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개혁하기 위한 북한의 중대한 움직임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으나, 이를 감지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 유일한 듯하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에 위치해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도시 단둥의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소식이다.240만 가구가 거주하는, 마천루가 즐비한 화려한 도시 단둥(丹東)은 압록강을 사이로 저층건물이 늘어선 고요한 북한도시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다. 이 두 도시는 중국과 북한 교역의 대략 70~8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 새로 건설한 세련된 다리가 압록강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단둥시의 강둑을 따라 싱가포르 시티 아니면 갤럭시 베이와 같은 이름의 아파트 건물이 늘어서 있다.

단둥시 강변의 가게는 북한산 기념품으로 넘쳐난다. 식당과 상점을 비롯해 무역회사를 광고하는 한국어 간판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놀라운 섬세함을 보세요!” 자수가 놓인 리넨 천을 한층 돋보이게 해주는 섬세한 수를 가리키며 박채선 씨가 하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솜씨를 볼 수 없습니다. 평양에서만 가능하지요.”

그 어느 때보다도 북한과 중국 간의 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단둥에서 사업하는 여성기업가 박채선은 북한의 수도 평양으로 가공되지 않은 천을 보내 평양에서 수공예로 자수작업이 된 천을 받아오는 사업을 하고 있다. 추가적인 마무리 작업을 거친 후, 이 천은 일인용 테이블 매트, 신고전주의풍 의류 및 장식 천으로 거듭나 ‘메이드 인 차이나’ 로고가 박혀 전 세계 시장으로 수출된다. 공식적인 제재 조치에 의해 대부분의 대북교역이 금지된 한국도 여기에는 포함된다.

사업은 잘 되고 있다. 박채선과 남편은 단둥시 외곽에 맞춤형으로 지은 한국풍의 자택 한 채뿐만 아니라, 압록강을 내려다보는 강변 지역에 아파트 네 채를 소유하고 있다.

