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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덕 한솥 대표

이영덕 한솥 대표

재일교포 출신의 이영덕 한솥 대표는 한국의 도시락 사업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한국에 최초로 테이크아웃 도시락을 선보인 이 대표의 도전과 성공은 역발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외교관을 꿈꿨던 재일교포 출신의 이영덕 대표는 상생의 정신을 통해 한솥을 성장시켰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1993년 7월 7일, 서울 종로구청 앞에 있는 한 가게에 유독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늘어선 줄이 30미터가 훌쩍 넘어섰다. 주변을 지나가던 이들이 ‘무슨 일이 생겼나’라고 궁금해할 정도였다. 가게에 들렀다 나온 이들은 손에 도시락 하나씩을 들고 나왔다. 26.4㎡(8평)의 좁은 가게 안도 북적이기는 마찬가지. 5명의 직원들은 연신 땀을 흘리면서 밥을 푸고 반찬을 담느라 분주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가게에 나와 뜨거운 김이 나는 밥을 도시락에 담았던 이영덕(66) 한솥 대표는 “10평도 안되는 가게 하루 매상이 157만원이었다. 대박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테이크아웃형 도시락 가게는 그렇게 시작했다.

이날 수십 미터의 줄이 도시락 가게 앞에 늘어선 것은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다. 한솥 1호점이 문을 연 때는 공중전화 요금이 30원, 짜장면 가격이 1500원~2000원하던 시절이다. 한솥에서 판매하는 도시락 가격은 970원짜리 콩나물밥부터 2400원짜리 장모님도시락까지 저렴했다. 짜장면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따뜻한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인기 요인이다. 특히 고명이 얹혀진 콩나물밥은 1000원도 채 안되는 가격과 양념간장만 뿌려서 비벼먹는 간편함까지 있어 고객의 큰 사랑을 받았다. “1000원을 내면 공중전화 한 통할 수 있는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게 970원으로 책정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이 대표의 회고다. 수개월 동안 고민하면서 만든 콩나물밥 메뉴는 한솥을 알리는 일등 공신이었다. 한솥 1호점의 성공으로 “한솥 가맹점을 하고 싶다”는 이들의 발걸음이 한솥 본사에 줄을 이었다.

1인 가구의 증가와 맞물려 솔로이코노미가 주목받고 있다. 한솥은 솔로이코노미를 대표하는 도시락 기업이다. 당장 매출액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400여 억원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800여 억원으로 4년 만에 2배나 성장했다. 국내 도시락 시장 규모는 편의점 도시락을 포함해 2조원대다. 한솥은 도시락 가맹점 시장에서 20%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솔로이코노미 대표 도시락 기업
한솥의 성공은 선견지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0년대 초반 한국은 도시락 춘추전국 시대였다.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가 한국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도시락 가맹점들도 속속 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도시락 1차 붐 시대였다. “당시 미가도시락, 엄마손도시락, 진주랑 도시락 등의 프랜차이즈가 도시락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이 배달 도시락 가맹점이었다. 당시 도시락 시장은 블루오션이 아닌 레드오션이었던 셈.

후발 주자가 치열한 경쟁을 뚫으려면 차별화가 필요했다. 이 대표가 꺼내든 카드는 테이크아웃 시스템이었다. 도시락 시장은 배달 서비스가 상식이었다. 소비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었다. “당시 테이크아웃 도시락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다들 망한다고 했다.”

이 대표가 이런 상황에서도 테이크아웃 시스템을 고집한 이유가 있다. 초기 자본금이 적기 때문이다. “테이크아웃 도시락 가맹점은 점포가 작아도 되고, 인원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인건비나 임대료 등 고정 비용이 타 가맹점보다 적게 들어가니 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970원 도시락이 나올 수 있던 배경이다.

창업 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한솥 도시락 가격은 2700원부터 1만2000원까지 다양하다. 주력 메뉴인 치킨마요·돈치마요 등의 가격은 3000원~5000원 사이로 여전히 저렴하다. “한솥 도시락 가격은 물가 상승률보다 낮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밥이나 반찬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동종 업계에서 우리의 도시락 재료가 최고라고 자부한다. 품질도 유지하고 가격도 낮게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뚜기, 아워홈 등의 대기업과 식자재 공급계약을 맺어서 원자재 단가를 낮춘 것이 가격 경쟁력의 비결이다. 매장에서 직접 지은 따끈한 밥은 ‘집밥 시대’에 훌륭한 대체제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지만, 한솥에도 위기는 있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는 한솥의 위상을 높인 계기였다. 외환위기 사태로 환율은 요동쳤다. 800원대를 기록했던 달러 환율이 1950원까지 치솟았다. 수입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다. 쌀, 밀가루, 설탕, 용기 등을 납품했던 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모든 식당이 가격을 1000원 이상 올리던 때였다”고 이 대표는 회고했다.

