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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의 천국’은 이제 그만!

‘소매치기의 천국’은 이제 그만!

마르케스가 얼굴이 잘 알려진 루마니아 출신 여자 소매치기 2명의 핸드백을 수색하고 있다.
지난 2월 밸런타인데이 전 금요일의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직 겨울인데도 날씨는 온화하다. 그래서인지 가로수가 늘어선 라스 람블라스 거리의 산책로는 사람들로 붐빈다. 사육제를 맞아 악마로 분장한 십대 청소년들, 부모의 어깨 위에 목말을 탄 아이들, LED 장난감을 햇살 가득한 공중으로 던져 올리며 호객하는 상인들. 스페인의 2월은 관광 비수기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꽤 많이 눈에 띈다. 그들은 느긋하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파타타스 브라바스(매콤한 토마토 소스를 곁들인 스페인식 감자튀김)를 맛보고 허리에 찬 가방에서 현금이나 선글라스, 손수건을 꺼낸다. 그리고 그들의 뒤엔 약삭빠른 좀도둑 무리가 따라다닌다.

해가 질 때쯤 난 악명 높은 여자 소매치기 1명이 라스 람블라스 거리 근처의 란제리 상점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 건장한 사복 경찰관 2명과 함께 4시간째 순찰을 돌던 중이었다. 그들은 소매치기와 날치기를 집중 단속하는 30명의 노련한 경찰관으로 구성된 ‘과르디아 우르바나(Guardia Urbana)’의 일원이다.

두 사람은 잘 웃지 않았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에인절 ‘팍스티’ 페레즈 비스카야는 두툼한 황록색 재킷과 진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그의 파트너 빅토르 마르케스도 옷차림은 비슷했지만 수염을 말끔하게 면도했다. 그들은 이 소매치기를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좁은 란제리 상점 안으로 따라 들어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우려했다. 여성 속옷을 살 사람들로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건 나는 전형적인 관광객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나더러 안에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 소매치기가 물건을 훔치는 걸 목격한 다음 밖으로 나와서 그들에게 신호를 보내면 체포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기술이 뛰어나고 잽싼 소매치기”라고 비스카야가 내게 말했다.

그 소매치기는 몸집이 작고 키가 158㎝쯤 돼 보였다. 흰색 재킷과 장미색 바지를 입은 그녀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 비스카야와 마르케스는 그녀를 이미 10번이나 체포했었기 때문에 그녀의 나이가 19세이며 불가리아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난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상점의 쇼핑백 두어 개를 팔에 걸고 관광객처럼 위장한 소매치기는 슬리퍼 한 켤레를 집어 들고 살펴보는 척하면서 상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 경찰관에게서 받은 ‘소매치기 식별법’ 집중 훈련이 아니었다면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매치기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눈을 보면 된다. 그녀는 양말, 슬리퍼, 속옷 등을 집어 들고 살펴보는 척했지만 눈은 표적을 찾고 있었다.
 관광객의 셔츠 주머니에 든 3만 유로
비스카야는 이 19세의 불가리아 출신 여자 소매치기를 이전에 10번이나 체포한 적이 있다. 외국에서 온 이 소매치기들은 재판에 회부돼도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6개월 후에 스페인에 돌아오면 범죄 기록이 깨끗이 지워지기 때문에 다시 좀도둑질에 나선다.
비스카야와 마르케스에게 몇 시간 동안 교육을 받긴 했지만 상점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자연스러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나의 멘토들이 밖에서 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바르셀로나를 지키는 일에 지난 몇 년을 바쳐 왔다. 성폭행범이나 살인자, 마약 밀매상이 아니라 소매치기로부터 이 도시를 지키려고 말이다. 비스카야와 마르케스는 교대 근무 때마다 최대 20㎞를 걸어 다닌다. 이들의 임무는 어떻게 보면 바르셀로나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과르디아 우르바나가 하루 종일 소매치기를 뒤쫓을 수 있다는 건 바르셀로나에서 심각한 범죄는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400유로 미만의 절도 행위는 징역형이 아니라 벌금형이기 때문에 경범죄는 바르셀로나의 큰 폐단이 됐을 뿐 아니라 관광산업에 위협이 되고 있다. 경찰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이 도시가 관광명소로 자리잡으면서 소매치기가 급증했다고 말한다. 2009년에는 절도 행위가 큰 문제로 떠올라 여행정보 사이트 TripAdvisor에서 바르셀로나를 세계 최대의 소매치기 천국으로 묘사하기에 이르렀다.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에 따르면 그 다음 3년 동안 스페인에서 가벼운 절도 건수가 18.5% 늘었다.