최근 어느 날 아침, 단둥시 세관 앞에 30~40여 대의 중국 트럭이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국수자루와 소비재를 실은 트럭도 있었으나, 화물의 대부분은 콘크리트 보강재·바닥재·케이블·트럭 타이어 부품과 같은 건축자재로, 평양을 비롯한 북한 여타 지역에서 한참 진행 중인 부동산 건설붐을 위한 것이었다. 화장실 타일·배관부품·바닥재·창틀 같은 주택 자재를 판매하는 면세점의 소유주인 궈펑차우는 매출의 30%를 북한에서 방문하는 고객들이 차지한다고 이야기한다. 단둥과 달리 압록강 건너 신의주에서는 자급자족의 징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력부족으로 많은 아파트 빌딩에 태양열 발전기가 설치되었고, 심지어 베란다에 발전기가 놓인 경우도 있다. 중국 쾌속정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강변까지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강 중류 지역에서는 낡아빠진 세 대의 보트 위에서 다 해어진 옷을 입은 북한 상인들이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술·담배·강장 음료와 같은 제품을 판매한다. 이런 거래가 북한 군대 주둔지에서 불과 100여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버젓이 이루어진다. 다시 중국쪽 강변으로 돌아오면, 은자의 왕국에 대해 호기심 어린 관광객들이 북한의복 혹은 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중국 북동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의 수는 대략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다수가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능통하다는 배경을 이점으로 활용해 중국과 북한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880마일 거리의 접경지대를 따라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예상했던 바와 달리, 이런 접경지역에서는 철조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낮은 울타리만이, 그것도 대부분은 중국 쪽에 있다. 이는 한국과 북한을 가로지르며 삼엄한 철통 태세를 갖추고 있는 비무장지대와 놀랍도록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동안 3세대에 걸친 세습군주제가 유지되고 있는 북한의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널리 보도되었으나, 북한의 경제적 변환에 대해서는 덜 알려졌다. 67년 전 북한이 건국된 이래, 이처럼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는 은밀한 변환의 과정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중앙집권국가로 손꼽히는 북한에서 최초로 나타나고 있는, 주민이 주도하는 아래에서 위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농산품 및 여타 상품 시장은 언제나 용인되어왔으나, 중국산 제품을 판매하는 일반 시장을 의미하는 장마당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 극심한 기아로 인해 북한의 국가배급제가 붕괴했을 때의 일이다. 장마당은 대략 12년 전 북한당국이 시장 요율에 준한 외환거래를 허용하면서 당국의 승인을 얻었다. 이제 장마당은 북한 전역에서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에 소재한 통일연구원의 최진욱 원장은 장마당이 1000개가 넘는다고 추정한다. 단둥에서 거주하고 있는 북한관리 출신의 사업가는 자본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중국이 했고, 러시아가 했고, 이제 우리가 하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오늘날 이러한 시장에서는 식품에서 패션 아이템 및 전자제품에 이르는 모든 제품이 거래되고 있다. 또한 한국을 포함한 외국의 미디어 콘텐트를 구매할 수 있는 암시장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시장에서는 위안, 달러 및 유로와 같은 외국환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시장이 주도하는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변화를 대면한 평양 당국은 상명하달식의 자본주의 실험에 착수했다. 상당수 농장에 사익창출을 목적으로 특정 수량의 제품을 판매하도록 허가했다. 이는 소규모의 가족경영제체 농장이 재등장하는 촉매제가 됐다. 한편 국영 농장에 상당한 정도로 경영의 자유를 부여했다. 북한 전역에는 24개의 특수 혹은 자유경제구역이 설립됐고, 일부 사업가들은 철저한 개인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북한은 국가 경제 데이터를 공표하지 않지만, 관측가들은 최근 북한 경제가 성장세를 기록해왔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북한경제 연간성장률을 대략 1%로 추정하지만, 서울 국민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안드레이 란코브와 같은 북한 전문가들은 3~5%대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북한 경제는 주민들이 국가가 정해준 직장에서 활동하는 공식 경제와 진정한 수익이 창출되는 실물 경제가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결합된 형태입니다.” 『North Korea Confidential』의 공저자인 제임스 피어슨의 말이다. 이러한 동향에 발맞추어 경영지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주민들이 경영 노하우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경영 방법론을 가르치는 싱가포르 민간단체인 조선교류(Choson Exchange)의 연구담당 디렉터인 안드레이 마브라하미안이 설명했다. “주민들은 특히 활발한 온라인 연결성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이해하고 많은 경우 이를 수용하고자 합니다. 아직은 온라인을 활용할 수 없지만, 다른 이들은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돈주(신흥 부유층)라는 투자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키 리조트나 고급 아파트와 같은 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장 화려한 프로젝트의 상당수는 민관 파트너십을 통한 것이다. 2013년 개장한 평양 문수물놀이장 역시 이에 해당한다. “북한 소식에 따르면, 문수물놀이장이 김정은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데, 실상 이 프로젝트에 투자한 것은 바로 돈주들이었으며, 따라서 이는 사실상 북한 정권의 업적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안드레이 란코브의 말이다. “돈주는 시장의 소규모 가판대의 소유주에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북한 경제를 이해하려면 돈주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둥에서도 돈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둥의 최고급 호텔에 묵는 고객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한 관측통은 이야기한다. “이들 고객은 북한 무역회사의 직원들이지만, 중국인 지인 혹은 동업자의 이름을 빌려 독자적인 기업을 설립합니다.”

몇몇 부유한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선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지어 미국식 교육까지 구매하고 있다. 이글브릿지 국제학교는 지난 2013년 9월 단둥에서 개교했다. 학년에 따라 1년 학비가 7000~1만1000달러에 이르며, 기숙사와 급식에 추가로 2360달러를 청구한다. 부유층 자녀를 대상으로 한 이 국제학교의 북한 학생은 15%가량에 이른다. 로버트 크리스텐슨 교장은 “북한 학생들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북한 학생들은 열심히 노력하며 똑똑합니다.” 크리스텐슨 교장의 말에 따르면, 이 학생들의 부모는 “중산층 사업가”라고 한다.

북한 당국이 손에 피를 묻혀가며 정치를 통제하고 있으나, 돈이 있는 이들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며 이는 당국의 장악력을 잠식해가고 있다. “북한은 카스트와 같은 계급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태어난 순간부터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혹은 사회 내에서 어떠한 직책을 맡을 것인지가 정해집니다.” 피어슨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돈이 있다면 곤란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거나 혹은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는 일이 훨씬 더 쉬워졌습니다.”

특히 2009년 화폐 재평가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북한은 외화 획득에 열을 올려왔다. 시장 활동을 통제하기 위해 단행된 화폐 재평가는 북한의 통화 및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현재 북한에서는 비리가 만연해있으며, 당국의 관리들은 민간기업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석탄·철광석·금·희토류 등 북한의 천연자원을 채굴하는 대대적인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위안화가 급속히 유입되고 있다. 북한은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수출품목에는 해산물·산채·약초·담배·의약품 그리고 대동강 맥주와 같은 제조품이 포함된다. 대동강 맥주의 경우 훌륭한 품질의 라거로서 단둥에서 프리미엄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아마도 북한 최초의 소비자 브랜드가 될지 모른다. 한국에 거주하는 2만8000여 명 이상의 탈북자들 상당수가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고 있다.

