사람들이 황급히 차양 밑으로 뛰어갔다. 2개의 알루미늄 지붕 사이에 로켓이 떨어지면서 그들이 먹던 메뚜기 튀김 접시와 오리 피 수프 그릇에 불에 탄 플라스틱 조각들이 흩어졌다.

비엔티안의 교외 지역이 갈수록 팽창하고 포그넌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로켓 축제는 규모가 작아졌다. “전에는 이곳에 집이 별로 없었고 도로도 없었다. 온통 논뿐이었다”고 칸자나가 말했다. 칸자나와 그의 남자형제 키엥케이(라오스 국립대학의 강사다) 같은 라오스인은 개발과 경제발전 덕분에 부모 세대가 꿈꾸지 못한 기회를 얻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경제발전으로 1992년 46%이던 라오스의 빈곤율이 2013년 약 23%로 떨어졌다.
 라오스의 토지 중 숲의 비율은 41.5%에 불과
라오스의 대다수 농부는 여전히 로켓에 노한 천신이 비를 내려주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마을 주민 대다수가 여전히 로켓에 노한 천신이 비를 내려주기만을 기다린다. 산지가 많은 라오스 곳곳에 시시각각으로 찾아오는 여러 강도의 홍수와 가뭄은 생계형 농부들(대다수가 2㏊ 미만의 농지를 소유한다)에게 위협적이다. “비가 정상적으로 내리지 않으면 쌀 수확량이 형편없이 떨어진다”고 키엥케이가 말했다.

시골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건 기후변화뿐이 아니다. 지난 9년 동안 라오스의 국내총생산(GDP) 급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대규모 투자가 이들을 더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2000~2009년 라오스의 농업, 광업, 수력발전 등 산업 개발을 위한 토지 계약은 50배나 증가했다. 문제는 이런 개발이 라오스의 삼림을 깎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라오스 정부에 따르면 현재 라오스의 토지 중 숲의 비율은 41.5%에 불과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삼림 파괴는 토양의 침식을 부추기고 메마르게 만든다.

규제가 허술한 외국의 투자는 삼림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땅에서 몰아냈다. 토지임대제로 시골 사람들은 적절한 상담이나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게다가 정부는 토지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위협하고 제멋대로 감금했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지역사회 개발 전문가로 국제적 칭송을 받던 솜바스 솜폰의 납치 사건이다. 2012년 12월 비엔티안에서 경찰이 솜바스를 붙잡아 픽업 트럭에 태운 뒤 어디론가 데려가는 장면이 CCTV에 녹화됐다. 그 후로는 솜바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같은 달 스위스의 농업개발기구 헬베타스의 라오스 지국장 안네-조피 긴드로스는 라오스 정부를 비난하는 편지를 쓴 뒤 국외로 추방됐다.

하지만 정치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라오스 농부 돕기에 나선다. 일례로 구호기구들은 물관리 체제 개선에 힘쓰는 한편 기후의 영향을 덜 받는 쌀 품종을 보급한다. 또 국제 쌀연구소(IRRI)의 ‘위라이즈(WeRise)’ 시스템과 같은 신기술이 일부 농부들에게 희망을 준다. ‘위라이즈’는 실시간 기상정보와 작물 모델, 영양관리 도구를 결합해 농부들이 가장 적합한 작물을 적기에 심을 수 있도록 돕는다. 정부는 쌀 생산을 증진하고 농부들의 토지소유권을 보장할 계획이다. 또한 기후의 영향을 덜 받는 품종을 보급하고 수출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품질을 향상시킬 생각이다.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벼논양어(rice-fish farming) 방식을 확장하고 현대화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침수된 논에서 쌀과 함께 물고기와 다른 수생동물을 기르는 방식이다. 인도네시아 등 몇몇 나라에서는 벼논양어의 상업화를 통해 농부들이 쌀 수확량을 늘리는 동시에 수생동물의 단백질을 섭취하거나 팔아서 수입을 올린다.

하지만 라오스 고지대의 생계형 농부들의 앞날은 여전히 어둡다. 이들은 정부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저지대 논 이외의 4만㏊를 경작한다. 라오스의 오지에서 생물의 다양성의 가치에 관한 워크숍을 주관하는 마이클 트로켄브로트는 농부들에게 농사 실패의 이유를 논의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불운을, 어떤 사람은 악령을 탓한다. 하지만 주저 없이 삼림파괴가 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로켓 축제가 열리는 포그넌 마을로 다시 돌아가 보자. 빈 맥주병이 나뒹구는 들판에서 컨트리 밴드가 구경꾼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한다. 마지막 로켓이 발사된 뒤 취객들이 희미해져 가는 로켓 구름 아래서 술을 마신다. 지평선에서는 두터운 적운이 오후의 태양을 가린다.

무대 근처에서 춤추던 퐁사반 포마봉사는 땀에 흠뻑 젖은 채 볼에 흰색 화장품을 발랐다. “로켓은 효험이 있을 것이다.” 그가 음악 소리에 눌릴세라 소리쳐 말했다. “15일 안에 비가 안 오면 내 머리를 잘라도 좋다.”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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