그 후 바르셀로나 시 당국은 소매치기 단속을 강화했다. 하지만 지난 1월 내가 바르셀로나로 이주했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은 조언을 해줬다. 지갑을 조심해라. 배낭을 앞으로 메라. 타파스(스페인식 전채요리)를 먹을 때 카메라를 식탁 위에 놔두지 마라.

이곳 사람들 대다수는 저마다 소매치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소매치기를 당하고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아차린다. 내 친구 셰인 파블리치는 한 남자가 알코올 중독자 행세를 하며 다가오더니 함께 춤추자고 잡아 끈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남자가 비틀거리며 사라진 뒤에 파블리치는 휴대전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달 뒤 또 다른 소매치기가 똑같은 방법으로 그에게 접근했다. 파블리치는 그 남자를 밀쳐내려고 애썼지만 그는 파블리치를 넘어뜨린 뒤 휴대전화를 훔쳐갔다.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지만 소매치기의 친구 한 명이 길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파블리치를 벽에 밀어붙이며 가로막았다. “그때 잠깐 기절했다”고 파블리치는 말했다. “정신을 차린 뒤 그들을 계속 쫓아갔지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도중에 어딘가에 숨은 듯하다.”

란제리 상점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그 불가리아 출신 여자 소매치기는 들고 있던 슬리퍼를 내려놓고 황백색 파자마 바지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그 파자마를 자신의 팔에 조심스럽게 늘어뜨려 손을 가렸다. ‘물레타(muleta)’라고 불리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물레타라는 명칭은 투우사가 검을 가리는 데 사용하는 천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소매치기는 한 일본인 관광객 옆으로 다가갔다. 파자마가 관광객의 핸드백에 아주 가까이 근접했을 때 난 소매치기의 손가락 끝이 살짝 빠져 나와 백을 여는 걸 목격했다.

경찰관들은 이 불가리아 여자가 란제리 상점으로 들어가기 30분 전 라스 람블라스 거리를 걷고 있는 걸 발견한 뒤 줄곧 뒤를 밟았다. 절도 행위가 아니라 소매치기를 표적으로 삼는다. 경찰관들은 소매치기 대다수의 얼굴을 알고 있다. 아니면 관광객 사이에서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사람이 소매치기일 가능성이 크다. 15명이 어떤 동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한 사람만 그들의 배낭을 쳐다본다면 소매치기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 불가리아 여자는 꽤 잘 알려진 소매치기다. 그녀의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고 비스카야와 마르케스는 그녀가 작업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경찰관들이 그녀를 발견하고 몇 분 뒤 그녀는 방금 휴대전화를 재킷 주머니 속에 집어 넣은 일본인 여자 관광객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관광객의 주머니에 손을 슬쩍 집어넣었다 꺼냈지만 빈손이었다. 관광객을 따라 몇 발짝 걸으면서 다시 한번 시도했지만 역시 빈손이었다.

