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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국경을 개방해야 한다

미국은 국경을 개방해야 한다

지난 7월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법 개혁안 실행을 촉구하는 시민들.
호주인과 캐나다인인 내 친구 2명은 최근 미국으로 이민하려다가 몸서리치는 일을 겪었다. 둘 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미국이 세계에 표방하는 자유를 사랑한다. 적어도 과거의 미국은 그랬다. 한 친구는 몇 달 동안 대기하다가 겨우 이민 승인을 받았지만 다른 1명은 추방됐다.

그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관료들의 포로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비극이다. 미국인은 이런 지독한 시스템이나 관료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전혀 모른다. 직접 당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이민과 관련된 관료주의가 얼마나 복잡한지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미국 관료들이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힘은 무시무시하다. 그에 따른 미국의 생산성 손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미국 정부가 ‘위대한 나라’ 미국을 사랑하고 그 사회에 기여하려는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가슴을 칠 수밖에 없다.

미국 건국 후 첫 100년 동안은 이민 제한이 전혀 없었다. 전 세계의 사람을 환영했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다. 그땐 여권이 필요 없었다. 거의 모두가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자유의 본질로 인정됐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사실상 이민을 금지했다. 미국에 가족이 있거나 고학력자거나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미국에서 살며 일할 수 없다. 그 외 합법적 이민의 장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다. 취업 비자를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한편 미국 정부는 이민을 막는데 180억 달러를 지출한다. 그런데도 미국에는 불법이민자가 1100만 명이나 되고 매년 50만 명이 미국 국경을 넘어가다가 붙잡힌다. 완전히 실패한 이민 정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성에 안차는 모양이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는 불법체류자 집단 추방과 국경의 장벽 건설을 촉구하면서 큰 인기를 누린다. 다른 후보들은 그의 막말에 놀라면서도 이민 위기가 진행 중이라는 그의 핵심 주장엔 동의한다.

자유를 주장하는 많은 미국인도 ‘국경 폐쇄’의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24시간 감시, 수백억 달러의 낭비, 집단 추방, 아메리칸 드림을 망치는 관료주의, 인권 침해 등이 그 결과다.

이런 정치적 히스테리 와중에 감히 나서서 ‘국경을 개방하라’고 부르짖을 사람은 없다. 그런 말만 들어도 미국인은 벌벌 떤다. 임금이 줄어들고, 복지가 엉망이 되며, 문화적 혼란이 생기고, 국가 언어가 사라지며, 범죄가 급증할 것이라며 극구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를 보면 그런 반대는 설득력이 없다. 이민자의 범죄율은 미국인보다 낮다. 이민은 실업을 초래하지 않는다. 이민자는 미국인보다 공공혜택을 적게 누린다. 이처럼 트럼프의 이민정책 제안서는 하나 같이 잘못됐다.

이민 제한은 최소한 두 부류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공격한다. 외국인을 고용하려는 고용주와 미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을 말한다. 임의적인 무역 제한처럼 그런 제한은 자유로운 경제적 교환을 막는 잘못된 정책이다.

대부분의 이민 반대는 성급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미국인은 자유 그 자체를 두려워한다. 그런 사람에겐 자유가 사라지면 다시 자유를 찾았을 때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유의 개념을 두려워한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사회가 엉망이 되는 시나리오를 떠올리기는 너무도 쉽다.

금주법 시절에도 그런 문제가 있었다. 금주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지만 술 생산과 소비를 다시 허용하면 나라를 망친다는 두려움이 팽배했다. 주정뱅이가 거리를 가득 채우지 않을까? 쥐꼬리만한 소득을 술에 탕진하지 않을까? 가정이 파괴되지 않을까?

자유를 어떻게 적절히 누릴 수 있을지에 관한 상상력의 부족이 미국에서 이민과의 전쟁을 끝내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렇게 상상해보자. 미국 각 주 사이의 경계선을 엄격히 단속한다. 검문소가 있고, 여권을 검사하고, 마약 탐지견으로 소지품을 검색한다. 오하이오주에서 네바다주로 직장을 옮기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버지니아주 주민이 뉴저지주에서 비자 기간을 넘기면 추방될 수 있다. 다른 주로 이사하려면 갖가지 서류를 구비하려고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노동시장이 엄격히 규제돼 고용주가 자신이 사는 주에서 인력을 구할 수 없을 때만 다른 주의 주민을 고용할 수 있다.

그게 전부 사실이라면 미국 각 주 사이의 경계선 개방과 자유 노동시장을 제안하는 사람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안에서 각 주 사이의 자유 이주를 허용하는 조건은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때와 같다. 여권을 발급하는 정부가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 산다고 치자. 내가 북부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의 조지아주 이주를 금하는 운동을 시작한다면 어떨까?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느냐고? 시카고엔 범죄율이 아주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들어오면 내가 받는 복지혜택이 줄어들고 임금이 낮아진다. 또 그들은 미국 남부 사람의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각 주 사이의 이주를 제한해야 할까? 트럼프는 찬성할지 모르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외국인의 미국 이민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와 다르지 않다.

외국인의 미국 이민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 깔린 논리는 미국 각 주나 각 도시 사이의 이주 제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지만 미국 내 이주에는 그런 제한이 없다. 그런데도 왜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자유의 힘 때문이다.

국경이 개방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려면 먼저 실험이 필요하다. 근래에 그런 실험이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서로 싸우던 28개국이 있다. 언어, 종교, 풍습도 모두 다르다. 서로 너무 혐오해 집단학살이 자행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나라들이 전부 국경을 개방했다. 20년 전 실행되기 시작한 솅겐조약이다. 그 조약을 체결한 나라의 사람들은 솅겐 구역 안에선 어디서든 살고 일하며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관료주의가 이동의 자유와 일할 자유를 막지 않는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1세기 이상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완전한 국경 개방의 위대한 실험이다. 그것이 바로 유럽연합(EU)이다. 별 문제 없이 잘 돌아간다.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은 모두가 총·장벽·철조망의 두려움 없이 지구 위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세계다.

자유와 자본·노동의 자유 거래를 두려워하지 말자. 자유주의의 대표 사상가였던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세계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이주의 자유를 재확립하지 않으면 영구적인 평화는 존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 JEFFREY A. TUCKER / 번역 이원기



[ 필자 제프리 A 터커는 자유주의 경제 원칙을 전파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경제교육재단(FEE)의 디지털개발 담당 국장이다. 이 기사는 FEE의 블로그 ‘Anything Peaceful’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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