단둥의 리넨 사업가인 박채선 씨 사례는 아웃소싱이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인들은 숙련된 섬유공장 근로자로, 이들 근로자가 일하는 공장은 방글라데시·중국·필리핀보다 더 나은 한편 임금은 아시아 최저수준이라는 것이 네덜란드 사업가 폴 치아의 설명이었다.

단둥의 의류 및 해산물 가공 공장의 상당수가 압록강 너머 북한으로부터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제가 북한 근로자를 데려오고자 하는 이유는 중국인들이 이런 종류의 공장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둥 교외에서 의류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 국적의 사업가 김종도 씨의 말이다. “북한 근로자들은 섬유기계를 다루는 데 매우 능숙합니다. 그리고 저는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기를 원합니다.” 김씨는 2층 침대, 구내식당 그리고 게임실이 갖춰진 북한 근로자용 기숙사를 보여주었다. 북한관리 출신의 사업가인 그는 2000여 명의 북한 근로자를 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온 여성 공장근로자들이 떼지어 다니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사진 기자가 접근하면 손을 휘휘 저어 쫓아내고 대화 나누는 것을 거부하기는 하나, 이들은 영양 상태가 양호하고 좋은 옷을 입었으며 발랄해 보인다. 이들 근로자는 받은 임금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비한다. 이들 여성 근로자들은 단체로 행동하는데, 이는 탈북하려는 시도를 단념시키기 위해서다. 북한 체제에서 근로자들은 서로의 활동에 대해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 또한 김씨와 같은 한국인들은 북한 근로자들을 직접 감독할 수 없기에 이를 위해 조선족을 고용한다.

중국 이외에 이러한 북한 경제의 변화를 이용하고 있는 국가는 거의 없다. 북한과 일본, 미국 그리고 여타 선진국 간의 관계를 지배하는 화두는 핵 위협이며, 거의 모든 국가가 유엔의 제재조치를 준수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태 이후 한국 정부가 제재한 2010년 5월 이래로, 한국인은 비무장지대 바로 북쪽에 위치한 개성공업지구 이북의 북한 지역에서 교역 혹은 투자 활동이 금지됐다. 현재 중국이 북한의 경제파이에서 커다란 부분을 독식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러한 제재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태 이후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전 북한과 거래했던 700개 기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남북경협경제인연합회의 동방영만 이사장의 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치적 통일이 아니라 경제적 통일입니다. 중국과 대만을 보십시오!” 독일 물류기업인 DHL과 이집트 통신사인 오라스콤을 제외하면, 특수경제구역을 포함한 북한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주요 글로벌 브랜드는 전무하다. 5·24 대북 제재 조치가 북한당국의 군비확장 계획을 늦추었다는 것이 서울에 소재한 미국 관리들의 주장이나, 이러한 조치가 군비확장 계획을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심지어 제재조치는 북한당국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북한당국의 핵심적인 주장은 북한이 겪고 있는 모든 불만족스러운 사태가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숨통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사업을 해온 영국 사업가 토니 미쉘의 말이다.

단둥에서는 지난 9월 1일 주도 선양에서 시작되는 고속철도선이 개통되었으나, 중국의 자금으로 건설된 압록강 다리는 아직 북한 쪽의 교통망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강가 공원에서 만난 한 나이가 지긋한 중국인은 “중국이 북한과 연결되는 부분까지 자금을 대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낙관적인 이들도 있다. 크리스텐슨 교장은 말한다. “맞습니다. 우리 학교는 도박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압록강 다리 역시 도박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정부로 손꼽히는 중국 정부가 내거는 도박이지요. 북한이 개방한다면 단둥은 상하이와 같은 도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단둥이 북한에 인접한 지리적 위치를 활용해 성장하는 동안, 많은 이들은 상황이 더욱 획기적으로 진전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북·중 관계가 개선되고, 북한 정권의 행동이 개선되고, 모두를 위한 경제환경이 개선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압록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빌딩의 창가 옆에 서서, 한국 출신의 사업가가 외쳤다. “보십시오! 이 곳은 제2의 홍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렇게 되물었다. “하지만 언제가 될까요?”

- ANDREW SALMON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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