경찰관들이 그녀에 관해 아는 건 몇 가지에 불과하다. 그녀는 집세가 싼 포블레 섹 지역에 산다. 소매치기가 많이 사는 곳이다. 비스카야는 그들 모두가 불가리아 출신이며 도둑질하려고 스페인에 왔다고 말했다. 소매치기들이 경찰에 한 말에 따르면 그들은 몇 달 안에 최대 2만 유로를 벌 수 있다. 그 돈이면 고향으로 돌아가 1년 정도는 잘 살 수 있다. 그들은 주로 대규모 회의나 축제를 따라 유럽 곳곳을 돌아다닌다.

세계 최대의 모바일 축제인 세계모바일콩그레스(올해는 바르셀로나에서 3월 2일~5일 열렸다)를 몇 주 앞둔 시점이어서 소매치기의 만만한 표적이 되는 아시아 관광객이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톱3(도쿄와 싱가포르, 오사카)에서 온 관광객은 자신이 소매치기의 표적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닌다”고 비스카야가 말했다.

바르셀로나의 좀도둑질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양쪽 다 바르셀로나 출신이 아니다. 스페인의 금융위기가 바르셀로나의 소매치기 문제에 일반적인 생각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준 이유다. 불경기는 좀도둑들을 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았다기보다 그들의 잠재적 표적의 숫자를 줄어들게 만들었을 뿐이다. 관광객의 경제 사정이 나아질수록 그들이 바르셀로나로 들여오는 돈의 액수가 늘어나고 거리는 사람들로 더 붐비게 된다.

바르셀로나의 소매치기는 팀을 이뤄 움직인다. 사복 경찰관이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한두 명은 표적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다른 한 명이 도둑질을 하며 또 다른 한 명은 망을 본다. 날치기를 전문으로 하는 부류가 있고 배낭에서 휴대전화나 지갑을 훔치는 부류가 있다. 또 일부는 거리를, 일부는 지하철을 주 활동무대로 삼는다. 지하철 전문 소매치기는 무방비 상태의 관광객이 붐비는 전동차 안으로 밀려들어갈 때 그들의 지갑을 훔쳐 전동차 밖으로 달아난다. 피해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전동차를 타고 떠나간다.
 “소매치기 잡기는 낚시질과 같다”
비스카야(왼쪽)와 마르케스가 한 지하철역 순찰을 마치고 거리 소매치기 단속을 위해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들 좀도둑은 기술과 전문 분야가 다양하다. 앞에 말한 불가리아 출신의 여자는 중급 소매치기다. 경찰관들은 그녀를 ‘콰트로 포르 콰트로(사륜구동차라는 뜻)’라고 부른다. 경범죄의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날 오전 우리는 바르셀로나 최고의 소매치기들을 만났다. 루마니아 출신의 여자 소매치기 2명은 라스 람블라스 거리에서 아시아 관광객의 뒤를 쫓았다. 경찰관은 잠시 지켜보다가 그들이 뭔가를 훔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행동을 개시했다. 그 여자들이 관광객 주변에서 보여준 행동은 그들을 수색할 만한 합당한 근거가 됐다. 경찰관은 그들을 멈춰 세운 뒤 가방을 뒤졌다.

“왜 날 불러 세웠죠?” 한 여자가 물었다.

“관광객들을 노리는 걸 봤소.” 마르케스가 대답했다.

“일자리가 없어서 이 짓을 하는 거예요.” 여자가 말했다. “정계와 금융업계에는 도둑이 더 많잖아요.”

“그럼 내무장관을 만나보시지.” 마르케스가 말했다.

“이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몰라요. 난들 좋아서 이런 일을 하겠어요?” 여자가 말했다.

경찰관들은 그들의 가방에서 범행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업 소매치기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난 그중 한 명에게 내 이름을 말하고 기자라고 밝힌 뒤 그 일을 하는 방식을 말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내가 어떻게 도둑질을 하는지 말하고 싶지 않다”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런 말을 하면 누가 나를 돌봐주겠는가? 난 혼자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경찰관들은 거리를 유심히 살폈다. 조금 뒤 그들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 근처에서 또 다른 소매치기를 발견했다. 깡마른 소년이었다. 경찰관들이 내게 그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그 소년은 매우 빨리 움직였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 잠시도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우리는 그를 뒤쫓아 갔다.

