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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우리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케레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단편소설 작가로 일상생활의 모순에 남다른 안목을 지닌 이야기꾼이다.
이스라엘 작가 에트가르 케레트는 약 10년 전 아들을 얻었다. 그 아들이 태어나던 날 텔아비브 북부의 한 쇼핑몰에서 팔레스타인 과격분자가 저지른 폭탄 테러로 5명이 사망했다. 폭발은 케레트의 부인이 진통을 시작한 직후에 일어났다. 그날 병원에서는 그의 아들이 태어난 기쁨과 테러의 비극이 겹쳐졌다. 케레트는 의사들이 피해자들을 바퀴 달린 들것에 실어 옮기는 걸 지켜봤다.

케레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단편소설 작가다. 일상생활의 모순에 남다른 안목을 지닌 이야기꾼으로 인구 800만의 이 나라에서 얼굴이 꽤 알려졌다. 그날 병원에서 테러 피해자들을 취재하던 한 기자가 케레트를 알아보고 그에게 기사에 힘을 실어줄 만한 논평을 부탁했다. 하지만 케레트가 테러와 상관없는 일로 병원에 왔다(테러 피해자가 아니다)고 말하자 그 기자는 꽤 실망한 눈치였다.

“(테러 사건에 대해) 작가 선생님께서 한 말씀 해주시면 제 기사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독창적이고 비전을 가진 누군가의 의견은 중요하니까요.” 기자가 이렇게 말하자 케레트가 답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내 반응은 늘 똑같습니다. ‘갑자기 굉음이 들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모든 게 피로 뒤덮였다’ 이런 말들을 기사에 쓰시겠습니까?”

이 이야기는 케레트의 최신작 ‘세븐 굿 이어스(The Seven Good Years)’의 서두에 실렸다. 리버헤드 북스에서 출판된 이 책은 케레트가 아들의 출생부터 아버지의 죽음까지의 기간을 되돌아본 회고록이다. 단편소설 5편으로 구성된 모음집을 낸 후 처음 발표하는 논픽션 작품으로 그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지성과 매력이 넘친다.

세심한 관찰력이 빛나는 짤막한 글들은 케레트의 개인생활에 초점을 맞췄다. 부성(父性), 가족, 택시 기사와의 언쟁 등. 하지만 간간이 더 광범위한 이스라엘의 드라마를 건드리기도 한다. 지난 10년 간 이스라엘의 사회상[그는 이것을 ‘나선강하(spiraling descent)’로 묘사했다]을 설명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텔아비브의 한 카페에서 케레트를 만나 그의 새 회고록과 앞으로 이스라엘에서 계속 살 것인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논픽션을 쓰게 된 동기가 뭔가? 소설을 쓸 때와 어떤 차이점이 있나?


소설을 쓸 때는 등장인물들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은 욕구가 가장 큰 동기로 작용한다. 하지만 논픽션을 쓸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다.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소설 쓰기가 모험에 나서는 것이라면 논픽션 쓰기는 이미 끝난 모험을 설명하는 과정이다.



그러면 소설을 쓸 때 미리 줄거리를 짜놓지 않는다는 말인가? 자신도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나?


그렇다. 그래서 이번 논픽션 작품을 쓰기 시작할 때는 이 글을 써야만 하는 온갖 이유를 만들어냈다. 나중에 아들이 컸을 때 읽히기 위해서,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기록하기 위해서, 그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서 등등.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깨달은 게 있다. 논픽션을 쓸 때도 소설을 쓸 때와 같은 종류의 호기심이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써 내려갈 때에야 비로소 그 순간에 무엇이 중요했는지를 깨닫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한 방법이라는 말인가?


난 현재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지만 과거는 잘 돌아 보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날 당시에는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일단 지나고 나면 더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그 본질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90년대 초 당신의 단편소설이 출판되기 시작했을 때 획기적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다른 이스라엘 작가들과 달리 이스라엘의 국가적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 이유 중 하나다. 등장인물들이 제각각 작은 드라마 속에 갇혀 있다. 이런 방식은 당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하지만 이번 책은 이스라엘의 상황을 다뤘다. 현실이 그 나름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낸 것으로 보이는데.


