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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도 모른 척’ 독재가 낳은 비극

‘알아도 모른 척’ 독재가 낳은 비극

신임 CEO 마티아스 뮐러는 왜 폴크스바겐이 속임수를 썼는지 설명하고 고질적인 기업 문화를 바꿔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지난가을 폴크스바겐은 미국에서 50만 대, 세계적으로 1100만 대의 디젤 차량 엔진에 배기가스 배출량을 속이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고 시인했다. 독일 최대 우량 기업으로 알려진 폴크스바겐에 치명타를 안기는 스캔들이었다. 그 후 리콜 사태와 소송이 줄을 이었다.

폴크스바겐의 한스-디터 푀츄 이사회 의장은 자체 조사를 거친 뒤 지난 12월 10일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그는 디젤차 질소산화물 배출 눈속임 장치 문제는 2005년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미국 시장에서 디젤 차량의 대대적인 판매 캠페인에 나선 2005년 폴크스바겐의 엔지니어들이 ‘시간과 예산’의 제한 아래 미국의 배기가스 배출 기준에 맞출 기술적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 그런 속임수를 썼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해결책을 찾았을 때도 그 기술을 적용하지 않고 계속 기만 장치를 사용했다고 그는 말했다. “단 한번의 실수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행된 기만이다.”

푀츄 의장은 조작 과정에 연루된 간부 9명에게 정직 처분을 내렸다며 “이 스캔들은 규정 위반을 용인하는 회사 일부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이 스캔들의 가장 큰 의문에는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폴크스바겐이 왜 하필 그 시기에 그 엔진에 관해 속임수를 썼을까?

뉴스위크 취재에 따르면 그 답의 일부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2004년 모델의 배기가스 기준을 전례 없이 강화했다는 사실에 있다. 당시 EPA는 미국에서 신차의 오염 배기가스 배출 허용 한도를 크게 낮췄다. 세계의 자동차업체가 기술적으로 그 기준에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EPA는 1970년대 중반 이래 자동차, SUV, 소형 픽업 트럭 등의 배출 기준을 계속 강화했다. 그러나 2004년 모델의 기준이 가장 엄격했다. 질소산화물의 배출 허용량을 1마일(1.6㎞) 당 1.25g에서 0.07g으로 94% 이상 낮췄다. 질소산화물은 차량 배기가스와 담배 연기에 포함된 오염원으로 조기 사망과 기관지염·천식 등 호흡기와 심혈관계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EPA가 이산화탄소와 함께 엄격히 규제하는 물질이다.

EPA의 새로운 규정은 연료효율적인 디젤 차량을 미국 시장에서 대량 판매하려는 자동차회사들에 너무도 높은 장벽이었다. 디젤차는 대다수 휘발유 차량에 비해 엔진의 회전력과 연비, 장기적 가치가 높지만 질소산화물을 더 많이 배출한다. 배출 기준이 미국보다 덜 엄격한 유럽에선 판매되는 차량의 50% 이상이 디젤차다. 미국에선 5%에도 못 미친다. 폴크스바겐은 그처럼 성장 잠재력이 큰 미국 디젤차 시장을 공략해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가 되려고 했다.

마쯔다·혼다·닛산·현대차 등 폴크스바겐의 경쟁업체들도 미국 디젤차 시장을 노렸지만 EPA의 새 규정을 보고는 곧바로 포기했다. 엔진 성능과 제조비용을 유지하면서 그 기준에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은 오히려 미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2008년 폴크스바겐은 미국에서 신형 모델 디젤차를 출시해 LA 오토쇼에서 디젤차로 선 처음으로 ‘올해의 친환경 자동차’에 선정됐다.

폴크스바겐의 놀라운 기술적 위업은 순전히 사기를 바탕으로 했다. 눈속임 소프트웨어 덕분에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적고 연료효율성이 뛰어났던 것이다. 지난 9월 폴크스바겐은 EPA에 그런 사실을 시인했다. EPA에 따르면 폴크스바겐 엔지니어들은 디젤차 엔진에 ‘조작 장치(defeat device)’를 부착했다. 배기가스의 질소산화물 실제 량을 감추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EPA에 따르면 폴크스바겐 디젤차의 승인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그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차량을 실험실에서 테스트한 결과 실제보다 훨씬 적은 질소산화물이 배출됐다(실제는 허용치의 약 40배가 배출됐다).

폴크스바겐 안팎의 조사관들은 현재 두 가지 핵심 의문의 답을 구하고 있다. 왜 그런 속임수를 썼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루됐을까? 뉴스위크의 취재에 따르면 눈속임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며 그 음모의 범위는 알려진 것보다 더 넓을 가능성이 크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운동가들이 독일 볼프스부르크 폴크스바겐 본사 출입구 위에서 오염물질 배출 속임수에 항의했다.
지난 10월 폴크스바겐은 조작에 관련된 직원이 소수라고 주장했다. 미국 법인의 마이클 혼 대표는 의회 청문회 증언에서 “무슨 이유인진 모르지만 엔지니어 2명이 그 장치를 장착했다”고 말했다. 그 후 그는 엔지니어 3명이 연루됐다고 했다가 다시 정확한 수는 모른다고 얼버무렸다. “아무튼 내가 아는 바론 회사의 결정은 아니었다.”