그 소년은 참을성이 있었다. 대다수 소매치기가 그렇다. 그들은 표적을 찾아 수 ㎞씩 걸으면서 절호의 기회를 노린다. 지퍼가 열린 배낭, 바지 뒷주머니의 지갑, 길가에 무더기로 놓여 있는 여행가방들. 거리에 손쉬운 표적이 널려 있는데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비스카야는 내게 사람들이 얼마나 소매치기의 표적이 되기 쉽게 행동하는지 알면 놀랄 거라고 말했다. 몇 년 전 그는 바르셀로나 성당 앞에서 입을 딱 벌리고 서 있는 일본인 관광객을 봤다.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는 유로화 지폐가 가득 든 검정색 가죽 지갑이 들어 있었다. 여자 4명이 뒤쪽에서 그를 에워싸고 그중 1명이 그의 지갑을 훔쳤다. 비스카야는 그 여자들을 뒤쫓아 체포했다. 그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 소매치기들은 현금 1만8000유로뿐 아니라 신용카드와 직불카드가 가득 든 지갑을 들고 달아났을 것이다. 그 일본인 관광객의 셔츠 주머니에는 여권과 함께 현금 3만 유로가 더 있었다. 그는 또 각 카드의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도 갖고 있었다. “그 사람은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고 비스카야가 설명했다.

라스 람블라스 거리에서 우리가 뒤쫓기 시작한 그 소년은 그렇게 굵직한 표적을 찾지 못했다. 그는 포트 벨까지 걸어 내려간 다음 항구 근처의 나무 판자가 깔린 길을 따라 해변 쪽으로 향했다. 여름에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지만 그날은 썰렁했다. 경찰관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소년을 뒤쫓았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 다다르자 갑자기 방향을 바꿔 보도에서 벗어나 걸었다. 더 좋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소년이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쳐다보고는 몇 번이나 바지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쏜살같이 달려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경찰관들은 소년이 도망치도록 내버려뒀다.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몇 분 뒤 그들의 상관이 휴대전화로 한 동료에게 “소매치기를 뒤쫓다 들켰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다시 란제리 매장 이야기로 돌아가서 불가리아 출신 소매치기는 여전히 팔에 걸친 파자마 바지 밑에 손을 감춘 채 관광객의 핸드백 잠금쇠를 더듬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포기하고 새로운 표적을 겨냥했다. 그녀는 그 관광객 옆으로 다가가 다시 손가락을 뻗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솜씨가 서툴렀다. 관광객이 놀라서 몸을 움찔하며 그 여자를 쳐다보고는 주머니 안을 확인했다. 뭔가 낌새를 챈 게 분명했다.