원자재 가격 인상은 도시락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이 대표도 납품업체들의 원성을 이해했다. 한솥 가맹점주 20여 명을 본사로 불렀다. 하지만 가맹점주들은 오히려 “도시락 가격 인상은 안된다. 우리의 이익을 조금 포기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가맹점주들이 그런 말을 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가맹점주와 납품업체를 위해서 본사가 짐을 짊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이 대표는 회고했다.

이 대표는 납품업체 대표들에게 1년의 유예기간을 요청했다. 당시 가격 그대로 1년 동안 납품하면 1년 후에는 2배의 원자재를 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일 1년 뒤 본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납품업체의 손해를 무조건 배상해주겠다는 선언을 한 것. “외환위기가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1년이면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1년 후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경쟁사들이 도시락 가격을 인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에 반해 한솥은 가격을 동결했고, 고객이 밀려들었다. 한솥 가맹점들의 매출은 30~50%나 상승했다. 경쟁 업체가 도산을 할 때, 한솥은 오히려 성장을 한 것. 한솥 가맹점의 수익이 높다는 소문이 돌면서 가맹점 신청자도 늘어났다. 1년 후 이 대표의 말대로 가맹점이 2배로 늘어났다. 약속대로 1년 후 원자재 구입량을 2배로 늘릴 수 있었다. 이 대표와 가맹점주, 납품업체가 마음을 합쳤기 때문에 가능한 반전이었다. “외환위기 시절 가맹점주들이 인건비를 줄이면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 이 덕분에 한솥의 체질이 더욱 강해졌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한솥에 대한 평가는 호평일색이다. 2015년 7월 현재 670개 가맹점의 평균 매출액은 하루 80만원에 이른다. 가맹점주는 인건비와 원자재비, 임대료 등의 고정비를 제하고 매달 400만원~500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5년 이상 한솥 가맹점으로 운영되는 곳도 267 곳으로 40%가 넘는다. 10년 이상 운영하는 곳도 25%나 된다. 한솥 본사와 가맹점 주의 관계가 끈끈하기 때문이다. ‘상생’을 강조하면서 한솥을 운영한 덕분이다.

“프랜차이즈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려면 가맹점이 100개가 넘어야 한다. 그러면 본사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한솥의 경우 가맹점이 300개가 넘어서야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가맹점주와 소비자이익을 위해서라면 본사도 어느 정도 수익을 포기해야 한다.”
 교세라 창업주 통해 열정 배워
이 대표는 가맹점주와 계약을 맺기 전 2번의 교육을 직접 진행한다. 그가 교육 때마다 꼭 하는 말이 ‘한솥의 약속’이다. ‘고객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든다’, ‘건전하고 투명한 기업을 추구한다’ 등 5개의 문항으로 되어 있다. 이 대표의 경영철학을 가맹점주와 함께 공유하고 신뢰를 쌓아가기 위해서다. “고객의 이익을 높여주는 사업은 성공한다. 돈을 쫓아가면 실패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 이 대표는 강의를 잘하는 CEO로 정평이 나있다. 경쟁업체에서 강의를 들으러 올 정도로 감동과 배울 점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맹점주들은 이 대표의 강의를 들으면서 한솥의 경영철학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이 대표의 경영철학은 독특한 경험에서 나왔다. ‘일본의 부엌’이라는 일본 교토에서 출생해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공부도 잘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서울대 법대를 선택했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일본 도쿄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꼽히는 아버지 덕분에 여러 외교관을 미리 만나볼 수 있었다. “그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무원은 나의 길이 아님을 느꼈다. 얽매어 사는 공무원의 생활은 나와 맞지 않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일본과 서울을 오가면서 사업가로 살았다. 성공도 맛보았지만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 기업가로서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새로운 기업가로 키워낸 이는 일본이 낳은 대표적인 기업가 교세라 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었다. 그의 책을 읽고, 그가 주최하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사업을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이타심으로 살아라’라는 이나모리 명예회장의 말은 충격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사업을 벌였지만, 열정이 없었다. 나를 일으켜 세운 이는 이나모리 회장이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은 동생에게 넘겼다. 대신 고객과 가맹점 주를 우선으로 하는 경영철학을 내세우며 5600만원을 가지고 한솥을 창업했다. 6~7년 적자를 감수하고 버틴 덕분에 지금의 한솥을 만들었다.

도시락이라는 한 길을 걸어오면서 성공 스토리를 써온 이 대표. 그의 목표는 패스트푸드의 천국이라는 미국과 도시락의 원조인 일본 진출이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점포가 계속 늘어나야 성장을 한다. 한국 시장도 한계가 있다. 해외에 도전해야 한솥은 계속 발전할 수 있다.”

-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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