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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코카콜라 콧대 꺾은 왕라오지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코카콜라 콧대 꺾은 왕라오지

왕라오지 창시자인 왕저방은 1837년 량차 전문점을 열었다.
1초당 4만병이 지구에서 소비되는 코카콜라는 음료를 포함한 식품 분야 전 세계 부동의 1위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코카콜라는 2015년 기업 브랜드 가치 세계 8위다. 전투 중인 아군과 적군이 휴식시간에는 모두 코카콜라를 마셨다는 웃지 못 할 전장(戰場)이 된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2000년 6월부터 북한에도 코카콜라가 정식 반입돼 판매됐다. 전 세계인의 혈관 속에 코카콜라를 흐르게 하겠다는 코카콜라는 종교와 정치의 벽을 뛰어넘어 세계인의 음료가 됐다. 중화권에서는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는 한자를 음차해서 쓴다. 목마름을 뜻하는 구갈(口渴)의 중국어 발음이 ‘코카’와 유사한 점에 착안해 ‘목마를 때 마시면 즐거워지는 음료’ 이미지로 1979년에 중국 대륙에 재입성한 코카콜라는 중국 음료 시장에서도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1886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야콥약국에서 처음 선보인 코카콜라는 음료수가 아니라 두통 치료를 위한 약이었다. 일종의 두뇌강장제였는데, 약효는 신통치 못했다고 한다.
 2008년에 중국에서 코카콜라 추월
1. 녹색팩의 왕라오지는 쓴 맛이 있다. / 2. 코카콜라 병을 닮은 왕라오지 병.
이보다 60여년 앞선 1828년 무렵. 중국 광동지방에선 왕라오지(王老吉)라는 음료가 등장했다. 몸의 열을 식혀주는 약효가 뛰어난 음료였지만 광동성에 국한된 지방 음료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코카콜라가 독주하던 중국 음료 시장에 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똑같이 약으로 출발한 두 음료의 세기의 맞대결에서 왕라오지가 승리한 것이다. 2007년부터 코카콜라의 매출을 바짝 뒤쫓던 왕라오지는 2008년 코카콜라의 매출을 따라잡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왕라오지의 신화는 한 번도 무너지지 않고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국민음료가 된 왕라오지는 몇 가지 약재를 끓여서 식힌 량차(凉茶)의 일종이다. 량차는 덥고 습한 광동 일대에서 알려진 대용차(代用茶)다. 광저우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왕저방이 만든 차를 마시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했다. 선종황제는 이 소식을 듣고 왕저방을 국의로 임명했다. 왕저방은 더 많은 사람에게 차를 알리기 위해 1837년 량차 전문점을 열었다. 아편을 단속하라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광저우에 내려온 흠차 대신 린저쉬가 량차 전문점에 들려 왕라오지를 마신 후 병세가 좋아져 상을 내렸다는 일화도 있다.

대를 이어 점포를 늘려가던 왕라오지는 왕저방의 손자가 1870년 홍콩에 량차 전문점을 열면서 국제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49년 신중국이 대륙에 들어서며 광저우의 왕라오지는 국유화되어 광야오집단에 귀속됐다. 홍콩의 왕라오지는 왕저방의 5대손인 왕지앤이가 운영하며 30여 국가에 왕라오지 상표를 등록했다. 중국과 홍콩이라는 이질적인 정치체제 속에 왕라오지의 소유권자가 둘이 됐다.

홍다오집단의 천홍다오는 홍콩의 왕라오지와 손잡고 왕라오지의 세계화를 위한 자회사 자둬바오를 설립했다. 자둬바오는 중국 진출을 위하여 중국 내 상표소유권자와 우호적으로 협의해 왕라오지 상표를 1995년부터 15년간 독점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자둬바오는 왕라오지를 중국 전역에 알리기 위해 6년 동안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판매 실적은 크게 호전되지 않고 1억 위안에 머물렀다. 량차문화는 광저우를 벗어나면 생소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중국인의 상식에 반하여 왕라오지는 맛이 너무 달았다. 약과 차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 약점을 깨달은 자둬바오는 기능성 음료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아팠을 때 치료를 위해 마시는 약이 아닌 평소에 매운 음식을 먹거나 기름진 야식을 먹을 때 몸에 열이 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건강기능성 음료로 컨셉트를 바꾼 것이다.
 사스 예방용으로 폭발적 인기
차를 끓여서 식힌 후 마시는 량차는 몸의 열을 내려준다. / 사진:서영수 제공
‘열이 나기 전에 왕라오지를 마시자’는 명확한 개념을 가진 선전 문구는 2002년 만들어져 오늘도 변함없이 사용하고 있다. 정체성을 찾은 왕라오지는 20002년 매출액 1억8000만 위안으로 전년도 대비 80%의 신장률을 보였다. 왕라오지 탄생 174년 만에 역대 최고의 매출을 올렸다. 행운도 따랐다. 2003년 광저우에서 발생한 사스가 중국 전역을 휩쓸었다. 몸에 열을 내리는 왕라오지가 사스와 함께 광저우를 넘어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연일 품절 사태가 벌어졌다.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한국의 김치와 윈난의 보이차가 왕라오지와 함께 사스 예방 3종 세트가 되어 귀하신 몸이 됐다. 2003년 6억 위안의 매출로 뛰어오른 왕라오지는 2004년에는 매출 14억3000만 위안을 기록했다.

매출도 적고 왕라오지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었기에 자둬 바오가 고마울 뿐이었던 광야오집단의 생각이 달라졌다. 이미 전국 브랜드가 된 자둬바오의 후광을 업고 왕라오지를 자체 생산해보고 싶어졌다. 아직은 사이가 좋았던 자둬바오와 광야오집단은 타협점을 찾아 녹색팩의 왕라오지를 2004년부터 생산하게 된다. 자둬바오의 TV광고가 끝나면 비로 이어서 ‘녹색 왕라오지도 있어요’라는 식의 미투(Me Too) 전략으로 광야오집단은 자둬바오에 묻어가기와 따라 하기만 했다. 녹색의 왕라오지의 판매 실적은 자둬바오의 홍색 왕라오지의 20분의 1에 불과했다. 보이지 않는 판매경쟁은 자둬바오의 압승이었다.

세계적인 음료강자들과 직접 경쟁을 피하고 새로운 틈새 판매채널을 확보한 자둬바오의 홍색 왕라오지의 매출은 2007년에는 50억 위안을 기록하며 코카콜라를 바짝 추격하게 됐다. 2008년에는 매출 100억 위안을 돌파하며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지방 브랜드에 불과했던 왕라오지가 코카콜라를 넘어 중국 제 1위의 음료로 성장한 계기와 동력은 자둬바오의 공로였다. 왕라오지는 ‘중국 소비자 만족도 1위’ 음료로 떠오르며 인민대회당 연회전용 차 음료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중국의 고급 연회석에서 마오타이, 중화담배와 더불어 왕라오지는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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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차 상식② : 차의 본고장 중국에서 차를 사려면 숙소와 가까운 현지인이 사는 동네에 있는 차 판매점에 들려 원하는 차를 구매하면 된다. 동네에 있는 차 상점은 뜨내기장사가 아니므로 바가지를 씌우거나 건강하지 못한 차를 판매하기 힘들다. 중국의 대부분 도시에는 규모 차이가 있을 뿐 차 시장이 있다. 가이드나 지인과 함께 차 시장을 방문해 무료 시음을 해보고 마음에 드는 차를 흥정하면 된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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