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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끄는 9월의 메이저 대회 한국오픈·에비앙챔피언십] 가을 필드 수놓을 세기의 대결

[눈길 끄는 9월의 메이저 대회 한국오픈·에비앙챔피언십] 가을 필드 수놓을 세기의 대결

제네바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멋진 전경의 에비앙리조트 18번 홀. / 사진:LET 제공
올해로 58회를 맞는 국내 남자 골프의 메이저 대회인 코오롱한국오픈과 LPGA의 메이저 대회로 격상된 지 3년째를 맞는 에비앙챔피언십이 9월 둘째 주에 동시에 열린다. 긴 역사를 자랑하고 관심이 집중된 대회인 만큼 재미난 뒷얘기와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1958년 9월 11일부터 4일간 지금의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있던 서울CC에서 ‘한국오픈골프선수권’이 열렸다. 첫해 우승자는 미군 하사관인 오빌 무디였다. 첫날 76타를 치면서 선두로 치고 나가더니 2위와 3타차 306타로 우승했다. 이듬해 열린 2회 대회에서는 309타로 한국의 첫 번째 프로골퍼인 연덕춘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했다. 3회 대회는 2위에 6타 앞선 288타로 우승했다. 무디는 엄청난 장타를 치면서 국내 선수들을 압도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KPGA선수권에서도 1959년 2회, 1966년 9회 대회에서 우승해 총 5승을 거뒀다.

무디는 1967년에 전역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PGA투어에 바로 데뷔했고, 2년 후인 1969년에는 최대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14년간 한국에서 복무하고 돌아온 군인 출신 선수의 메이저 우승이라면서 큰 화제가 됐다. 닉슨 미국 대통령이 직접 축하 전화를 걸 정도였다. 무디는 한국에서 그러했듯 PGA투어에서도 엄청난 비 거리로 유명했다. 또한 장타자들이 그러하듯 퍼트가 문제였다. 갖은 퍼팅 방법을 쓰고 고민하던 무디는 US오픈에서 우승할 때는 당시로선 낯선 역그립을 잡고 퍼트를 했다. 휴스턴에서 열린 그해 대회는 유난히 비가 많아 페어웨이는 질척 거렸고 버뮤다 잔디로 조성된 그린 스피드는 무척 느렸다. 퍼팅이 약한 장타자가 우승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무디는 PGA투어에서 총 266경기를 뛰었으나 그해 1승이 유일하다. 1983년 챔피언스투어로 옮겨간 뒤에는 1989년 US 시니어오픈을 비롯해 시니어에선 11승이나 거뒀다.

2002년 한국오픈은 한양CC 신 코스에서 열렸다. 당시 초청 선수는 타이거 우즈에 맞설 영건으로 떠오른 스페인의 신동 세르히오 가르시아였다. 그는 첫 날 67타를 기록하더니 둘째 날 65타를 치면서 선두를 내달렸다. 강욱순도 66, 67타로 뒤쫓았으나 가르시아의 샷 감은 최고였다. 3라운드 66타에 이어 마지막 날도 67타로 최종 23언더 265타로 3타 차 우승이었다. 국내 대회 최저타 기록을 경신했다.

마지막 날에는 어처구니없는 해프닝도 있었다. 11번 홀에서 가르시아의 샷이 오른쪽으로 많이 치우쳤는데 근처에 있던 갤러리가 황당하게도 그걸 주워 페어웨이로 던져주었다. 가르시아는 그 홀에서 행운의 버디를 하고는 나중에 기자회견장에서 ‘나무에 맞고 들어온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21세의 젊은 외국 선수가 처음 와서 최저타 기록을 세우자 이듬해부터 코스는 천안 우정힐스CC로 옮겨졌고 이후 코스 난이도를 점차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2013년 대회 챔피언인 강성훈은 2위로 경기를 마쳤으나 두 시간 뒤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원래는 김형태가 우승하는 줄 알았고, 그는 마지막 퍼트 후에 우승 세리머니도 했다. 그가 경기를 마친 뒤 비디오 판독까지 거친 결과 13번 홀에서의 룰 위반이 인정되어 2벌타를 받았다.

