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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픈 사례로 본 그린의 핀 세팅] 그린 한가운데 핀 꽂아도 빗나간 샷 속출

[한국오픈 사례로 본 그린의 핀 세팅] 그린 한가운데 핀 꽂아도 빗나간 샷 속출

사진:중앙포토
핀이 가장자리에 꽂힐수록 선수들은 얼마나 더 어렵게 플레이할까? 최근 끝난 국내 최대 메이저 대회인 한국오픈에서 4라운드 동안 꽂힌 핀 위치 72개를 살펴보니 뜻밖이었다. 가장자리로 간다고 해도 급격히 늘지 않았다. 대부분의 홀에서 핀이 그린 가장자리에 치우쳐 있었지만 한국 최고의 프로 선수들에게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대로 한가운데 핀이 꽂혀 있다 해도 더 쉬운 것도 아니었다.

둘째 날 호수 가운데 아일랜드 그린을 가진 파3 221야드의 13번 홀은 핀이 한가운데 꽂혔다. 코스 세팅을 주관한 이성재 대한골프협회(KGA) 경기위원장은 “갤러리들의 보는 재미를 높이기 위해 홀인원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가운데 꽂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날 홀인원은 하나도 없었고, 버디도 6개에 그쳤다. 파는 103개로 많았지만 보기가 25개에 더블 보기도 7개였다. 이 홀의 평균 퍼트 수는 2타로 이날 전체 18홀 중에서 타수 난이도는 7위, 퍼팅 난이도는 2위였다. 핀이 가운데였지만 까다로운 그린 브레이크가 버디를 잡으러 가는 볼을 잡아챈 것이다.
 전장 30야드 차이에 홀인원 들쑥날쑥
KGA는 마지막 날 피날레를 장식할 18번 홀에서도 그린 한 가운데에 핀을 꽂았다. 이 홀의 별칭은 ‘스타디움’이다. 그린위로 언덕이 둥글고 넓게 펼쳐지며 대형 스탠드 관람석도 마련되어 있다. 이날 하루에만 1만여명의 갤러리가 찾았다고 하니 스타디움에서처럼 수많은 갤러리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멋지게 버디를 잡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게 핀 위치를 한가운데 세팅한 의도로 짐작된다.

하지만 파5에 561야드인 이 홀의 평균 퍼팅수는 1.78타로 난이도에서는 10위였다. 서드샷으로 핀에 가까이 붙인 선수도 많았지만 투 퍼트가 예사였다. 한가운데 놓인 핀이 가장 자리의 핀보다 더 어려웠다는 의미다. 4일간의 최종 스코어가 결정되는 홀이라 보통 때보다 더 많이 긴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가장 쉬운 그린은 대체 어디였을까?

6번 홀이 평균 퍼팅 1.63타로 가장 쉬웠다. 핀은 그린 입구에서부터 15m 지점, 왼쪽 가장자리에서 6m 지점에 꽂혔다. 그린 왼쪽에 핀이 있었는데 여기서 두 선수 중에 한 명 정도는 원 퍼트로 끝냈다. 왜 그렇게 쉬웠을까? 이 지점은 대체로 평탄하며 브레이크의 기울기가 완만했다. 6번 홀이라 경기 초반인데다 갤러리와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 집중도를 높여 퍼팅할 수 있었던 점이 쉬운 퍼트의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런가 하면 어려운 핀 위치였지만 4일간의 대회에서 유독한 홀에서만 홀인원이 두 개 나왔다. 셋째 날 이상엽이 188야드 4번 홀에서 티샷한 볼이 홀인원이었다. 이날 핀은 그린의 오른쪽 뒤쪽 끝에 꽂혔다. 마지막 날은 아마추어 강태영이 홀인원을 했는데 이번엔 왼쪽 끝에서 4m에다 그린 입구 10m 지점에 핀이 있었다. 가장자리 4m는 핀이 꽂힐 수 있는 가장 끝이다. 그런데도 이 홀에서만 두 개의 홀인원이 나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전장 221야드에 핀이 그린 한가운데에 있는 것보다는 그린 가장자리에 핀이 꽂혀도 전장 188야드로 가까울(?) 때 홀인원 확률은 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올해 한국오픈은 모든 핀이 전후좌우 4~7m의 구석에 박혀 있었다. 4일을 통틀어 평균 퍼팅은 1.89타였고 스코어는 73.18타였다. 총 파71인 코스였으니 평균적으로 2.18타를 더 쳤다는 얘기다. 한국오픈 개최 일주일 전에 충남 유성CC에서 열렸던 매일유업오픈에서는 평균 퍼팅 1.76타였고 파72코스에 평균 타수 69.79타였으니 2.21타가 더 쉬웠다. 한국 오픈이 최대 메이저인지라 그린 난이도 역시 여느 대회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핀 위치는 홀 난이도에 영향을 분명히 준다. 그린 사이드벙커에 인접해서 핀이 꽂힌다면 선수들은 벙커에 빠질 위험성을 감안하고 핀을 바로 공략하지 못한다. 꽂혀진 핀 옆으로 러프가 깊다면 선수들은 차라리 그린 한가운데를 공략한다. 하지만 일단 그린에 올라가면 핀 위치보다는 그린의 경도와 빠르기, 그리고 브레이크가 타수를 좌우하는 변수다.