내 소설 중 일부는 특정 정치 문제를 다뤘다.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의 암살이나 점령지 문제 등.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당신 말이 맞다. 정치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난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정직성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정직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다만 픽션이 논픽션과 다른 점은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이 외부 상황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대다수 픽션을 비정치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이유다. 하지만 내 소설 대다수가 폭력과 무관심에 대한 두려움, 개인에게 부도덕한 일을 강요하는 집단 등의 문제를 다룬다. 정치적인 문제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가 이 땅 위에 살면서 맞닥뜨려야 하는 딜레마를 해부했다.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의 구분은 때때로 임의적으로 보인다.



책 제목을 ‘세븐 굿 이어스(7년의 좋은 시절)’라고 붙였는데 이스라엘의 좋은 시절을 의미하나?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원운동을 하듯 반복해서 같은 자리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원운동이 아니라 나선강하 운동이었다. 가자전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등 똑 같은 사건이 되풀이됐다. 우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사실상 뒷걸음질쳤다.



책에서 언급한 형과 누나는 모두 자신이 나고 자란 사회를 등졌다. 누나는 초정통파 유대교도가 됐고 형은 무정부주의자가 돼 태국의 작은 마을에서 자급자족하며 산다. 이런 결과가 그들이 자란 교육 환경과 상관 있나?


내 나름대로 설명할 순 있지만 그들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른다. 어쨌든 두 사람 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에 매우 실망했다. 언젠가 형은 자신과 누나가 서로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이스라엘의 통치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며 총리를 자신들의 대표로 여기지 않는다. 누나는 일종의 종교 공동체에서 산다. 이스라엘의 정치체제가 자신의 요구나 가치관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선거 때 투표를 하지 않는다.



당신 누나는 당신이 사는 세속적인 텔아비브에서 점점 더 먼 곳으로 옮겨가며 산다. 그런데도 당신은 누나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매우 힘든 일 아닌가?


전에 누나가 엠마누엘 정착촌에서 살 때 내가 찾아가면 우리는 정치적 논쟁을 벌이곤 했다. 난 그런 논쟁이 좋다. 내가 누나를 찾아가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좋을 게 없다. 난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을 좀 더 인간답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또 그 사람이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생각을 바꾸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또 다른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예술가들이 서안의 정착촌에서 공연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들을 지지하지만 나 자신은 동참할 생각이 없다. 문화적 보이콧은 때때로 가로등 밑에서 동전 찾기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말해 사람들이 보이콧을 하는 이유는 그보다 더 쉬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보이콧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당신과 역시 작가인 당신 부인은 지난해 여름 가자전쟁을 소리 높여 반대했다. 그런 행동이 이스라엘에선 어떤 반응을 얻었나?


사람들은 “당신과 당신 아들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페이스북에 토론방을 열고 내 아내를 죽일 가장 적절한 방법을 의논했다. 가자지구 상공을 나는 비행기에서 내 아들을 낙하산 없이 떨어뜨리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진 않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내게 다가와서 내가 무슨 성직자라도 되는 듯이 “당신은 정말 용감한 분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선의로 하는 말이지만 기분 나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양쪽 모두 나를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떠날 생각은 안 해봤나?


헬스클럽에 갈까 하는 생각만큼 자주 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그분들에겐 이스라엘에 온 것이 일생일대의 성취다.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나?


내 생각에 부모님은 가정을 이룬 것을 가장 큰 성취로, 그 가정을 이스라엘에 이룬 것을 그 다음 큰 성취로 여기는 듯하다. 그분들에게 이스라엘은 두 가지 의미를 지녔다. 첫째 유대인에게 안전한 곳이며, 둘째 언제라도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도 과연 그런지 의심스럽다. 요즘 이스라엘은 유대인에게 가장 위험한 곳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통계적으로는 그렇다. 이스라엘에서는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더 많은 유대인이 사망한다. 또한 지난 가자전쟁 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안전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었다.



앞에서 당신은 못 말리는 낙천주의자라고 말했는데.


지난 수년 동안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도 극적으로 바뀌는 걸 봐왔다. 전쟁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비난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기도 하고, 오슬로 협정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그것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사람 모두를 한 방에 모아놓고 그들과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도록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DAN EPHRON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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