하지만 그해의 대박은 강성훈보다는 ‘무명’에 가까운 박상언의 홀인원이다. 3라운드에서 221야드의 파3 13번 홀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것이다. 홀인원 부상은 약 1억9000만원대의 BMW 750Li였다. 박상언이 2010년 투어에 데뷔하면서부터 받았던 누적 상금 총액(4661만원)의 4배에 이르는 금액이었다. 한국오픈 2위 상금(9800만원)보다도 약 1억원이나 많았다. 그는 마지막 날에는 81타를 쳐서 본선에 오른 60명 중 58위를 했다. 상금은 490만원이었다.

2013년 한국오픈에서 홀인원으로 대박을 터뜨린 박상언. / 사진:대회 조직위 제공
에비앙챔피언십은 지난 1994년 유러피언레이디스투어(LET)의 에비앙마스터스 대회로 시작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SG)이 메인 스폰서가 되었는데 매년 적극적인 스폰서십을 발휘하면서 단기간에 대회를 키워냈다. 4만630유로에서 시작된 상금액을 단계적으로 올리면서 규모를 확대했다. 1998년에는 LET 메이저 대회로 격상되더니 2000년부터는 미국 LPGA투어와 공동 개최 대회로 열리기 시작했다. 180만 달러이던 상금액은 급속히 올라갔다. 총 상금 325만 달러는 여자 대회에서 세계 최고액이었다(지난해부터 US여자오픈이 325만 달러에서 400만 달러로 증액했다). 출전 선수들에게는 숙박은 물론 각종 편의 서비스가 최고급으로 제공되면서 선수들 사이에서는 가장 출전하고 싶은 대회로 자리잡았다.

미국 LPGA에서는 메이저이던 크라프트나비스코가 몇 년 전부터 대회 후원 중단을 선언한 상태였다. 따라서 LPGA는 그에 대한 대안 차원에서 후속 메이저로 에비앙마스터스를 2013년부터 에비앙챔피언십이라는 이름으로 메이저 대회로 승격했다. 하지만 미션힐스에서 매년 봄에 개최하던 나비스코는 올해 일본 항공사 ANA가 새 스폰서가 되면서 ANA 인스퍼레이션 대회로 이름을 바꿨으나 메이저 자격을 유지했다.

에비앙챔피언십은 LET와 LPGA투어의 공동 개최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출전한다. 지난해는 북아메리카 출신이 38명, 유럽은 31명이었다. 아시아는 한국 선수 22명을 포함한 38명이었고, 오세아니아 8명에 아프리카 2명, 남아메리카 3명 등 26개국의 선수들이 출전했다. 그래서 우승자가 가려지면 하늘에서 우승 선수가 속한 국기를 매단 낙하산이 내려온다. 우승자는 그 국기를 몸에 두르고 기념 촬영을 한다. 우승자를 하늘의 골프신이 점지한다는 상징을 띄는 재미난 이벤트인 것이다.

이 대회는 마스터스를 개최하는 오거스타내셔널처럼 프랑스의 휴양지인 에비앙 르벵의 에비앙리조트에서만 대회를 개최하는 특징을 가졌다. 해발 480m 고원에서 북쪽으로 제네바 호수를 내려다보는 멋진 조망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덕에 인구 8000여명에 불과한 에비앙에는 대회 기간 6만여명의 관광객이 몰린다. 생수 브랜드 에비앙은 이로 인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난해 국내에서 창설된 KLPGA대회 제주 삼다수마스터스는 이 대회를 벤치마킹했다. 주최사인 제주자치도개발공사는 중장기적으로는 에비앙처럼 글로벌 대회로 위상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우승 선수의 국기 매단 낙하산 이벤트
대회장이 한국과 비슷한 산악 코스인 때문인지 이곳에서의 우승자를 보면 스웨덴과 일본, 한국의 아시아 출신이 강세였다. 스웨덴의 헬렌 알프레드손이 첫 해인 1994년, 5년 뒤인 1998년, 거기서 10년 지난 2008년까지 총 세 번을 우승했다. 이밖에 스웨덴 출신의 골프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이 두 번, 카트린 닐스마크가 한 번 우승했다. 일본에서는 미야자토 아이가 두 번, 히로미 고바야시가 한 번으로 총 세 번 우승했다. 한국도 통산 3승이다. 지난 2000년 신지애가 첫 우승을 했고, 2012년 박인비가 우승했다. 그는 이 대회 우승을 계기로 이듬해 세계 정상으로 오르는 동력을 얻었다. 지난해는 초청 선수로 출전한 김효주가 호주의 베테랑인 카리 웹을 마지막 홀에서 드라마틱하게 제치고 역전승을 거두었다.

-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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