그 소매치기와 나는 둘 다 아무런 소득 없이 란제리 상점에서 나왔다. 비스카야가 날 보더니 손으로 카메라 모양을 그렸다. 그 여자 사진을 찍었느냐는 뜻이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그는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우린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까운 서브웨이 샌드위치 매장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그녀가 거기서 새로운 표적을 찾거나 쓰레기통에 지갑을 버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갑자기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신세가 됐다. 그 소매치기가 점심을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마치 낚시질처럼 참을성이 필요하다”고 비스카야가 말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소매치기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나와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그날 일을 마쳤다는 확실한 표시였다. 경찰관들은 그녀가 뭔가를 훔치지 않았다면 어두워지기 전에 일을 중단할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재빨리 움직여 그녀가 지하철의 회전식 문에 다다르기 전에 멈춰 세웠다. 그리고 별 설명 없이 그녀의 핸드백과 쇼핑백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건성으로 저항했다. 경찰관들을 상대하는 게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일본인 여자 관광객의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았나?” 마르케스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경찰관들은 몇 분 동안 그녀를 심문한 뒤 거리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고는 동료 여경에게 연락해 그녀의 몸수색을 부탁했다. 그들은 여경을 기다리는 사이에도 그 여자의 핸드백과 쇼핑백들을 계속해서 뒤적거렸다. 그들이 찾아낸 건 지퍼록 비닐백뿐이었다. 여자 소매치기들이 훔친 돈을 질 속에 숨길 때 사용하는 종류라고 비스카야가 말했다. 여경이 밴으로 소매치기를 데려가 몸수색을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법 집행이 너무 느리다”
경찰은 휴대용 단말기로 그녀의 이름을 조회한 결과 두 건의 재판에 회부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법원에 출두할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경찰관들은 나중에 내게 그녀가 나타나지 않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녀로서는 불가리아로 돌아가 6개월을 기다리는 편이 더 낫다. 그때 쯤이면 혐의가 백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좀도둑질은 회전문처럼 돌고 돌며 끊임없이 일어난다. 난 바르셀로나 시청에서 요셉 리우스를 만났을 때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부시장의 수석보좌관인 리우스는 ‘좀도둑의 안식처’라는 바르셀로나의 오명을 씻기 위해 애쓰는 공무원 중 한 명이다. “바르셀로나는 위험한 도시가 아니다”고 그는 말했다. “사실 바르셀로나는 최근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15위를 차지했다. 이 도시의 전체 범죄 중 50% 이상이 하급 범죄다. 폭력 사건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매치기를 단 한번의 범법행위로 감옥에 넣을 수는 없기 때문에 재범률이 높다는 게 문제다.”

스페인 법에 따르면 400유로 미만의 좀도둑질은 경범죄로 소액의 벌금으로만 처벌이 가능하다. 또 폭력을 쓰지 않은 절도범은 감옥에 보낼 수 없다. 게다가 경범죄는 전과와 상관없이 기소된다. 뉴욕시에서는 피고의 전과에 따라 형량이 가중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2010년 스페인 정부가 법을 개정해 세 번 이상 범법행위를 한 소매치기를 체포할 수 있게 됐다. 새 법에서는 형량도 늘어났다. 400유로 이상을 훔친 절도범은 최대 4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절도범은 절도 액수를 400유로 미만으로 조절해 위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터득했다. 또 범법 행위 현장에서 걸린 절도범도 법의 허점을 이용해 외국으로 도망쳤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돌아와서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다. 비스카야는 한 조직에 속해 있는 소매치기 몇 명을 100번 이상 체포했다고 말했다. “법 집행이 너무 느리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은 5~8년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법 집행까지 1년 반 정도 걸린다. 처벌을 피하고 싶으면 외국으로 도망치면 된다.”

지난 4년 동안 리우스와 바르셀로나 시의원들은 스페인 법의 이런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법 개정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도보순찰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내가 만난 경찰관들은 소매치기를 당해 당황하는 관광객에게 현금과 지갑, 여권, 신용카드 등을 찾아 돌려줄 때 매우 뿌듯하다고 했다. “나도 외국을 여행할 때 안전하다는 기분이 드는 게 좋다”고 마르케스는 말했다.

현지인도 이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들은 ‘바르셀로나는 소매치기의 천국’이라는 오명에 진저리를 낸다. 많은 상점주가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얼굴이 알려진 소매치기가 나타나면 호루라기를 불어 관광객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15년 전 콜롬비아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주한 한 여성은 이 도시의 수호천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녀는 매일 몇 시간씩 전철을 타고 다니며 소매치기가 눈에 띌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어 사람들에게 알린다.

리우스는 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의 경범죄 퇴치에 진전이 있다고 주장했다. 2011년 하비에르 트리아스 시장이 취임한 뒤 시 당국은 ‘그물 작전’을 개시했다. 거의 모든 경찰관에게 도보순찰 임무를 지우는 작전이다. 현재 바르셀로나 경찰관 3000명 중 89%가 근무시간 중 일부 또는 전부를 도보순찰에 할애한다. 트리아스 시장은 지하철의 소매치기 단속도 강화했다. 이전엔 과르디아 우르바나 경찰관을 찾아볼 수 없던 곳이다. 지난 3년 동안 바르셀로나의 좀도둑질 건수가 15% 줄었다고 리우스가 말했다. 단속 강화의 직접적인 결과다.

