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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EU 식민지로 전락하나

그리스는 EU 식민지로 전락하나

독일의 완력외교에 대한 분노는 EU 지지를 서서히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 긴축안 반대 시위대가 내건 그리스 국기에 반대를 뜻하는 ‘Oxi’가 새겨져 있다.
이번 구제금융 합의안에 따라 그리스는 사실상 유럽연합(EU)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그리스는 한층 더 혹독한 긴축조치를 집행하게 될 것이다. 500억 유로에 상당하는 국가자산이 유럽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이 감독하는 펀드에 속하게 된다.

공항·토지·국유기업 등을 포함하는 그 자산은 민영화될 것이다. EU 당국자들이 아테네에 주재하며 그리스 정부가 합의 조건을 이행하는지 확인한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조차 독일의 그리스 구제 조건을 ‘공포의 목록’으로 일컬었다. EU 당국자들도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십자가형을 받았다”거나 “물고문을 받았다(waterboarded)”고 표현했다.

그리스는 전례 없는 주권상실에 직면했다고 정치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EG)의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담당자 무지타바 라만이 말했다.

“그리스는 이제 2012년 이후 어떤 구제금융보다 더 심한 간섭을 받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사실상 정권교체를 필요로 한다. 채권단은 기술관료 정부를 찾고 있다. 채권단이 그리스에서 이끌어낸 양보는 공평치 못하다. 일정 수준의 추궁과 불신이 존재한다. 이를 보면 구제금융이 어떻게 운영될지 뻔하다. 지금까지 실시됐던 어떤 것보다 더 극단적이고 간섭이 심할 것이다.”

이번 싸움에선 독일이 승리해 그리스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하지만 독일 그리고 유럽연합까지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독일은 노골적으로 무력을 과시하며 그리스를 굴복시키고 유럽통합 구상에 치명타를 날렸다. 발트해로부터 발칸반도에 이르는 유럽 각국 정부와 유권자들은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완력외교에 대한 분노가 확산된다. 그것은 EU에 대한 지지를 서서히 잠식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ThisIsACoup라는 해시태그(트윗의 주제어 표시)가 트위터에서 유럽 전역에 퍼졌다. 몇몇 사진에선 청색 유럽연합 깃발의 별들이 나치의 만자 형상으로 재배열됐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번 합의 안을 가리켜 “유럽통합 프로젝트가 상징하는 모든 이상의 극악무도한 훼손”이라고 불렀다. “가혹함을 넘어 순전한 복수, 국가 주권의 완전한 파괴, 그리고 구제 희망의 말살 수준이다.”

그리스 금융위기는 분명 유로존 내 국가주권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EG의 라만이 말했다. “국가들의 경제통합이 강화될수록 국내정책 선택의 파급효과가 더 커진다. 이는 채무국과 채권국 모두 마찬가지다.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그리스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의 경상수지 적자는 독일에 영향을 준다. 양쪽 모두 조정 작업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유로존에선 채권국이 떠안는 조정의 부담이 훨씬 크다.”

독일의 가혹한 요구는 나치 시절 그리스의 저항에 대한 보복심리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그리스인이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그리스 점령은 유럽에서 가장 가혹한 편이었다. 독일군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우고, 그리스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리스와 독일의 관계는 아주 복잡하다고 스타티스 구르구리스가 말했다. ‘이상국가, 근대 그리스의 계몽, 식민지화, 제도(Dream Nation: Enlightenment, Colonization and the Institution of Modern Greece)’의 저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리스를 침략했던 나치 친위대 장교들은 고대 그리스 문명에 경외감을 나타내면서도 잔인 무도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부 독일 국민은 근대 그리스인이 유럽연합의 침입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양쪽 모두 상대방을 탓한다고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그리스 총리(2009~2011년)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독일인과 그리스인은 서로 손가락질한다. 긴축 때문에 유럽 전역에 걸쳐 국가주의가 부상한다. 브뤼셀 이사회나 독일 또는 양쪽 모두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지배 계급이 있다는 인식이 그리스인 사이에 깔려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그러나 외세의 강요에 따른 긴축으로 고통이 심해질 때는 유럽의 이상이 희미해진다고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말했다. “EU가 무의미해지고 국가 시스템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리스인뿐 아니라 모든 유럽인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구르구리스는 말한다. “다른 유럽관을 주장해야 한다. 다른 유럽관을 요구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이 같은 변화가 실현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소수독재 체제를 누르고 승리할 수 있다.”

- ADAM LEBOR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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