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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전성시대 열린다] 강남권엔 한 집 건너 월셋집

[월세 전성시대 열린다] 강남권엔 한 집 건너 월셋집

“주변 중개업소 3~4군데를 돌아다녔는데 전셋집을 구하기가 어렵네요. 전셋값이 워낙 비싸서 매달 비용이 부담되더라도 월세라도 계약해야 하나 고민이에요.” 8월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아파트 인근의 중개업소. 전셋집을 구하러 온 주부 이모(40·서울 상도동)씨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찾는 전셋집은 거의 없고 월세 매물만 있어서다. 세입자를 구하는 전용 84㎡형 12가구 가운데 전세는 한 가구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월세. 월세 수준은 보증금에 따라 다양했다. 보증금 8억원에 월세 100만원, 보증금 5억원에 월세 200만원, 보증금 1억원에 월세 400만원과 같은 매물이 대부분이다. 이씨는 “전셋 값이 12억원선으로 비싼데도 매물이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며 “이렇게까지 전셋집 구하기가 어려운지 미처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7월 서울 월세 거래량 올해 최고치
주택 임대차시장에 월세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전세계약이 줄고 월세가 급증하고 있다. 집값 상승세를 이끌어온 서울 강남권이 월세시대도 주도하고 있다. 강남권에선 임대로 나온 두 집 중 하나 꼴로 월세다. 김원경 반포래미안공인 사장은 “집주인이 재계약이 돌아온 전셋집을 월세로 돌리면서 전세물건이 귀하다”며 “전셋집을 구하려면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서울·수도권 아파트 전·월세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34.8%를 기록했다. 2년 전인 2013년에 비해 8.8%포인트 높아졌다. 서울의 월세 비중은 2013년 23%에서 올해 33.2%로 상승했다.

7월엔 서울의 월세 거래량이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7월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 1만3464건으로 이 중 월세 거래가 4745건으로 월세 거래 비중이 34.7%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월세 거래 비중은 2011년부터 조사를 시작한 이후로 7월 최고치이면서 올해 최고치이기도 하다. 아파트 외 주택의 월세 비중은 48.8%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4%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의 월세화가 두드러진다. 올해 7월까지 강남권에서 계약된 월세가 전체 임대차의 36.7%다. 2013년보다 13.4%포인트 높아졌다.

월세 가격도 오름세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의 7월 전국 주택가격동향조사에서 강남(0.02%)·송파(0.16%)·서초(0.15%)구의 월세가격지수가 올랐다. 강서(-0.18%)·종로(-0.12%) 등이 하락세를 보인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월세 거래량이 전세보다 많은 단지도 쉽게 눈에 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반포동 반포자이에서 올 들어 7월까지 거래된 월세가 109건인데 전세는 98건이다. 월세 수준도 높은 편이다. 반포자이 전용 59㎡형은 지난 8월 15일 보증금 2억원에 월세 195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전용 84㎡형은 7월에 보증금 7억원에 월세 140만원에 거래 됐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 렉슬도 마찬가지. 이 아파트의 올 상반기 월세 거래건수는 110건이다. 같은 기간 전세는 108건 계약됐다. 7월 도곡렉슬 전용 59㎡형은 보증금 5억5000만원에 월세 58만원 거래됐다. 전용 84㎡형은 보증금 5억6000만원에 월세 120만원에 월세 매물이 나갔다. 송파구에서는 전·월세 거래 건수가 비슷한 수준이다. 잠실동 잠실엘스의 전세와 월세 거래량은 각각 258건, 257건이다. 잠실 엘스 전용 84㎡형은 평균 보증금 4억571만원에 월세 93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아파트 전·월세 거래에서만 월세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올해 빌라 전·월세 거래에서도 월세 비중은 37.19%로 조사 이래 가장 높았다. 1~7월 모두 35%를 웃돌았고 7월에는 38%까지 높아졌다. 단독주택도 올해 전·월세 거래 중 월세가 51.9%를 차지했고 7월에는 53.8%로 올들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강남구 청담동 금잔디공인의 김영철 사장은 “최근 아파트·빌라·단독주택 가릴 것 없이 모두 월세 거래가 늘고 있다”며 “새로 세입자를 구하는 집은 물론이고 2년 전세계약이 끝나는 집 주인이 대부분 월세 세입자를 찾는다”고 전했다.

올 들어 기준금리가 연 1%대로 떨어진 저금리가 전세의 월세화를 재촉하고 있다. 집 주인 입장에선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맡겨 이자를 받는 것보다 월세로 돌리는 게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은행 예금금리가 연 1%대에 불과하지만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적용되는 이율은 이보다 훨씬 높은 5~6% 선이다. 전세금 1억원을 월세로 돌리면 월세가 연간 500만~600만원, 월 42만~50만원이다. 특히 순수 월세는 세입자들의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기존 전셋값을 보증금으로 두고 월세를 받는 반전세와 준 전세(전세에 가까운 임차 형태로 보증금이 많고 월세 비중이 적음)로 돌리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
 전세금 마련에 지친 세입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원하는 세입자도 늘고 있다.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전세 보증금 목돈을 마련하기 어려운 세입자가 많기 때문이다. 7월 말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3억7000만원으로 2년 전보다 8000만원 올랐다. 또 자녀교육을 위해 학교 다니는 동안만 강남권에 거주하려는 학부모도 월세를 찾는다. 서울 방배동 로제 공인 신애자 사장은 “자녀 학교 때문에 강남권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 학부모가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강남이라는 지역적 특수성도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서민과 중산층이 주 수요층인 다른 지역 아파트와 달리 강남권에는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수요층이 많다는 것이다. 드림 주택임대관리회사 김창현 대표는 “기업체 임원 렌트나 부모의 뒷받침이 있는 30~40대 부부와 같은 중산층 이상이 100만~200만원이 넘는 고가 월세를 내고 강남에 거주하는 수요층”이라며 “강남권은 월세 수준이 높아 서민층이 월세로 살기엔 주거비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여기에 올 들어 크게 늘고 있는 재건축 이주가 강남권 전세의 씨를 말리고 있다. 재건축 공사를 위해 허물어진 아파트에서 나온 주민이 공사기간 동안 임대로 머물 집을 찾으면서 임대수요가 크게 늘었다. 임대수요가 넘치면서 이주민은 집주인의 월세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올해 강동구를 중심으로 시작된 재건축 이주 수요는 강남권으로 확대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연말까지 강남권 재건축 이주수요가 송파구 1890가구, 서초구 1290가구, 강남구 898가구 등으로 4000가구를 넘길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월세화가 더욱 빠르게 진척될 것으로 예상한다. 저금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요즘 재건축 사업이 활발해 멸실되는 주택이 늘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 김세기 주택통계부장은 “금리 하락으로 인해 집주인들이 전세를 준전세 등으로 바꾸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전세 수요가 꾸준한 만큼 준전세 가격이 당분간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급속한 월세화는 전세시장을 압박해 집값 상승세에 탄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 희소가치가 높아져 전셋값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며 “비싼 월세 부담을 피해 전세에서 매매로 돌아서는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월세시대를 거스를 수 없다면 서민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명지대 부동산학과 권대중 교수는 “월세 세액 공제 확대 등 서민의 월세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한진 중앙일보조인스랜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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