주민도 이런 변화를 감지한다. 4년 전 바르셀로나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된 연례 조사에서는 이런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큰(부실한 경제보다 더한) 걱정거리로 꼽혔다. 하지만 그 후 그런 불안감은 확연히 감소했다고 바르셀로나 시 대변인 세르지 사바테 부티가 말했다. “(소매치기) 단속 강화 전략은 그 결과뿐 아니라 바르셀로나 시민의 인식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리우스는 말했다. “이제 시민은 바르셀로나가 4년 전보다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과르디아 우르바나 경찰관이 쉴새 없이 움직이는 이유다. 불가리아 출신의 그 여자 소매치기는 경찰이 자신을 놓아줄 듯한 기미가 확실해지자 얼굴에서 걱정스러운 기색이 사라졌다. 잠시 후 그녀는 지하철역 안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그날 그녀가 돈을 전혀 훔치지 않았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래서 비스카야는 다른 사복 경찰관 한 명에게 그녀를 뒤쫓도록 했다. 경찰관들은 필요하다면 밤이 새도록 그녀를 뒤쫓을 것이다.

- WINSTON ROSS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박스기사] 소매치기를 피하는 법


지갑은 앞 주머니에 넣고 호텔 로비에서도 여행가방 챙겨야최근 몇 년 동안 바르셀로나는 ‘소매치기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바르셀로나의 소매치기(후르타도라)는 기술이 뛰어나며 손쉬운 표적을 노린다. 소매치기를 피하려면 바르셀로나 거리의 좀도둑 근절을 전담하는 ‘과르디아 우르바나’ 경찰관에게 물어보라. 최근 그들의 도보순찰 일과를 취재하면서 얻은 정보를 소개한다. 세계 어디를 가든 당신의 지갑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경계심을 가져라.
그렇다고 편집증 환자처럼 행동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소매치기를 당해 휴가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얘기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소매치기가 가장 선호하는 표적은 면할 수 있다. 소매치기는 주의가 산만한 손쉬운 표적을 찾는다. 주변을 잘 살피면서 다니는 사람은 척 봐도 그런 표시가 난다.



핸드백은 목에 걸고 지갑은 앞 주머니에 넣어라.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바지 뒷주머니에 불룩한 지갑을 넣고 다니거나 핸드백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손쉬운 표적이 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지갑과 휴대전화를 스스로도 꺼내기 어려운 곳에 넣어두면 소매치기 역시 그것을 꺼내기가 어렵다.



가방과 카메라를 방치하지 마라.
호텔 로비 밖에 서 있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다. 내 친구들은 밀라노의 웨스틴 호텔 로비에서 여행가방 하나를 통째로 도둑맞았다. 그 가방은 프론트 데스크에서 불과 4.5m 거리에 있었다.



아무도 믿지 마라.
이렇게 말하게 돼 유감이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같은 곳에서 누군가가 지도를 들고 다가와 길을 물을 때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의 공범이 당신의 지갑을 훔쳐 달아날 가능성이 크다. 바르셀로나의 소매치기는 심지어 ‘새똥 수법(poop trick)’까지 동원한다. 한 소매치기가 피해자에게 가짜 새똥을 묻히면 또 다른 소매치기가 다가와 그것을 닦아주겠다고 하면서 돈을 훔쳐 달아난다. 다른 사람을 도와줘선 안 된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도울 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 WINSTON 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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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적자 낸 사업부는 0원”...LG화학, 성과급 제도 손질

4“말만 잘해도 인생이 바뀝니다”…한석준이 말하는 대화의 스킬

5 비트코인 반감기 완료...가격 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