뉴스위크의 취재에 따르면 폴크스바겐 엔지니어들이 2011년 질소산화물 배출량 조작에 관해 간부들에게 보고했지만 그냥 무시됐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의 면책 프로그램에 따라 직원 약 50명(대다수 볼프스부르크 본사 근무)이 배기량 조작 스캔들과 관련된 행위를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지난 11월 말로 종료된 면책 프로그램은 관리자가 아닌 일반 직원에게만 적용됐다. 그러나 많은 직원이 인지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미뤄보면 조작 행위에 연루됐거나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EPA의 교통 및 대기질 국장인 크리스토퍼 그런들러는 눈속임 소프트웨어가 “아주 정교하다”고 말했다. 많은 직원과 간부가 관여해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소프트웨어 코드는 한 사람이 만들었겠지만 엔진의 다른 부품과 연결시키는 일은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한 복잡한 작업이다.

미국 텍사스주 플래노 소재 인포매틱스 홀딩스의 선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브루스 리커에 따르면 차량에 탑재된 소프트웨어에서 기만 코드를 탐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독일에서 18년 동안 폴크스바겐 등 자동차회사를 위해 엔진 소프트웨어 코드를 만들다가 지난해 귀국했다. “보통 차량에는 50대 이상의 컴퓨터가 들어 있는 셈이다. 코드가 수백만 줄이란 뜻이다. 그 많은 코드를 일일이 조사할 수 없다.” 그는 코드가 그만큼 많아 아무도 모르게 엔진 소프트웨어에 기만 코드를 끼워 넣고 수백만 번 복제하기는 식은 죽 먹기라고 말했다. “코드가 만들어지면 차량 수백만 대에 설치하긴 아주 쉽다.”

또 그는 기만 코드를 폴크스바겐 직원이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외부에 용역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그는 지금쯤 섬나라 바하마에서 이 스캔들을 보며 웃고 있을지 모른다.”

눈속임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폴크스바겐 디젤차에선 실제보다 훨씬 적은 오염물질이 배출되는 것으로 나왔다.
스캔들 초기 세계적인 자동차부품·산업재 공급회사 로베르트보슈는 폴크스바겐이 사용한 오염물질 배출량 조작 소프트웨어를 공급했지만 잘못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 장치를 자동차 시스템에 통합하는 것은 각 자동차 제조업체의 책임이다.” 독일 신문 빌트 암 존타그에 따르면 로베르트보슈는 2007년 폴크스바겐에 문제가 되는 소프트웨어를 실제 운전 조건에 사용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폴크스바겐 엔지니어들이 눈속임 소프트웨어를 차량에 쉽게 설치할 수 있다고 해도 왜 그랬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다른 자동차회사의 엔지니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왜 폴크스바겐은 그런 무리수를 뒀을까?

폴크스바겐을 잘 아는 사람들은 뉴스위크에 볼프스부르크 본사를 중심으로 하는 독특한 기업 문화가 원인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환경에서 직원은 위에서 요구하는 일은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 자동차연구소의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소장은 “폴크스바겐의 경우 다른 자동차회사와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아주 독재적이고 볼프스부르크 본사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시스템이다. 민주적이고 글로벌한 사고방식이 없다.”

그는 폴크스바겐의 경영진이 눈속임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라고 직접 지시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의 기업 문화는 토론과 반대를 삼가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회사는 명시적으로 지시하지 않고도 바라는 대로 일을 진행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영진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다른 엔지니어를 구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면 반대할 수 없다.”

조립 라인부터 CEO까지 모든 직원에게 매우 후한 폴크스바겐의 보너스 제도도 직원 다수가 그토록 오래 배기가스량 조작 문제를 적극 제기하지 않은 이유가 될 수 있다. 개인과 사업장의 성과만이 아니라 팀 성과에도 관대하게 보상한다. 따라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아야 금전적 보상이 크다. 폴크스바겐의 한 임원은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직원도 보너스를 받는다. 하지만 직위가 올라갈수록 전체 보수에서 보너스가 차지하는 비율이 커진다.”

폴크스바겐의 노조위원장 베른트 오스터로는 지난 9월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직장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를 덮어두지 않고 상부에 공개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최선의 해결책을 두고 상사와 논쟁을 벌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번 스캔들로 여러 면에서 폴크스바겐의 기업 문화와 사업 방식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세계 각국의 환경규제 당국이 일하는 방식도 바꿔 놓았다. EPA의 그런들러 국장은 뉴스위크에 “이 사건으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이젠 우리도 그런 기만 장치를 어떻게 적발할 수 있는지 안다.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는 더 하지 않아도 된다.”

-LEAH MCGRATH GOODMAN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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