코스 세팅을 맡은 경기위원들은 그린 어느 지점에 핀을 꽂을지 판단하기 위해 앱을 다운받기도 한다. 미국골프협회(USGA)에서 제작한 ‘잔디경도(TurfFirm)’라는 앱은 볼을 수직 낙하시켜서 그린이 얼마나 딱딱한지를 측정하는 기구다. 볼을 떨어뜨렸을 때 지면이 0.38㎜ 이하로 파인다면 딱딱한 그린이다. 이 정도면 세컨드 샷을 한 볼이 그린에 떨어진다해도 그린 밖으로 튕겨나간다. 하나의 그린 안에서도 잔디경도가 다르기 때문에 경기위원은 이 앱을 참고해 핀 위치 세팅의 난이도도 참고한다.

그린 빠르기는 스팀프미터(Stimpmeter)라는 장비로 측정한다. 길이 91㎝, 폭 4.5㎝의 홈이 파인 관에 볼을 올리고 모서리를 들면 지면에서 20도 지점에서 볼이 굴러서 그린을 구른다. 올해 한국오픈에서는 공이 3.2~3.4m 정도 굴러갔다. US오픈이나 마스터스에서는 3.3~3.6m까지 구르며, 국내 골프장의 그린은 대체로 2.5~2.8m 정도 구른다.

골프장 한 홀의 그린 면적은 대체로 500~800㎡로 조성된다. 핀을 꽂을 넓은 면적이 4곳 이상 확보되어야 하고, 경사 1~1.5도 이내의 지름 3야드 평탄한 원이 14개가 나와야 정규그린이 된다. 핀을 꽂을 곳이 4개라는 건 골프 대회가 4일 경기이기 때문이다. 평탄 원이 14개라는 건 한 달에 두 번 정도 홀컵을 끼울 정도의 공간을 갖춰야 그린이 답압(踏壓)으로 인한 손상을 입지 않는다는 데이터에 근거한다.

하지만 이는 골프장 상황과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한 여름이나 내장객이 몰리는 주말이면 홀컵을 자주 바꿔야 잔디를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20~25팀, 즉 캐디를 포함해 100~125명 정도가 지나가면 핀의 위치를 바꿔준다. 한 여름에는 내장객이 비는 시간을 이용해 홀 커터(Hole Cutter)를 든 코스관리 직원이 코스를 돌며 홀컵을 바꾼다.
 내장객 수에 따라 홀컵 위치 바꿔
흔히 핀이 어려운 데 꽂히면 ‘코스팀장이 전날 부부싸움을 했다’는 농담이 전해지고 있으나 핀 위치는 실은 골프장의 영업 상황과 날씨 및 잔디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USGA에서는 핀 위치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다. 하지만 핀 위치를 정하는 건 결국 그린키퍼의 소관이므로 전날 부부 싸움으로 핀을 마음대로 꽂는다 해도 할 말은 없다. 핀이 어려우면 진행이 늦어지고 애먼 골퍼가 분통을 터뜨릴 뿐이다.

한국오픈에서의 프로들과는 달리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핀 위치가 스코어에 큰 영향을 끼친다. 프로처럼 핀을 향해 샷을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샷을 그린 한가운데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서 전국 264개 골프장의 핀과 티박스 색깔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80%의 골프장은 핀의 깃발 색깔로 거리를 구분하도록 했다. 중핀일 때 전체 골프장의 64%가 흰색 깃발을 썼지만, 25.9%는 노랑색을 썼고, 6.2%는 파랑색을 썼으며 5개 골프장은 빨강색 깃발을 썼다. 골프장의 90.5%는 앞핀일 때 빨강색이었다. 하지만 뒤핀일 때는 절반 정도만 노랑색을 사용했으며 다음으로 파랑, 흰색, 빨강 순서였다.

-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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